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의 주체성

디자이너는 ‘하다보니'되는 직업이 아니다. 나름대로의 전문성이 필요한 탓에, 10대 때부터 미술분야로 진로를 결정하고, 그 뒤로 외길만 걸어서 될 수 있는 직업이다. 이렇게 디자인 외길인생을 타고 온 수 많은 디자이너들이지만, 디자이너는 자신의 직업에 과연 만족할까?

많은 디자이너들은 생각할 것이다. 왜,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하기가 싫을까? 나 역시 디자이너로서 이 고민을 수 년동안 했었고, 한 가지를 인정하니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래, 인정해야한다. 디자이너라는 멋진 직업은 결국 클라이언트를 위한 직업일 뿐이다. 디자인은 그 자체로는 절대 주어가 될 수 없다. ‘제품 디자인' ‘자동차 디자인' ‘패키지 디자인’ 등 이런 단어들을 생각해보자. 디자인은 그 혼자서 완벽해질 수 없는 운명이다. 주어는 제품, 포스터, 책과 같은 매체이며, 디자인은 붙어 살 수 밖에 없는 ‘형용사'의 처지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우리 디자이너들이 느끼는 딜레마는 여기에서 나온다. 자신이 마치 예술가이길 바랬던, 야자 대신 실기 수업을 해가며 남들과 다른 길을 걷노라고 자부하던 10대들이,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남이 기획해놓은, 혹은 시키는 일을 해야만 하는 회사원이 되버렸다는 것.

이 삶이 우리가 원했던 것일까? 내 주변의 디자이너들은 대다수 그렇지 않았다. 디자이너로서 살 때 우리는 항상 어딘가 불만에 차 있었다. 우리는 무언가 디자인하기 위해 받은 일이나 기획에 대부분 비판적이며 능동적이길 바랬다.

‘기획이 병신같아서 디자인이 잘 나올 수가 없어'

‘사업 계획을 왜 이따위로 해놓고 디자인을 애플처럼 하길 바라는거야?’

이것들은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불평이다. 그리고마치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하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다. (정말 더 잘 할지 아닐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그렇다면 우리 디자이너들이 원했던 삶은 시키는 일에서 벗어난 주인의 삶이 아니었을까?

주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과감하게 ‘디자이너'라는 멋진 타이틀을 벗어 던져야 한다. 주체적인 디자이너는 스스로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만들고, 판매해야 한다. 일련의 생산과정에서 디자인만 하는 디자이너는 항상 수동적일 수 밖에 없다.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결정된 의사에 동의하는 일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앤조마리는 ‘프로제타지오네'라는 단어를 만들고 사용했다. 기획부터 제작까지 일련의 모든 제품제작과정들에 직접 관여한다는 의미인데, 정확히 번역하긴 힘들지만 대략 ‘자급자족’의 뉘앙스와 같다. 나는 우리 디자이너가 바라는 것이 이 ‘프로제타지오네'와 결이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자급자족의 디자인이야말로 주체성을 보장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