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만난 사람들 #1. Women Gamechangers

한해를 마무리할 (아아) 즈음이 되면서, 챙길 일들, 정리할 일들이 어디선가 솟아난다. 정신없이 지내던 중 홍콩에 출장을 오게 되었다.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일상을 잠깐 멈추고 다녀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비행기를 탔다.

이제 몇 시간 후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시간. 그동안 참석해야 할 행사에 참석했고,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났고, 의논해야 할 일들을 의논했고, 틈틈이 이메일을 썼고, 이번 주에 할 일로 적어 두었던 일들을 몇 개 지웠다. 홍콩에서 하기로 한 일들 옆에 하나씩 체크마크를 그려 놓고,

분더리스트 대신 미디엄 앱을 켰다.


사흘의 출장, 만 48시간 동안의 홍콩에서 기억에 남는 건, 세 번의 만남이다.

  • 이 출장의 목적이기도 했던 Asia Society 에서의 토크 행사, Women Gamechangers.
  • 몇 주 전 Impact Nights 에서 인상적인 발표를 했었던 RS Group 의 Ronie Mak 과의 점심. 그리고,
  • 후쿠이 현립 고등학교의 치어댄스부 선생님과 학생들. (홍콩 출장기에 왜 갑자기 후쿠이 고등학생들이 등장하는지는 세번째 글에서 설명하겠다.)

Women Gamechangers: Women Explorers of National Geographic

National Geographic 은 탐험가 (과학자, 탐험가, 환경 보존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스토리텔러, 교육자를 모두 포괄한다) 들에게 자원과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하고 표현하는가에 대한 트레이닝, 잡지와 TV 채널을 통해 세상에 이야기를 알릴 기회를 얻는 것까지, 새로운 탐험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에겐 꼭 필요한 지원이 주어지는 것이다.

C Program이 National Geographic Society 에 5년간 펀드를 지원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잊고 있는 것들을 탐험하고 연구하고 보호하는 데 인생을 거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일에 동참하고 싶기 때문이고, 그 중에서도 지난 130년간 주목받지 못한 아시아 탐험가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기를 바라기 때문이며, 한국과 아시아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탐험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매년 6월 워싱턴 DC 에서 열리는 Explorers Festival 은 전 세계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National Geographic 의 후원을 받으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탐험가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행사다. 스토리의 힘으로 승부하는 행사란 이런 거구나, 느꼈던 자리이기도 했다. 그동안 National Geographic 직원들과 후원자들이 함께 하는 행사였지만, 2017년부터 점점 더 대중에게 공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한다. 2016년 처음 이 행사에 참석했을 때, 강당에서 하루종일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꼈던 놀라움과 전율을 잊을 수 없다. 아프리카의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 눈앞에 보일 듯한 초원의 사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어떤 종의 거북이들을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알지 못하는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거대한 강을, 깊고 좁은 동굴을, 피라미드의 정상을 걷고 오르는 사람들.

세상엔 이런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들이 있다.

이 순간을,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세상의 다양한 어른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지금까지 들어온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길을 상상하면서 자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생각하면서 서울로 돌아왔다. 다행스럽게도, National Geographic 은 2018년부터 워싱턴 DC 가 아닌 세계의 다른 거점 도시에서 이 특별한 자리를 열기 위한 시도를 시작하고 있다. 내가 참석한 홍콩 Asia Society 에서의 토크는 홍콩의 시민들이 Nat Geo 탐험가들의 스토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기 위한 파일럿 세션이었다. 마침 여류 화가 Fang Zhaoling 의 특별전, Painting Her Way 를 열고 있는 Asia Society 에서 아시아 출신의 여성 탐험가들을 초대한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National Geographic Magazine 의 편집장 Susan Goldberg 가 모더레이터로 나선 이 세션에는 세 명의 아시아 여성 탐험가가 초대되었다. 대왕고래를 연구하고 보호하는 스리랑카의 해양 생물학자 Asha De Vos, 야생동물 불법 수렵을 막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Freeland FoundationOnkuri Majumdar, 그리고 필리핀의 20대 포토그래퍼 Hannah Reyes Morales. 세션을 시작하기 전 카페에서 미리 만난 Susan 은 아우라가 예사롭지 않은 여성이었는데,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시차와 싸우던 모습을 뒤로 하고 포스 넘치는 모습으로 무대 위에 나타났고, 두 시간의 세션 내내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최대한 주인공들에게 넘겨 주는 노련함을 보였다.


Hannah 는 네 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필리핀 여성들을 위한 야간학교를 청원했던 고조할머니 이야기. 싱글맘인 엄마와 이모들이 있는, 대부분의 가족이 여성인 집에서 자라는 동안 자신을 키워 주었던 ‘나이나이’ (필리핀어로 ‘엄마' 라는 뜻이라고 한다) 할머니 이야기 — 그리고 가정부로 일하는 여성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취재하게 된 이야기와,

“I love you todo-todo, but my heart is poco-poco.”

유례 없는 타이푼이 지나가고 난 후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성매매를 하는 어린 자매 이야기. 외국인과 밤을 보내는 일이 “small steps for rebuilding her home.” 이라고 말하는 조조의 이야기를 전할 때, Hannah 는 몇 번이나 울컥, 떨리는 목소리를 다시 가다듬었다. “They are not gold diggers. They are bread winners.”

마지막 이야기는, 필리핀의 10대 엄마들 이야기였다. 지난 10년간 동남아시아 국가 중 10대에 임신하는 비율이 유일하게 상승한 나라, 낙태가 완전 금지된 나라, 19세 이전에 5명 중 1명이 엄마가 되는 나라. Hannah 는 이 어린 엄마들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있다.

“고조할머니가 이 나라의 여성들을 위해서 꾸었던 꿈을 생각합니다. 할머니와, 엄마와, 나의 삶, 이 여성들의 삶을 생각할 때 나는 마닐라의 더러운 강에 피어난 연꽃을 떠올립니다. 이 여성들이 나의 나라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기회만을 허락받은 여성들, 그 작은 기회를 붙들고 삶을,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 여성들입니다. 그들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는 중요합니다.

These are the women holding my country together. These are the women with very limited opportunities, these are the lives and stories they crafted with little opportunities given. Their stories, our stories, matter.


Onkuri 는 야생동물을 수렵하고 포획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전략적인지, 반면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효율적이지 못한지 대비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밀렵꾼들처럼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Onkuri 의 주장. 일선에서 밀렵을 막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불법으로 잡은 야생동물을 운송하는 루트의 요충지인 공항과 항공업계에 정보를 주고, 전략적으로 일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그녀가 하는 일이다.

모기장을 치는 사람들은 모기를 최대한 많이 막아 보려고 하지만, 모기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촘촘한 장을 뚫고 들어갈 단 한 번의 기회, 그래서 단 한 명의 사람에게서 피를 빨아먹는 것이듯, 야생동물 밀렵자들은 한 번의 사냥 기회를 노리고,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에겐 그 한 번의 기회가 치명적이라는 것.

Onkuri는 인신매매되는 어린 소녀들이 마약과 야생동물들을 몸에 지니고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인신매매, 야생동물 밀매자들이 한번에 세 가지 이익을 취하게 된다는 것. 반대로, Onkuri 의 활동은 동물만을 돕는 게 아니라 모든 조직적 범죄에 맞서 싸우는 것이 된다.

마지막으로, Onkuri 는 흐릿한 암각화 사진을 보여 주었다. 아주 오래전 어느 인간이 동굴 안에 새긴 호랑이. “… 이것이 인류의 문화이고, 인류가 지켜온 양심이고, 인류의 유산입니다. 그 누구도 이를 잃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No one is allowed to lose that.


Asha 는 2016년의 National Geographic Festival 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고 기억에 남는 탐험가다. 그동안 정설이라고 여기던 ‘고래는 차가운 바다에서 먹이를 구하고, 따뜻한 바다에서 번식한다’ 는 것이 이 스리랑카 대왕고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바다에서 연구를 계속하다, 선박사고로 죽는 고래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선로를 바꾸도록 하거나 특정 수역 안에서의 속도를 줄이도록 하는 운동을 펴고 있는, 유쾌한 카리스마의 탐험가. 최근 Asha 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했다.

배가 많이 지나가는 길과 고래들이 많이 발견되는 지역이 겹친다

“The way I see it, my work is not just about saving whales and the ocean. My work is about showcasing to the world the talent and the capacity of women in Asia who really push the boundaries, face challenges and lead the charge to leave this planet a better place than we found it.”

여유롭지만 힘있는 목소리. Asha 의 내공은 Q&A 에서 더욱 빛났다.

  • (National Geographic Explorer 가 되고 싶은, 다른 영역에서도 의미있는 일을 해내고 싶은 젊은 여성에게 어떤 조언을 주겠느냐는 질문에) “벽이 있다면 넘어가거나, 돌아서 가면 됩니다. 넘거나 돌아가지 못할 벽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의 조언을 전할게요. Do what you love, and you will do it well.”
  • “사람들은 포경 문제에는 분노하지만, 선박사고에 대해서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 문제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예요. 그리고, 그 편이 더 편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선박 사고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고 모두의 책임이죠. 우리가 쓰는 물건 대부분은 배를 타고 온 것이니까요. 우리가 문제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고, 해결방안의 일부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 My superpower is visibility and vulnerability. 우리가 하고 있는 운동을 항상 내세워야 하지만, 스스로를 대중 앞에 내놓는 일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제가 하는 일을 보고, ‘저 사람들이 하는 일을 나도 할 수 있어' 라는 생각을 할 테니까요. 스리랑카에서는 역사상 가장 많은 학생들이 해양 생물학에 관심을 보이고 있답니다.”
  • “최근 Parachute science 에 대한 글을 썼어요. 외국인 과학자들이 연구의 기회를 보고 스리랑카에 들어와서 연구를 하고는 그대로 떠나 버리는 문제에 대한 거죠. 저는 여기에 정말 불만이 많아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속성이 없기 때문이예요. 제가 하는 일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Q&A 의 말미에 객석에서 나온 질문, 어떻게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저는 천성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보호 운동을 하려면 긍정적이어야 하는 것이, 매일 모든 것이 죽어가는 걸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죠. 지구의 70%는 바다이고, 우리는 바다의 5% 만을 연구해 냈습니다. 희망을 잃을 수 없는 이유는, 희망을 잃는다는 건 95% 의 미지의 영역을 포기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노련한 Asha, 어떤 질문에도 실용적인 대답을 하는 Onkuri, 그리고 힘이 느껴지는 Hannah. 각자 하고 있는 일도, 무대 위에서 보여준 스타일도 다르지만, 그래서 더 멋진 세션이었다.

세션 중간에 Asha 가 웃으며 말했듯 (“In Southeast Asia, if you’re not doctor, lawyer, or engineer, you are wasting your time.”) 많은 사람들이 정답이라고 믿는 길을 벗어난다는 건 결국 스스로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앞서서 다른 길을 택해 걷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그리고 내가 택하고 싶은 길을 걷고 있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는 건, 그 용기를 내 보려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거라고 믿는다.

Hannah 가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는 백인이 아닌 포토그래퍼도 뽑나요?” 라고 물었듯이. Asha 가 일주일에 두 시간씩 시간을 내어 멘토링을 하면서 누군가 용기를 얻기를, 누군가 “저 사람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기를 기대하듯이.

우리가 하는 투자와 지원도 결국은 같은 선상에 있다. 누군가의 삶의 선택을 대신해 주거나 이 길이 옳다고 제시할 수는 없지만, 더 많은 선택지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 보려는 사람에게 실험실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스스로 용기를 낸 사람들이 서로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서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 살짝 등을 두들기며 격려해 주는 것.

우리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하려는 이 일을 — 이 일만이라도 — 잘 해낼 수 있다면 좋겠다.

Asha 가 스리랑카의 바다에서 고래를 지키고, Onkuri 가 아시아 각국의 현장에서 밀렵 조직에 맞설 때, Hannah 가 카메라를 들고 숫자로, 통계로만 존재하던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담아낼 때,

우리는 서울에서 우리의 일을 할 것이다.

One clap, two clap, three clap, forty?

By clapping more or less, you can signal to us which stories really stand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