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이 없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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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나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다른 한 손으론 무심히 샤프를 돌리고 있었다. 내 시선은 뱅글뱅글 돌고 있는 나의 샤프에서 내가 팔을 괴고 있는 책상의 끝, 그리고 앞에 앉은 그 아이의 어깨. 또 그 어깨로 미끄러지게 내리쬐는 늦은 오후의 해 그림자. 해의 그림자를 타고 올라가면 창문에 걸쳐있던 봄. 그리고 봄의 자락을 붙들고 있는 창문의 커튼. 커튼이 매달려있는 천장. 교실 곳곳으로 옮겨졌다. 점심시간이 끝난 지 꽤 흐른 시간임에도 교실은 여전히 나른했다. 교실 안 누군가가 국어 교과서의 한 부분을 작은 목소리로 읽고 있었다. 책 읽는 소리는 봄의 기운과 함께 교실 천장을 빙 돌아 열린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늘어진 어깨로 있던 내 앞자리의 그 아이가 하암, 하고 소리를 내면서 하품을 했다. 나는 교실 어딘가로 두던 내 시선을 다시 그에게로 옮겼다. 그의 뒷모습만으로도 지루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를 본 나는 턱을 괸 모양 그대로 살풋 웃었다. 종례시간이 멀지 않은 마지막 수업이었다.

그때쯤, 책을 읽는 소리가 멈췄다. 제 분량만큼의 목소리를 낸 아이는 몇 초의 침묵 뒤 “선생님. 다 읽었는데요.” 하고 말했다. 내 시선은 재빠르게 국어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은 창문가에 서서 쏟아지는 오후 햇살을 다 받아내고 계셨다. 창 밖 너머인지 아니면 창문에 반사되는 교실 안의 풍경인지 끊임없이 어딘가를 바라보는 채로. 마치 그녀 혼자 다른 공간 속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방금 전까지 교실 안을 메우던 나른한 봄의 분위기, 나른하던 책 읽는 소리는 이제 그녀로 인해 사라지고 없었다. 교실 안의 누구도 그 경계를 허물지 못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들고 있던 교과서를 힘없이 창틀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짧은 한 숨. 바닥으로 떨어뜨린 고개. 선생님은 점점 더 교실 속 우리와는 다른 차원으로 멀어져 갔다. 내 앞에 앉은 그 역시도 헛콧물을 들이키며 선생님을 보고 있었다. 나는 바닥을 향한 선생님의 표정을 살피려 괸 손을 풀고 턱을 들어 노골적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그 때 마침내 선생님은 입을 떼었다. “거짓말이 참 길다.” 내 앞의 그는 짧게 숨을 터트리며 단 마디 웃음을 흘렸다. 다른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짝과 마주보며 입술을 삐죽이거나 인상을 찌푸렸고, “뭐래?” 같은 물음을 작게 속삭였다. “거짓말이 참 길어.” 그러나 선생님은 그 말을 반복했다. 그날은 4월 2일이었다. 4월 1일, 만우절이 하루 지난날이었다. 선생님은 등을 돌려 교실 안을 바라보시곤 물었다. “어제 뉴스 봤니?” 그날은 한 홍콩배우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다음 날이었다. 만우절이었던 4월 1일 저녁. 홍콩의 유명 배우는 투신자살을 했고 사망 소식은 실시간으로 퍼져 그 다음날 아침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날은 봄이었고 만우절 다음 날이었다. 오후 햇살이 나른하게 퍼져 커튼을 따라 그림자가 지는 뻔하디 뻔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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