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

최근 그와 다툼이 잦아졌다. 내 눈에는 너무도 명백하게 보이는 것들을 왜 그는 보지 못할까. 통찰력의 부족이라기엔 그는 너무도 현명하고, 납득하지 못하면 개운해지지 못하는 나는 이유를 찾고 찾다 관심의 부족이라는 어리석은 결론을 내렸다. Once you eliminate the impossible, whatever reminds, no matter how improbable, must be truth. 나 혼자 최고 이성적인 척 하면서. 몇 번의 비슷한 언쟁과 다툼 끝에 우린 둘 다 예민해졌고 처음으로 그의 뾰족한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허그와 눈물, 대화로 어찌어찌 다친 마음들을 봉합하고 며칠 후면 또 무언가가 거슬린다. 다시 또 오해다.

내가 아는 그라면 분명 오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지 않다는 걸 확인해야 하기에 다시 WHY를 꺼내고 만다. 그는 대답이 없고, 나는 왜 대답이 없느냐고 그를 들들 볶는다. 그는 이것이 나의 공격이라 생각하고 되레 맞서 싸운다. 반복된 다툼과 화해, 오해를 풀고 없던 일로 한다 해도 다툼의 피로는 점점 쌓이고 그 데미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화해 후 허그, 그의 출근길 키스, 사랑한다는 말에도 뿌연 마음은 도저히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마음이 힘들 때면 머릿 속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그걸 종이에 적어내려간다. 그러면 보통 나쁜 감정은 사라지고 객관화가 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세 장을 적어 내려갔는데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이러다 홧병이 나겠다. 우린 요즘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나는 완벽에 대한 강박이 약간 있다. 내 기준에 납득할 정도로 완벽에 가깝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완벽하지 못할 바에는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아예 시작을 안 하는 경우도 많다. 계획하는 것을 좋아하고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플랜 b를 준비해야 함. 대비하면 겪지 않아도 될 불편이나 방지할 수 있을 피해를 입는 것을 아주 싫어함. 사색과 통찰, 사물의 다양성을 보려고 노력하지만 통계와 직관을 어느 정도 신뢰함. 자연 상태에도 자연의 질서가 있듯이 모든 것에 규칙과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스스로에 대해서도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있으면 안으로 파고들어 이유를 알아야 하고, 완벽에 가깝도록 고치고자 한다.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그에 대한 결과 변화를 관찰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좋은 것과 싫은 것의 선이 분명해서 좋은 것에는 과몰입하는 성향이 있다. 몰입도가 높다보니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고 쉽게 배우는 편이다. 그래서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타인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내 입장에 반영해서 이해하는 방법을 많이 쓴다. 공감력이 낮나보다. 보는 것보다 읽는 것을 좋아한다. 중요한 일은 글로 정리하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는다. 만약 잊거나 놓치는 것을 돌아가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관보다 집에서 보는 영화를 좋아한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며 작은 디테일을 잘 발견하고 기억한다. 언어에 있어서도 의미 전달을 정확하게 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뉘앙스에 맞는 어휘 선택에 심혈을 기울인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생각이든 말이든 결론을 내야하고 그 전에는 아무것도 못한다. 결론이 나면 그걸 금방 실행에 옮긴다.

그는 즉흥적이다. 계획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다 원하던 것을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에 크게 집착하거나 감정이 상하지 않는다. 관심이 없는 분야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꼭 필요한 정보 외에는 기억을 잘 안 한다.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열심히 공부하는 열정도 있다. 꼭 해야하는 일을 미룬 적은 없으나 그 범주가 아주 좁다. 일, 가족, 스포츠 정도. 그가 아이리쉬의 전반적인 기질이라고 말해줬는데 싫은 소리를 하기 싫어한다. 잘못 나온 샐러드를 바꿔달라고 말하기 싫어할 정도. 사교성은 좋지만 진지한 화제로 대화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어려워한다. 두루뭉술한 화법을 자주 사용한다. 세부적인 것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큰 그림을 보고, 대부분의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야외 활동을 통해 마음을 비운다. 같은 문제가 또 생기면 또 마음을 비운다.ㅋㅋㅋㅋㅋㅋ

적어보니 더 크게 느껴지는 게 우린 정말 정반대의 기질을 가졌다. 우리 둘 다 매력적이고 좋은 사람들이고 같이 있으면서 행복하고 즐겁지만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절대 의견 일치가 되지 않는다. 계획적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포기를 했고 아직도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그의 기질일 뿐이라는 것에 납득을 했다. 최근 문제가 되는 것은 소통의 부재인데,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나는 합의점을 찾을 때까지 대화를 해야하는 성격인데 그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놓아버리는 성격이다. 나중에라도 이유를(;) 따지고 앞으로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화를 시도하면 꼭 다툼이 된다. 지난 일에 집착하지 않는 그로서는 이미 지난 얘기를 꺼내는 게 자신에 대한 비난이나 공격으로 느껴지나보다. 잔뜩 방어자세를 취하는데, 말의 뉘앙스에 민감한 나는 또 날카로워지고 만다. 이전까지는 누구와 속 깊은 얘기도 나눈 적 없었을테고, 작은 오해가 있어도 다 grand라고 넘어갔을테니 문제가 생길 일도 없었을 터다. 근데 이제 아니다. 너, 나란 명확한 사람과 문제 없이 살아가려면 모든 걸 명확하게 말해야 한다. 아니, 최소한 명확하게 대답해야 한다. 니가 말을 잘못했니 네가 이해를 잘못했니,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유치한 말다툼으로 번졌다.

좋을 때는 누구나 좋을 수 있다. 비록 우리가 시작은 서로의 아름다운 외모나 미처 갈등을 겪기도 전 늘 좋은 시절에 본 따뜻한 성품에 매력을 느끼고 사랑에 빠졌더라도, 더 중요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 사랑을 느끼도록 하는 인간성에 대한 매력은 문제 상황에서, 혹은 몸이 지치고 피곤하거나 어떤 이유로 예민할 때에도 바닥을 보여주지 않고 상대에 대한 존중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대화를 하기 전에 싸우려고 든다거나, 화와 짜증을 쏟아 붓거나, 심술을 부리는 일만은 피하자는 게 내 지론이다. 그래서 밖에 있을 때 화가 나도 일단 참고 두 사람만 되었을 때 대화를 시도한다. 어떨 때는 하루 정도 생각을 정리한 후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제는 달랐다. 첫번째 다툼 후 기분을 풀기 위해 나간 곳에서 생긴 두번째 다툼. 첫번째 다툼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았나보다. 처음으로 이럴 거면 한국어로 다투자고 말하고 말았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싸우는 것도 이미 불공평한데 대부분은 그가 자기가 한 말도 기억 못할 때가 다반사라 나는 그의 말, 나의 말을 토씨 하나 안 틀리게 다시 읊어야 하고, 이건 나의 몰이해가 아닌 너의 명확하지 않은 어법이 문제라고. 마치 모두 다 그의 탓이라는 양. 심술을 부리고 바닥을 보였다.

그의 팀 동료들 앞에 싸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가게를 벗어났는데 오히려 길거리에서 더 시선을 끌며 싸우고 말았다. 사람들 시선 신경 쓰지 않는 편인 나도 우리 다툼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외국인들의 무리를 기억하는데 다른 사람들 시선을 제법 신경쓰는 그는 오죽했을까. 정말 오랜만에 데이트라 그리고 그의 팀메이트들 모두 그곳에 있다길래 마음먹고 나 힘 좀 줬다. 머리도 한 시간이나 하고 옷도 차려입고 어제 내가 봐도 나 좀 예뻤다. 혹시나 그가 홧김에 날 두고 가면 흥미진진하게 보던 외국인들 나한테 와서 말 걸 것 같아 좀 겁도 났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흉하게 싸우면서도 그가 끝까지 떠나지 않더라. ㅋㅋ

우리는 같지 않다.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시작했고, 다름에 매력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제법이 시간이 걸렸다. 어디까지가 상대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다름을 인정해야 하고, 어디서부터가 대화를 통해 맞춰가야 하는 부분일까? 어디까지가 대화의 스킬이고 어디까지가 트릭일까? 칭찬 후 개선점 요구하기 어법의 결과로 내가 순수하게 칭찬을 할 때도 그는 “But…?”을 되묻기 시작했고, 나 또한 그의 불통에 지쳐 그를 설득하기 위한 예를 모으기 위해 그가 다시 실수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러게 내가 뭐랬어?(I told you!)” 그렇게 듣기 싫던 엄마의 오지랖을 내가 똑같이 하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에게는 그저 궁금해서 묻는 왜 그랬냐는 질문이 “그러게 왜 그랬어.”라는 핀잔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씩 변하고 있는 너를 느끼면서도 내가 너무 조급했어. 네가 천천히 와도 서운해하지 않고 기다릴게.”

흐지부지 마무리 되었던 다툼의 끝에 진짜 끝을 고하기 위해 진심을 담아 메세지를 보냈다. 그런데 나의 마음이 도무지 낫지가 않는다. 폰 배경에 깔린 그와의 이스라엘 출장 사진을 보면 늘 기분이 좋았는데, 오늘은 어쩐지 보기 싫어져 화면을 꺼 버렸다. 서른이 넘어서도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은 내 자신에 대한 실망에서일까? 마음의 피로 때문일까? 수많은 물음표가 내 마음을 더 가라앉게 했다. 이 와중에도 내가 필요한 건 납득과 이유다. 대체 나란 사람은 뭐가 문제인가.

늦은 새벽 귀가한 그에게 웰컴백홈 허그를 건네며 눈물이 왈칵 났다. “내 메세지 받았어?” “미안해, 미안해, 어제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든 간에, 내 안의 가장 중요한 룰이 무엇이든 간에, 그 모든 것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그 사람이라는 것을. 그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찾은 이유가 어느새 목적이 되어버렸다. 사람의 관계인 이상 명확할 수만은 없고 늘 완벽할 수도 없는데 그걸 견딜 수 없어서 그만두고 싶어졌던 거다. 앞으로도 너무도 다른 우리는 계속해서 부딪히고 여전히 무엇을 원해야 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아야 할지 몰라 번민하겠지만 처음 그와 함께 하기로 마음을 정했던 순간을 잊지 않기로 했다. 혼자인 게 편하고 혼자여도 괜찮은 나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었던 그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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