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10
아침에 일어나니 9시였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다시 머릿속에 정리를 하고 비행기 표와 여권, 그리고 현금을 챙겼다. 우편으로 보낼 출입국증명신청서도 잘 접어서 챙기고, 모텔을 나섰다.
우체국은 마을 외곽, 그러니까 Griffith 거리의 북쪽 끝에 있었다. 마침 내가 지내는 모텔이 쿨랑가타보다 북쪽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항상 북쪽에서 마을로 진입했었다. 덕분에 별로 헤맬 일 없이 바로 우체국을 찾을 수 있었다.
우체국의 내부는 우리나라 우체국과는 좀 달랐다. 아담한 공간 여기저기에 진열대가 놓여있었고, 우편 봉투 뿐 아니라 각종 잡화들도 있었다. 마치 문구점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아 결국 직원에게 가서 물어보았다. 직원은 진열대에서 우표가 붙은 우편봉투를 사서 작성을 한 후에 자기들한테 주면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나는 그 말대로 진열대로 가서 일반 우편을 하나 고른 뒤에 계산을 했고, 계산이 끝나자 직원이 봉투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봉투를 받고 나니, 직원이 우편을 작성할 수 있는 테이블을 안내해 주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테이블로 가서 봉투에 신청서를 넣은 뒤에, 어제 미리 알아 놨던 브리즈번 이민성 주소를 적었다. 다 적은 후엔 봉투에 미리 붙어있는 양면테이프로 밀봉했다. 그리고 직원에게 다시 가서 건네주었다. 하지만 직원은 등기우편만 자기들이 보내고, 일반 우편은 우체통에 넣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우체국을 들어올 때 입구에 빨간 우체통이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나서, 우체국을 나왔다. 그리고 우체통에 내 우편을 넣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잘 해결 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만약 은행에서 비행기표로 일이 해결만 된다면, 우편이 가든 말든 상관 없었다. 신청서 뽑고 우편 보내느라 든 30달러가 소용이 없어져도 되니까, 제발 비행기표가 먹히길 바랄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희망을 하면서 곧바로 은행으로 향했다.
은행에는 어제와 달리 사람들이 많았다. 창구는 5개였지만 줄은 하나였다. 맘편하게 그 줄에 섰다. 줄이 줄어드는 속도는 정말 느렸는데, 거의 40분을 서서 기다리고 나서야 내 차례가 왔다. 방금 자리가 난 빈 창구로 가니, 직원이 날 알아보고 먼저 말을 꺼냈다.
여권에 도장을 받아온거야?
아, 기억하는구나. 아니야. 도장을 받아온건 아니고, 알아보고 싶은게 있어서 왔어.
뭔데?
출입국 날짜를 비행기표로 증명할 수 있을까 해서.
음… 잠시만 기다려봐. 일단 그 비행기표를 나한테 줘볼래?
직원은 내 표를 받아들고는 구석 자리에 있는 어떤 여자에게로 갔다. 그런데 내 담당 직원이 몇 마디 하기도 전에, 그 여자는 ‘안돼’ 라며 단칼에 잘라냈다. 고맙게도 내 담당 직원이 다시 한 번 시도했지만, 그 여직원은 쳐다보는 척도 안 하고 ‘도장이랑 면허증 아니면 무조건 안돼’ 라고 말했다. 어이가 없었다. 내가 마치 며칠째 여기 와서 징징대는 사람인 것 마냥 느껴졌다. 그 진절머리 난다는 듯 단칼에 잘라내는 그 목소리와 표정, 말투에 화가 치밀었다. 물론 따지진 않았다. 귀찮은 상황이 될게 뻔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출입국증명서가 나올테니 그때 다시 와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내 비행기표를 돌려받은 후에 미련없이 은행을 나갔다.
은행에서 시간이 많이도 갔는지 어느새 12시였다. 배가 고팠다. 오늘도 과일로 때우자 싶어서 남쪽 해안가로 향했다.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이제는 어느새 눈에 익어버린 상가가 나왔다. 헤매지 않고 지하 주차장 입구로 능숙하게 들어간 뒤에는 울월스로 향했다.
울월스는 오늘도 시원했다. 들어가자 마자 사과 세 개와 바나나 한 송이, 복숭아 세 개, 그리고 오이 하나를 고른 뒤에 여유롭게 돌아다니며 마트를 구경했다. 내가 과일을 고른 과일 매대들 옆으로는 채소 매대가 있었는데, 눈에 익은 고추, 브로콜리, 파프리카, 애호박 버섯 등이 보였다. 그리고 낯설고 요상한 녀석들도 많았는데, 이름만 들어봤던 아스파라거스나 비트루트부터 이름도 생김새도 전혀 처음인 ‘Okra’나 ‘Water spinich’라는 것들도 있었다.
채소 매대를 쭉 따라 걷다보니 치즈와 해산물을 파는 매대가 나타났다. 유리 진열대 안으로 보이는 싱싱한 해산물들을 보니 미칠 지경이었다. 아마 비싼 가격만 아니었으면 바로 샀을 것이다. 해산물 매대 옆으로는 육류 매대가 있었다. 거기에는 소세지, 스테이크, 다진 고기 등 온통 시뻘건 고기들이 포장이 된 채 놓여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만 있는게 아니라 캥거루 고기도 있었다. 캥거루 고기라니! 캥거루를 먹는 줄른 몰랐는데, 아주 많이들 먹는지 캥거루 고기로 만든 소세지, 스테이크, 햄 등 종류도 다양했다.
그렇게 계속 구경을 하다가, ‘SALE’ 표시가 커다랗게 붙은 조그마한 코너를 발견했다. 거기엔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들이 모여 반값에 팔리고 있었다. 그 중에 유통기한 하루 남은 우유도 있길래, 우유나 마셔볼까 하고 챙겼다. 우유를 고른 김에 씨리얼이나 말아먹자는 생각으로 건포도가 들은 시리얼을 하나 골랐다.
계산을 하고 나온 뒤에는, 어제 갔던 해변가 벤치로 갔다. 점심 끼니로 오이와 사과와 바나나를 좀 먹은 다음에, 어제처럼 오이 꼭다리를 가지고 다투는 갈매기들을 구경했다.
모텔로 돌아와서는 이 근처에 우프를 가입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내가 영어를 못 읽어서 그런건지 홈페이지에 제대로 안 나와 있는건지, 우프에 가입 하는 방법은 잘 나와 있는데 당최 ‘어디서’ 가입을 할 수 있는지는 나와있질 않았다. 그래서 그냥 구글에 검색을 해봤더니, 몇몇 블로그에서 우프를 가입할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블로그들을 모두 들어가서 공통적으로 언급한 곳들만 골라서 찬찬히 살펴보니, 그나마 가까운 곳이 골드코스트 시내의 “Backpackers World Travel” 이라는 곳이었다. 혹시 몰라서, 확실히 하기 위해 전화도 했다. 곧 직원이 전화를 받았고, 그녀로부터 우프 가입이 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확답을 받은 뒤로는, 구글맵으로 교통편을 검색했다. 구글맵을 보니, 내가 지내는 모텔에서 백팩커스월드트래블까지는 30Km정도 떨어져 있으며, 모텔 바로 앞을 지나는 700번 버스를 타면 한 번 만에 갈 수 있었다.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텔을 나가서 버스 정류장의 시간표를 확인했다. 구글이 말 한 대로 700번 버스가 그 정류장을 지나고 있었고, 여기서 버스를 타고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왠지 갑자기 모든게 수월하게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우편을 보냈으니 곧 출입국증명서가 나올테고, 조만간 은행계좌를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우프 가입도, 내일 버스 타고 가면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는 법이지만, 뭔가 이대로 잘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