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키치죠지는 그만둘까?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이틀 동안 병가를 내고 쉬게 됐습니다. 좀처럼 쉽게 나지 않던 시간이 생긴 김에 우연히 알게 된 일드를 찾아보게 됐습니다. “키치죠지만이 살고 싶은 거리입니까? (吉祥寺だけが住みたい街ですか?)”라는 제목부터 흥미로웠습니다.?
줄거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주인공은 키치죠지에서 부동산을 경영하는 시게타자매입니다. 키치죠지는 도쿄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동네에 항상 1-2위를 다투는 동네라지요. 키치죠지에 살기를 희망하는 손님들이 부동산을 찾아오면 꽤 불친절하고 무례하기까지 한 태도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희망 사항을 확인한 후,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엉뚱한 지역으로 손님들을 납치하다시피 끌고 갑니다. 손님들은 “키치조지는 그만두죠?” 라는 부동산 업자의 말에 한 번 당황하고,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곳으로 끌려가서 다시 한번 당황합니다.

시게타 자매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키치죠지가 좋은 거리인 것은 사실이지만, 도쿄에는 좋은 거리가 많다. 사람마다 각자 자기에게 맞는 동네가 있다. 자기에게 맞는 동네를 찾는 게 중요하다.”

애초에 그냥 담요 안에 누워 쉬면서 시간이나 때우려고 보기 시작한 드라마인데 직업병인지 뭔가 대단한 영감을 받았네요. 저는 디자이너입니다. 유저센터드 디자인(User-centered design)과 린유엑스 (Lean UX)어프로치를 기본으로 하는 서비스 디자이너(Service designer)입니다. 시게타 자매가 하는 일과 그들이 일하는 과정이 제 일과 꽤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 에피소드 중 하나를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풀어보았습니다.

Persona

먼저 오늘의 페르소나. 이름은 미키 오사무, 직업은 소설가 지망생입니다. “정체하고 있다. 의욕도 나지 않는다…”라고 중얼거리며 걷다가 시게타 부동산에서 다다릅니다. 소설 읽기를 좋아해서 본격적으로 글 쓰고 싶은데, 낮에는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므로 대부분 밤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옆집에서 밤마다 내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소음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 이사를 결심합니다. 최근 마타요시 나오키의 불꽃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에, 배경이 된 키치죠지에 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부동산 설문서에 기재한 희망 사항은 (1) 키치죠지역에서 도보 10분이내, (2) 월세 8만엔 근처 등입니다. (3) 저녁에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환경에서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Proto Persona

Designers

매우 무뚝뚝해 보이고, 약간은 무례하기까지 한 태도로 고객을 응대하는 시게타 부동산의 자매 오너

시게타자매가 고객(미키)을 끌고 간 곳은 키치죠지가 아니라, 카구라자카. 당황하는 커스토머가 항의해도 별다른 거리낌 없이 반강제로 손님을 끌고 구석구석을 소개하며 다닙니다. “카구라자카는 주변에 출판사가 많아서 문학의 거리로 알려져 있고 유명한 작가들이 살았거나 방문했던 명소가 많다”며 고객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며 “거리에서 나는 문학의 향기를 맡아보라”며 부추깁니다. 주변 맛집에도 가고, 매력적인 돌길을 걷다가 작은 동네 서점에도 들러 서점 주인과 대화도 나누는 사이에 미키도 꽤 이 동네에 흥미를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신사에서는 서로 소원을 빌고 비로소 속마음을 나누게 됩니다.

시게타자매가 다른 부동산업자들과 확실히 다른 점은 고객의 삶에 좀 더 깊게 관여하는 것입니다. 다른 평범한 부동산 업자였다면, 고객이 원하는 키치조지역 도보 10분 이내의 조용한 아파트를 찾아서 제공하는 것으로 간단히 일을 마무리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게타자매는 좀 더 깊이 봅니다. 고객과 대화하고, 고객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리고 매우 진지하게 잘 들어줍니다. 겉으로 보이는 희망 사항(Explicit goals)을 충족시켜주기 보다는 왜 그런 희망을 품게 됐는지에 관심을 두고 좀 더 근본적인 문제(Implicit goals)에 접근하려 하는 것이죠.

카구라자카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신사에서 미키는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렇게 해서 듣게 된 미키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미키는 사실 자신이 쓴 책이 크게 히트했음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인지도 문제로 다른 유명작가의 이름을 빌려 출간한 이유로 인세도 하나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출판사도 미키의 데뷔를 도와주려 하지 않고 계속해서 대필제의만 해오고 있는 현실에 크게 좌절하고, 더는 글이 써지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옆방의 소음은 그저 핑곗거리일 뿐이었던 것이지요.

Updated persona

Focus on outcomes rather than outputs

디자이너로 일하다 보면 많은 팀이 Output에 집중하는 것을 봅니다. 이런 팀들에게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정해진 기간 내에 계획했던 모든 기능을 탑재한 제품을 만들어내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종종 그런 output은 requirements라는 이름으로 둔갑하여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진정한 목표를 흐리게 됩니다. 좋은 디자이너는 최소한의 output으로 최대한의 outcome을 만드는 방법을 고안하는 디자이너가 아닌가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역할은 단순히 requirements를 충족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할 사용자가 진정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아내고 이를 해결함으로써 모두가 행복해지는 아웃컴을 만드는 것입니다. 미키가 부동산업자로 부터 기대한 output은 그저 역 근처의 조용한 방으로 이사를 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시게타자매가 집중한 outcome은 미키가 다시 한번 힘을 내서 꿈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겠죠.

Explicit and Implicit goals

기업의 프로젝트팀은 때때로 사용자에 대해서 충분한 조사를 마쳤고, 따라서 사용자들이 뭘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규모가 큰 기업의 경우 이런 경우가 두드러지는데요. 기업의 유엑스 리서치 팀은 분기별로 설문조사를 통해서 불만 사항을 접수하고 이를 품질개선이나 신상품 제작에 적용합니다. ‘사용자의 목소리를 듣고 대응한다.’ 좋은 자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목소리들은 그저 또 다른 requirements에 불과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직접적인 인과관계에 따른 (Explicit) 솔루션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디자이너와 프로덕트 팀은 ‘사용자의 목소리’ 안에 숨어있는 내재적인 문제점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변의 방해가 없는, 또는 방해를 차단해 줄 수 있는 견고한 방을 제시해주고 문제 해결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소음이 진정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근본적으로 글을 쓸 수 있도록 용기를 심어주는 것(Implicit)이 시게타자매가 선택한 문제 해결 방법이었습니다.

“일단 부딪혀보는 거야!” 미키에게 필요한 건 새 집이 아니라, 위로와 용기였다.

Listen well and observe well

좋은 디자이너(리서쳐)는 잘 말하기보다 잘 들어야 합니다. 물론 좋은 질문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질문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단답형으로 대답할 만한 질문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질문입니다. 시게타자매에게는 딱히 리서쳐로서의 ‘고급 질문기술’이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듣고 공감하는 것 하나는 정말 잘합니다.상대방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말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야말로 리서쳐로서 가져야 할 최고의 기술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대방을 잘 관찰하되, 급하게 판단을 내리지 않고, 스스로 얘기를 할 수 있게 기다려주고, 호응해주며 위로해줍니다.

“자, 키치죠지는 그만둘까?”

시게타자매가 고객의 요구사항(Requirements)에서 벗어나 내연적 요구(Implicit goal)를 파악해 아웃컴(Outcome)을 탐구하기 시작할 때 내뱉는 말입니다. 디자이너 또는 리서처라면 이 말을 한 번 떠올리고 일을 시작하는 게 어떨까요?

Special thanks to Erika Ito who co-wrote and translated this article.

You can find this article in other languages: Japanese, English.

You can find details of the show: http://www.tv-tokyo.co.jp/kichijo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