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영화예술에 경배를 보내다

박소윤 ( 2016.09.20 )

제73회 베니스국제영화제를 찾다

제73회 베니스국제영화제가 8월 31일부터 9월 10일까지 이탈리아 북부 베니스의 리도 섬에서 열렸다. 대상인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안은 작품은 작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필리핀 감독 라브 디아즈의 복수극 <떠나간 여인>(The Woman Who Left)이다.

은사자상은 멕시코 감독 아마트 에스칼란테의 <야생구역>(La Region Salvaje)과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의 <파라다이스>(Paradise)가 공동으로 수상했다. 심사위원상은 영화 <야행성 동물>(Nocturnal Animals)로 베니스를 찾은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영화감독 톰 포드에게 돌아갔다.

숙연한, 하지만 뜨거운

올해 베니스영화제는 다소 숙연한 분위기로 시작됐다. 8월 24일 이탈리아 중부 지역을 강타한 지진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매년 열리던 개막식 갈라 디너와 칵테일 파티가 생략됐고, 개막식은 지진 희생자들을 향한 추모사로 시작됐다.

하지만 영화의 열기만은 여전히 뜨거웠다. 개막작은 <위플래쉬>로 한국에서도 성공을 거둔 데미언 차젤 감독의 신작 <라라랜드>(La La Land)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이 로맨스 뮤지컬 영화에서는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이 열연을 펼쳤고, 엠마 스톤은 볼피 컵(경쟁 부문 여우주연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라라랜드>는 영화제 기간 동안 주요 언론으로부터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영화이기도 했다.

비공식 부문 폐막작으로 선정된 영화는 한국에서는 이병헌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할리우드 리메이크 영화 <매그니피센트 7>이었다.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 이 영화의 레드 카펫 행사를 위해 감독 안톤 후쿠아, 주연배우 덴젤 워싱턴과 크리스 프랫 등이 리도 섬을 찾아 영화 팬들을 만났다.

베니스에서 이 영화를 만난 일반 관객들은 영화를 호평했지만 전날 진행된 기자 시사회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탈리아 ‘시네포럼’의 보타 아돌프와 그 동료들은 시사회가 끝난 다음, 특히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원작 영화 <7인의 사무라이>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에 매우 실망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극 중 빌리(이병헌)와 굿나잇(에단 호크)의 미묘한 관계 설정은 흥미로웠다고 덧붙였다.

평단은 올해 베니스영화제 상영작들이 지난 몇 년에 비해 다소 상업적이라는 우려를 보였다. 하지만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단은 황금사자상을 <떠나간 여인>에 수여하며 그런 걱정을 일소했다. 상영 시간이 226분에 달하는 흑백영화 <떠나간 여인>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사투라는 철학적 주제를 시적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은사자상을 공동 수상한 <파라다이스> 또한 흑백영화다. ‘버라이어티’ 평론가 가이 롯지는 러시아의 노장 감독이 독특한 관점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홀로코스트를 담담하게 그려냈다고 평했다. 그는 또 한 편의 은사자상 수상작인 SF 영화 <야생구역>을 두고는 “에로틱하고 기괴하지만 결코 과하지 않게 멕시코의 사회적•성적 불균형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존 F. 케네디 사후 재클린 케네디의 날들을 영화화한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재키>(Jackie)는 주인공 재키를 연기한 나탈리 포트만의 호연과 베니스 방문, 이 영화로 각본상을 거머쥔 노아 오펜하임 덕분에 연일 화제를 모았다. 멜 깁슨이 연출한 <핵소 리지>(Hacksaw Ridge)와 에밀 쿠스트리차의 <밀키 로드에서>(On the Milky Road)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베니스에서 만난 한국영화

올해 베니스영화제는 두 편의 한국영화를 비경쟁 부문에 초청했다. 김기덕 감독은 신작 <그물>이 시네마 넬 지아르디노(Cinema nel Giardino) 부문에 초청돼 배우 류승범, 이원근과 함께 베니스 레드 카펫을 밟았다. 시네마 넬 지아르디노는 베니스영화제가 언론과 영화계뿐만 아니라 베니스를 찾는 대중과 젊은 영화학도들에게도 열려 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발상으로 신설된 부문이다.

<그물>은 올해 처음 선보이면서 제임스 프랑코와 가브리엘 무치노 등을 초청한 시네마 델 지아르디노 부문의 첫 번째 상영작이었다. 영화 상영 30분 전부터 줄을 서면서 김기덕 감독의 팬을 자처한 관객과 영화인들은 <그물>이 김기덕 감독 최고의 걸작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거장으로서 김기덕 감독의 면모를 보여주기엔 모자라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영화 <밀정>의 김지운 감독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의 최재원 대표와 함께 베니스를 찾았다. 베니스영화제에 처음 입성한 김지운 감독의 <밀정>에 대해 현지 영화 관계자들은 영화의 조명과 카메라 동선 등이 예술적으로 정제된 덕분에 세련된 스타일의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고 평했다. 현지 관객들은 영화 덕분에 한국의 암울했던 식민지 역사를 알게 되어 좋았고, 주연배우 송강호의 연기가 특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 문소리는 한국 최초로 경쟁 부문인 오리종티 심사위원으로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제3회 스타라이트 시네마 어워즈(Starlight Cinema Awards)에서 인터내셔널 어워즈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 시상식은 이탈리아 여성 영화평론가 위원회가 주최하는 행사로, 세계 영화계 발전에 기여한 영화인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베니스영화제 기간 도중 수여된다. 이외에도 한국 청소년의 성 문제를 다룬 이탈리아 감독 지오반니 푸무의 <굿 뉴스>(Good News)가 오리종티 단편영화 부문에서 상영됐다.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이자 칸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손꼽힌다. 크게 경쟁(Venezia)과 비경쟁(Out of Competition), 오리종티(Orizzonti)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이외에 시네마 넬 지아르디노와 베니스 클래식(Venice Classics), 비엔날레 칼리지 시네마(Biennale College Cinema) 부문 등이 있다. 이번 베니스영화제에서는 20편의 작품이 경쟁 부문에, 10편의 극영화와 8편의 다큐멘터리가 비경쟁 부문에, 19편의 영화가 오리종티 부문에 초청돼 상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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