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리서처가 블록체인을 업으로 하는 것

Jumanzi
A41 Tech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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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in readJul 29, 2024

2024년 여러 블록체인 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글로 정리하였다. 개발자, 리서처로서 블록체인을 시작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아보자.

1. 서론

2024년 6월 서울대 디사이퍼. 올해 초 비슷한 내용을 고려대, 이화여대 학회에서도 발표했다.

2024년은 특히나 “개발자/리서처로서 블록체인 업계에 들어오는 방법”에 대해 발표 및 멘토링 요청을 많이 받았다. 많은 돈이 움직이는 이 업계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이 기회를 찾는 방법에 대한 답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다행히도 기술에 대한 열정과 애정으로 버텨온 지난 시간 덕분에 나는 이 질문에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글은 올해 내가 약 10번 정도 반복해서 얘기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개인적이지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이라 자부한다.

2. 본론

2.1. 블록체인과 그 어려움

이 업계는 참 복잡하다. 조금의 연구 결과도 빠르게 토큰 형태로 큰 돈을 펀딩 받을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의견이 분분할 수 있는 원인은 차치하고 결과만 보면 너무나 많은 프로덕트와 컨셉이 끊임없이 나온다. 매달 새로운 단어들이 생겨나고, 이 단어를 모르면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네러티브” 가 이렇게 중요한 기술 영역이 또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단어를 경쟁적으로 소개한다. 정보는 넘치고 네러티브를 쫓다 보면 결국 이놈이 그놈이라는 것을 깨닫고 지쳐 “탈-블록체인”하게 된다.

5년 넘게 블록체인 기술을 사랑하고 열심히 공부해왔던 나는 이제 더 이상 네러티브를 쫓아다니지 않는다. 새로운 프로덕트를 살펴보는 일도 줄였다. 대신 기술 자체에 집중하게 되었다. 최근에 나는 기술 뒤의 철학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덕트의 철학까지 이해하는 데는 적은 시간만 할애한다.

기술 위에 프로덕트가 존재한다. 기술을 이해하면 프로덕트를 이해하는 것은 그 작은 테크닉만 알면 된다. 예를 들어, 확장성에는 어떤 방법들이 있는지 공부하고, 어떤 문제 영역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공부한다. 확장성을 해결하는 프로덕트는 그 위에 정의된 문제 영역 속에서 존재한다. 동일하게 프라이버시란 무슨 문제인지 공부하고, 프라이버시 해결 기술들에 어떤 문제 영역들이 있는지 공부한다. TEE, MPC, FHE 기술이 무엇인지 이해하는데는 노력한다. 연구 동향을 알기 위해 연구실을 찾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TEE를 사용한 프로덕트, MPC를 활용한 프로덕트, FHE 프로덕트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지 않는다. 프로덕트를 소개하는 글을 쓰는 것도 멈췄다.

네러티브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해하면 자명해진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에 따라 문제 영역이 때에 맞추어 대두된 것이다. A41에서 2년 가까이 사업에 근간이 되는 기술들을 공부하고 프로덕트를 판단하며 나는 네러티브가 일종의 흐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기존의 신기술 영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2.2. 신기술 영역을 한다는 것

운 좋게도 커리어 시작을 삼성전자 내 선행 R&D를 하던 리서치 조직에서 시작하였다. 3년 정도 근무하며 5년 향 팀과 3년 향 팀, 두 팀에서 각각 2년 반, 반년 정도 근무했다. (X년 향 팀이 공식적인 용어인지는 확실치 않다.)

내 근무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1) 5년 향 팀

5년 향 팀의 KPI는 특허와 논문이다. 아이디어를 개진하고 회사에서 컨펌을 받으면 연구를 수행한다. 연구 결과가 좋아 좋은 컨퍼런스에 등재되면 KPI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특허를 취득해도 KPI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AI 영역 논문/특허 XX개 이렇게 회사가 PR한다. 이런 팀은 대부분 박사 출신 분들이 팀 리드를 맡는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대학원 랩실과 거의 유사하였다. 섣불리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동기들과 얘기했을 때는 비슷한 업무, 문화경험이 있었다.

2) 3년 향 팀

3년 향 팀은 새로운 연구 트렌드를 따라잡고 이를 바탕으로 솔루션을 개발한다. 이 솔루션이 1–2년 향 프로덕트를 개발하는 팀에 도움을 주면 KPI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팀에서 매년 3개월 정도 논문을 읽으며 연구 트렌드를 파악했다. 그리고 연구 트렌드에 맞추어 피처를 도출하고 개발하였다. 예를 들어, 19–20년도에 지금의 LLM(large language model)의 근간이 되는 AutoML 방법론이 등장하였고, 많은 연산을 잡기 위해 병렬처리를 사용하였기에 병렬 컴퓨팅 서비스를 개발하였다. 이 팀은 개발에 조금 더 치중되어 있었지만 항상 연 단위로 트렌드를 공부해야 한다는 특이점이 있었다.

두 가지 팀에서 근무한 경험은 내가 신기술을 이해하는 배경을 만들어줬다.

  • 첫 번째로, 논문을 살펴보면 5년 뒤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기술 영역에서 미래를 예상하는 혜안을 얻을 수 있다. 마치 위의 예시에서 2019년에 나온 AutoML 방법론으로 LLM을 만드는 도전을 했다면 지금의 GPT와 같은 모델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정말 많은 가정들이 생략됐음을 인정한다).
  • 두 번째로, 3년쯤 되면 논문 속 미래들이 어느 정도 구체화되어 트렌드를 만들어냄을 깨달았다. 3년이라는 시점이 중요한 까닭은 새로운 기술이 실제 어플리케이션으로 개발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다. 3년정도 부터는 논문이나 백서 속 기술은 작은 PoC와 미성숙한 SDK 시절을 거쳐 높은 성숙도와 점유율을 가지는 기술로 발전한다.

오픈소스도 비슷하다. 미성숙한 시기에 문제 영역의 독창성에 공감하는 유저들이 모이고, 성숙하는 과정을 겪는다. 블록체인은 오픈소스이다. 그래서 정확히 이 프레임워크에 맞추어 5년 향, 3년 향으로 나누어 해석할 수 있다.

2.3. 신기술 영역을 한다는 것 — 블록체인

블록체인은 오픈소스로 무신뢰를 달성한다. 내가 어떤 코드를 돌리는지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신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픈소스에는 코드 오너와 메인테이너가 있다. 보통은 재단이 이 역할을 맡는다. 이런 구조에서 재단은 마치 탑 컨퍼런스와 같은 역할을 한다.

재단이 발표하는 문제 영역, 관심을 가지는 기술들, 레퍼런스를 건 문서들은 마치 탑 컨퍼런스에 승인된 논문과 같다. 석사, 박사님들께 얘기하면 그 성숙도 때문에 약간 반감을 가질 수 있지만 기능은 동일하다. 재단이 발표하는 혹은 핵심 의사결정자가 얘기하는 기술들을 팔로우하면 미래를 예상하는 혜안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연구자라면 문제 영역에 해결책을 제안할 수도 있다.

연구 방향이 어느 정도 트렌드를 형성하면, 문제 영역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오픈소스들이 등장한다. 5년 향 트렌드를 파악하고 있다면 이런 오픈소스의 등장은 자명하다. 기술은 발전하고 있고, 방향에 따라 문제 영역이 대두하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해결책 또한 예상 가능하다. 그리고 연구가 대부분 그렇듯이 해결책이 기존의 연구와 유사성이 있다.

예를 들면, PoS 전환이 그랬다. 비탈릭의 블로그 글을 기준으로 하면,

- 5y: 2017년 Proof of staking 이야기를 시작한다.
- 3y: 2020년 PoS 전환이 정해진다. 이때는 문제 영역을 얘기한다.
- 3y: 2020년 전환 중 PoS의 문제 영역을 해결하는 LSP나 MEV-boost와 같은 프로덕트들이 발맞추어 런칭을 준비한다.
- 1y: 2022년 the Merge가 이뤄진다. 관련 프로덕트가 런칭한다. 네러티브가 생긴다.

또, L2 롤업으로 전환하며 생긴 Interoperability가 그렇다. 이것 또한 비탈릭 블로그의 기준으로 하면,

- 5y: 2019–2021년 확장성 논의가 이뤄진다. (플라즈마, 샤딩, 롤업 등)
- 3y: 2021년 L2 롤업으로 로드맵 확정되고 상호운영성 문제 영역 제시한다.
- 3y: 상호운용성 문제 영역을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이 논의된다.
- 1y: 2023년 이더리움의 롤업 기술이 성숙하며 상호운용성 문제가 대두되며, 솔루션이 등장한다.

이더리움은 업그레이드에 오랜 기간 테스트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특히나 이 프레임워크에 잘 맞는다. 내가 네러티브를 따라잡는데 급급하지 않으려면 기술을 이해하면 된다. 기술이 가진 철학과 발전 방향을 이해하자. 그럼 문제 영역의 대두는 필연적이며 미래를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즉,네러티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나의 의견을 가질 수 있다. 내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선행R&D의 기본 조건이다.

2.4. 신기술 영역을 하는 것의 어려움

주위에 블록체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선행 R&D를 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리고 지금 블록체인 기술에 만연한 냉소주의나 발전 과정에서의 어려움 등이 비단 블록체인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2015년부터 AI가 막 발전하던 시기에 AI 모델의 낮은 정확도 때문에 추천 영역을 제외하고는 쓰일 리가 없다고 종종 푸념하는 소리를 들었었다. 옛날 은행에서 서비스하는 AI 챗봇을 기억해보자.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니다. 로봇도 마찬가지이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자조를 담아 현실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한다.)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는 냉소주의가 만연한다. 아직 비전 밖에 없고 기술이 성숙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신기술을 한다는 것은 이 기술이 인류에게 새롭게 전달할 가치에 대한 믿음이 있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 위에서 말한 로봇을 연구하는 친구는 자기가 노력하는 기술이 언젠가 육체적인 노동을 대체하기에 충분히 싼 기술이 될 것이라 믿는다. 신기술 영역에 몸 담는다면, 블록체인을 업으로 한다면, 냉소주의를 견디고 믿음을 유지해야 한다.

사실 쉽지는 않다. 똑같은 실패를 답습하는 토크노믹스들,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오픈소스들,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독한 밈코인 문화 등 이미 많은 사람이 지쳐 떠났다. 매번 드는 회의 속에서 기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은 다시 강조하지만, 힘들다.

2.5. 블록체인 업계에 들어오는 방법

드디어 오늘의 주제이다. 위 서술을 토대로 업계로 들어오기 위해서 3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1. 먼저 기술의 발전을 이해하자. 그 뒤의 기술의 철학은 큰 방향성을 제시하므로 이해해야 한다. 블록체인이 특별해서 철학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철학도 거창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영역과 해결 방법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철학이다.

2. 기술의 발전을 이해했다면 스스로 믿을 수 있는 기술의 비전을 정하자. 유명인이 말한 것이어도 상관없다. 다만, 이 믿음이 숱한 냉소주의 속에서도 나를 버티게 해줄 만큼 설레고, 단단해야 한다.

3. 마지막으로 3–5개년 트렌드를 파악하자. 어떤 연구실을 가더라도 한 학기 정도는 논문을 왕창 읽으며 도메인에 대한 깊이를 쌓는다. 선행 R&D라면 당연히 예외는 없다. 스스로 트렌드를 파악했다면 리서처라면 문제 해결책을 제안하자. 개발자라면 문제 영역을 해결하는 PoC 혹은 프로덕트 개발에 참여하자. 선행 기술을 사용하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2017년에 AI를 활용한 챗봇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 상기하자. 프로덕트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 (일반적인 의미이다. 사기치지 않고 노력하는 빌더들을 항상 존경한다.)

1번, 2번 단계 없이 이 기술을 업으로 시작하지 않기를 추천한다. 기존 서비스(web2)에서 엔지니어로서 만날 수 있는 문제 영역이 훨씬 더 깊고 값지다. 기술이 준비됐을 때, 내가 가진 도메인 지식을 바탕으로 블록체인 프로덕트를 만들어도 충분하다. 스스로의 비전과 믿음 없이 이 업계를 헤쳐나가기에는 지금의 문화는 너무 독하다. 하지만 1) 발전을 명확히 이해하고 2) 믿음도 공고해졌으며, 3) 문제 해결책을 제안하거나,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고민하고 참여하고 있다면 곧 내가 속할 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5년간 이 업계에 속해 있으면서 이런 분들이 팀이 없으신 경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조금은 낙관적이더라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3. 결론

2023년 A41이 개최한 인프라 행사. 2024년에도 Epoch란 이름으로 기술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나는(그리고 A41은) 무신뢰 기술이 인류에 필요해질 것이라 믿으며, 블록체인이 이를 전달할 기술이기에 사랑한다. 모든 사내/사외 발표 때마다 블록체인을 사랑한다고 낯간지럽게 얘기하는 이유다. 그렇기에 이 도메인에 더욱 많은 사람이 합류하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새로운 기술이다. 벌써 10년은 넘은 기술이지만 여전히 Mass-adoption은 멀었다. 그리고 조금씩 발전하고 있고 변하고 있지만 그 과정은 냉소주의로 가득하고 블록체인은 사기라는 얘기를 숱하게 듣는다. 그렇기에 충분한 검증 없이 이 업계에 들어오는 것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한다면 이런 일들이 충분히 멋지기 때문이다. 모든 기술은 그 기술이 인류 전체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Mass-adoption의 순간을 기다린다. 블록체인도 인류에게 무신뢰가 중요해질 때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는 기술이 될 것이라 믿는다. 오늘도 기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 중인 모든 팀들 파이팅.

A41이 생각하는/공감하는 비전은 다른 글을 통해 다루겠습니다.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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