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만화 카페 ‘현이와 양이’
서울 영등포역 2번 출구에서 채 50m도 안 떨어진 평범한 연립주택 지하에는 99㎡(30평) 규모의 24시간 만화카페 ‘현이와 양이’가 있다.@ 중앙일보 2013.10.14. 강정현 기자
“만화방이 무슨 대단한 사업이라고 인터뷰를 해요”라며 손사래 치던 정미선(46) 사장은 ‘현이와 양이’ 만화카페로 월 매출 1300만원을 올리는 ‘대단한’ 사업가이다. 27년간 만화방을 경영해온 그녀가 지금까지 네 번의 만화 가게를 운영하는 동안 가는 곳마다 성공으로 이끌어낸 정 사장만의 경영 노하우를 소개했다.
정 사장의 사업 전략 3단계
먼저 1단계는 “일단 들어오게 하기”다.2년 전 ‘현이와 양이’를 인수할 때 정 사장은 가장 먼저 영등포 역사부터 올라갔다. 분명 통유리 밖을 보고 섰거나 담배를 피우는 손님은 십중팔구 열차를 기다리거나 시간이 남는 고객들일 터이니 이들을 타겟으로 한 것이다. 통유리 너머로 다른 것에 가리지 않는 외벽 공간을 찾아 플랜카드를 걸고 입구에는 불빛이 들어오는 블랙보드로 눈길을 끈다. 이 블랙보드에는 정 사장이 직접 쓴 친근한 손글씨와 만화 캐릭터가 그려져 있으며 ‘신간 100%’는 늘 그대로 둔다. 실제로 현이와 양이에는 국내에 출간되는 모든 신간 만화가 다 비치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한 달 평균 신간 값으로 나가는 250~300만원의 돈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으며 손님이 들어오고 싶게 만드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정 사장의 마인드다.
두 번째는 “최대한 편안하게 모시기”다. 30여 개의 팔걸이가 널찍한 소파와 각 소파마다 발을 뻗고 책을 올려둘 수 있는 2층짜리 작은 탁자가 마련되어 있으며 좌석은 모르는 사람과 시선이 마주치지 않도록 모두 안쪽 벽면을 향해 배치했다. 또한 잠이 부족한 인근 직장인들을 위한 뒤로 완전히 젖혀지는 사우나식 의자가 6개, 데이트족을 위한 팔걸이 없는 2인용 소파, 눈이 침침한 장년층 독자를 위해 도수가 다른 돋보기도 2개 비치했다. 라이터·커피·사탕·녹차·둥굴레차는 무료로 제공하며 손님들이 주인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이용할 수 있도록 자판기를 카운터에서 안 보이는 쪽에 배치한 것도 정 사장의 배려다. “이 가게에 오는 손님은 누구든지 최대한 편안하고 즐겁게 있다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뭐든 준비한다”
마지막은 “또 오고 싶게 하기”다. 시간당 1500원씩 받지만 과자나 컵라면 등을 팔다보면 100원 단위의 자투리 계산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이럴 때 “4200원인데 4000원만 주세요”하는 식이다. 이런 인심이 좋아 단골이 된 고객들은 나중엔 4800원이 나오면 5000원을 주면서 “잔돈 됐어요. 안 받으신 적도 많은데요 뭐.” 이러면서 나간다. 백 몇십원까지 정확하게 받는 대형마트 보다는 재래시장처럼 덤, 깎아주는 정으로 장사를 하는 것이 ‘현이와 양이’의 전략이다. 만화 가게의 본업인 볼거리를 충분히 확보하고 정감 넘치게 손님을 대하지 않으면 아무리 고급스럽게 꾸며놔도 망하기 마련이다.
정 사장이 어렸을 때부터 만화 매니아는 아니었다. 고교 졸업 후 대전의 한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사표를 내고 피신한 곳이 주택가 인근의 한 만화방이었다. 이름도 전화번호도 묻지 않고 만화책을 빌려주는 게 신기했고 이런 생각이 들수록 더 갖다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후 이 만화방 단골이 된 뒤 직접 경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손을 대는 가게마다 승승장구하자 가게를 내줬던 주인이 다시 찾아오는 일도 허다했다. 이럴 때마다 정 사장은 가게를 내놓을 때 부동산을 찾지 않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자리를 내줬다. “큰돈 없는 사람들이 하는 장사라 최소한의 권리금과 실제 들어간 시설비 정도만 받고 넘겼다. 나는 다시 창업해도 성공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
27년간 네 번의 만화 가게를 운영하며 쌓인 그녀만의 노하우를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기자에게 “만화 가게요, 안 죽었어요. 하기 나름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정 사장이 손을 대는 카페마다 성공하는 이유가 바로 이 ‘하기 나름’인 것 같다. 누구를 모실 것이며 어떻게 모실지, 원하는 게 무엇일지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또 오게 만들기까지 정 사장의 3단계 전략이 작지만 알차다. 책도 스마트폰으로 보는 디지털 세상에서 가끔은 아날로그식 생활이 그리울 때가 많다. ‘현이와 양이’가 바로 이 점을 공략한 재래시장 같은 존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