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저널리즘의 맨 얼굴

우라까이+일기? 위기와 기회 

JS Liu
7 min readApr 26, 2014

어렵습니다. 이 바닥에 몇년 있지 않은 초짜 나부랭이가 저널리즘이 어쩌느니를 논한다는 건 우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번 참사를 통해 드러난 저널리즘의 ‘노메이크업’ 상태를 정리하는 건 기자로서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이번 참사로 인해 언론사의 기사 양산 방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모든 기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검색어 받아적기+감성 르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전문성이 결합된 관점의 기사들의 숫자는 미미했습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기사의 종류는 최초의 보도를 받아적는 ‘우라까이 형’ 기사입니다. 검색어 기사와 통신사 받아적기, 두 종류로 나뉩니다. 이번 침몰 참사를 다룬 기사들 중 가장 많은 지적을 받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4월 16일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포털사이트 N사의 실시간 검색어(실검) 1~10위는 곧바로 ‘세월호’, ‘진도’ 등의 키워드로 도배됐습니다. 이에 따라 검색어에 맞춘 기사들이 대량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최초 보도를 받아적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단 전제가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통신사와의 제휴를 통해 거기서 나온 기사를 ‘리라이팅’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와 같은 형태는 저널리즘이 온라인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기사쓰기의 표준(?)이 됐습니다.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표현이 나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하지요.

언론사는 기존의 매뉴얼을 적용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참사가 터진 당일 오전 ‘전원 구조됐음’이라는 속보가 나왔고, 이를 쫓아가는 기사들이 줄지어 등장하면서 언론이 초기 구조 작업에 안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을 피해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자사의 뉴스 페이지 방문을 유도하는 기사들도 대량으로 등장했습니다. 페이지뷰(PV)에 따른 광고 수익을 위해 벌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매체의 주요 수익구조 중 하나이기 때문에 포기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지요.

‘핫토픽 키워드’ 검색어 기사 예시

사안의 무게가 평소와 달랐다는 게 문제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302명의 탑승객이 사망하거나 실종됐습니다. 그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 파릇파릇한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었지요. 배가 가라앉고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발견되지 않는 작금의 상황에 모두가 안타까워하고, 분노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의 이러한 무분별한 보도가 도마 위로 오른 것입니다.

이번 참사가 발생했을 때 초기 구조 오보와 더불어 실종자 숫자가 오락가락하는 일들이 드러났는데요. 그런데 검색어에 기반한 기사들이 잘못된 기록들을 재양산해 무엇이 사실인지 헷갈리게 했습니다.

검색어를 눌렀을 때 포털 뉴스 카테고리 내 상단에 위치하면 경험상 최소 1만 PV 이상을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단어 끼워맞추기 형태의 기사가 제작됩니다. 그 과정에서 팩트 확인은 전무합니다. 앞서 뉴스 카테고리에 올라온 기사들의 내용을 복사 후 주어와 어미를 살짝 고친 후 붙여넣기를 할 뿐입니다.

다음으로는 현장 기사입니다.

많은 기자들이 진도로 가거나 안산에 있는 빈소, 단원고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다양한 루트로 실종자 가족,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주제는 ‘슬프다’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반응을 취재하기 위해 수많은 기자들이 자식을 잃은 부모들, 친구를 잃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루트로 접근했습니다. 많은 기사가 나왔으나 결론은 같았습니다. 심지어 과잉 취재로 인해 실종자 가족들이 인터뷰를 거부하는 데에 이르렀습니다.

현장을 담담하게 전달한 CNN의 보도와는 대조되는 모습이었습니다.

http://youtu.be/8vUYcp8Dsvw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CNN의 보도를 아래와 같이 요약, 번역했습니다.

카메라는 울부짖는 부모들의 모습을 선정적으로 잡아내지 않는다. 리포터는 격앙된 목소리로 비극을 부르짖지도 않는다. 대신 카메라는 현장을 지키며 눈물을 감추려 노력하는 경찰들의 얼굴과, 시신을 운구하는 경찰들의 발자국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부모의 흐느낌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리포터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현장의 상황을 차분하게 설명할 따름이다.

대안을 제시하고, 올바른 사실을 전달해야 할 저널리즘이 포털 검색어와 현장을 받아서 눈물 쥐어짜기식의 기사를 보여주는 것에 그쳤던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협업이 되지 않는 속보 생산 구조, 둘째는 전문성의 결여입니다.

디스패치와 JTBC의 보도를 통해 이러한 점을 역으로 되짚겠습니다. 두 매체의 보도는 관점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논리의 구조를 탄탄히 갖췄다는 측면에서는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스패치는 참사가 벌어진 뒤 4일 후에야 <“불신은 어떻게 시작됐나?”…실종자 가족의 48시간 (종합)>이라는 제목의 첫번째 현장 기사를 출고합니다. 그리고 <수색작업, 갈등의 실체…구조의 오해와 진실 30 (종합)>이란 기사를 추가로 게재합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 <세월호 다룬 디스패치 기사는 단언컨데 편파적이다>도 있습니다만, 연예 매체로만 여겨졌던 디스패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그 어떤 기성 매체보다도 세세하고 깊게 접근해 제대로 된 기사의 형태를 갖춘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디스패치의 이번 보도는 ‘협업’의 승리로 볼 수 있습니다. 협업은 디스패치의 전통적인 취재 형태입니다. 연예인 파파라치를 하기 위해서는 기자 개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팀워크가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다른 매체의 기자들이 속보 위주의 각개전투를 하거나, 공동 바이라인을 올린다고 해도 기계적인 취재 수행에 불과했던 반면, 디스패치는 협업을 통해 느리지만 깊이 있는 접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전문성입니다. 사안이 터졌을 때 그렇다면 모든 기자가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대답은 ‘예’입니다. 그 분야에 경력이 있거나, 모르면 공부를 하거나, 설명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내야 합니다.

4월 24일 보도된 JTBC 뉴스에서는 해경과 민간 잠수사의 갈등에 대해 한윤지 기자가 브리핑을 했습니다. 그는 다이빙 경력을 바탕으로 잠수부들의 현황, 해경과의 갈등에 대해 깊이 있게 분석했습니다.

4/24 JTBC 보도 http://youtu.be/WC8Ta6DGuLw

그는 다이빙 경력을 바탕으로 현장을 바라봤기 때문에, 민간 잠수사의 실제 잠수 능력과 해경과의 마찰에 대해 자신만의 관점을 들이 댈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세월호 참사가 저널리즘에 있어 위기이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온라인 콘텐츠 구독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포털 검색 기사에 대한 지적이 원래부터 있어왔으나 이번 참사로 인해 신뢰를 완전히 잃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에 맞춘 속보와 자극적인 기사들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줄어들 것입니다. 기존에 하던대로 검색어와 베껴쓰기 기사만을 양산하는 매체들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가게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의 저널리즘은 새로운 도전과, 현실에의 안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냄비 속 개구리 일화를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뜨거운 물에 빠진 개구리가 있었습니다. 그 개구리는 뜨거운 물에 놀라 펄쩍 뛰어서 밖으로 탈출해서 목숨을 건졌지요. 그런데 차가운 물이 담긴 냄비에 있던 개구리는 서서히 물이 뜨거워지는데도 밖으로 나오길 고민하다가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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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 Liu

科技圈深度观察, interested in AI, Ecommerce, Fintech, Chinese te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