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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그녀의 이야기

직업의 정석
스물넷, 나는 앞으로 내 인생을 좌지우지 할 큰 고민을 하게 된다. 바로 ‘나는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라는 20대 중반이 되면 누구나 겪는 고질적인 고민거리다. 그때 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확신이 서지 않아 선배들과 참 많이 만났더랬다.
“졸업 한 후 바로 취업을 하셨나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그 일에 확신이 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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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하고 있는 모습이 참 부럽고 멋져 보여요.”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국 시작과 끝말은 항상 같았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나도 첫 회사 들어가기 전에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그럴 땐 내가 죽어도 하기 싫은 일들을 하나 씩 지워봤어. 그러면 대충 몇 개로 추려지더라고. 그럼 그중에 마음에서 이거다 하는 일이 있어. 물론, 일을 하다 보면 처음 생각과는 다른 부분이 많지. 너무 힘들면 또 다른 일을 하면 되는 거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하는 선배의 모습이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그 땐 그 선배가 참 커보였다.
그 당시 열심히 고민하며 찾은 직업은 공연기획 분야였다. 꾸준히 관심이 있었던 분야라 지금까지 일하면서 내 선택에 후회한 적은 없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야 행복할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일을 좋아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극단적이지만 사실 지금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예전에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막상 이루고 보니 그 다음이 없어.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건가?”
친구와 한참 이야기를 나눴지만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혹자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하더라.’라며 지금 내가 느끼는 혼란을 아무렇지 않아했다. 그러다 웹툰 작가 윤태호가 유명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나온 것을 보게 되었다.
“당신은 꿈을 이룬 사람인데 우리를 보면 어떤지? 라는 질문을 많이 받곤 하는데 과연 나는 꿈을 이뤘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꿈이라는 게 만화가, 과학자, 연예인 이게 꿈이 아니라 ‘OOO한 만화가가 꿈이다’라고 말 할 수 있어야 된다. 직업이 꿈이 되어서는 안 된다.직업을 어떤 태도로 수용하는 내가 있어야 한다.”
이 말을 듣고 한참동안 멍해졌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두는 것이 내 꿈이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업(業)으로 삼았다. 5년이 흐른 지금 내 직업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경력이 생기면서 느낀 지루함과 공허함이 이 직업에 싫증나서가 아닌 내 목표가 단순히 직업에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일>편에서 천직을 찾기 위해 매년 다른 일을 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 에피소드를 읽고 나는 앞으로 남은 여생동안 과연 한 가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직업이 인생의 척도라고 생각했었는데 직업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순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붕 떠있는 상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이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직업을 갖는 것이 좋은지,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다 천천히 느리게 가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에 다다르게 되었다. 바쁜 현대인 속에 파묻혀 사는 삶이 아닌 소박하지만 마음만은 풍족한 삶. 신기하게도 20대 초반에는 나의 40대, 50대가 그려지지 않았는데, 스물아홉이 되고 그 소망을 마음에 품었을 뿐인데도 내가 중년에 어떤 모습일지 그려진다. 조그마한 동네, 작은 집에 살며, 작은 텃밭을 가꾸고, 남편과 때론 투닥거리며 조용히 무던하게 사는 모습. 작은 회사를 다니거나 아니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삶. 난 이런 삶을 꿈꾼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며 내가 바라는 삶을 살게 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 하는 ‘일’을 꾸준히 하게 될 수도 있고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일보다 삶의 방향에 집중하니 한 길만 생각했던 시야가 좀 더 넓어진 기분이다. 어른이 되고 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