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지켜보다, 소세키의 <<마음>>

지금까지 소세키의 작품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행인>>이었다. 첫 작품은 소세키가 살던 시기의 맥락을 뒤로하고 고양이의 행동과 사람 마음 읽기에 빠져들게 된다. 솔직히 일본 최고의 작가 작품이라는 생각보다는 웹툰을 보는 느낌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책을 덮게 되는 순간, 나는 숨이 막혀온다. 고양이가 느끼는 평온함이 오히려 내 목을 옥죄어 온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생각을 고양이에 투영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순간 순간 내뱉어 내고 싶은 이야기들을 고양이는 거침없이 쏟아낸다. 교양있는 존재의 독설이다. " 인간들이란 자기 자신만 믿기 때문에 모두 오만하다. 인간보다 좀더 잘난 내가 세상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이런 독설을 뿜어내는 고양이는 이런 독설에 걸맞지 않는 사건을 맞이하고 소설은 끝을 맺는다. 그 모습은 “편안”하다.

편안한 모습은 <<행인>>에서도 발견된다. 의처증에 시달리는 화자의 형은 소심하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끝까지 쫓는다. 심지어 자기가 믿는 바를 위해서라면 가족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아내가 남편을 속이고 다른 남자들에게 추파를 던지면서 사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동생인 화자를 이용한다. 결국 화자는 형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한다. 내가 바로 세상의 중심이다. 주위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조언을 하지만 형은 그대로 나아간다. 이런 고집은 마지막에 허무?하게 마감된다. 바로 "잠"이다. <<고양이로소이다>>와 연결된다. 편안하게 형 이치로는 잠을 잔다. 그걸 동생인 지로가 쳐다본다.

<<마음>>에서도 이런 소세키의 스트레스를 덜어내버리는 요소는 죽음이다. 아버지가 임종에 다다른 상황, 선생님과 K 모두의 죽음. 죽음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최종 탈출구이면서 답답한 소설의 진행상황을 한 번에 해결해주는 매개체인 셈이다. 이 매개체는 소설의 시작부터 등장한다. 선생님이 날마다 다녀오는 무덤이다. 이 무덤에 가는 이유를 슬쩍 소설의 진행속에 흐지부지 묻어버리고 주인공과 선생님 사이의 관계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렇지만 제 3 부인 "선생님과 유서"에서 소설의 시점까지 바꾸면서 1부에서 은근슬쩍 중심에서 벗어난 주제로 우리를 이끌어준다(in medias res). 그 중심은 바로 죽음이다. 선생님의 죽음과 K의 죽음. 죽음은 슬퍼할 일이기도 하지만 소설의 갈등을 극적으로 해결해주며 독자들에게 1부에서 피했던 이야기의 찜찜함을 풀어내주는 매체이다.

소세키가 살던 시대는 일본이 근대국가로 한창 나아가던 시기였다. 혼란한 시대였으며 지식인으로서는 더더욱 그 변화에 부화뇌동 하기 싫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겪었을 사람들의 스트레스, 아니 소세키 자신이 느꼈을 그 압박감은 고양이의 허무한 죽음으로, 형의 꿀잠으로, 선생님의 유서로 자신을 투영해 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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