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보험과 명함 없이 먹고 사는 프리랜서

복지 좋다고 유명한 회사를 퇴사하게 된 지 6개월 넘었다.

내가 정규직을 제발로 뛰쳐 나온 것이 이제까지 몇 번이더라. 몇 일전 부득이하게(?) 레쥬메를 업데이트를 하면서 세어보니, 내가 정규직인 상태에서 직장을 바꾼 횟수는 총 6번이다.

어느 회사에서도 2년 이상을 근무한 적이 없다.
재밌는것은 고작 1년만 다닌 회사일지라도 일한 시간으로만 따지면 말도 안되게 많다. 나는 전문직, 개발자, 세일즈담당자, 사장조차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근무한 회사들에서 일주일에 총 몇 시간을 일했는지 딱히 계산해본 적도 없다. 그저 평일에는 눈 뜨고 있는 동안은 거의 일한 것 같고, 주말에는 대부분 산부인과 인큐베이터에 잠든 아기처럼 그저 피곤해서 잠만 잤다.
창피한 고백일수도 있지만, 나는 놀 수 있는 주말보다 일할 수 있는 평일이 더 즐거웠다.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뭔가에 몰입하느라 나라는 존재를 잊을 수 있을 때였다. 그래야만 내 삶이 의미있게 느껴지곤 했다.
무엇보다도 일을 하는 것이 재밌다. 진짜 진심이다.

내가 왜 워커홀릭이었는지 그 원인을 정리해봤다.

1. 보통 사람이 죽을 때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일(work)이다.
2. 죽기전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가족(부모, 형제자매, 부부, 자녀)보다는 직장 동료이다.
3. 본능(식욕,수면욕,성욕)이나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들처럼 사람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것들 이외에, 공평하게 쟁취할 수 있는 사람의 성과는 공부 아니면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4. 내가 가진 배경(집안, 학벌, 지능, 외모, 사회성)안에서 가질 수 있는 업무 성과의 최대치가 무엇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5. 죽기전에 생물(인류, 동식물)에게 도움이 되는 선한 가치를 남기고 싶다.

내 욕구 단계 = 카오스

2018년 이전까지 왜 결혼이라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지 생각해봤다.
1. 30대 초반까지는 그 사람과의 사랑만으로 살 수 있다고 여겼고, 
사회적 조건과 나이압박에 따른 결혼시기는 나와 상관없는 가치라 여겼다.
2. 한국 사회안에서의 내 객관적인 위치를 잘알아서 결혼이 나에게 짐처럼 느껴졌다.
3. 채용 담당자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그러니까 남여관계안에서 나에게 좋은 사람이 누구인지 판별하는 눈이 없었다. 
4. 어차피 내가 받을 수 있는 연봉안에서는 돈을 아득바득 모아 결혼해도 주거비용때문에 버는 만큼 빚만 만들테니, 열심히 일해 번돈 나한테 원없이 쓰자는 선택을 했었다.

미래에 그 판단이 더 명확해지겠지만 내 생각이 많이 변한 것은 2017년 12월이 터닝 포인트다. 
‘회사에서 내 할일에 집중하자. 싫은 사람에 집중하지 말자. 회사내 구조적인 문제는 회피하자.’ 며 수없이 되내이며 퇴사라는 결론에 이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리 떼어내려고 해도 끝내 제자리로 되돌아갔던 그 찌질했던 기나긴 연애도 ‘자꾸 또 만나게 되는거 보면 운명인가보다. 그냥 내가 기대치를 낮추고, 포용하자’ 결심하기를 수차례였다.
하지만, 결국은 정말이지 유치 찬란해서 도저히 버티기 최악으로 달려가고 있었고, 배신감때문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돈받으며 하는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긴장이 풀린 상태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7개월을 보냈다. 
나는 완급조절, 밀고당기기, 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 잘 할줄도 모르고 의도적으로 안하려고 한다.
그걸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좋은 방법이지만, 그것을 일이든 개인적으로든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사회적으로 진화가 덜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대부분은 몰라서 안한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은 안한 것 뿐이다. 이런 가치는 부모님이 내게 주신 가장 소중한 가치다.
부족한 환경에서 한정된 정보와 자원으로 자랄 수 밖에 없었지만, 부모님께서 절대로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되며,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냥 내 몸에 DNA 처럼 박혀있기 때문이다.

삶이 재미있는 것은 내 이익을 훤히 보여도 남에게 상처나 피해를 줄까싶어 의도적으로 전혀 모른척하며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선택은 가끔 내게 치명적인 상처로 돌아왔다. 피해를 보더라도 안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 여긴 선택을 그 상대방은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게 큰 절망감을 주었고, 그 순간마다 내가 변해야되는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2017년 12월 또 이런 고민의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고, 나는 원초적인 욕구 즉, 이성으로부터 사랑받고싶은 욕구를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어느 정도는 이기적인 결정을 하면서 내 행복을 최우선시하기로 했다.
이상하게도 나라는 사람에게는 개인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 남들과는 달라야 했다. 더 좋은 조건의 사람을 만나기위해서는 이전보다 돈을 많이 더 벌어야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좋은 방법이지만 반대로 나는 돈은 덜 벌어들이는 대신 개인적인 시간을 늘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애초에 회사라는 시스템은 사람의 외로움을 해결해주기 위한 도구가 아닌가 싶다. 사실, 20대 마지막 즈음쯤 모든 인간의 활동이라는 것이 그렇다고 느껴왔다. 외모를 가꾸는 것,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예술과 체육활동, 인간관계, 여행, 종교, 심지어 가족을 만드는 것도 말이다.

나도 이제는 정도껏 이기적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정하고나니, 회사라는 울타리도 돈을 모으는 것도 가족을 위한 배려도 그 무엇도 나 자신보다는 중요하지 않은 가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벌써 6개월을 넘게 4대 보험도 없이, 명함도 없이 무척이나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며 살고 있다. 그저 나는 강남구 논현동에서 월세살이하는 소속이 없는 30대 미혼녀이다. 이런 생활 속에서 내 가까운 지인들에게 내 머리속에 담긴 생각을 말하고, 괜히 센척안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 있어서 좋다. 이제서야 나는 내 인생의 진짜 기회를 얻은 기분이다.

- 나에게 좋은 에너지가 나눠주는 패스트원 서유라님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