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verse] 디지털 세상이 구현되기 위한 조건에 대하여

Steve : : FP
A41.io
Published in
14 min readDec 14, 2021

--

세줄 요약

1)인간은 평등과 자유라는 오랜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왔다.

2)그리고 이제는 물리적인 세상을 넘어서, 디지털 세상에서 그런 목표들을 실험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루고자 한다.

3)하지만 적어도 디지털 세상이 온전하게 구현되기 위해서는, 메타나 로블록스의 방식보단 블록체인과 암호자산을 활용한 열린 디지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코인베이스의 CTO였고, a16z의 GP였던 Balaji가 FP에 기고한 글을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주장을 하고있다. 세계의 패권이라고 하는 것이 미국 다음에 어디로 가느냐 물어봤을 때, Ian Bremmer와 같은 정치학자는 MAANG(Meta, Amazon, Apple, Netflix, Google)과 같은 글로벌 테크 기업들에게 갈 것이라고 했고, Stephen Walt의 경우엔 계속 국가들에 패권이 머무를 것이라고 한 반면, Balaji는 인터넷으로 패권이 넘어갈 뿐만 아니라 국가와 기업의 형태까지 바꿀 것이라는 굉장히 급진적인 주장을 하였다. 여기서 Balaji가 말하는 인터넷이란, 단순히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이 아니라, 블록체인과 암호자산을 포괄하는 개념의 인터넷을 말한다.

Balaji가 이야기 한 것에 바톤을 이어 받아서, 필자도 글로벌 패권이 디지털 세상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는 필자만의 이유를 서술하고, 그러한 세상에서 왜 블록체인과 암호자산이 필수재로 작용될지에 대해서 서술하고자 한다.

1. 왜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가?: 평등과 자유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평가 받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 출처)

인간은 살아오면서 늘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였다. 메타버스를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실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구현하고자 했던 역사는 꽤 길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에는 평등과 자유라는 핵심적 가치가 동기로서 작용하고 있었다. 특히 서구사회의 역사는 평등과 자유라는 두 가지의 가치를 이룩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했던 역사라고 요약할 수 있을 정도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인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그러한 인간의 역사를 세가지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였다:

  1. 영적 인간(Spiritual Man)
(카노사의 굴욕, 교황 앞에 무릎 꿇은 헨리 4세의 모습 | 출처)

인간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가장 첫 유형은 영적인간이다. 평등과 자유라는 개념을 현실에선 이룰 수 없고, 사후세계에서 이룰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종교를 통해 서구사회가 추구하던 가치를 이룩하겠다고 믿었던 시대다. 이 시대엔 교회의 수장인 교황이 왕에게 왕관을 씌워줄 정도로 종교와 사후세계가 가지는 힘이 막강했다. 지리적으로는 로마제국을 중심으로한 기독교 사회가 대표적인 영적 인간의 시대다. 또, 카노사의 굴욕(Humiliation of Canossa)이라는 그림은 이 영적인간의 시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후기는 프랑스의 군주였던 루이 14를 위시한 유럽의 절대 왕정들이 종교와 신을 근거로 자신들의 절대적인 권력을 정당화 했던 신권정치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은 인간이 읽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계몽주의 시대에 의해 몰락한다.

2. 지적 인간(Intellectual Man)

지적인간의 시대는 천국과 사후세계라는 개념이나 신권이 아니라, 지적인 사고와 사유, 그리고 박식한 지도자가 평등과 자유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만연한 시대를 일컫는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포문을 연 시대로서, 계몽주의 사상과 철학자가 주목을 받던 시대이며 이성(rationality)이 신으로 추앙받던 시대이다. 지리적으로는 프랑스, 영국, 독일이 주도했던 시대이다. 이 시대엔 왕도 박식해야지만 인정 받았던 시대로서, 계몽군주의 시대도 지적 인간의 시대에 포함된다. 하지만 지성도 이성도 인류에게 자유와 평등이란 이상을 선사하지 못하였다.

3. 경제적 인간(Economic Man)

마지막은 경제적 인간의 시대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그 시발점이었다. 경제적 인간의 시대에는 말 그대로 경제적 시스템이 자유와 평등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시대다. 그런 점에서 칼 마르스크의 경우도 경제적 인간에 속한다. 영국의 산업혁명과 팍스 아메리카나로 표현되는 미국 중심의 글로벌 질서가 경제적 인간의 시대를 대표하며 우리는 아직도 경제적 인간의 시대를 살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적 인간의 시대조차 자유와 평등을 가져오는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은 이들이 살아가는 세계보다, 더 나은 세상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권력과 자본은 새로운 방식들이 생겨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역사를 보다보면, 현실보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가 인간을 나아가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이 복잡하고도 모호한 단어가 각광받고 추앙받는 이유도, 이것이 인간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세상일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희망 때문일 것이다.

경제인 시대도 종말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과연 디지털 세상은 인간이 나아가야하는 새로운 방향일까?

2. Homo-Digitus(디지털 인간)는 새로운 패권을 거머쥘 수 있을까?

(Homo-Digitus | 출처)

디지털 세상은 인간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데에 있어서 굉장히 효율적인 장소인 것은 분명하다. 모든 것들이 말 그대로 디지털 세상에 있기에 물리적인 한계들이 존재하기 않기 때문이다. 메타버스(Metaverse)라는 개념이 코로나 이후로 각광받기 시작한 이유도 코로나 사태가 인류에게 안겨준 물리적 한계들 때문일 것이다. 페이스북도 사명을 메타로 리브랜딩 하면서 메타버스는 이제 하나의 흐름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메타버스와 NFT와 같은 단어들을 남용하고 오용하며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메타버스도 피터 드러커가 이야기 했던 인간 유형의 확장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종교도, 철학도, 정치도, 경제도 안겨주지 못했던 가치를 디지털 세상이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이 현재 메타버스를 떠받들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는 페이스북이나 로블록스 같은 기업이 가상세계를 만들더라도 그것이 성공적인 질서가 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필자가 웹3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막연하게 웹2 기업들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아니라, 이들은 각각의 독립적이고 고립된 세계관을 형성함으로서 상호운용이 불가능한데다, 애초에 질서라는 것은 특징 기업이 탑 다운 방식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웹3라는 단어도 마케팅 용어가 된지 오래지만, 웹3가 웹2보다 더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웹3가 만들어지는 방식이 웹2와는 다르게 유저와 개발자 중심의 방식일 것이라는 점과 고립이 아닌 상호 작용이 가능한 속성이 웹3의 기본 속성이라는데에 있다. 단순히 사상의 문제가 아니다. 필자는 민주주의가 중요하기에, 개인의 권리와 재산권이 중요하기에 웹3가 더 낫다고 피력하는 것이 아니다. 본디 질서라는 것은 인위적일 수 없고, 인위적이더라도 금방 무너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질서가 가진 본질적인 성격은 매우 자생적인(spontaneous) 것이다. 그리고 자생적인 질서가 형성되기 위해선 다른 생태계간에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해야한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 세상이 자생적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플랫폼 기업 중심의 웹2에서의 접근법 보다는 유저와 참여자 중심의 개방된 웹3가 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 뿐이다. 한 번 각각의 예시를 들어서 이야기를 해보자.

-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 — Meta

(구약 성경에서 나오는 바벨탑 | 출처)

기업 또는 개인이 완벽한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은 앞서서 언급 했듯 굉장히 오래된 믿음이다. 이는 인간이 바벨탑을 쌓고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던 때로도 거슬러 올라간다. 바벨탑이 주는 교훈은 매우 명확하다. 인간은 절대로 신이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신이 만든 질서를 비슷하게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플랫폼 중심의 기업이 만들어낼 가상세계는 흡사 바벨탑과 비슷하다. 기업이 플랫폼의 성격을 정하고 플랫폼이 곧 사회가 되는 환경에서 유저들은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살아가는 유저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환경에서 그들에게 적합한 환경이라는 것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단순히 중앙화가 나쁘고 탈 중앙화가 좋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질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만큼은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것이 통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낸다.”

칼 포퍼(Karl Popper)

물론 인간들이 건설하고 설계하는 국가와 사회계약인 헌법등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질서이지만, 자연이나 사회같은, 그것들 보다도 더 원초적으로 존재했던 질서들은 인간들의 의도를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살아가다보니 자생적으로 만들어지는 질서일 뿐인 것이다. 자생적인 질서에 인위적인 프로덕트를 생산하는 것과, 인위적인 질서에 인위적인 프로덕트를 생산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 고립된 사회 — 마이크로버스는 메타버스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 하는 메타버스의 대부분은 사실 메타버스가 아니다. 적어도 메타버스라고 불리는 것들이 물리적 세상을 대체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한다면, 메타버스의 대표격인 로블록스나 메타가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상 마이크로버스에 가깝다. 나라는 사람이 로블록스의 가상세계에서 활동하다가, 메타의 가상세계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을까? 로블록스에 존재하는 내 재산을 메타의 가상세계로 전달할 수 있을까? 로블록스의 세상에서 존재하던 나의 정체성이 있는 그대로 메타의 세계로 옮겨갈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제휴를 통해 부분적으로 호환이 되는 경우야 있겠지만, 데이터에 대한 권리가 온전하게 유저에게 있지 않는 한 디지털 세상에서의 온전한 데이터 상호운용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이렇게 고립되는 세상을 메타버스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님도 다루신바 있다. 가상에서의 세계가 구현된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메타버스라 이야기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것이다.

-유토피아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것 — WEB 3

(레오나드 리드의 I, Pencil 은 자생적 질서의 예시이다 | 출처)

사회, 그리고 그 사회를 관통하는 법칙인 질서. 이 것은 아무리 훌륭한 개인이라도 독자적으로 만들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경제학자인 레오나드 리드(Leonard Read)는 연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서 시장 질서라는 것이 어떻게 생겨나는지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연필은, 매우 간단하고 쉬워 보이지만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협업하여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누군가는 나무를 자르고, 누군가는 흑연을 산출하거나 제조하기도 한다. 연필이 만들어지는 단순한 과정에도 다양한 참여자들이 어떠한 강제성이나, 의도나, 명령 없이 모여서 연필이라는 결과물을 만든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디지털 세상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세상의 정체성, 법칙, 조직, 가치들을 누군가의 지시를 통해 일괄적으로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연필을 만들듯 다양한 사람들의 동시다발적인 참여를 통해 자연적으로 형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웹3는, 더 나아가 블록체인이란 기술은, 유토피아는 아니더라도 살 수 있는(livable) 디지털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Not Boring Company의 수장이자 a16z에서 웹 3 관련 자문을 해주고 있는 Packy McCormick이 말했듯 웹 3가 “토큰이라는 도구를 통해 유저와 개발자가 소유하는 인터넷.” 이라면, 웹3 기반의 디지털 세상에서 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은 연필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매우 흡사할 것이다. 처음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성격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다. 물론 웹3가 만들어가는 디지털 세상도 평등과 자유를 모두 이룰 수 있는 유토피아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보다 더 나은 기회들을 만들 수 있는 것. 어쩌면 피터 드러커가 이야기 했던 새로운 인간의 지평을 여는 창구로는 가장 적합한 실험실이 아닐까?

실제로 블록체인 생태계를 살펴보면, 이더리움이나 솔라나 같은 블록체인이 성장하고 그 생태계를 확장시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이더리움을 만든 이더리움 재단이나 솔라나를 만든 솔라나 재단이 아니라 생태계에 참여하고 개발하는 유저와 개발자 그리고 투자자와 기업인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레이어1 블록체인들은 그저 이들이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할 뿐, 탑 다운 방식으로 프로덕트를 찍어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생태계의 성격은 재단에 있지 않고 그 블록체인을 중심으로 모이는 커뮤니티에 달려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적으로 생태계의 성격이 바뀔수도 있다. 이는 집단으로 의도하고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방향에 따라서 천천히 바뀌는 것이다.

-생태계간 상호운용이 핵심이다.

블록체인 생태계가 싱글체인 생태계가 아닌, 멀티체인 생태계로 발전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 유저들과 개발자들은 다 각기 다른 취향과 선호가 있다는점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이더리움의 방대한 개발자 커뮤니티와 활발한 유저 커뮤니티를 선호한다면 누군가는 솔라나의 확장성을 선호한다. 또 누군가는 솔리디티 언어의 표현력(expressiveness)을 선호하는 반면, 또 누군가는 클러리티 같은 예측 가능한(predictable) 컨트랙트 언어를 선호한다. 누군가는 실물 자산이 스테이블 코인을 담보하는 것을 선호하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실물 자산이 담보하지 않는 알고리듬 형태의 스테이블 코인을 선호하기도 한다. 필자가 이야기 하는 이 속성들은 하나의 생태계에 담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취향과 선호는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서 바뀔 수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속성 때문에 자유롭게 한 생태계에서 다른 생태계로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나의 재산과 데이터를 한 생태계에서 다른 생태계로 옮길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네트워크의 개방성과 상호운용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디지털 인간의 시대는 앞서 언급한 영적, 지적, 경제적 인간의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만들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모른다.’이다. 하지만 적어도 디지털 세상에서 인간들이 오랜 시간동안 구현하고자 하였던 가치들을 시도해보려면, 그 세상은 1) 자생적이고 자유로워야 하고. 2) 생태계간 상호운용이 가능해야 하며. 3) 유저와 개발자 중심의 생태계여야 한다. 필자가 언급한 이 세가지 전제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블록체인과 암호자산은 필수다.

3. 디지털 세상이라는 실험: Sidekicks of Heroes.

(a41의 소개글 | 출처: a41ventures.com)

결국 우리는 경제인의 세상을 뛰어넘는 더 나은 대안을 만들 수 있는 기업가와 개발자들 그리고 유저들을 돕는 것 뿐이다. a41 벤처스가 여러 프로젝트들을 도와주고 서포트 하는 것과 독자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활동의 일환이다.

물론 유토피아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선 현실 세계에서 미쳐 할 수 없었던 시도(예시)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이 가치로울 수 있는 것은 개발자와 유저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제품들을 만들고 개발하고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이러한 시도들이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모든 과정들이 유저와 개발자 주도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환경의 인프라는 블록체인이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적어도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는데에 있어선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특정 엘리트들의 의도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에, 우리는 디지털 세상에서 개발자와 유저들과 함께 ‘실험하는’ 집단인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실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디지털 세상도 언젠가 더 고도화 되어있는 개념에 의해서 대체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실험이 기회의 평등함과 자유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All for Web3 Builders.

--

--

the revolutionary is a scarce man, and brave, and hated and scorned. When his cause succeeds, the timid join him, for then it costs nothing to be a patri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