리브라 백서를 읽어보았습니다 (Notes on Libra)

SJ Hong (홍승진)
Jun 19 · 9 min read

리브라(Libra)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리브라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페이스북이 주도하여 다른 수십여개의 유명 기업들과 같이 만드는 암호화폐입니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리브라를 왜 하려고 할까요.

리브라는 백서에서, 문자와 사진 같은 것들을 보내는 것은 인터넷으로 아주 싸고 쉽게 보낼 수 있는데 왜 돈은 그렇게 인터넷으로 못 보내고 금융기관에 계좌를 터야만 가능하고, 또 높은 수수료를 지불하면서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인터넷이 나온 이후로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다 보낼 수 있게 되었는데 돈만은 인터넷으로 보낼 수 없었죠(인터넷 쇼핑몰에서 돈을 결제해도 실제 뒷단에서는 인터넷이 아니라 은행, PG사, 신용카드사와 같은 금융기관에 의해 송금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인터넷으로 돈(가치)을 송금할 수 없다’고 하는 문제는 비트코인이 10년 전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들고 나와 이미 해결했죠. 따라서, 리브라가 풀고자 하는 문제는 단순히 ‘인터넷으로 돈을 송금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고, 비트코인을 포함한 여러 암호화폐가 여전히 풀고 있지 못한 다른 문제가 될 것입니다. 리브라가 풀려고 하는 문제는 현재 암호화폐가 가지고 있는 높은 변동성과 확장성 부족입니다.

비트코인이 나온지 10년이 지났고 이후 수천개의 암호화폐가 더 나왔지만 아직 암호화폐가 사람들의 일상 생활로는 못 들어오고 있는데, 그 이유 중에 많이 지적되는 것이 바로 높은 변동성(volatility)과 확장성 부족(lack of scalability) 문제입니다. 현재도 많은 크립토 프로젝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변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들인 MakerDAO, Terra등 스테이블 코인 프로젝트들, 확장성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비트코인의 Lightning Network, 이더리움의 Casper, 또 dPoS 류의 EOS와 같은 프로젝트 등), 리브라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합니다.

리브라의 해결방식

리브라는 백서에서 미션을 “간편한 글로벌 화폐이자 금융 인프라로 수십억 명에게 자율권을 주는 것(a simple global currency and financial infrastructure that empowers billions of people)”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한마디로 하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암호화폐”일텐데, 이를 위해서 리브라는 세 가지 파트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Libra Whitepaper (2019년 6월)

첫번째는 ‘리브라 블록체인(The Libra Blockchain)’, 두번째는 ‘리브라 리저브(The Libra Reserve)’, 세번째는 ‘리브라 협회(The Libra Association)’입니다.

리브라 블록체인(The Libra Blockchain) — 허가형 블록체인(Permissioned Blockchain)

리브라는 블록체인을 위해서 3가지 중요한 결정을 하였다고 하는데, 첫번째는 ‘Move’라는 리브라의 스마트 컨트랙트용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든 것, 두번째는 비잔틴 장애 허용(Byzantine Fault Tolerant) 합의 구조를 사용한 것, 세번째는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블록체인 데이터 구조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합니다. 1, 2, 3번 다 말로만 봐서는 특별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Libra Whitepaper (2019년 6월)

합의 알고리즘으로는 검증자(validator)들이 합의하는 구조를 사용하고, 라운드 별로 검증자 중에 리더가 선출이 되어서 그 리더가 거래를 담은 새 블록을 제안하고 나머지 validator들로부터 다수의 투표가 모이면, 그것을 합의된 새 블록으로 해서 새 블록을 추가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자세한 것은 Technical Whitepaper 참조). 종종 있는 방식이고 별다른 특이점은 없어 보이는데, Technical Whitepaper를 읽어보신 개발자 분이 계시면 특이점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The Libra protocol 작동방식 — Libra Technical Whitepaper

무슨 방법을 택하든 블록체인에서 확장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노드(또는 validator) 수를 줄이는 것인데, 리브라는 이렇게 하면서 허락을 받은 사람만 validator node를 운영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permissioned blockchain”) 확장성 문제를 노드 수를 줄여 해결할 때 생기는 다른 문제들(특히 보안의 문제)은 검증자의 신뢰도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리브라 자신도, 백서에서 자신들도 permissionless로 가는 것을 원하지만 확장성, 안정성, 보안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은 permissioned로 하고 나중에 permissionless로 간다는 것이 계획이라고 하고 있습니다(리브라 웹사이트 “Moving Toward Permissionless Consensus” 참조).

리브라 리저브(The Libra Reserve) — 저변동성을 가지는 리브라 암호화폐(a low-volatility cryptocurrency)

리브라 코인은 실 자산을 바탕으로 해서 발행됩니다(“fully baked by a reserve of real assets”). 리브라는 스위스에 Libra Association을 설립하고, Libra Association은 설립자들(Coinbase, Uber, Spotify, Andreessen Horowitz, Visa, eBay, PayPal 등등)에게 투자금을 받아서 리저브의 자금을 조달하고, 리브라 코인은 그 리저브의 자산을 바탕으로 딱 그만큼만 발행되며, 그 리저브의 자금은 은행 예금이나 국채처럼 변동성이 낮은 자산에 투자됩니다(따라서, 투자된 자산의 가치 변동에 따라 리브라 코인의 가치가 변동될 것으로 예상되고, 그래서 stable coin이 아니라 low-volatility라는 표현을 쓰는 것 같습니다). 투자자는 뭐가 좋은가 하면, 리저브의 자산을 굴리면 이자가 나오는데 그 이자로 운영비를 충당한 후 남은 것들을 투자자들에게 분배합니다(투자자들에게는 Libra Investment Token이라는 것이 따로 발행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리브라 웹사이트의 The Libra Reserve 참조.

리브라 협회(The Libra Association) — 거버넌스

리브라 협회는 스위스의 비영리 단체이고, 회원은 검증자 노드(validator node) 운영자들로 구성된 위원회(council)와 이를 통해 선출되는 이사회(board)를 통해 운영됩니다. 리브라 협회는 리브라 리저브를 관리하고 새로운 리브라 코인을 발행하고 소각하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리브라 코인은 리브라 코인이 승인받은 리셀러(authorized reseller — 이들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가 코인을 리브라 협회로부터 구입할 때마다 그 새로 리저브로 들어온 자산에 기반하여 새로 발행되고, 소각은 반대로 리브라 코인을 리브라 협회에 판매할 때마다 소각됩니다. 자세한 것은 리브라 웹사이트의 The Libra Association 참조. 백서의 계획에 따르면 검증자 노드를 100개 정도 확보해서 위원회를 그 정도 수준으로 키운다고 합니다.

리브라 프로젝트는 잘 될 것인가?

비트코인을 비롯한 수많은 크립토 프로젝트들이 암호화폐의 높은 변동성과 낮은 확장성 문제를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암호화폐의 바탕이 되는 철학(trusted third-party 없이 뭔가를 하자는 것)을 어느 정도는 유지한 상태에서 그 문제들을 해결해보려고 하기 때문인 것인데, 페이스북은 이를 과감히 무시하고 trusted third-party인 ‘리브라 협회’를 만들고, 그 협회가 암호화폐를 발행 및 소각하고 가치의 바탕이 되는 리저브를 직접 관리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즉, 리브라 협회라는 trusted third-party를 사용하긴 하지만 그 협회의 구성과 운영은 어느 정도 탈중앙화시키고, 소스코드는 모두 공개하는(https://github.com/libra/libra) 등의 방식으로, 기존의 방식에 크립토 철학을 양념으로 가미한 듯한 느낌입니다.

리브라 협회는 스위스에 설립되어 있는 법인이기 때문에 규제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또 협회에게 직접 암호화폐의 가치 근간이 되는 리저브에 대한 관리 권한과 암호화폐의 발행과 소각에 대한 권한이 있기 때문에 협회의 존폐가 암호화폐의 존폐에 그대로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이더리움의 이더리움 재단이나 EOS의 블록원 등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이더리움 재단이나 블록원이 없어진다고 해도 ETH나 EOS가 없어지거나 하진 않죠.

하이텔/천리안/AOL, 온라인 신문

이 부분은 사람마다 의견이 다 다르겠지만, 리브라가 택한 방식은 기존의 것을 바탕으로 새 것을 도입하여 잘 고친 정도인 것 같고 완전히 없던 것을 새로 만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웹과 같은 오픈된 플랫폼은 아니었지만 잠깐 잘 되었던 하이텔/천리안/AOL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인터넷이 새로 나왔을 때, 종이신문들은 새로운 기술에 맞게 웹사이트를 만들어 인터넷에 기사를 올렸고 사람들은 신문 가판대에 가지 않고 컴퓨터 앞에서 기사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죠(기존의 것을 새 것에 맞게 잘 고친 방식). 하지만 인터넷 기술에 사람들이 정말 열광했던 것은 뉴욕타임즈와 같은 종이신문을 nytimes.com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이 마음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곳이 인터넷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네이버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등). 인터넷 기술의 진정한 가치는 “장소에 상관 없이 편하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보다는 “누구나 다른 사람의 허락 없이 원하는 말을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죠.

제 생각에 리브라 프로젝트는 잘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작이 거창한 곳에서 정말 큰 것이 나오는 건 별로 없었던 것 같네요. 저는 정말 크게 되는 것들은 아주 작게 시작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메일링 리스트의 이메일 하나로 시작했던 비트코인이 그랬고, 대학 기숙사에서 시작했던 페이스북도 그랬던 것처럼요.

SJ Hong (홍승진)

Written by

두손법률사무소(www.dusonlaw.com) 대표입니다. 법원 기일관리 어플 케이스마스터(www.casemaster.co.kr)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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