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혐오에서 벗어나다

JH Lim
5 min readDec 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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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와 연필과 키보드

그동안 글쓰기에 갖고 있던 강박이 하나 있었다. 결과 없이 말이 앞서면 허세다. 어떤 경험을 한 뒤 자기만의 통찰이 생긴 것처럼 소개하거나, 직접 결과를 낸 적은 없으면서¹ 자신이 얼마나 멋진지를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의도가 글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천박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그렇게 느껴지는 글을 너무 많이 접해서 그런지, 나도 만약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내가 아무리 오래 고민한 내용이라도 소설을 쓰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왔다. 모든 역사와 경험은 일반화될 수 없고 글 바깥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이나 공식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통찰을 담았다고 주장하는 글은 그저 아이디에이션의 원천으로 간접 활용되는 것뿐이 최대치라는 점에서 문학 작품을 읽는 것과 같은 효용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글을 왜 쓰는 것일까? 읽는 사람이 ‘공감’을 누르면 글쓴이는 자기 과시를 시도한 대가로 감정적 만족을 얻는 일종의 ‘허상’을 거래하는 경제 구조가 이미 구축돼 있어서일까?²³ 그런데 내가 일말의 결과를 만든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몇 가지 생기게 됐다.

첫째로, 쌓인 글은 내세울 결과가 없는 상태에서도 누군가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이 된다. 최근에 새로운 사람들과 서로 소개를 주고 받을 일이 늘면서 대화 과정에서 설득 근거가 부족해 서로 시간 낭비하는 상황을 자주 경험했다. 상대를 신뢰할 수 있으려면 그 사람이 앞으로 하게 될 말과 행동을 내가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충분한 기간 같이 일해보지 않는 한, 단편적인 대화로는 초면인 사람의 의사결정 방식과 진정성이 일관적인지 알 수 없다. 생각을 정리하고 말로 표현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도 한계다. 하지만 그 사람의 과거 생각, 현재 생각, 특정 시점에 일어난 생각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글이 있으면 일관성의 증거가 된다. 과거를 오늘 회상하는 것과 달리 특정 시점에 박제된 기록은 오늘을 무마하기 위해 지어낼 수 없다는 점에서 허상이 아닌 실질적인 증거다. 같이 오랜 기간 일해보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도 신뢰할 근거가 되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 면에서 효율적이다.

홀로 무언가에 도전하는 사람에게도 글쓰기는 좋은 처방이다. 지향점과 당장의 결과물 사이엔 언제나 간극이 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가 아무리 커도 어차피 원점에서 한 걸음 옮기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그런데 어디가 원점인지, 이것이 도전할만한 목표가 맞는지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객관성을 잃게 된다. 칼을 뽑았으면 끝을 볼 필요가 있지만 혼자라는 한계 때문에 실행 속도가 빠를 수는 없어서 결과를 확인하기 전까지 신념으로만 목표를 고찰하는 시간에 오래 노출된다. 근거 없는 확신에 매몰된 채 달리게 될 수 있는 것이다.⁴ 목표에 이르기 위한 효과적인 실행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불필요한 긴장을 버리고 적시에 유의미한 방향 전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외부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수급해야 한다. 그런 피드백 기회를 늘리기 위해 글쓰기를 활용하면 효율적이다.

마지막으로 글쓰기에는 당위가 없다는 사실이 글을 써도 되는 이유가 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누군가에겐 글을 쓰는 이유가 될 수 있고 매일 기록한 사소한 발견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강박을 해소하는 데에 필요한 건 ‘통찰’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뭔가 엄청난 게 있겠지’하는 아우라를 거절하는 태도였다. 내 주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나는 다양한 관점의 글을 소비하길 원하는 편에 속한다. 내가 원하는 것만 보게 되는 필터 버블과 에코 챔버로부터 언제나 달아나고 싶은 욕구와도 관련 있다. 하루에도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수없이 접할 수밖에 없는 시대인데, 어느 순간 편안함만 느껴지고 이견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여러모로 퇴보 중이 아닌지 요즘 접하는 소비 채널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타인에 대한 공감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⁵ 이를 위해서라도 글쓰기에 대한 당위를 벗어던지는 것은 다양한 관점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신호로 느껴진다.

물론 학습과 성장의 차원에선 글을 아무리 열심히 쓴다고 해도 글 밖에서 직접적인 실행을 통해 부딪히며 쌓는 경험보다 품질이 좋긴 어렵다. 하지만 한 번의 시도조차 도전하기 어려울 만큼 가진 것이 없다면 상대에게 근거 있는 신뢰를 주고, 자기 객관화를 지속하고, 열린 관점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글쓰기만큼 가성비 좋은 것이 또 있을까? 홀로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함께’가 되기 전에 거쳐야 할 관문일 수 있다. 글 없이 동료를 찾는 데에 2년이 걸린다면 글 덕분에 그 기간이 1년으로 줄어들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가 생긴다. 우연한 계기로 강박에서 벗어난 것 같아 행운이다.

  1. 결과를 냈다 쳐도 그 사람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없다. 개인이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으므로.
  2. 감정 추구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만족스러운 감정을 지속해서 추구하는 행위는 인류가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지렛대 내지 연료로서 작용한다.
  3. 이런 강박은 과거에 고객의 니즈라는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조직에서 몰입했던 경험을 통해 형성된 것 같다. 쓸모없는 것으로 지표 측정이 된 제품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사람들이 구입하게 만드는 것은 스킬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범죄다. 그 제품에 적용되는 ‘브랜드 마케팅’이 사기인지 아닌지는 측정할 수 있다.
  4. 1인 창업자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팀 빌딩이어야 합리적이다. 그런데 모든 걸 제쳐두고 무작정 사람을 찾으러 다니는 것이 최선의 팀 빌딩 방법은 아니다.
  5. 에너지 문제, 환경 오염과 더불어 인류를 지속 불가능하게 만드는 문제와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돈 룩 업>의 소재로 봐도 되는 문제다. 언젠가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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