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노동’을 읽고 — 여태 무슨 일을 해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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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ay of a programmer
9 min readJun 28, 2024

회사에서 항상 바쁘게 생활하고 있나요? 해도 해도 일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나요?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가 왜 그렇게 일을 해오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책 표지에 글자가 많아서 정확한 책 제목을 바로 알기는 어려웠어요.

책의 요지

사실 이 책이 말하는 바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하는 노동의 대부분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억지로 늘려 놓은 것이며, 불필요한 일을 줄이고 일이 없다면 빨리 퇴근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에 소개된 사례를 보고 굉장히 놀랐습니다! 과도한 노동 시간의 선두 주자인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조차 특히 이 책이 쓰인 유럽에서조차도 직장인에게 한가함은 금기시되며, 일이 없지만 정해진 근무시간을 채우기 위하여 사무실에서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는 점에 너무 공감해서요.

특히나 개인보다는 의사결정을 가지는 팀장, 즉 매니저 이상에서부터 이 책을 읽기를 저자는 권장하는데요. 바로 회의를 줄여야 하고 불필요한 일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 점에서 더욱 그랬습니다.

책에서 인상깊었던 내용들

9장 무의미한 노동시간 줄이기

노르딕은 파킨슨의 법칙을 그냥 뒤집었다. 만일 일이 늘어나 가용시간을 채운다면 그 반대도 진실이어야 한다. 근무시간을 줄이면 일은 결국 제한된 시간으로 할당될 것이다. 스텐만의 조치는 그것이었다.

파킨슨의 법칙은 어렵지 않아요. 바로 업무를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업무를 위해 할당된 시간만큼 늘어난다는 법칙입니다. 우리는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미 보았을 텐데요. 정해진 시간보다 업무를 빨리 처리한다고 해서 이득을 보기보다는 더욱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하는 모습을 말이죠.

그러나 이제 반대로 생각해봅니다. 이 상황도 자주 놓이게 되어요. 과제 완료일은 이미 정해져 있고 (서비스 런칭이 고정된 경우를 주로 만나게 되어요) 이 때에 우리가 할 일은 우선순위를 정해서 기간 안에 해낼 수 있을 일을 골라내는 것입니다.

긴박한 일정은 스트레스를 주기에 우리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길 원하지만 이것이 정말 일의 완성도를 올려주는 데 기여하는 가 생각해보면 일정 시간 이후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금새 도달하게 됩니다.

반대로 더 많은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다소 부족해보이는 시간은 업무에 대한 몰입도를 올려주어 금새 목표한 완성도에 도달하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10장 노동시간에 대한 관념 버리기

더 나은 삶의 질을 선사할 필요가 있어요. 삶에 의미가 있어야죠. 직장 생활만이 아니라 삶 전체에 있어서요.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생활에서 보내고 있어 자칫하면 직장 생활이 최우선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은 직장 밖에서도 연속되며, 직장은 사실 변경할 수 있는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너무 직장생활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가끔은 삶 전체를 돌아보거나 멀리 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에요.

12장 노동과 인간의 본질

헤겔과 마라크스에 따르면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만 세계에서 소속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또한 노동이 인간을 세계에서 소외감을 느끼도록 만들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인간의 성립과 붕괴가 모두 노동에 달려있다.

취업 준비할 때의 어려움과 소외감 그리고 첫 취업을 하고 나서 가지게 되는 소속감을 생각하면 금방 공감이 되더라구요.

할일 없음의 공포를 막기 위해 본질적이지 않은 일을 더욱 많이 하면서 문제가 심각해진다.

신입사원을 막 벗어날 때였습니다. 저는 항상 바쁜 사람이었어요. 누가 언제 물어도 저는 하고 있는 일이 있었거든요. 심지어 주어진 일이 없어도 무언가 해야할 일을 항상 찾고 있었어요. 한가해보이면 안된다는 공포에 빠져있었던 시기였죠.

13장 변화를 위한 우리의 전략

프랑스 실존주의자 장 폴 사르트르에 의하면 선택은 늘 윤리적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삶을 사는 방식이 타인에게 어떤 선택을 할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무서을 하든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일찍 집에 가기를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직장의 가장 행렬로부터 자신을 해방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길이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정말 꼭 필요한 행위입니다. 제가 직장에서 자리잡고 나서(직장 선배로서), 특히나 관리자(매니저)에 있을 때에 오늘까지 급한 일이 아니라면 항상 퇴근하라고 인사했습니다. 내일 함께 해결하면 된다고 말하면서 말이죠. 우리는 종종, 아니 자주 미래의 걱정을 오늘로 가져와서 더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는 합니다. 때로는 그게 본인이 되기도 해요.

집으로 가는 건 좋은 모범이 된다. 최소한 아무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걸 양산해내는 시간 때우기가 아니니까. 직장에 있는 동안에도 그런 일은 피하자. 가짜 노동자 다섯을 더 떠맡지 않으면 팀이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겠지만 그냥 감수하자. 우린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고 상사에게 사실이 그렇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가 직장 생활 초년차에 가장 듣기 싫은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저녁 먹어?”, “오늘 약속 있어?” 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녁 먹냐고 물어보는 것은 꼭 야근을 종용하는 것 같았고, 약속을 물어보는 것도 같은 뉘앙스로 들렸어요. 지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 자신과의 약속이라고요. (바로 정시 퇴근이죠.) 또한 이렇게 말할 때도 있어요. 가족 약속이 있습니다. (가족과 저녁 식사는 중요한 가족 약속이지 않을까요?)

이웃 회사가 하거나 가진 것을 쫓지 말자. 그럴 필요 없다. 쉬는 시간을 더 늘리고 핵심 사업에 더 신경을 쓰자. 그 밖에 다른 건 하지 말자

여기에 사실 밑줄 백번 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항상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는 시작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세계적인 기업(IT 에서는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이 하고 있거나 경쟁 기업에서 하고 있는 것을 우리도 해야한다고 시작하는 일입니다. 여기서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왜 해야하냐고 제가 물어도 회사의 상위 레벨 의사 결정이라서 헤어나올 수가 없네요.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것이 ‘계몽'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사람들이 멍청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반대로, 우리가 멍청한 이유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회피하고 편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편견에는 상식으로 맞서야 할 필요가 있다. 칸트는 “사페레 아우데", 즉 ‘알고자 하는 용기'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철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원칙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칸트까지 나와서 어려운가요? 저는 쉽게 생각했어요. 바로 ‘왜?’라는 질문을 가지는 것이에요. 저는 직장인 초년차에도 항상 누군가 저에게 업무 지시를 하면 왜 하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주변에서는 이러한 태도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나 봅니다. 건방지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이제 경력과 나이가 있어 똑같이 왜? 라는 질문을 해도 그런 말을 듣지 않게 되었네요. 간혹 일이 어려울 때는 이 일을 왜 해야하는지 생각해보세요. 그곳에 돌파구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시민적 불복은 때로 자기 일을 확 쳐내서 조직을 조직으로부터 구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거절은 예의 없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데요. 필요합니다. 예스맨은 속한 조직에게 독이 될때가 있습니다. 다른 조직에게는 천사이겠지만요. 일이 많나요? 지금 힘이 드나요? 그렇다면 아니오 라고 먼저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말하기 전에는 알기 어려워요.

14장 관리직을 위한 의미있는 조언들

재능 있는 직원에게 보상으로 관리직 승진을 시키는 경향이다. 많은 조직에서 일을 잘했을 때 그저 더 많은 봉급이나 자율성만 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절대 집에 일찍 보내주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경영진은 그런 사람도 관리직으로 만듦으로써 보상하려 한다.

직급이 없는 회사에서 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저도 경험하기도 했구요. 일을 잘해내고 나니, 추가로 다른 사람을 돕거나 다른 사람의 일도 도맡아 해야해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제 일로 동작하지 않고 덤으로 행해지는 것이죠. 가끔은 잘해냈기 때문에 집에 일찍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내 담당 일을 잘해내는 것과 관리직을 잘해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선에 있는데 가끔은 그저 일을 잘해내니까 관리직도 잘할거라고 주어지기도 하더라구요.

부조리한 방해물에 저항하는 의욕은 조직에 중요한 자산이 된다.

동의하는 바입니다. 누군가 반대를 하면 최소한 한번 더 생각하거나, 설득하기 위해서 더 훌륭한 생각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15장 가짜 노동 없는 사회

우리는 이 책을 시작하며 한 세기 전에 선도적 사고를 가진 도시계획가, 경제학자, 사회과학자가 예상한 세계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을 찾는 소박한 시도를 통해, 가짜 노동과 마주쳤다. 가짜 노동이 긴 노동시간의 지속과 수십 년에 걸친 합리화와 능률화 개선의 이득을 인간이 수확하는 데 실패한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사례 찾기가 너무 쉽습니다. 자동화를 통하여 절약한 시간은 어디로 갔나요? 퇴근이 빨라졌나요? 처음엔 그렇지만 어느새 그만큼의 일이 더 늘어나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공연에서 앞줄 사람들이 발꿈치를 들고 발끝으로 서면 뒷줄 모두가 똑같이 까치발을 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모두가 까치발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다면 모두가 훨씬 편하게 공연을 볼 수 있다.

정말 조심해야 하는 행동입니다. 누군가 야근과 주말 근무로 더 많은 성과를 낸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리고 팀 또는 회사는 그 사람을 칭찬하고 기준으로 삼는다면 다른 사람 역시도 더 많은 근무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일할 수는 없습니다. 건강 때문일 수도 있고 가족 때문일 수도 있으며 가치관 때문일 수도 있지만, 회사 밖에도 삶이 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의 인용문으로 이 책을 마치려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계가 발명되기 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총력을 기울여왔다. 어리식었지만 영원히 어리석게 지낼 이유는 없다.”

최근에 유행하는 ‘성장'이라는 키워드. 성장을 위해 가려진 많은 가짜 노동들이 있어 왔을 것입니다. 이제는 걷어내고 진짜를 찾고 싶습니다. 노동이 아닐 수도 있고 노동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마치며

이 책에서 쓰인 가짜 노동이라는 단어는 영문으로 개발자에게 익숙한 ‘슈도’라는 말이 쓰입니다. 슈도 워크(Pseudo-work)인데요. 가짜 노동이 정말 가짜처럼 읽히고 와닿지 않다가 저 단어를 보는 순간 제 가슴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슈도 코드는 개발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모든 슈도 코드가 실제 코드로 작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슈도 워크에 대해서는 정말로 시간을 들여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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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ftware Engineer with 10+ years in iOS, focusing on performance optimization, modularization, and innovative solutions. Proven leader in major tech projec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