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사에서의 기억들(3) — Death March Project, VMC(1)

Wonhee Jung
Jun 8 · 7 min read

불안했던 시작

이전편에서 이야기했듯이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일들이 여러가지 있었다. 협력업체 인력의 영어문제도 충격적이었지만 그 이외에도 크고 작은 다양한 일들이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일어났다.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기억이라 아마도 앞뒤 순서가 좀 맞지 않고 몇몇은 실제 사건과 내 기억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기억나는대로 써내려가 보자.

열악한 근무환경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는 1년 내내 밤낮없이 평균 기온이 30도를 왔다갔다하는 열대성 기후이다. 그래서 에어컨이 필수였는데, 문제는 우리가 일했던 유엔젤의 인도네시아 지사인 PT Uangel Indonesia 가 위치해 있던 자카르타 한군데 있던 그 큰 상업용 빌딩은 8시인가? 그이후에는 모든 인력이 빌딩을 나가야 했다. 이주 예외적으로 미리 관리인력에게 이야기를 하고 늦게까지 남아있을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노동법과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서 건물을 떠나야 했다. 거의 역삼동 스타빌딩 혹은 삼성동 포스코 건물 높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Photo by Vier Picture on Unsplash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은 차고 넘치는데 사무실에서는 일찍 퇴거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은 퇴근해서 숙소 호텔로 돌아와 계속 일을 하던지 아니면 아니면 사무실과 가까운 한국식당이 있는 쇼핑센터로 택시를 타고 이동해서 저녁을 먹은 뒤 그 건물에 있는 아이리쉬 커피가 맛있는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로 이동해서 두세시간 일을 좀 더 한 다음에 퇴근하는 식이었다. 쇼핑몰의 가게들도 그렇게 늦게까지 영업을 하진 않았다.

그때 생각으로는 뭐 이런 게으른 곳이 다 있지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당시 인도네시아의 노동법과 “저녁이 있는 문화” 는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주말이었는데, 주말에는 지사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냉방이 들어오지 않았다. 중앙집중식 냉방이기 때문에 한두 사무실의 사람들이 출근한다고 에어컨 시설을 가동시킬 수가 없는 상황이어던 터라 미리 업체에서 양해를 구한다 해도 주말 중에 토요일 혹은 일요일 하루 정도만, 그것도 오전시간 한정해서 에어컨을 동작시킬 수 있었다. 덥고 습도가 높은 자카르타에서는 에에컨이 선택이 아니고 필수였기 때문에 겨우 주말에 출근을 하더라도 에어컨이 나오지 않으면 그대로 다시 호텔 숙소나 근처에서 협업을 할 수 있는 카페 등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음식 역시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였다. 덥고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은 기름에 튀긴 음식이 많다. 아마도 수질관련 질병들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지혜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인데, 아무튼 그래서 숙소의 식당이든 우리가 자주 가는 식당도 대부분이 기름진 음식들이었다. 한국식당을 가는 날이면 좀 괜찮았지만 프로젝트 내내 삼시세끼를 한국식당에 갈 순 없었고 특히 한시간이 아쉬운 프로젝트 중간점검 혹은 월요일 큰 미팅 전에는 주말 내내 호텔에 머물며 식사를 해결해야 해서 계속 기름진 음식들을 먹어야 했다.

느려터진 인터넷도 문제였는데, 유무선 할 것 잆이 그냥 죄다 느렸다. 그때가 2009년이었는데 CI/CD 뭐 이런 수준까진 아니었어도 나름 팀에서 SVN을 쓰고 있었고 테스트를 위한 별도의 빌드서버 세팅정도까진 해둔 상황이었는데, 문제는 텔콤 플렉시가 별도의 빌드 환경을 제공해주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 그때 구라를 쳐서 이미 제품은 존재하고 그냥 커스터마이징 하는 수준으로 걔들은 알고 있었음 ) 이 세팅을 분당 수내동에 있는 유엔젤 서버실에 해두었었다. 코드 커밋은 괜찮았으나 수내동에서 빌드된 수백메가짜리 war 파일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텔콤플렉시 인수테스트 진행중인 서버로 배포하는 건 꽤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결국 이 부분이 나중에 인수시험 진행에 큰 걸림돌이 된다.

Photo by Nick Abrams on Unsplash

수천만원짜리 서버가 사라졌다?

프로젝트는 회사가 텔콤플렉시에 VMC솔루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일체를 납품하고 그 후 1년간 유지보수를 하는 턴키 형태의 계약이었다. 따라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구입도 모두 유엔젤에서 했는데, 이 과정에서 나는 이미 계약된 내용과 현재 엔지니어로부터 들은 현재 시스템의 용량을 기준으로 어느정도 용량이 필요할 것 같다라는 트래픽 산정 정도만 하고, 실제 발주라든지 납품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공식적으로는 유엔젤 한국 본사와 인도네시아 지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형태였다. 그리고 한국본사는 국내의 거래해 오던 업체로부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오라클 포함)를 구매했다.

프로젝트가 초반을 좀 지나서 이제 서버를 설치할 자카르타와 수라바야 IDC에 서버를 설치할 때가 되었고, 우선은 가까이에 있는 자카르타 IDC에 서버 설치를 할 날이 다가왔다. 중간에 서버의 통관 문제가 있었고 그게 어떻게 어떻게 해결되었다고 들었는데 벌써 일주일 넘게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본사/구매업체/배송업체 쪽으로 물어보니 기록상으로는 이미 배송이 끝났다고 나와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구매와 결제, 그리고 배송지 선택이나 배송업체 선정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기 때문에 도대체 그 서버가 어디로 누구한테 배송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당시 PT유엔젤 인도네시아쪽 영업담당이자 실무담당이었던 K부장은 나를 다그쳤다.

K부장 : “아니 정과장, PM이 서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 어떻게 해?”

나 : “... 잠깐만요. 전 개발리드 비스무리하게 지금 하는거지 제가 이 프로젝트를 다 끌고 가거나 결정권이 있는게 하나도 없거든요? 제가 배송지를 정한것도 배송업체를 정한것도 아니고 아무도 저한테 아무런 말도 안했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런건 상관없었고 아무튼 손가락질 할 누군가가 필요했었던 것 같다. 프로젝트를 따 오지도, 서버를 선정하지도, 결재를 진행하지도, 개발 인력을 누굴 쓸지에 대한 결정권이나 인사관련 파워도 없었지만 그런건 상관없었다.

아무튼 그래서 서버(들)의 행방을 찾느라 난리가 났었는데, 놀랍게도 그 서버들은 이미 PT유엔젤 인도네시아 사무실에 배달되어 회의실 한쪽 구석에 쌓여 있었다. 누가 받아서 수령 사인을 했는지도 알 수 없었고, 며칠 전부터 사람들이 ‘저 서버들은 뭐예요?’ 라고 했을 때 아무도 몰랐던 그것들이 우리가 발주했던 수천만원짜리 서버였던 것이다. 예쁘게 어디 박스에 포장되어서 배송지가 적혀있는 것도 아니고 마치 방금전까지 랙에 꼽혀있던 걸 뽑아내서 버릴려고 쌓아둔 그 중고서버 같은 그것들이 말이다.

망가져버린 서버

아무튼 서버는 확보되었고, 며칠 뒤에 해당 서버의 설치는 텔콤플렉시 담당자(라고 해봐야 늘 그렇듯 얘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및 유엔젤 지사 인력, 그리고 한국에서 서버를 구입한 업체의 현지 파견 한국직원분이랑 함께 진행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때 지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뭔가가 긴급하게 돌아가는 분위기였다. K부장이 연락을 받았는데 우리가 서버실에 꼽았던 그 배달된 장비가 파워소켓인지 어디에 문제가 있어서 해당 랙에 있던 서버들이 죄다 모두 내려갔고, 마침 레이턴시나 등등의 문제로 VMC시스템과 가까이 있어야 했던 몇몇 중요 텔콤플렉시 서버들이 함께 내려가 버렸던 것.

Photo by Thomas Jensen on Unsplash

어떻게든 수습은 되었고 서버가 언제 어느 경로에서 손상되었는지 파악해 보려 했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내가 겪었던 많은 다른 사건들과 같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로” 얼렁뚱땅 넘어갔던 것 같다.
당연히 배송되기 전부터 문제가 있었다라고 밝혀지지도 않았으니 새 장비로 다시 교체하진 않았고 이래저래 텔콤플렉시랑 이야기를 해서 수리가 가능했던 그 부분을 고쳐서 납품을 완료했다. 물론 공짜로는 아니고 뭔가 내어주는 것이 있었겠지만 나는 그게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텔콤플렉시 입장에서는 새로 산 장비가 곧바로 중고수리품이 된 셈인데 걔들 입장에서도 그렇게 좋은 경험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나는 모든 액땜을 초기에 다 한 줄 알았고, 구현만 완료하고 인수시험을 끝내면 추석 전에는 모든 걸 마무리 할 수 있겠지라는 낙관적인 생각마저도 했었다.

계속되는 하루 18시간+ 근무에, 운동부족, 기름진 음식, 더운 날씨, 본사 지사 텔콤플렉시 그리고 협력업체 파견직원들로 인한 스트레스. 심장이 좀 자주 두근거렸고 전에 없던 편두통이 생겼고,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게 왠지 모르게 힘들어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직 젊으니깐 괜찮을거야 라고 생각하며…

Wonhee Jung

Written by

Daughter's daddy, husband, lifelong gamer and learner. Senior Software Engineer@Blizzard Entertainment and studies for master’s degree in CS@UI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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