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마약을 구분하지 못하는 당신이 읽어야 할 네 가지 이야기

JS Liu
26 min readNov 29, 2014

[기사 리필] 당신만 몰랐던 게임의 진면목… 교육, 예술, 산업, 그리고 꿈

작년 이맘때 마소에 입사하고 썼던 첫 번째 시리즈가 뭐였나 찾아봤더니 ‘게임’이었습니다. 이 기사 쓰면서 많은 전율이 흘렀는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그때의 감동을 잊었습니다. ☹

마침 지스타도 다녀왔고, 작년에 한 번 공유하고 끝내기에 조금 아까운 생각도 들고 해서… 기록차원에서 블로그에 내용을 남겨놓습니다.

프롤로그 — 당신만 몰랐던 게임의 진면목…교육, 예술, 산업, 그리고 꿈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몰래 게임을 하던 아이는 급히 게임 콘솔의 코드를 뽑고 방으로 도망친다. 하지만 아이보다 더 고단수인 엄마는 텔레비전의 따뜻한 온도로 현장을 적발(?)하고 잔소리를 시작한다. 게임이 안 좋다고 배운 것은 아마 이때부터인 것 같다.

그래도 중독물질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게임을 오래 하면 눈이 나빠진다’에서 심하게 혼날 때는 ‘그렇게 게임하다간 대학 못 간다’ 등의 질책을 들었던 적이 있었을 뿐. 하지만 최근 게임을 마약과 도박, 알코올과 함께 4대 중독의 하나로 규제하자는 움직임이 정치권에서부터 일어나면서 게임을 하면 마치 범죄를 저지르는 것 같은 심리적 압박이 강해지고 있다.

파장이 어느 정도냐 하면, 정치적 성향이 극단으로 갈려 수시로 욕설로 치고받는 정도로 견원지간인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와 ‘오늘의 유머’ 회원들이 이번 게임규제안 때문에 ‘좌우합작’을 해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을 비판하고 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돌고 있다.

과연 게임은 해롭기만 한 걸까. 하루하루 게임에 빠진 자녀와 씨름하느라 게임의 이면에 숨겨진 좋은 점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기자는 자녀 교육에 꼭 필요하다며 게임을 손수 골라주는 의학박사, 게임에서 예술의 미래를 찾는 예술가들, 한국 게임산업의 선구자들을 길러낸 인터넷의 아버지, 게임 때문에 회사를 뛰쳐나와 1인 게임사를 차린 개발자까지, 당신이 몰랐던 게임의 진면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들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처음부터 운이 좋았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모바일융합학과 교수가 아들이 만든 게임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 떠올랐다. ‘정 박사라면 게임과 교육에 대한 소신을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락을 취했더니, 자신의 저서인 ‘내 아이가 만날 미래’에 관련 내용을 수록한 적이 있다며 반색했다.

정 박사는 “게임을 올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부모가 좋은 게임과 나쁜 게임을 구별할 줄 알고, 이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게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갓 중학교에 들어간 그의 아들은 친구들을 모아 기획, 디자인의 업무를 나눠주고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겠다며 신이 난 걸까.

취재는 계속 됐다. 미디어아트 웹진 ‘앨리스온’에서 게임 예술의 미래와 관련된 심포지엄을 연다는 소식을 접하고 취재에 나섰다. 이날 행사에서 만난 박영욱 숙명여대 교수와 유원준 앨리스온 디렉터는 게임과 예술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다. 심포지엄이 끝난 후에 이들을 붙잡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박 교수와 유 디렉터 모두 “게임과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게임의 화려한 그래픽과 몰입의 방식 등이 예술의 특성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세계를 호령하는 한국 게임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한국 게임의 중흥기는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 ‘단군의 땅’과 같은 온라인 게임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게임을 만든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김정주 NXC 대표, 김지호 이지모드 대표가 모두 같은 연구실 소속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이들이 처음 게임을 만들기 시작하던 학창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당시 지도교수인 전길남 카이스트 명예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전 교수는 1982년 한국을 전세계 두번째 인터넷 국가로 만든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를 통해 현재 한국 게임산업 선두주자들의 연구원 시절 이야기를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게임을 천직이라 여기고 그 길을 가고 있는 한 개발자를 만났다. 단순히 게임 개발만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임이 좋았기 때문에 전공인 디자인을 살려 게임디자이너로 발을 디뎠다가, 기획자의 길을 밟았다. 또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8년간 다니던 게임사를 나와 1인 회사를 차렸다. ‘평생 게임을 만들면서 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게임을 중독물질로 여기고 규제해야 하는가. 여기 당신이 이 질문에 대한 입장을 정하기 전에 읽어야 할 네 가지 이야기가 있다. 다 읽고나서 판단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1. “게임에서 발견하는 내 아이가 만날 미래”
게임으로 자녀 교육하는 정지훈 박사

최근에 만난 한 IT 업계 관계자가 이런 얘기를 했다. “저도 정부의 각종 게임 규제안을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이지만, 정작 퇴근해서 우리 아이들이 정신 없이 게임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 고민이 많아져요. 정부 규제안이 과도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부모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자녀가 게임을 하는 시간을 줄일 수만 있다면…’이라는 기대도 하게 되더라고요.”

부모로서 솔직한 얘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래서 규제에 찬성한다는 거냐, 반대한다는 거냐’라고 입장을 캐물을 수는 없었다. 얘기를 나누고 돌아오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게임과 자녀 교육은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운명일까. 이에 대해 진솔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11월 12일 이른 아침 대치동 한 카페에서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모바일융합학과 교수<사진>를 만났다. 의학박사이자 개발자, 그리고 미래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정 박사에게 자녀를 위한 게임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으면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그는 부스스한 머리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며 “아침에는 아이들 학교 보내느라 정신이 없다”고 첫 인사를 건넸다.

정 박사 역시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4학년 딸을 가진 아빠다. 그 역시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녀에게 게임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그는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녔을 때부터 적극적으로 게임을 접하게 해줬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의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란다. 대신 좋은 게임과 나쁜 게임은 구분한다.

정 박사는 “게임은 긍정적인 효과가 많다”며 “원래 사람은 놀이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모든 게임을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며 “무한 경쟁을 유발하며 중독성이 짙은 게임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에게 올바른 게임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부모가 어떤 게임이 좋은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는 ‘젤다의 전설’과 같은 스토리가 탄탄한 게임을 추천한다.

아이를 키우는 다른 집들과 달리 정 박사의 아이들에게 게임은 늘 오픈돼 있다. 거실에는 WII, 플레이스테이션2, 닌텐도DS, 3DS 등의 게임 콘솔과 각종 게임 CD들이 쌓여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게임 시간(1시간)을 정해 자율적으로 지킨단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가진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롱에 게임 콘솔 숨기기, 컴퓨터 키보드 압수하기는 그에게 있어 얼토당토않은 조치다.

“게임 숨긴다고 아이들이 안 할 것 같아요? PC방 가서 하거나 친구 집에서 몰래 하고 옵니다. 오히려 부모와의 대화도 끊기고, 관계만 안 좋아지죠. 그럴 바에야 부모가 먼저 게임을 알려주고, 나쁜 게임을 알아서 거르도록 하는 게 낫죠. 저희 집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게임에 대해 먼저 저에게 허락을 받습니다. 나쁜 게임이라고 말해준 것은 쳐다보지도 않죠. 이렇게 하니까 게임을 구별하는 눈이 생겨 동네 친구들이 온라인 게임을 하자고 유혹하면 오히려 안 좋은 게임이라고 설득해요.”

게임에 교육이 합쳐지면 그 시너지는 더욱 커진다. 놀이로 즐기면서 공부도 할 수 있다니 일석이조 아닌가. 실제로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게임은 아이들에게 역사 공부에 대한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정 박사가 추천하는 게임은 ‘에이지오브엠파이어’나 ‘헤일로’, ‘토탈워’ 다.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할 뿐만 아니라 스토리도 탄탄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정 박사의 아들은 에이지오브엠파이어 게임을 하다가 달려와서는 “아빠! 브루투스가 시저를 어떻게 암살했는지 알아?”라고 물으며 역사에 흥미를 보였다. 나중에는 직접 책을 구해다가 따로 공부도 했다.

게임은 단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교육 효과가 있다. 정 박사는 “어느 미국 연구소에서 게임이 어른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는데, 정보처리 능력이 증진되고 문제를 추론하고 해결하는 능력도 나아졌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비디오 게임을 정기적으로 하는 외과의사들은 집중력·사회성·시각멀티태스킹 능력이 좋아져 복강경 수술을 더 잘한다는 내용의 논문도 여럿 발표됐다”고 설명했다.

정 박사의 아들은 게임을 하는 것을 넘어 이제 게임을 제작하는 수준에 다다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게임 제작 툴을 통해 게임을 만들었단다. 요즘에는 새로운 장르의 게임을 만들어보겠다며 친구들을 모아서 밤샘 작업도 한다. 정 박사는 “나 역시 어렸을 적 게임 제작을 통해 배운 것이 많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에게 창조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먼저 게임을 제작해볼 것을 권했습니다. 특히 게임을 만드는 동안의 집중력은 게임을 할 때보다 훨씬 높더군요. 요즘에는 모바일 게임인 ‘템플런’과 콘솔 게임 ‘슈퍼마리오’를 합친 새로운 형태의 게임을 만들겠다며 신이 났어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에게 기획을 맡기고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는 친구에게는 게임 디자인을 맡겼다고 하네요. (웃음)”

정 박사는 아이들에게 게임뿐만 아니라 아이패드 같은 기기도 사용하게 한다. 그는 “앞으로 아이들 세대에는 없어서는 안 될 도구”라며 “우리 세대가 책과 노트로 공부했다면 아이들에게는 태블릿PC가 그러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신 기기를 사주는지 쓰던 것을 주는지 물었더니 쓰던 것을 준다고 했다. 이에 “최신 기기가 나오면 새로 사려고 쓰던 것을 아이들한테 주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건네니 속마음을 들킨 듯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일반적인 부모에게 있어 정 박사와 같은 자녀 교육법은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자녀가 게임을 한다고 하면 공부는 안 하고 게임만 할까봐 걱정부터 앞서기 때문이다. 성적 좀 떨어지면 어떠냐며 너털웃음을 짓는 그의 어린 시절이 궁금했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영실업에서 나온 팩맨 게임기를 사다주셨던 게 처음으로 게임을 접했던 기억인 것 같네요. 저는 국민학교 5학년 시절 컴퓨터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당시 어린이 회관에서 상어 잡는 게임, 탐정 맞추는 게임들을 하다 보니 이런 것들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면서 프로그래밍을 시작했죠.”

최근 정 박사는 저서인 <내 아이가 만날 미래>에서 게임이 가진 다양한 교육적 효과를 소개했다. 뉴욕 공립 중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는 ‘학습을 위한 퀘스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학습 목표를 깨우친 아이들에게는 마스터(master)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초보자(novice) 칭호를 주고 교사들을 길잡이(NPC)로 역할을 나누는 교육 방식이다.

이같은 ‘학습을 위한 퀘스트’를 적용하면 학교 공부는 경쟁과 주입식 등의 수동적 교육 방식에서 삶에서 필요한 것을 획득하고 스스로를 업그레이드 하는 능동적 교육으로 전환된다. 아이들은 이를 통해 배우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정 박사는 “디지털 기기가 발달함에 따라 스마트폰을 이용한 현장학습과 같이 미션을 완수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부를 할 수 있게 됐다”며 “실 세계가 게임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뉴욕의 사례는 지금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현재 국회에서는 게임을 마약과 주류와 같은 중독성이 있는 4대 악으로 분류하고 이를 규제하는 법안이 발의돼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한 정 박사의 생각은 크게 두 줄기였다.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게임을 가르쳐주며, 게임 제작사는 게임이 가질 수 있는 교육·문화적 효과를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제어하겠다고 해서 사람들이 게임을 안 하게 될까요? 부모가 자식에게 게임을 못하게 하더라도 어떻게든 게임을 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제어한다고 중독자가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게임을 할 수 없도록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 가서 살게 해야 할까요. 게임에 들어가는 좋은 요소들을 가르쳐야 하고, 중독 증세를 보이면 치료를 해야 합니다. 이를 방치한 게임 업계 역시 책임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게임이 갖고 있는 우수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며 게임 교육을 위한 연구소 같은 기구를 만들어 활성화해야겠죠.”

앞으로 교육현장이나 기업에서 게임적인 요소가 더 많이 활용될 것이며 마치 게임처럼 임무가 주어지고 이를 즐기면서 해결하는 능력이 경쟁력이 된다는 게 정 박사의 생각이다. 무작정 자녀들에게 게임을 못하게 하고, 나쁜 것이라고 가르치면 오히려 음지에서 나쁜 게임을 몰래 하는 경우만 생긴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은 명료했다.

“게임을 즐겨서 성적이 조금 떨어지는 것보다 게임을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것이 더욱 문제가 큽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펼쳐질 사회는 게임의 원리와 같이 돌아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올바른 활용법을 알려준다면,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하는 눈이 생기지 않을까요?”

2. “게임과 예술의 경계가 무너진다”
‘게임 예술의 미래’ 심포지엄서 만난 박영욱 교수, 유원준 디렉터

11월 9일 앨리스온이 주최한 뉴미디어아트 국제 심포지엄 Part3 ‘게임 예술의 미래, 놀이와 상상력’에서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오갔다. (사진 왼쪽부터) 유원준 앨리스온 디렉터, 박영욱 숙명여대 교수, 미디어아티스트 돈 리터, 모리스 베나윤, 토드 호로벡이 참석한 가운데, 예술이 게임적인 요소를 차용하고 있는 실제 사례들이 등장했다.>

기자는 요즘 스마트폰으로 재출시된 어드벤처 게임 ‘림보(LIMBO)’에 푹 빠져 있다. 안개가 낀 스산한 흑백 화면에 쓰러져 있던 한 남자아이가 일어나 수풀을 지나치며 왕거미, 늪 등의 장애물을 물리치고 한 여자아이에게로 향하는 스토리다. 음산한 음향, 화면마다 등장하는 섬세한 그래픽, 난해한 엔딩 등,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010년 예술의 전당에서는 RPG(Role Playing Game) ‘파이널 판타지’를 주제로 한 ‘파이널판타지 콘서트-디스턴트 월드’가 열렸다. 70여 명으로 꾸며진 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30여 명의 서울그랜드합창단 등 100여 명의 출연진 그리고 ‘파이널판타지10’의 주제가를 부른 가수 이수영이 함께했다. 이날 참석한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워낙에 파이널판타지를 좋아했다”며 “공연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 봤다”고 극찬했다.

이 정도면 “예술적인 게임도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예술과 게임을 어찌 같은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과연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취재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미디어 웹진 앨리스온이 주최한 ‘게임 예술의 미래, 놀이와 상상력’이라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그곳에서 사회자와 발표자로 참석한 유원준 앨리스온 디렉터와 박영욱 숙명여대 교수(매체철학)를 만나 궁금증을 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원준 디렉터는 “모든 게임은 아니지만 예술과 공통적인 범주 안에 놓여 있는 게임들도 있다”고 말했다. ‘더 그레이뱌드’, ‘거대한 동굴 모험’, ‘헌트 더 움퍼스’와 같은 게임은 예술 작품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게 유 디렉터의 설명이다.

예술 역시 기술과 결합하면서 게임적인 요소들을 작품에 담기 시작했다. 게임의 특징을 적극 차용하는 뉴미디어아트만 봐도 그렇다. 일례로 미디어아티스트 모리스 베나윤의 ‘Is God Flat’이라는 작품을 보면 누구나 게임 ‘둠’의 미로를 떠올리게 된다.

“게임 형식을 지닌 예술 작품은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더욱 다양하게 등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20세기 이후 예술 역시 기술을 작품의 주요한 소재로 끌어들였죠. 우리가 흔히 지칭하는 ‘뉴미디어 아트’가 그것입니다. 기술과 결합한 미디어아트의 특성은 자연스럽게 게임이 갖고 있는 ‘가상성’, ‘상호작용’, ‘연결’ 등의 속성을 공유합니다.”

유 디렉터의 설명을 들으니 게임과 예술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둘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구분이 불필요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유 디렉터에 따르면 예술과 게임, 두 영역은 분명한 교집합이 있다. 초기 사진과 영화가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점차 예술의 영역에 들어온 작품들이 있는 것처럼 게임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게임이 사진이나 영화와 같은 예술적 인식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만들어졌던 역사적 배경에서부터 목적이 (상업적으로)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진과 영화의 경우에도 초기 예술의 역사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게임 역시 예술의 환경이나 소재, 더 나아가서는 주제로 활용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영욱 교수도 게임과 예술은 공유할 수 있는 영역이 많다고 말했다. 예술이 그림 등의 작품을 통해 현실 세계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면, 게임 역시 현실에서 벗어나 게임 세계에 몰입하게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박 교수는 “미디어아트가 게임 요소를 적극 따라하는 등, 게임 자체가 예술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게임의 인트로 영상에는. 굉장히 가슴 뛰게 하는 장면이 많습니다. 또 게임 그래픽 수준도 날이 갈수록 올라가고 있습니다. 시각적인 완성도가 좋고 나쁨의 기준이 된다는 뜻이죠. 예술성이 있다는 반증입니다. 아까 언급됐던 ‘Is God Flat’을 한 번 봅시다. 이 작품이 ‘둠’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1인칭 시점과 미로를 통한 몰입감 때문입니다. 미디어아트가 이같은 특성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상황을 봐도 게임을 예술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두 사람은 게임을 마약, 알코올과 같은 4대악으로 규정하고 적극 규제해야 한다는 움직임에 대해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게임에 있어서 몰입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부작용이 수반될 수도 있죠. 하지만 제도적으로 이러한 게임을 규제한다면 그 순기능과 성장 가능성 모두를 위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다른 가능성을 지닌 다양한 게임을 소개하고 건강한 게임 문화를 확장시키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유원준)

“중독 자체가 나쁘지 않다고 하는 것은 극단적인 사고입니다. 하지만 이같은 중독은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면 왜 현실을 도피할까요? 바로 현실 자체가 ‘더럽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게임에 미루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주는 예술적 요소를 지닌 게임을 제대로 이용한다면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박영욱)

3. “게임은 극한의 SW 기술로 만드는 문화 콘텐츠”
김정주, 송재경 대표를 만든 전길남 카이스트 명예 교수

‘스타크래프트, 바람의 나라, 리니지…’ 아도겐을 외치던 초등학생들이 중학교에 올라가자 드랍쉽에 열광했다. 이렇듯 1990년대 후반 혜성같이 등장한 온라인 게임은 오락실 광풍을 잠재웠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과 인터넷이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람의 나라’를 만들어 한국 온라인 게임사의 한 획을 그은 김정주 NXC 대표와 ‘리니지’를 통해 전성시대를 열었던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그리고 ‘단군의 땅’을 만든 김지호 이지모드 대표의 공통점은 ‘같은 연구실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스승은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전길남 카이스트 명예교수<사진>다.

올해로 칠순을 맞은 전길남 교수는 1982년 경상북도 구미와 서울을 유선 네트워크로 연결해 미국에 이어서 전 세계 두 번째로 우리나라의 인터넷 시대를 열었다. 네트워킹을 공부하던 제자들이 어떤 계기로 게임을 만났고 한국 온라인 게임 산업을 이끌게 됐을까. 전 교수라면 이 모든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리고 11월 13일, “Will you call me up in the next few days?(며칠 내로 전화 주세요)”라는 승낙과 함께 게임과 인터넷의 주옥같은 30년사가 전 교수의 입을 통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인터넷이 처음 등장하는 1970년대까지 올라갑니다. 당시 미국이든 우리나라든 인터넷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대학원생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쉬는 시간에 만든 게 게임이죠. 온종일 시스템만 개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웃음) 미국 MIT, 스탠퍼드가 가장 열심히 했고, 영국의 에든버러, 케임브리지도 했죠. 우리나라는 1980년대 초부터 카이스트에서 연구를 시작해 미국, 영국 학생들과 활발히 교류했습니다. 일본, 독일도 인터넷에 관해서는 우리와 같거나 조금 앞서는 수준이었는데 게임은 별로 안 했습니다. 미국·영국·한국이 선두그룹이었죠. 저는 게임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가 안 됐지만 우리나라 게임 산업 종사자들의 많은 숫자가 제 연구실에서 나왔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김정주 대표와 송재경 대표가 전 교수의 SA 랩(System Architecture LAB)에서 연구는 안 하고 게임만 하다가 관련 업계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고 농담 반 진담 반 말을 이었더니 “아니다”고 고개를 저었다. 당시 김 대표와 송 대표는 과에서 톱 수준이었기 때문에 박사학위를 하는 데 하나도 문제없는 그룹에 있었단다.

전 교수는 “게임을 만들고 구현하는 건 소프트웨어 기술의 극한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굉장히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구한다”며 “당시 그 정도의 소프트웨어가 없었기에 이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김정주와 송재경은 석사과정을 마치고 끝나고 박사학위로 입학할 때 과에서 수석 아니면 차석 수준이었습니다. 카이스트는 물론이고 MIT, 스탠퍼드도 가능했어요. 낮에는 제가 사무실에 있으니 연구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잘 만들었죠. 저는 밤에 학생들이 다른 일하는 것에 대해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때 송재경은 리니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했고 김정주는 비즈니스 관련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게임잡지 등이 쌓여있던 책상만 봐도 네트워킹 연구만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우등생이었던 김 대표와 송 대표가 연구의 길을 멈추고 게임업계에 뛰어든 것이 전 교수로서는 아쉬울 수도 있었을 법. 하지만 그는 “더 도전적인 목표를 권하는 게 스승의 도리”라고 강조했다.

“저 둘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이런 것이 가능할까?’,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일까?’ 정도 수준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 최고, 최초의 온라인 게임 벤처를 만드는 게 박사학위보다 어렵잖아요? (웃음) 그것을 하겠다고 준비하니 숨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해’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도교수로서 박사학위를 받고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타이밍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때 하는 게 맞았죠.”

전 교수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게임 규제에 대해 “게임 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을 떠나 미국이나 일본, 중국에 가야 하는 상황만 봐도 국가적으로 반성해야 하는데, 규제라니 말도 안 된다”며 “우리나라에서 벤처를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또 게임업계를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외국으로부터 게임과 관련된 문제 사례를 가져오고 전문가를 초빙해 워크샵을 여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전 교수의 생각이다.

중독이라는 문제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기에 각국의 관계자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도 도출하고, 실패 사례에 대해서는 반면교사를 삼는 적극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나라가 게임분야에서 우수한 경쟁력을 가졌지만 의식은 후진국입니다. 게임 중독이 문제라면 OECD에 문의해서 스터디 2~3년 하면 해결 방안이 나옵니다. 그런데 게임 규제안 만든 곳에다가 ‘OECD에 제출한 적 있느냐’고 물어보세요. 대답 못할 겁니다. 물론, 게임업계만 잘하고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내부 조직을 만들고 중독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해외에서 전문가들 부르는 등의 역할을 자체적으로 했어야 합니다. 김정주, 송재경이 안 하고 있어서 가끔 뭐라 하는데, 다들 바빠서 정신없어 하더군요.”

게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전 교수에 따르면 넥슨이 갖고 있는 최종 목표는 게임이 영화나 애니메이션 수준의 예술성을 갖는 것이다. 최근 김 회장이 레고 거래사이트인 ‘브릭링크닷컴’을 인수한 이유도 이의 연장선상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 송 대표가 만들고 있는 게임은 블록버스터급을 넘어서는 규모라고 한다.

전 교수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거의 유일하게 국제적인 경쟁력 갖고 있는 분야는 게임”이라며 “여기에 콘텐츠적인 수준이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넘게 된다면 굉장한 작품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게임 강국으로 부상했고 일본도 여전히 막강하지만 온라인 게임을 가장 먼저 상용화해 소프트웨어 수준이 가장 높은 곳이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지난 9월 17일 출시한 게임 ‘GTA5’는 당시 매출 10억 달러 기록을 가장 빨리 달성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기네스북에 올랐다. 이렇듯 잘 만들어진 게임 콘텐츠의 경제적 효과는 이미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앞지르는 추세다. 국내, 그리고 세계 최초로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 붐을 일으킨 두 제자를 바라보는 전 교수의 따뜻한 눈빛이 직접 보지 않아도 그대로 느껴졌다.

“언젠가 김정주가 나에게 ‘디즈니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속이 시원한데, 같은 시간 온라인 게임을 하면 그렇지 못합니다’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던 적이 있어요. 저는 ‘그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해줬죠. 그의 목표는 디즈니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아직 게임과 영화·애니메이션의 격차는 상당하기 때문에 힘든 일이죠. 하지만 좋은 목표입니다. 송재경이 운영하고 있는 회사는 더 재미있습니다. ‘너 지금 뭐하냐’고 물으니 ‘지금 게임 하나 만들고 있는데 1,000억 원정도 예산이 들어갑니다’라고 하더군요. 수 백억 원 수준이 투입되는 블록버스터 영화와 비교해도 엄청난 규모죠. 송재경이기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회사들이 하나둘 나오다 보면 우리나라 게임 산업에서도 할리우드 같은 신화가 생길 수도 있을 겁니다.”

4. “나의 꿈은 늙어 죽을 때까지 게임 만드는 것”
게임광에서 게임 개발자 된 장석규 도톰치게임즈 대표

‘프랙털(Fractal)’이라는 이론이 있다. 물질을 이루는 한 부분이 전체 구조와 비슷하다는 뜻이다. 일례로 나뭇잎을 자세히 살펴보면 잎의 전체적인 모양이 그보다 작은 하나하나의 잎에 나타나 있고 또 더 작은 잎들에서도 전체 모양이 반복된다. 이를 한 사람의 인생에 비춰보면 어렸을 적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결정할 수 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부모는 자녀가 하는 게임을 달갑지 않은 눈으로 바라본다. 공부는 안 하고 게임에만 빠지니 커서 뭐가 될까 싶은 고민이 크다고 한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즐기던 게임의 영향을 받아 삶을 개척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게임은 은인이자, 스승 이상의 가치가 있다.

11월 21일 성균관대 수원캠퍼스 부근의 자택에서 장석규 도톰치게임즈 대표<사진>를 만났다. 30대 초반인 장 대표는 게임사에 입사해 10년이 넘게 일하다가 올해부터는 1인 게임사를 차리고 개발자의 길을 걷고 있다. 디자이너로 시작해 기획자를 거쳐 개발자까지, 게임 산업의 여러 영역을 두루 경험한 보기 드문 사례다.

방안 책장에 진열된 게임 콘솔과 한 상자 가득 쌓인 게임팩만 봐도 장 대표가 게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 게임에 빠지게 됐고, 게임 제작까지 하게 됐을까. 그 25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장 대표가 초등학교에 다녔을 때만 해도 재믹스, 패미컴 등 게임 콘솔이 있는 아이들은 친구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고 한다. 당시 공차기, 블록 및 로봇 조립과 같은 놀이가 전부였던 시절 게임기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것.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게임팩 매장에는 아이들이 항상 붐볐단다.

“게임은 저를 새로운 세상과 연결해줬습니다. 친구들과 로봇을 들고 놀 때 무기를 갈아 끼우고 가볍게 부딪치는 정도에서 재미를 느꼈다면, 게임은 무기를 장착했을 때 힘이 얼마나 강해지며, 상대편에게 어떤 데미지를 주는지 숫자와 그래픽으로 보여줬습니다.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이야기들이 화면에 그대로 구현되니 놀라웠죠.”

장 대표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게임에 몰입하기 좋은 조건을 갖고 있었다. 그는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들이 특별히 게임을 한다고 나무라지 않고 방목하는 분위기 속에서 형, 누나들과 함께 게임을 마음껏 즐겼다고 한다.

어릴 적 신나게 했던 게임이 얼마나 큰 가르침을 줬는지 그때는 몰랐다. 장 대표는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렸을 때는 어떻게 공부하는 것보다 노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지금 만드는 게임의 90%는 그때 보던 게임의 그래픽과 재미, 룰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고등학생일 때 일본의 스퀘어사가 만든 RPG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란 게임에 푹 빠졌습니다. 당시 번역이 안 돼 일본어 버전만 있어서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것도 많았죠. 하지만 캐릭터의 능력치를 조정하며, 아이템을 장착해 전투를 준비하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전투를 20분간 한다면 이 준비과정은 1시간이 넘었죠. 제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게임들은 이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를 벤치마킹한 부분이 많습니다.”

장 대표는 대학에 입학하고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한때는 만화가를 꿈꿨으나 만화보다는 게임을 만드는 일에 더 관심이 갔다. 그래서 대학에 갓 입학했던 2000년 델피아이라는 회사에 게임 디자이너로 입사하며 학업과 일을 병행했다. 하지만 그는 실력의 한계를 느껴 9개월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게임을 만들겠다는 꿈을 접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1년 만에 다시 학교를 뛰쳐나와 게임 기획자의 길을 가게 됐다. 트리거소프트라는 회사에서 ‘로즈 온라인’을 준비했고, 2004년에는 위메이드로 자리를 옮겨 8년 가까이 일했다. 그 사이에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기획일과 함께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병행하다가 결혼 직전인 올해 1월 회사를 그만두고 1인 개발자의 길을 선택했다. “부인이 결혼 전에 회사를 나가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았나”라고 물어보니 “그래서 결혼 전에 회사를 그만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기획자로 10여년을 지냈지만 이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디자인은 어느 정도 공부했기 때문에 그래픽 디자이너들과는 소통이 됐지만, 개발자들한테는 제 생각을 전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2007년부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디자이너로 일했던 델피아이를 관둘 때쯤 아는 형들과 같이 만들다가 엎어진 ‘포춘카드 온라인’이라는 게임이 있었는데, 그 소스를 기반으로 알음알음 프로그래밍을 배워 홀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2009년 출시된 포춘 시리즈 첫 번째 에피소드인 ‘리버스 오브 포춘’이었죠. 그 이후로 4개의 에피소드를 더 만들었습니다.”

게임을 만드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지난 5월 네번째 에피소드인 리버스 오브 포춘2가 나오기 직전에는 재정상황은 보릿고개 수준이었다. 1월에 퇴사하고 통장 잔고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그때는 아예 바닥이 드러난 것. 거기다가 게임은 출시 직전이니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정말 피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꿈을 위해 현실의 안정은 기꺼이 포기했다. 게임이 어떠한 의미가 있길래 이렇게까지 열심일까.

“제 머릿 속에서 나온 세계관과 캐릭터들을 게임에 구현했는데, 이를 좋아하는 팬들이 전세계에서 몰려왔을 때 그 쾌감은 잊지 못합니다. 농사꾼이 열심히 농사를 지어 열매를 맛봤을 때의 기쁨과 비슷할 것 같아요. 이것이 아무리 열악한 상황이 생겨도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늙어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게임을 만드는 게 제 꿈이에요.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기 때문에 생활이 힘들어지면 다시 (게임) 회사로 돌아가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겠죠. 그러한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계속해서 스토리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만든 수많은 포춘 시리즈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명작이 될 때까지.”

--

--

JS Liu

科技圈深度观察, interested in AI, Ecommerce, Fintech, Chinese te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