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를 읽으며

가볍게 읽으려고 펼친 책인데 한장한장을 무겁게 넘기고 있다. 특이 이 페이지에만 30분째 머물고 있다. 공자의 사상이 유럽에 미친 영향을 다룬 책인데, 기존의 생각을 마구 두들겨 기성 프레임을 무참히 깨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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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기독교적 ‘사랑’에 대한 이해이다. 나는 사랑을 유교적 ‘인’과 동일한 황금률로 여겼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들은 한발 더 나아가 사랑은 의지(이성)의 작용으로 인은 감정(감성)의 작동으로 나눈다. 물론 동양사상에도 이런 구분이 있지만, 유럽의 17세기에는 공맹의 단편들이 들어왔으리라. 아무튼 일단 사랑과 인을 이렇게 구분하니 뭔가 더 분명한 이해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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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공리주의의 유명한 명제로 알려진 허치슨의 ‘최대다수 최대행복’이다. 이 명제는 벤담의 공리주의를 대표하며, 인간의 사적인 이기적 욕망과 쾌락이 공적인 상태로 나아가도록 유도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벤담의 파놉티콘은 상당히 유사한 가하학적 구조라는 점에서 공리주의는 홉스와 로크의 사회계약론을 잇고 있다. 이를 근거로 현대 자본주의+민주주의가 주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현대의 많은 이념들 중 현대인 모두에게 실제로 강력하게 관철된 이념은 (합리적) 공리주의가 유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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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치슨은 새프츠베리의 사상을 잇고, 새프츠베리는 로크의 제자이다. 로크는 홉스의 사상과 대륙의 사상을 접목해 인간 본성의 백지론(타블라라사)를 주장하고, 공유가 아닌 사유에 근거한 새로운 사회계약론을 주장했다. 그의 <통치론>은 영국의 명예혁명의 결실이자 미국 건국의 이념이다. 그렇기에 새프츠베리와 허치슨도 그 영향 아래에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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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한다. 새프츠베리는 스승과 달리 당시 유입되던 공맹 사상의 인애 개념을 수용했다고 주장한다. 의지가 아닌 감정, 쾌락이 아닌 공감을 더 중요시 여겼단 의미다. 이런 인애와 공감도덕론은 흐름은 낙수효과로 잘 알려진 흄과 애덤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연상케 한다. 이 말인 즉, 영국의 경험주의 미학과 정치경제학은 로크와 벤담의 공리주의와는 결이 다르단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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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이 책에서 영국 수채화가 중국 수묵화의 영향이라는 점, 윌리엄 터너의 그림풍도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 느낌과 인상의 미학이 당시 유행한 중국풍의 영향이었다는 점을 알았다. 일본의 우키요에가 들어오기 앞서 이미 중국이 터줏대감이 되어 있었단 말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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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이런 상황을 의심하긴 했다. 실제로 18세기말 제임스 매카트니를 대표로한 영국 사절단이 청나라를 방문해 교역을 청한적이 있다. 청나라는 이를 거부했고 영국은 어쩔수 없이 수용했다. 물론 50년뒤에 상황은 역전되었지만. 그땐 그랬다. 그렇다면 이미 당시 유럽에는 중국의 문물이 상당히 유입되었다고 봐야 하는데, 지금까지 예술사나 문화사에서 ‘일본’은 그렇게 흔하게 접하면서도(심지어 자포니즘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이란 단어를 만나기 어려웠다. 도데체 무엇인 진실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