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13 — 드라마 잡상

  1. 떳다 장보리는 막장 드라마다. 막장 드라마는 우리가 어떤 주제들에 흥분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 깔린 어떤 사회구조를 우리가 가장 보고싶어 하는지를 잘 나타내준다. 떳다 장보리가 우리에게 보여준 구조들은 다음과 같다.
    (1) 핏줄은 다른 어떤것도 뛰어넘기 힘든 계급이자, 선이자 진리라는 것.
    (2) 날때부터 차원이 다른 사람이 존재하고, 그 사람은 자애롭게 모든것을 어루만진다는 것.
    (3) 그 날때부터 다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악을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것.
  2. 난 보면 볼수록 연민정이 불쌍했다. 정말 이 모든것이 연민정이 악해서 그런건가? 연민정이 악하지 않으면 가지고 싶은것을 가질 수 없는, 핏줄의 구조 때문인가? 각 사건들을 보라. 애초에 연민정은 딸이 아니니까, 비술채의 지분을 가질 수 없었다. 그 장보리 엄마 역시, 애초에 맏며느리가 아니기에, 부정한 방법을 써서 그 자리를 지킬 수 밖에 없었다. 이 드라마는 실력과 핏줄과의 숨은 관계를 주변의 악행을 통해 숨기고 또 부정해 보이려고 하지만, 아니, 오히려 그렇기때문에, 굉장히 선명하게 핏줄이 곧 실력임을 드러낸다. 아니 번복한다 방금의 문장을. 더 정확히는 이 드라마가 내재하는 구조는, 핏줄이 실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인센티브를 내재하고, 이 핏줄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오직 악행만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센티브를 내재하는 구조이다. 이 드라마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핏줄안에 속한 이는, 인맥안에 속한 이는 자연스럽게 실력을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기를 수 밖에 없고, 그 안에 속한이들은 자연스럽게 악행을 통해 핏줄을 뛰어넘어야만 한다.
  3. 이런 막장드라마의 알레고리는 굉장히 상징적인데, 이는 곧 한국 사회가 비로소 혹은 아직까지, 소위 정통에 대한 열망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근본없는 자식에서 부터 성공 한 뒤 스스로의 성공을 정당화하고싶어하는, 70 80년대 사실 고아원 동기였던것을 숨기고 싶어했던 그 재희 어머니와 같은 심리인지, 아니면 그저 나는 날때부터 선함을 지니고 태어났는데 주변 세상은 이미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구원받을 것이라는 구원에의 확신인지 그것까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이렇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최소한 한국 시청자들 중 30% 이상은, 이 드라마가 내재하고 있는 권력관계와 유인구조를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면서, (설령 그것이 욕일지라도) 즐기고 있는 것이다.
  4. 결국 연민정의 합리적 선택은 악행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연민정이 악하기 때문인가? 애초에 핏줄이 아니면 기회조차 열리지 않는 사회가 더 악한게 아닐까? 떳다 장보리는 장보리와 연민정이라는 두 캐릭터의 대결 뒤에, 오히려 보란듯이 그 사회구조를 떠벌리고 있다. 마치 총을 쏘는 동안 길가에서 섹스를 하는 것을 병치시킨 것과 비슷한 이 구조는 FLCL같은 애니메이션에서도 쓰이는 그런 구조이다. 자극적인 것을 마치 병풍인양 깔아놓는 수법.
  5. 내일도 칸타빌레의 심은경은 참 귀엽다. 저런 아이 옆에다 데려놓고 있으려면 내가 치아키가 되어야 겠지만. 다만 만화상의 캐릭터 외형이나, 혹은 에피소드를 전부 살리지 못한건 좀 아쉬운 점이다.
  6. 더불어서, 내일도 칸타빌레의 음악 역시 그리 미묘하지 못했다. 좀더 나같은 평범귀가 알아들을 수 있게 음악을 치면 안되었을까? 이를테면 박자만 지키며 치는거랑 칸타빌레로 치는거랑 구분되게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친다던지. 물론 소나타 부분은 구분되긴 했는데, 방귀 뿡 노래같은 경우는 그렇게까지 귀엽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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