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 된 강물처럼(Ordinary Grace)

잔잔한 호수에 누군가 돌을 던졌다. 와이파이 안테나처럼 파문이 인다. 한 번도 파문이 인 적 없는 호수에 어떤 이유로 파문이 점점 커져만 간다. 파문은 또다른 파문을 낳는다. 의심하고, 송곳 같은 말로 상대를 찌른다.

조용한 도시 뉴 브레멘에서 ‘약간 모자라는’ 바비 콜이 열차에 치여 사망하면서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작가는 담담하고 조용하게 이야기한다. 마치 모든 것이 익숙한 일상인 것처럼.
작가는 과하지 않게 소설을 그렸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호수 깊숙이 빠진다. 너무 익숙해서, 그럴 법해서 호수에 빠져 들고 있는지 인식하지도 못한 채 파문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게 만든다. 
아주 평범한 문장으로 이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어쩌면 우리는 파문이 일기를, 누군가 파문을 일으켜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도 파문을 일으킨 가해자이면서 자신이 일으킨 파문은 파문이 아니라고 변호한다. 조용한 호수는 재미 없고 자극적인 뉴스가 필요한 우리는, 어제보다 더 자극적인 내일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파문은 점점 커져가지만 결국 사라지고 만다. 사라지지 않는 파문은 없다. 파문은 찰나에 불과하며 용서와 사랑은 영원하다.

이 소설, <<철로 된 강물처럼>>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내가 철도 선로를 왜 좋아하는지 아니? 항상 저기 있지만 또 항상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지.” 
“강물처럼요.” 제이크가 말했다.

익숙한 문구다. 놀랍게도 헤르만 헤세 작(作) <<싯다르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며, 끊임없이 흐르지만,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며, 언제 어느 때고 항상 동일한 것이면서도 매순간마다 새롭다.

과거는 점점 길어지고 현재는 찰나와 같으며 미래는 점점 짧아진다. 나는 현재에 살고 있지만 과거로 가고 있고 동시에 미래로 가고 있다. 강물처럼, 철로 된 강물처럼. 
현재는 짧아 놓치기 쉽다. 과거는 길어서 후회하기 십상이다. 미래는 불안하나 희망차다. 
용서할 줄 아는 마음, 인정할 줄 아는 관용, 이해할 줄 아는 슬픔 그리고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관심이 필요하다. 이런 마음을 가지기 어려운 이유는 찰나에 불과한 ‘지금’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 책 원제(原題)는 <<Ordinary Grace>>다. 충분히 공감되는 제목이다. 번역된 제목, <<철로 된 강물처럼>>은 지극히 한국적 번역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역시 깊이 공감된다. 
올해 읽은 책 약 70권 중에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고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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