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면허 비전공에 IT기업 다니는 프로그래머 이야기

송요창
9 min readMay 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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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대한민국, 전공과 무관한 직업 선택 50%. 이대로 괜찮은가?

여러 경로로 프로그래밍을 업으로 삼으려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를 시작하고 5분 이내에 비전공 이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말한다. 프로그래머로써 자신의 약점을 비전공으로 두다보니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압박감을 가지고 컴퓨터 공학 을 공부하고 있었다. 실제 업무를 하면서 알고리즘, 자료구조, 운영체제 등이 어떤 쓰임이 있는지와는 무관하게 학습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아래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고등교육을 이수해도 전공과 연계한 직업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 50%다. 다시말하면 의료계, 법조계처럼 국가가 자격을 보증하는 직업 외에 함께 일하는 동료 중에 전공자는 많아야 둘 중 하나란 소리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프로그래머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전공하지 않은게 약점 이란 압박감을 가지게 만들었는지 의문이다.

전공 선택의 관점에서 본 대졸 노동시장 미스매치와 개선 방향

이런 현상은 개발자 — IT 서비스 개발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 — 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프로그래머에 대한 인식은 아주 없거나 처참한 수준이었다. 40대에 치킨집을 창업해야한다고 말하는 직업이었다. 높은 노동강도로 목숨을 잃는 선배들이 기사에 오르내렸다. 이런 인식이 지난 10년간 서울대와 스탠퍼드대의 컴퓨터 공학과 정원 증가에서도 나타난다.

스탠퍼드 컴공과 정원 10년새 5배↑…서울대는 16년간 15명 늘려

안좋은 흐름이 흐르다가 대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디지털 전환이 급격히 이뤄지다보니 자연히 IT 노동자 손이 많이 필요해져 지금과 같은 처우 개선이 진행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닷컴버블 시절과 달리 IT 서비스 회사가 큰 돈을 버는 성공 사례가 나오면서 과거와 달리 많은 투자금이 들어와 각 회사의 자금 여력이 좋아진 면도 처우 개선에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 프로그래머가 되었을 때도, 누군가와 면접을 봐야할 때도 비슷할거라고 본다. 그러니 안심하고 공포를 떨쳐내길 바란다.

현실은 그렇지만 당신은 소위 네카라쿠배 회사 다니는 꼰대라서 이런말하는거지 않나 반문할까봐 구구절절한 커리어를 몇 자 적어보도록 하겠다.

애니팡 바람타고 어쩌다 프로그래머

2012년 지하철은 남녀노소 누구나 애니팡 for kakao 하느라 바빴다. 한밤중에도 애니팡 하트 알림이 울리던 때다.

이런 열풍 덕분에 몇 백억 들어가는 PC게임이 아니라 가볍게 한 판 즐길만한 모바일 게임 개발사가 많이 생겨났다. 그리고 순순님이 작은 모바일 게임 개발사에서 Unity 를 활용해서 게임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를 해보자고 제안한다.

TMI. 순순님과 나는 군대에서 2년 조금 안되게 프로그래밍같이 하던 사이다. 프로그래밍 특기가 아니라 1111 소총수였는데 자대배치 받고 프로그래밍했던 사람 손들어보라고 해서 손들었더니 프로그래밍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html, JavaScript 다뤄보길 잘했다.

광고 영상 회사에서 영상 만들고 있던 터라 제안 받았을 때 얼떨떨했다. 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게임이란걸 만들어 보고 싶긴했다. 광고 영상의 특성상 의뢰인 입맛대로 작품이 수정되는 일을 2년 정도 겪다보니 나만의 컨텐츠를 만들고자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다행히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 취미로 다루던 JavaScript를 활용해서 Unity를 다룰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직과 전직을 결심했다. 이때가 한국나이로 서른이었고, 결혼을 3개월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오래된 산업의 낮은 연봉 수준도 이런 결심을하는데 동력이 되었다.

모두가 그렇듯 처음은 어려웠다. 마음처럼 빨리 프로그래밍이 늘지않아 답답한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시간은 잘만 가더라.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Unity가 JavaScript보다 C#을 더 잘 지원하길래 언어를 바꿔 프로그래밍하게 되었고 점차로 일이 익숙해져서 -악평만 남은- 책 도 한 권 쓸 수 있게 된다.

앞뒤 안가리고 일했던 시기였다. 게임 출시를 앞두고 인앱 결제 상품 진열을 변경하고 재화를 관리할 서버가 필요해졌다. 회사에 이걸 개발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과거에 php로 홈페이지나 만지던 실력으로 서버 개발을 시작하고 게임 출시까지 경험하게된다. 그리고 게임 회사 다니던 동창의 소개로 node.js를 알게된 뒤 express.js 근근히 익혀 게임 서버를 계속 개발하게 되었다.

행복했는데 사라져버린 두번째 게임 회사

첫 회사에서 많이 배우며 다니고 있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회사가 정리하는 단계에 들어서 새로운 회사를 찾아야했다. 배운게 게임 클라이언트 개발과 서버 개발인지라 비슷한 게임 회사를 찾았고 우여곡절끝에 아라소판단 에서 거둬주신 덕에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다.

옮긴 회사에서는 처음에 게임 클라이언트와 서버 개발을 함께 했지만 점차 게임 클라이언트를 다뤄줄 동료들이 많아지면서 서버 개발만 담당하게 되었다. 몇 명 안되는 인원이지만 매니징을 해볼 수 있는 기회도 이 때 얻었다.

좋은 동료들과 2년 동안 게임을 개발했지만 회사에 여러가지 사정이 생겨버려 모두 흩어져야했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도 있던 터라 얼른 회사를 구해야했다.

일도 많고 성장도 빠른 첫 IT회사, 초특가 야놀자로 이직

이상한모임에서 알게된 이모 님의 소개로 야놀자에서도 node.js 백엔드 프로그래머 구인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원했다. 그때도, 지금도 CTO인 송재하님과 1시간 반이 넘는 면접을 봤다.

내가 합류했던 시점은 코딩 테스트가 도입되기 전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이게 큰 행운이었다. 이후에 도입된 코딩 테스트 문제를 떠올려보면 지금도 머리가 어지럽다.

재하님과의 면접에서 백엔드 관련한 질문을 많이 받아 대답하느라 진땀을 뺐고, -악평만 남은- 책 후기를 직접 살펴보며 많이 창피하기도 했지만 좋게 봐주셔서 입사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프로젝트 1. 돈받으며 React.js를 배우게해준 PC 홈페이지 개편 작업

2017년 2월에 입사하고보니 node.js 다루는 프로그래머는 한 명도 없는 팀이었고 당시 팀장님(이후 실장님)도 처음 이런 사람이랑 일해본다고 하셨다. 이런 상황에서 야놀자 PC웹 서비스를 react.js 활용해 SPA(Single Page Application)로 완전히 새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사람이 급해 프론트 개발 지식 0인 나도 얼떨결에 투입된다. 무시무시한 크런치가 이어지면서 동료들도 엄청 지쳤지만 서비스는 세상에 나갔다. 첫 react.js 찍먹은 매운 맛이었지만 경험한게 어딘가.

이후에는 주로 node.js와 TypeScript를 활용해서 안드로이드, iOS, Web 3곳에서 사용할 BFF 서버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일을 했다.

BFF(Backend for Frontend)는 사용자가 만나는 화면을 중심으로 API를 제공한다.

프로젝트 2. 이렇게 힘들줄 몰랐던, 레저 카테고리 오픈 작업

2018년 숙박 관련 카테고리(모텔, 호텔, 펜션, 게스트하우스 등)만 다루던 회사가 레저/액티비티 카테고리를 추가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늘하던대로 BFF 서버에 Web API 몇개 만들면 안드로이드, iOS, Web 3곳에서 특급 개발자들이 나타나 클라이언트를 개발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요우 님과 둘이서 뚝딱거리고 있었는데 Web쪽에 문제가 생긴다. 당시 준비중이던 야놀자 모바일웹 개편 작업이 완료가 안되어 투입할 프론트엔드 개발 자원이 말라버린거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지 않나? 2017년에 react.js를 일로 배운 덕분에 필요한 페이지를 차례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BFF 서버 같이 유지보수하는 동료중에 웹을 다뤘던 분들이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 런칭을 얼마앞둔 시점에 둘째가 세상에 나와서 출산휴가를 가야만했다. 이때 동료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둘째의 첫 모습을 볼 수 없었을지 모른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감사 인사를 전한다.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야놀자가 레저를 판매하려고 할 때 벌어지는 일 을 보면 됩니다.

코로나와 함께 시작한 우아한형제들에서 2년

즐겁게 다니던 야놀자에서의 시간을 정리하고 2020년 2월 우아한형제들로 이직하게 된다.

이직 관련한 이야기는 정든 야놀자를 떠나며 에서 자세히 다룬다.

이직하는 과정에도 운이 따라줬다. 2019년 아름아름 준비한 Tech야,놀자에서 야놀자가 레저를 판매하려고 할 때 벌어지는 일 발표를 했는데 이 발표를 듣고 내게 좋은 인상을 가졌던 분이 1차 면접관으로 들어왔다. BFF 개발만 하다가 react.js 다루는 프론트엔드로 지원했던 터라 걱정을 많았으나 다행히 과거 경험을 좋게 봐주셔서 우아한형제들로 합류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야놀자와 우아한형제들 합류는 큰 행운이 따라줬다.

경험도 없이 프론트엔드 개발을 업으로 삼았지만 좋은 동료분들 덕에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도움받으며 만 2년 일을 해오고 있다.

선물하기서비스팀에서 제가 어떤 삽질을 하는지 볼 수 있는 영상입니다.

마치는 말

돌이켜보면 운이 많이 따라줬다.

  • 애니팡이나 드래곤플라이트가 큰 흥행을 하지 못했다면 게임 개발을 시작할 수 없었을거다.
  • 야놀자에서 node.js 개발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IT서비스 회사를 경험하지 못했을거다.
  • 면접관이 별거 아닌 내 발표를 듣지 않았다면 프론트엔드 경험이 없어서 우아한형제들로는 오지 못했을거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지 못했고, 컴퓨터 활용 능력 자격증 하나 없는 상태로 10년 프로그래밍으로 밥벌이해오고 있는 지금은 틈틈히 프로그래밍 스터디 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롭게 프로그래머가 되려고 준비해온 분들을 보면 10년전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같은 사람도 10년 버틴걸보면 여러분은 더 멋진 일을 더 오래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비전공, 알고리즘, 코딩테스트 등에 눌려서 스스로 작아지지말고 당당하게 시작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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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요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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