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우리 대신 우리 스스로를 구해줄 수는 없다. 병이 났을 때 우리를 제일 먼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중략)

크롱베가 직접 개발한 ECHO치료법이나 질병을 내면의 이미지나 외부의 사물로 상징화하는 기타 방법들은 환자가 병에 대한 주도권을 쥘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내가 내 몸의 종양을 개미집으로 생각하면 나는 암 진단이라는 사실보다 더 쉽게 다룰 수 있는 비유를 갖게 된다. 그렇게 해서 병과 대화할 수 있는 거리를 얻는 것이다.

(중략)

많은 변화를 수반하는 근본적인 깨달음일수록 더 많은 자유와 가벼움을 가져다준다. 또 기억해야 할 점은, 어떤 방법이나 기술이 주위 사람한테 아주 잘 통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똑같이 통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치료법을 결정하는 것은 환자 본인의 몫이다. 치료사가 조언을 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대신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치료사의 역할은 환자와 동행하면서 새롭게 깨달은 심리적 사실들을 환자 자신의 속도에 맞춰 소화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환자 자신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내가 받는 치료는 내 인생에 관련된 것이며,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나니까 말이다.

(중략)

우리는 행복과 사랑을 발산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들 곁에서 우리 자신의 생명의 불꽃을 더 크게 키우고 싶어 한다. 우리 마음이 내리는 선택은 기분만 바꾸어주는 게 아니라 인생도 변화시킨다. 슬픔을 웃는 얼굴로 숨기는 분장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물론 억지 미소도 긍정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며, 사람들도 당신에게 웃어주긴 할 것이다. 그러나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의 잔재는 계속해서 당신 안에서 진동하고 바깥으로 발산되면서 당신을 힘들게 만들 우려가 있는 사람들과 상황을 끌어당긴다. 길게 내다보면 그런 상황이 당신 안에 남아 있는 잔재를 없애줄 가능성이 크지만 말이다.

(중략)

어떤 방법도 어떤 가르침도 마법 같은 효력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별한 방법이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해서 치유되는 게 아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모든 건 자기 자신과 자신의 변화 과정에 얼마나 집중하느냐에 달려 있다. 자신들의 자기조절 작용을 자극하는 데 필요한 집중력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승패를 좌우한다.

(중략)

우리가 되찾으려는 건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삶을 찬미하기 위한 건강인가? 아니면 죽을까 두렵기 때문에 필요한 건강인가? 운명적인 사랑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도 같은 식의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위한 사랑인가? 둘이서 함께 창조적인 삶을 만들어가기 위한 사랑인가? 아니면 당신을 현재 모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 같아서 필요한 사랑인가?

(중략)

야나를 보면서 나는 내 동료 조안 드 몽티니와 마리 드엔젤이 쓴 책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가까운 이들을 간호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게 좋은지 가르쳐주면서, 임종을 앞둔 사람을 돌볼 때는 그 사람을 위한 계획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세상을 떠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마지막까지 자유로운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얼마간이라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잘 살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도 죽음을 앞둔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또 한 가지 방법이다.

(중략)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이 가치 있는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인생이 영감을 받은 삶인 동시에 영감을 주는 삶이기를 바라지. 자신의 삶에 그러한 감동을 느껴야 진정한 치유에 이를 수 있어. 자기 자신에 대한 감동이 힘을 발휘하는 거야.

[생의 마지막 순간, 나는 학생이 되었다. — 기 코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