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창업, 그 3년의 짧은 기록들

컴퓨터가 좋아 개발자가 되기로 마음 먹고 공부했습니다. 공부하다보니 등록금이 없어 벤쳐기업에서 일했는데 대기업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기업에서 일해보니 스타트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타트업을 하려니 한국 보다는 미국에서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미친짓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제 꿈을 쫓는 과정이었지만 동시에 가족은 많은 것을 희생했고 저를 믿어 준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드리기도 했었습니다.

페이스북은 탈퇴했지만 연말을 맞아 백업해 두었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다가 짧은 글 위주로 정리했습니다. 3년 동안 참 힘든 시간이었지만 많이 성장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제 주관이 생겼고 또 다른 꿈이 생겼습니다. 두서 없는 글들이지만 행간에서 저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 만큼 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실 엔지니어 출신 창업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개합니다.


2011년 11월

작년 11월 1일. 아무 생각없이 스타트업위켄드에 참석했다가 큰 충격과 자극을 받고 돌아온 날. 이 날 이후부터 내 삶이 바뀌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바로 아이폰과 맥북을 구입해 매진하면서 슬럼프를 탈출할 수 있었고 대기업에서의 성공에 미련을 버리면서 난 자유를 얻었다. 마음이 꿈을 쫓아 움직이면 몸은 절로 따라오게 되어있더라.

딱 1년이 지난 지금 이 1년이 지난 30년 동안의 어떤 1년 보다 값지게 느껴진다. 깨닫고 생각했고 행동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내년 11월 1일은 어떨지 기대되고 설렌다. 평생 이 감정을 잊지 말자. Stay hungry, Stay foolish.

2011년 12월

같은 시간을 일하면서도 내가 주최가 되어 내가 판단하고 내가 움직인다는게 너무 좋다. 내가 책임지고 내가 만들어가는 결과물들. 개발은 물론 인맥과 사람들까지 내 컨트롤 안으로 넣고 성과를 내려는 시도와 노력들. 하나만으로는 도저히 만족이 안된다. 하고 싶은게 너무 많고 다 잘하고 싶다. 적어도 해보지도 않고 놓쳐버리고 싶진 않다.

2012년 1월

조직이 크냐 작냐 하고는 상관없이 느끼는건데, 일을 하는 사람은 일을 한다. 일을 못찾거나 없는 또는 못하는 사람들은 사내정치를 한다. 그리고 그 정치가 자신의 일인 줄 착각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일은 누가하고 조직은 어디로 가나. 리더가 직접 손을 더럽혀야 조직이 제대로 굴러간다.

2012년 2월

Rocket Internet 황희승 대표, 윤신근 대표와 만남. 근 5년내 가장 충격적인 술자리. 해머로 머리를 깨부시는 순간의 연속. 갈 길이 멀다. 세상을 보는 관점 자체가 산산이 깨져 다시 정립해야 할 상황.

2012년 3월

미국 생활은 다 원활하나 두 살 배기 아들이 적응하지 못함이 안타깝다. 시차 때문에 밤낮이 바뀐건 당연하고 음식도 입맛에 맞지 않는지 도통 먹질 않는다. 항상 치얼대고. 가장 곤욕은 그렇게 잘 웃던 아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건 아비로서 너무 큰 고통이다.

2012년 4월

미국에 와서 좋은 점이라면, 적어도 여기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게 뭔지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솔직히 자기가 무얼 하고 싶고 뭘 해야 행복한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대기업 다니다가 아닌갑네 때려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 보며 말을 잇지 못했었다. 언제부터 공무원이 그렇게 매력있는 직업이 되었나. IMF 터지고 철밥통이 인기 올라가면서 부터 도피처가 되었지. 자기가 원하는걸 하는게 아니고 남이 만들어 놓은 잣대에 따라 휘둘려지다가 지치고 나면 삶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 10년 후에도 세상의 잣대가 지금과 같을까. 자기성찰에 따른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 목소리는 따를 때 인생은 그 가치를 갖는다.

2012년 5월

개인이 아니라 팀이어야 하는 이유는 누구나 부침을 겪기 때문이다. 일당백의 능력을 가진 자라도 혼자서 힘든 시기를 견디기는 정말 힘들다. 팀원들이 서로의 멱살의 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2012년 6월

요즘 내 경험을 말할 때 삼성 보다 이음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걸 보면 기간은 짧았지만 확실히 임팩트 있는 시간이었던거 같다. 누군가 이음에 갈까 삼성에 갈까 고민한다면 주저없이 이음을 추천하겠다.

2012년 7월

이제 미국 온지 5개월이고 나는 뉴욕 꼬꼬마다. 아들이 하는 짓들에 대입해 보면 나는 새로운 세상에 태어나 이것 저것 겁없이 헤딩하는 중이다. 웃긴건 내가 바닥인 것을 알아갈수록 흥미가 더해진다. 내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기에 아무 것도 무서울 것이 없다는 용기가 샘솓는다. 주저함이란 내가 잃을 것이 있을 때 생기는 것 아닐까. 난 나의 부족함을 알지만 그럼에도 계속 나를 나아가게 만드는건 여기서 부딫히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가능성 0:100의 절박함 때문이리라. 갈 길이 멀고 배울게 많다. 이 시간들, 결코 후회로 만들지 않으리라.

2012년 8월

미국에 와서 밤에 일하기를 매우 즐기고 있는데 밤에 일하는 기분이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이번에 한국에 다녀오며 다시 느꼈는데, 여기서는 해가 지면 집중이 되며 정신이 맑아지는 반면 한국은 해가 지면 빨리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한 잔 빨러 가야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만 줄여도 생산성이 30%는 올라갈거다.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가 술 권하는 사회고 이로 낭비되는 국민들의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아깝다. 그걸 창업에 쏟아부으면 글로벌 기업 여럿 나올텐데.

2012년 9월

내가 살아오며 우연히 또는 의도적으로 찍어온 인생의 점들을 온전히 이어 한 방향을 그릴 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 답은 멀리 있지 않다. 그리고 모든 과정은 의미를 갖는다. 남다른 경쟁력은 남다른 경험에서 나오고 남다른 경험은 보통 삽질로 격하되기 마련이다.

2013년 1월

모두가 빅데이터의 성장과 가능성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아직은 데이터를 모으기만 할 뿐 이를 의미있는 행동으로 이어가고 있는 이들은 아직 많지 않은듯 하다. 추천엔진을 만듦으로써 더 많은 개발자와 회사들이 그동안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서비스를 가능케하는 2013년을 만들고 싶다. 빨리 코어 만들고 이들을 도와주고 싶다. 내 가슴은 휴화산에서 드디어 활화산이 되었다.

2013년 2월

수 많은 기술 분야 중에서 소프트웨어, 그 중에서 데이터 마이닝, 그 중에서 머신러닝, 그 중에서 추천으로 좁혔음에도 어떤 고객들은 기술적인 세팅을 원하고 어떤 고객들은 쉬운 설치를 원하고 어떤 고객들은 마케팅적 기능을 원한다. 지금까지는 알고리듬 및 인프라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다면 이제 이를 제대로 제품화하고 고객이 얻을 수 있는 가치를 극대화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고객이 이 제품을 쓸 수 밖에 없도록 내가 만들고 만다.

2013년 3월

내가 자바스크립트와 루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오픈된 프로젝트들의 수가 가장 많다. 보고 배울 수 많은 코드들이 널려있다. 뉴턴이 말한 거인의 어깨는 현재 자바스크립트와 루비로 가장 잘 구현되어 있다. 공개하고, 함께 고민하고, 코드를 주고 받고, 그 결과가 누군가의 시작에 기여할 수 있다는건 개발자로서 페북 똥글들 좋아요 하는 것 보다 100배는 더 설레이는 일이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인류에 대한 공헌이다.

2013년 4월

어머니께서 그동안 페북으로 몰래 나를 스토킹 해왔다는걸 알았다. 멀리서 고생한다고 걱정 있어도 말도 못 거시고. 어머니 사랑합니다. 아버지도. :)

2013년 5월

개발을 하면 할수록 어떻게 코딩을 더 적게, 더 간결하게, 더 직관적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좋은 서비스는 보는 사람들로 부터 “와우”를 외치게 하고, 좋은 코드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별거 아니었네”란 자신감을 주어야 한다.

2013년 6월

내 꿈은 매력적인 개발자가 되는 것. 내가 만든 코드와 내가 하는 행동이 귀감이 되어 내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는 것. 이게 지금 닥치고 죽어라 공부하고 삽질하고 인내하는 이유. 나의 가장 큰 모티베이션. 하면 할수록 부족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것. 세상에 없던 우리가 만든 코드 한 줄, 작은 서비스 하나가 사람들의 생활을 가치있게 바꿔가는 것. 내 주위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

2013년 7월

민표는 내 아이폰을 내가 직접 만든 것으로 안다. 나는 아빠 처럼 될 거야 하는 말을 계속 한다. 엄마가 어려워서 안되는 거라고 하면 그럼 아빠가 필요하네? 하고 답한다. 난 아직 내가 너무도 부족하고 어린 것 같은데 아들이 이렇게 나를 대하니 사실 적잖이 당황스럽다. 언제까지 완벽한 아버지의 모습일까. 언제 나를 고백하고 친구로 지낼 수 있을까.

2013년 8월

해보니까 창업이라는 게 이렇게 힘든건데, 산전수전 다 겪어봤다는 사람들이 청년들에게 무작정 창업을 권하는 모습이 얄밉게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거 였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지금껏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의 뜻을 오해하고 살았다. 용기를 내면 바로 그 미인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용기를 내어 접근하면 수 차례 차이는 과정 속에서 여심을 이해하고 자신에 대해 알게되니 결국 이후에 미인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대신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심정으로 고백하고 차여서는 남는 게 없다. 항상 진심으로 서로 잘 될 수 있는 관계 성립에 대해 고민하고 접근해야 다음이 있고 발전이 있다. 연애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성공과 실패는 대비되는 것이 아니다. 인생 속에서 연속되는 일련의 과정인데 현재의 성공과 실패에 과하게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나는 지금 올바른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는 확신이 계속된다면 모든 것은 과정이지 끝이 아니다.

2013년 9월

어떤 일이든 간에 사랑하지 않고서는 정말로 잘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당신이 해킹을 사랑한다면 필연적으로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하게 될 것이다. — 폴 그레이엄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 충분히 모른다고 또는 다른 사람이 그걸 이미 다 해봤을거라 생각하며 직접 시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만 제대로 된 아이디어를 갖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소수의 사람들만 그걸 시도한다. 그러니까 네가 진짜 최선을 다해서 뭔가 한다면 넌 꽤 잘할 수 있다. — 애론 슈워츠

2013년 10월

요즘 github, stack overflow, 개발 커뮤니티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분위기 인거 같다. “코드 없는 논쟁은 하지 맙시다. 할 말은 코드로 짜서 pull request 하는 센스를 보입시다. 그게 당신 실력입니다. 답은 이미 구글에 다 있습니다.” 사실 이게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낮추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은 떠들고 아는 사람은 보여주니까.

2013년 11월

매일 아침 3살 짜리 아들을 파란 눈의 아이들로 가득찬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서며 창가로 잠깐 바라볼 때의 감정. 어떨 때는 활기차게 웃을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주눅들어 있을 때도 있고. 하루 중에서 가장 큰 감정의 순간인데 뭐라 표현해야 할진 모르겠다. 아들 마저 고생시키면 안되는데…

2013년 12월

연말연시라고 별 다른것 없이 하던 일 하면서 지내고 있다. 우리 부부는 타지 생활, 육아, 창업이라는 세 가지 모험 속에서 하루 하루를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서른이 몇 해 지난 지금까지 ‘서른 즈음에’ 신드롬은 아직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우리의 목표는 자연스레 몇 년 더 아직 30대가 되지 않은 것 처럼 사는 것이 되었다. 언제나 함께 도전하고 웃고 울고 떠들고 의지하는 동안 우리는 앞으로의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해 질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예감한다. Together, we’re strong. dedicated to Jiyeon Park.

2014년 1월

저는 좋은 프로그래머의 조건에 리버스 엔지니어링 경험이 굉장히 플러스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동작원리를 아는 것, 그리고 그걸 파고 내려가는 능력이 배양되잖아요. 유저모드에서만 놀던 분들은 커널이나 하드웨어에 버그가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합니다. 작은 힌트들을 모아 하나씩 베일을 벗겨나가다가 원하는 동작을 만들어낼 때의 쾌감은 프로그래머에게 포기를 모르는 불꽃 근성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2014년 2월

도전은 겸손해지기 위해서라도 계속 해야하는 것 아닐까. 안주하는 사람은 쉬이 오만해진다. 세상에 대한 감을 잃을 때 실수가 생기고.

2014년 3월

약간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은 큰 도전을 한다는 것이고 큰 도전은 이전에 이뤄놓은 성공경험에 기반한 자신감으로 가능하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큰 도전을 했다가 실패할 경우 다시 일어서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이를 상쇄할 수 있는 티켓이 필요한데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3가지 티켓이 있다.

1. 원래 집이 잘 산다. (그래서 한 번 망해도 치명적이지 않다.) 
2. 좋은 학교를 나왔다. (그래서 한 번 망해도 밥 굶지 않는다.) 
3. 좋은 직장에 다녔다. (그래서 한 번 망해도 취직은 될거다.)

그래서 집이 부자고 학벌이 좋고 커리어가 훌륭하면 3번은 도전해 볼 수 있다는게 내 생각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해 보겠다고 결심하기까지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보다 분명 될 것이라는 판단이 앞서야 하는데 이는 창업 이전 인생에서의 크고 작은 성공경험들이 기준으로 작용한다. 좋은 학교를 나오거나 좋은 직장에 다녀서 주위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해봤다는 것은 이 성공경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만약 창업을 하고 싶은데 아무 것도 보여줄게 없는 경우에는 일단 저 셋 중에 하나의 티켓을 확보 후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업이 명확하게 보이고 내 역량이 맞아떨어지고 타이밍이 지금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티켓 없이도 가야하겠지만, 이 판단이 가능하려면 창업 이전에도 굉장히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었어야 한다.

2014년 4월

한국에서 태어나 30년을 한국에서 살다가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 내 경쟁력은 섹시한 제품 생산이 될 수 밖에 없지, 말빨이라던가 인맥 같은 껍데기는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가버렸다.

2014년 5월

개발자는 자신의 일을 컴퓨터에 위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역사 속 리더들을 살펴보면 자기 수하들을 잘 다루는 자가 득세했다. 이제 바뀐 세상에서는 자본가가 수 천 수 만의 노동자를 고용해 이윤을 창출하듯 개발자가 수 천 수 만의 컴퓨터에게 자신의 일을 맡기고 경영해 이를 비지니스로 연결시키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부자의 정의를 당장 노동을 하지 않아도 부동산, 사업체, 이자 등으로 연명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내려볼 때, 좋은 개발자란 당장 코딩을 하지 않아도 컴퓨터들이 자신의 일을 대신 하도록 상황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좋은 개발자를 가늠하려면 컴퓨터를 피고용인으로 가정하고 이 개발자가 얼마나 많은 피고용인을 맡을 수 있는지, 그들에게 비전 공유가 가능한지, 경영상 위기 관리 능력이 있는지 등을 상상해보면 된다. 부하를 믿지 못하는 상사는 마이크로매니징 하느라 항상 바쁘듯이 자동화 할 수 있는 노동을 컴퓨터에 위임하지 못하는 개발자는 그 노동 위의 한 차원 높은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지 못하며 여기서 부터 개발자와 좋은 개발자의 격차가 생겨난다.

그래서 잉여가 있어야 좋은 개발자가 될 수 있다기보다는 좋은 개발자에게 잉여로움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2014년 6월

어머니께서 애들 사진 보고 싶다고 하셔 셀피 몇 장 찍어 보내는데 사진을 보다가 문득 난 내 가족이 참 자랑스럽다란 생각이 들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자랑스럽다는 것 만큼 큰 기쁨이 있을까. 나도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 될 수 있도록, 믿어주는 분들에게 실망드리지 않도록.

2014년 7월

난 자신의 그릇이 작구나 타령 하는 사람들을 욕심이 많은 사람으로 판단한다. 자꾸 주워 담으려니 그릇이 모자라지. 담기 전에 비우면 작은 그릇으로도 다양한 채움을 이룰 수 있다. 잃고 싶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

2014년 8월

가슴 뛰는 일을 하라는 말을 오해하면 안된다. 가슴은 경험해보지 않은 일을 할 때 뛴다. 더러는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상상으로 뛴다. 생에 대한 고민 없이 정답대로 살다가 답답함에 주위를 둘러보니 가슴 뛰는 일들이 보일 때 헛갈리면 안된다. 무얼 마주했을 때 가슴이 뛰면 ‘아, 내가 얼마나 어려울지 아무 것도 모르는 분야구나.’ 하고 겸손히 실행해 나가야지 다른 갖고 있는 하기 싫은 일을 집어던지는 핑계로 삼아선 안된다. 하지만, 가슴 뛰지 않는 삶은 새로움이 없는 삶이고 이는 멈춰있는 것과 같으니 가슴 한 번 뛰었다고 반짝하지 않도록 항상 새롭게 꿈꾸고 새롭게 움직여 죽음과 멀어져가는 것을 게을리 말아야 한다.

2014년 9월

미생 드라마, 신파극이네. 나 취업하려고 기를 쓰던 대학교 4학년 때가 생각난다. 복학 전 벌어놨던 돈은 내 등록금과 동생 등록금 2학기 분을 대니 똑 떨어졌다. 교수님들께서 챙겨주시는 일들로 겨우 연명하며 살았다.

그러던 중 이곳저곳 내민 이력서 중 몇 개가 통과되어 면접을 보러 가야 했는데 정장은 비싸기만 했다.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4학년 2학기 등록금에는 졸업사진 촬영비가 이미 포함되어 있어서 졸업사진을 찍지 않으면 25만원을 돌려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졸업사진과 정장을 맞바꿨다. 부모님께는 촬영일과 면접일이 겹쳐서 갈 수 없다는 핑계와 함께. 그 돈으로 위, 아래 기성복 정장을 사고 어머니께 5만원만 달라고 말해 이마트에서 셔츠를 사고 여자친구에게 말해 잠실 지하상가에서 구두를 샀다. 잠실 지하상가의 구두는 저렴했지만 270mm 까지 밖에 없었다. 내 발은 295mm인데. 추운 겨울 면접을 다 보러다녔을 때 쯤 발이 다 아물었다.

그 구두만 갖고 삼성 3년을 다녔다. 결혼식도 그 구두로 하고. 굽은 갈면 되지만 나중엔 가죽이 많이 상해 도저히 신을 수가 없게 되었는데도 난 그 구두를 버릴 수가 없었다. 뭔가 내 뜨거운 몇 년의 증명이었다는 생각에 버릴 수 없었다.

2014년 10월

개발자와 변호사의 공통점이 꽤 보인다. 
1.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한다. 
2. Revise 후 diff로 본다. 
3. 고객이 원하는 바를 한 번에 꿰뚫고 적확한 솔루션 제시가 능력이다. 
4. 능력 있으면 돈 많이 번다. 
이메일로 오고 가는 개정 문서들의 history 관리를 위한 git 같은 툴이 있으면 좋겠더라. 하지만 그만큼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면 시급 받는 변호사들이 좋아하진 않겠지.

2014년 11월

부끄럽다. 부끄러워지는 밤이다. LA에서의 마지막 밤. 나 혼자서라면 아무 것도 못했다. 지난 2년의 한 순간 한 순간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부끄럽다. 부끄러워지는 밤이다.


Recom.io 서버를 모두 내렸다. 미국 생활을 하며 불편을 느껴 만들어 2년 전 만들어 유익하게 사용했던 kpop 추천앱과 한국뉴스 추천앱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 음악 듣기가 막막하여 오랜만에 벅스뮤직 아이폰앱을 설치해 봤는데 1~2년 전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어서 놀랐다. 추천도 상당히 좋아졌다. 내가 처음 음악 추천을 시도해 봤던게 판도라뮤직과 에코네스트에 자극 받아서 가요도 이렇게 듣고 싶어서였는데 이제 아쉬움이 덜 하다. 서드파티 플러그인까지 받아들인다면 스포티파이 뺨 때리겠다. 세상은 쉼없이 누군가의 노력으로 계속 좋아지고 있다. 나도 그 중의 한 명이었을까 하고 자신에게 물어본다.


회사를 정리하며 지난 2년의 메일함을 모두 백업했다. 그 치열했던 모든 기록이 여기 있다. 미국에서 회사설립과 투자유치를 시작으로 엑싯에 이르기까지 롤러코스터 같은 하나의 사이클이 담겼다. 누가 당신의 보물은 무엇인가요 하고 물으면 이겁니다 라고 답할 만 하다. 과정이 보상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2014년 12월

지난 3년 간 땡스기빙데이엔 일을 했다. 이번 땡스기빙데이엔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정말로 땡스하고 기빙하고 홀리하다. 며칠 전 집을 렌트하고 혼자 집 차고에서 세탁기를 돌리고 세차를 하는데, 진짜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집사람과 고생하며 너무도 꿈꿔왔던 것들이라 뜨거운 눈물로 차를 닦았다.

LA 생활을 돌아보면 일을 떠나 감정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딜이 진행되는 동안 가족들을 먼저 한국으로 보내고 살던 집에서 짐을 빼 스토리지로 모두 옮겼는데 그 때 크지도 않은 집 구석구석에서 많은 수의 진통제 통들을 발견했다. 집사람이 집안에 소홀한 나 대신 타지에서 어린 아이 둘을 키우며 하루하루를 진통제로 버텨왔던 것이다. 나에게 티도 내지 않고.

하나는 좀 부끄럽긴 한데 우리 부부가 돈이 없어서 2년 간 옷도 못사고 살았는데 속옷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속옷 앞이 다 터져 나갔고 집사람은 뒤가 다 터져 나갔다. 당시 서로 이제 모든 팬티가 결국 찢어졌구나 하고 웃어넘겼지만 그 모습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집사람을 보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며 살고 있는건지 내 자신이 싸이코패스 처럼 느껴졌었다. 진통제통과 찢어진 팬티. 그 강렬한 이미지.

지금까지 집사람은 물론이요 가족과 주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사는 것 자체로 죄 지으며 사는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다. 창업을 하여 비지니스도 배웠지만 더 중요한 삶을 사는 관점을 배웠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더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열심히 살겠다 다짐한다. 너무도 감사한 땡스기빙데이다.

2015년 1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한 프로그래머가 첫 창업을 미국에서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자칫 미친 짓으로 보일 수 있다. 기술은 자신 있었지만 현지 사정 이해와 영업력 부족으로 고민하던 사이, 스트롱벤처스는 투자를 제안하며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영어가 유창하고 프로덕트 매니징과 개발 경험이 있는 코파운더를 연결시켜주고 로스엔젤레스 사무실 자리를 내줬다. 제품 출시 후 기업 고객 유치 과정에서도 스트롱벤처스는 그들의 주요 네트워크 중 사업과 관련된 많은 회사들의 경영진과 미팅을 잡아줘 수월하게 제품 홍보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창업이란 것이 사업이 잘 풀려 날아갈 듯 좋다가도 다음 날이면 모든 것이 잘못될 것 같은 공포에 시달리는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의 연속이다. 이럴 때 스타트업 경험이 있는 배기홍, 존남 두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그들의 경험 공유와 더불어 나에 대한 신뢰감을 재확인하며 신기하게도 툭툭 털고 다음 스텝으로 일을 진행시켜나간 경험이 여러번 있었다. 2년이라는 기간 동안 3개의 프로덕트를 만들었고, 이후 추가 투자 유치를 고려하던 단계에서 각 제품에 관심이 있던 회사들 중 한 곳에 인수 되며 exit을 하게 되었다.

스트롱벤처스는 금융계 투자사들과는 달리 모든 의사 결정 상황에서 공동창업자들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주었으며 단순한 투자자가 아닌 창업의 처음과 끝을 함께할 수 있는 믿음직한 파트너임을 증명했다. 스트롱벤처스가 없었다면 레코미오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2015년 2월

내가 창업을 했고 덕분에 집사람은 온갖 고생을 했다. 모두들 집사람의 희생을 안타까워 했다. 요즘 그런 여자 없을 거라고 정말 부인 잘 만났다고 평생 감사하며 살라고 했다. 나는 그때마다 그렇다고 나는 복 받았다고 인정하고 평생 그 노고를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집사람이 진짜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따라 나섰을까.

내가 창업을 다짐하기 까지 대기업에서의 4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입사 후 의지하던 멘토들은 몇 달 만에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굳이 언급하기 싫은 이런 저런 이유로 슬럼프에 빠졌고 창업에 대한 꿈으로 이를 이겨냈다. 그러는 동안 매일 같이 나는 나의 이런저런 고민을 모두 아내에게 털어놓고 상의했다. 기쁠 땐 웃고 힘들 땐 울고 하면서 더 나은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꿈꿨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니 아내는 나의 가장 큰 서포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힘주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해 주었다. 앞으로 어떤 날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부모님은 내가 결혼 하기 전 단 한 가지의 조건을 내걸었었다. 연애 결혼이어야 한다. 부모님은 당시 캠퍼스 커플로 나와 같은 나이에 나와 같은 동갑내기로 결혼하셨다. 당신들이 살아보니 인생에서 크게 고통스럽고 힘든 일을 만났을 때 견딜 수 있는 유일한 힘이 사랑이더라고 했다. 연애 결혼이 아니면 그것이 가능할지 의문스럽다고 하셨다.

지금 돌아보면 집사람과 살며 사랑을 배웠다. 거창한게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시시콜콜함이고 그러면서 마음의 주파수를 맞춰가는 것이다. 나아가 부부 간의 사랑 만이 사랑이 아니더라. 모든 사람이 사랑이고 관계가 사랑이더라.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살았을 뿐 세상은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고 어렴풋이 느껴간다. 난 내 동료들을 사랑하고 투자자를 사랑하고 친구들을 사랑한다. 이들이 더 행복해지는 것이 내가 더 행복해지는 길이다. 이걸 내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2015년 3월

아이러니하게도 열정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해봤는데 이런 저런 시도들이 다 먹히질 않고 이게 아닌가 싶을 때 더 깊이 파거나 피봇을 해서 될 때까지 끌고 나가는 힘은 확실히 열정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 이상의 힘이다. 일을 시작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많은 일들이 간절함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한다. 하지만 세상 일은 간절함 보다는 기다림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더 많다. 순간 간절한 사람이 강한게 아니라 더 오래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2015년 4월

창업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할 수 있다는 것. 돈이 아니다. 회사를 매각할 때도 자신이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선택할 수 있다. 회사 스트레스의 큰 부분이 사람과의 관계 때문인 것을 고려할 때 창업은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창업에서의 큰 스트레스는 지속가능한 이윤창출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소모적이진 않다. 리소스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덜 손이 가도록 만들어내는게 기술이다. 문제는 어렵게 생각할 수록 어렵게 해결하기 때문에 항상 문제를 쉽게 정의하고 간단하게 해결하려 노력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에 지배 당한다. 회사 내에서도 시키는 일을 시키는대로 하는 것과 자신이 발견한 문제를 가장 효율적인 형태로 해결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수동적으로 일을 대하면 방어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미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가 생각 보다 크다. 이제 각각의 장단을 알기에, 불만보다는 제시할 해결책이 같이 보이기에, 한 번 잘 해보고 싶다.


정리하며

많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더 배우고 싶습니다. 실행이 가장 빠른 학습이라고 믿습니다. 직접 부딪혀보지 않았으면 다양한 세상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겁니다.

많은 부분을 더 잘 하고 싶습니다. 그러지 못했던 부분이 아쉽기도 합니다. 여러 선택들을 만나며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게 됩니다. 행복한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이 행복합니다. 주위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하고 싶다는 사명을 느낍니다. 노력을 다하는 가운데 무리 보다는 순리를 따르게 됩니다. 지난 날을 돌아보면 저의 짧은 생각과 무리한 일처리, 불찰로 인해 마음이 불편하셨던 분들도 계셨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 합니다. 많은 분들께 더 배우고 정진해 나가려 합니다. 살면서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어 갑니다. 풍요 속 빈곤에서 벗어나 만나는 여유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겸손히 내일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꾸짖어 주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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