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평범함에 대하여

불행이 닥쳤을 때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것은 불행이 닥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프기 전으로 돌아가길 바라고, 사고가 나기 전으로 돌아가길 바라며, 죄 짓기 전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만약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과 다르게 태어났다면 그저 다른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사는 것을 바랄 것이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것은 평범한 삶인 것이다. 특별하지 않았던 예전 시간으로 되돌리길 바랄 것이다.

평범한 것이 가장 특별하다는 것을 평범함을 잃어봐야 알 수 있다.

우리는 특별한 존재이길 바란다. 우리 자식이 남보다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직하기를 바란다. 의사가 되길 바라고, 판검사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식이 아프거나 큰 사고를 당하거나 혹여 사망하게 되는 불행이 닥친다면, 그 모든 특별한 바람은 사라지고 원래 모습, 평범했던 모습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평범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매우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남보다 앞서지 않고 남보다 잘나지 않고 남보다 덜 배웠어도 오늘 이 모습이 지속 가능하다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행복한 것이다.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바로 불행해지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만약 우리에게 감정이 없다면, 마치 로봇처럼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같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까? 그때 우리는 사람일까?

‘알렉시티미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병.

우리 뇌 속에 편도체라는 것이 있는데 어떤 사유로 이 녀석이 제대로 작동을 안 하면 우리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마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남들과 같은 것. 굴곡없이 흔한 것.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평범하게 졸업해서 운이 좋으면 대학에도 가고,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을 얻고 맘에 드는 여자와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그런 것. 튀지 말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
길 가의 돌멩이를 보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대신 상처받을 일도 없잖니.

기쁜 일에 기쁨을 드러내지 않으면 우리는 보통 겸손하다거나, 아주 차분하다고 말한다.

슬픈 일에 슬픔을 드러내지 않으면 우리는 대개 얼마나 슬프면 저토록 참을 수 있을까, 또는 냉정한 사람이군, 라고 말한다.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전혀 공포스럽지 않게 행동한다면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관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나, 내 가족, 내 주변 친구라면……

결국 우리는 평범해지는 것을 바라게 된다. 보통 인간처럼 감정만 느낄 수 있게 해달라고 빌게 된다. 그것으로 충분히 족하다고……

우리가 사람인 이유는 웃고, 울고, 저항하고 피할 줄 아는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 삶이란 그렇게 평범한 것이다.

내가 누워 있는 동안 거짓말처럼 엄마가 깨어났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무언가를 엄마가 해낸 거다. 그런데 엄마는 다르게 말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무언가를 내가 해냈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뭔가를 더 설명하고 싶은데, 그동안 있었던 일을 어디서부터 얘기하면 좋을까. 갑자기 뺨이 뜨겁다. 엄마가 뭔가를 닦아 준다. 눈물이다. 어느새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 내가 운다. 그런데 또 웃는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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