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긴이야기를 시작해볼까한다.

2013년 가을쯤 나는 5급공무원에 대한 꿈을 고이접고 하루에 두 번씩 술자리를 옮겨다니면서 술을 마셨다. 마침 2년 반을 만나다가 다른 남자가 생긴 여자친구와도 헤어졌고, 나는 부유하는 식물처럼 서울을, 한국을, 떠돌아 다녔다. 휴학도 했고 이미 돈도 있으니 거리낄건 없었지만 빠르게 온갖 것들을 삼키고 뱉어냈다.

나는 사실 음악이 너무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개근상 한번 타지 못했던건, 남들 보다 빨리 하교해서 음악하는 형들,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느라 그랬고, 고3 8월에는 공연을 하느라고 모의고사를 빼먹기도 했다. 당시 어린마음에는 재미없고 다들하는 공부보다는 경직된 외고에서 나만 독특하게 음악하는 편이 더 즐거웠고 재밌었다. 물론 음악 핑계로 서울을 떠돌아 다니다가 남대문시장이나 은평구 어디 으슥한 술집에서 퍼마시다가 11시가 되면 칼같이 귀가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수능을 세 번보고, 그토록 원하던 신촌에 있는 학교에 오게됐고, 나를 기다리던 음악하는 친구들과 축하주 겸 매일매일 즐거워서 또는 경기도 광주에 포천에 갇혀있던 시간들을 보상받기 위해서 술을 마시고 놀러 다녔다. 물론 대학교에 합격 하자마자 샀던 마이크(UFO마이크로 기억한다)로 그토록 원했던 작업들도 하곤했다.

하지만, 열여덟 열아홉이었던 내가 봤던 음악하는 친구들은 스무살을 기점으로 뭔가 예전같지 않았으며, 갓 스무살이 넘은 목소리로 떠들어대던 이야기는 전혀 재미가 없었다. 중간고사 기간에 F맞을 각오로 시험을 째고 와서 했던 공연은 나의 마지막 공연이 되었었다.

그리고 평범한 대학생, 음악 좋아하는 나이 많은 동기, 5급 공무원이 되는게 목표인 사람 으로 2년 반을 보냈다. 딱히 하고싶었던 것을 그만 뒀기에 우울하거나 슬프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헛헛 했다. 그래도 꾸준히 나오는 음악들을 듣고, 어떻게 이 곡을 만들었을까 생각하고, 회사들이 소속 아티스트, 신보들을 어떤식으로 프로모션 하는지를 그냥 취미생활하듯 챙겨보곤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2013년 여름에서 가을 넘어갈쯤, 친하게 지냈던 Y형은 내게 제안했다.

“같이 레이블 하자.”

지금이야 레이블이라는 개념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있고, 아티스트 들도 기획사라는 단어보다는 레이블이라는 이름을 자주 언급하곤 한다. 음악출판사. Label. 음원유통을 어떻게 어디서하는지, CD프레싱, 프로모션, 등등 필요한 재주 하나없이 그냥 음악이 하고싶어서.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지금까지도, 어쩌면 어제까지는 거기에 있었다.

One clap, two clap, three clap, forty?

By clapping more or less, you can signal to us which stories really stand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