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번,

Yongmin Cho
4 min readApr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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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나드는 특별한 대화

In English

“솔직하게 한번 얘기해 볼래요? 학생은 돈이 생기면 쓰는게 좋아요 아니면 저축하는게 좋아요?”

리지는 잠시 머뭇거린다. 단순한 질문이지만 한국말이 서툰 그녀에게는 좀 시간이 필요하다. 서 눈썹을 살짝 찌푸리면서 무언가 생각하더니 답을 하기 시작한다. 듣고있는 한 남자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돈을 물처럼 쓴다”라는 표현을 더듬거리며 말하는 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아빠와 같은 미소를 짓는다.

그는 올해 63세의 이인욱씨이다. 30년이 넘도록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등 금융분야에 종사하고 7년전에 퇴직하였다. 그는 요즘 일주일에 한번씩 리지와 한국어로 대화를 한다. 리지는 텍사스 오스틴 출신으로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동아시아학을 공부하고있는 2학년 학생이다. 이 두사람은 SAY프로그램를 통해 일주일에 한번씩 한국어 대화를 하고 있는 8팀중에 하나이다.

이인욱 (63, 오른쪽)과 윈쿠안 (24)군이 국립한글박물관에서 나들이를 하고있다.

SAY는 무언가 특별한게 있다.

지금까지 총 14주 동안 104회에 걸쳐 대화를 연결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주 월요일 아침 한국에 있는 어르신과 미국에 있는 학생이 만날때면 나는 가슴이 뛴다. 이 두사람은 서로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세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매주 한번 영상을 통해 만나는 목적은 하나, 즉 함께 대화를 하기 위해서이다.

지난 여름까지도 이 프로그램은 그저 내 머릿속의 작은 아이디어일 뿐이었다. 2년간의 군복무를 위해 서울시 산하 노인복지관의 공익근무요원이 된지 불과 5개월여 당시 나의 역할은 굉장히 단순했다: 주방 설겆이. 아침, 점심 내내 주방에서 설겆이를 하면서 음식을 받고 자리를 찾아 식사하는 많은 어르신들의 모습을 한눈에 볼수 있었다. 때로는 어르신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도 있었다.

“내가 왕년에는… 근데 요즘은 자식들에게 짐만되는것 같아서 …”

“ 새로운 사람들도 더 많이 만나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아 내가 20년만 젊었어도…”

전에 많은 언론보도에서 보았던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매일 스쳐지나가듯이 듣던 이야기들이 패턴을 이루기 시작했다. 공통된 점이 있었다: 바로 사회적 역할의 상실에 대한 어르신들의 목소리, 그들은 무언가 목적이 있는 삶을 찾고 있는것이다. 그런데 과연 해결책이 있을까? 설겆이를 하는 동안에도 이 질문은 나의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었다. 고령화 문제가 공공정책의 중심적인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공간은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무언가 방안이 있을텐데..

“학생들은 영어를 하고 싶어합니다. 어르신들은 말동무가 필요합니다.” 5월경에 우연히 발견한 한편의 비디오 였다. 그것은 바로 브라질에 있는 영어수강생들과 미국의 어르신들을 화상으로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의 홍보영상이었다. “할아버지 옛날에 너무 잘생기셨어요, 아직도 잘생기셨고요!” 더듬거리는 영어로 브라질의 한 남학생이 컴퓨터화면에 나와있는 미국 할아버지에게 흑백사진을 보며 말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에 와 본적 있어요? 심심할 때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요?” 참여하는 어르신들이 학생들에게 물어본다. 그들의 얼굴은 환한 웃음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 영상을 보는 나는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때 바로 결심했다: 나도 복지관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해야겠다.

“신선한 접근 방법인데요” 프린스턴 대학교 한국어 언어프로그램의 서주원 교수다. “ 우리 학생들이 다양한 배경과 액센트를 가진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한국어에 대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기서는 제공하기 어려운 좋은 기회인 것 같네요.” 교수님의 얘기가 자신감을 주었지만 과연 우리 어르신들과 미국학생들이 서로 좋아할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특별한 여정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 재미있었어요” 다시 이인욱 어르신이 통화를 마무리하면서 얘기하신다. “시간이 참 빨리가네. 다음에는 좀 더 길게 얘기할 순 없나요?” 작별인사를 나눈후, 나가시면서 친구분과 이야기하시는 내용을 잠깐 엿들었다 “아주 기분좋아, 내가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니까.”

그렇다. 어르신들은 SAY를 통해서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하신다는 자긍심을 느끼고있다.

어르신들이 민간 외교관으로서 바다 건너 외국의 학생들에게 한국문화에 대해서 알리고 젊은 세대와 함께 소통을 하는 것이다. 은퇴후 무력감과 상실감을 느끼는 많은 어르신들에게 참신하고 새로운 경험을 안겨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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