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문화에 대한 복합적 사유, 패턴으로 엮어내다

우주적 황홀의 패턴

‘화학 칵테일’이란 화학물질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칵테일효과를 말한다. 두 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이 섞였을 때 예상치 못한 반응물이 생기는데, 체내에 흡수된 화학물질도 서로 반응해서 어떤 효과를 일으키게 된다.

“페인팅에 들어가 있는 ‘화학칵테일’들은 혈관을 거쳐 뇌에 도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경로를 통해서 우리의 지각을 변화시킨다. 그것들은 관람자의 시선을 따라 뇌 속을 여행한다.” — 프레드 토마셀리(Fred Tomaselli)
무제Untitled (Rug), 1995, 알약, 여러 잎들, 아크릴, 레진, 나무판넬 (부분)
Black and White All Over, 1993, 아스피린, 제산제, 사카린, 에피데린,아세트아미노펜(진통해열제), 아크릴, 레진, 나무 판넬

토마셀리가 말하는 ‘화학칵테일’이란 그의 작품에 사용되는 여러 정신 의약품 계열의 재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작품 속의 여러 요소들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정신적 환상과 불안정, 동요 등과 같은 자극과 관계되어 주목해야 할 것같다.

올빼마를 위한 밤의 노래(Night Music for Raptors), 2010

그는 자신의 작품을 가리켜 하이브리드작업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작품에 여러 재료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단 재료 뿐만이 아니다. 여러 이즘들(도피주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예술에 대한 물음, 70~80년대의 격변했던 문화적 체험(히피즘, 디스코, 약물 등)등에 대한 사변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의 좀 더 구체적인 뒷배경을 그의 인터뷰(유투브)를 통해서 알아보자.

유토피아, 도피주의에 대한 사유

납치자(Abductor), 2004 (부분)

프레드 토마셀리(b.1956)는 자신이 자란 남부 캘리포니아의 문화를 ‘비현실적인 환경이 낳은 비현실적인 문화의 최전선’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막이 있고 디즈니랜드가 가까운 곳에서 자랐다. 매일 밤 9시에는 팅커벨이 밤하늘을 날아다니고 폭죽이 터지곤 했다.

그는 학교에 있을 때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도피주의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회상한다. 당시에 도피주의적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최악의 일’로 비판을 받았다. 도피주의는(escapism) 비현실이며 진실이 아니다. 그는 ‘진실’(truth)로 돌아와야만 한다. 그러나 도피주의는 바로 사람들이 만들고 있는 문화이며 문화 안에 깊이 파급되어 있었다. 그는 도피주의적 경험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그 메커니즘에 대해서 비판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만들려고 했었다.

납치자(Abductor), 2004

60년대 말 -토마셀리가 10대 였을 때- 히피의 꿈은 무너지고 퇴색되어 버린다. 토마셀리는 이 죽어버린 유토피아를 물려받은 세대인 것이다. 그는 그 시대와 문화가 추구했던 꿈, 환각에 대한 경험, 유토피아 이념의 메커니즘을 돌아보면서 한편으로 미술의 어떤 수사법 속에도 유토피아주의와 유사하게 연결되어 있는 점을 발견한다.

숨쉬는 머리( Breathing Head), 2002. 여러가지 잎들, 사진 콜라주, 아크릴, 과슈

미술의 모더니즘 운동이 일어나기 전, 전근대의 시기에 미술에 대한 이상적인 태도가 있었다. 예를들면 ‘페인팅은 또 다른 실제(reality)를 열어주는 창(window)이다’ 라는 말이다. 이 것은 페인팅을 지금 이 곳과는 다른 장소(세계)를 지각하게 해주고, 그 곳(차원)으로 이끌어 주는 매개로 간주한다. ‘또 다른 실제’란 초월적이고 신비하며 숭고한 다른 세계(차원)를 가리킨다. 이러한 환각적인 수사법이 유토피아적 태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토마셀리가 지적하는 미술의 유토피아주의는 숭고, 순수, 초월적 세계로 경도된 열망, 의식을 가리킨다.

토마셀리는 90년대 들어서면서 이전에 했던 조각, 설치, 행위작업과 달리 지금의 평면작업을 시도한다. 알약을 사용한 작품을 시도 하면서 자신의 환각체험을 대면하고 시대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 약들은 그런 죽어버린 유토피아를 떠올리게 한다. 그 유토피아가 내가 쫓고 있었던 것이고 나의 세대가 물려받은 것이다.”

그의 약물체험은 개인적인 경험이면서 시대 문화적으로 유행했던 집단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전후 미국의 다양한 미술 운동들이 미국사회와 문화에 여러 영향을 주었지만 그것은 전체적으로 볼 때 부분에 속한다. 작은 요소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어떤 표상을 이루고 여러 표상들은 좀 더 크고 복합적인 연결구조로 확장되어가는 인드라망. 그와같은 복합적인 관계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토마셀리는 맥시멀리즘적 표현 방식을 시도한다.

균계와 꽃(Fungi and Flowers), 2002, 잎, 사진 콜라쥬, 아크릴, 레진, 나무판넬

맥시멀리즘(Maximal-ism)

그는 몇 년동안 맥시멀리즘에 관심을 두었다. 이 개념은 간단히 말하면 하나의 이미지 안에 아주 많은 양의 서로 다른 정보를 집어넣는 것이다. 다양한 재료와 다양한 생각들이 한 형태에, 전체 화면에 집적되는데 그 이유는 복합적인 관계망을 나타내는 것 뿐만 아니라 작품에 대한 해석의 범위를 넓게 하기 위해서이다. 각각의 요소들이 전체적으로 어우러져 의미를 보다 풍성하고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데, 이 때 작품은 단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한다.

과거의 역사와 문화는 현재에 연속되어 있다.

필립 타피(Philip Taaffe, b. 1955)는 과거의 역사와 문화가 현재에 연속되어 있다는 주제로 작업을 한다. 그는 ‘역사를 공격이나 인용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중첩되며 독립된 언어들의 연결망(network)이다.’

“모든 시대는 공존한다.” -필립 타피(Philip Taaffe)

시리아의 이슬람 사원, 고대 페루의 상형문자, 에트루리아의 프레스코, 종려나무, 옵 아트, 고대 그리스 가면, 콥틱문양, 고딕성당의 장미창문 등등 지리와 역사의 이미지들 혹은 이미지들의 지리적, 역사적 관계가 새로운 의미로 연결된다.

상상의 분수(Imaginary Fountain), 2014, 캔버스에 혼합재료
Parados, 2010–2011, 린넨에 혼합재료
파사드 (Façade), 2001

다양한 모티브들 — 자연적인 요소, 역사 문화적인 요소 (건축, 회화, 공예, 장식미술등), 추상적인 표현 등-은 여러 층으로 혼합되어 있다. 마이클 볼터(Michel Bulteau)는 타피를 가리켜 ‘샤머니스트적’이며 ‘시각적으로 명상’하고 ‘채집하는 자’라고 부른다. 자료를 모으고 단계 별로 화면 위에 계속 축적시켜가는 과정은 샤먼의 무아경에 이르는 여정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타피의 페인팅은 여러 표현법을 내포한다. 콜라주, 리노 컷, 목판, 고무 스템프, 실크스크린, 마블링, 한지 콜라주 등 다양한 기법이 한 작품에 사용된다. 이 가운데 판화기법들은 한 이미지나 패턴 , 기호(sign), 표식(mark)을 여러번 반복시킬 수 있다.

카이로식 창문 II (Cairene Window I)I , 2008, 캔버스에 혼합재료

민속미술(folk art), 장식, 패턴에 대한 편견

70~80년대의 미국미술의 동향은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시도와 행위예술 등이 대세였다. 다양한 매체 사용과 실험적인 작업들이 선두에 위치했고 페인팅은 무기력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더군다나 패턴, 장식적인 민속미술의 요소는 금기시 되었다.

타피도 학생 때 영화, 조각, 설치, 사진, 글쓰기(문화 비평적 글쓰기) 등 다양한 작업을 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에 자신 만의 추상작업을 만들어 가기로 결정하고 민속미술(folk art)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한다.

“포크미술의 언어는 항상 사람들의 본질을 느낄 수 있게 한다…다양한 문화의 전통을 함께 모아 모더니스트의 불화를 계속하는 게 아니라 포크적인 요소로 치유의 방법을 찾는다.”

*

두 작가의 작업은 공통적으로 패턴적으로 보이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나 패턴을 만드는 것이 작품의 주된 목적은 아니다. 그렇다고 패턴처럼 보이는 것을 기피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패턴처럼 보이는 방식을 이용해서 자신의 경험, 생각, 의도를 강화시킬 수 있는 데 있다. 시간과 공간적 제약에 의해 이질적이고,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느끼는 것들이 사실은 깊이 상관되어 있으며 넓은 차원에서 보면 공통의 기원을 가진 하나의 전체임을 드러내주는 데 있다.

토마셀리의 경우 장식적인 패턴을 이루는 요소는 자연과 몸이다. 자연(나뭇잎, 곤충, 새, 꽃)과 신체부분(눈, 코, 입, 손)의 사진 콜라주, 실제 물품들(알약, 잎, 줄기)이 또 다른 이미지와 형상을 구성한다. 나선형의 순환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모양은 무한 증식과 영원한 운동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로써 현실에서 비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을 체험하고 비현실이 실재하는 순간을 펼쳐보인다. 타피에게는 역사, 문화, 건축의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패턴같은 요소이다. 이들은 화면에 반복적으로 프린트 되고 사방으로 배치된다. 역사적 시간과 지리적 구분을 초월해서 문화는 연속되어 있는 것임을 겹겹의 표상들의 연결을 통해서 유추하게 된다.

두 작가는 관람자에게 다양한 해석을 열어놓는다. 작품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 하나의 주제가 아니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끼고 또한 작품을 오래 보면서 발견하게 되는 다양한 해석들을 의도하고 있다. 타피는 작품을 바라보는 무한의 시간(deep time)을 이야기한다. 토마샐리는 작품 속에서 길을 잃고 그 세계로 도피해보라고 권한다.

<참고 사이트>

http://www.jamescohan.com/artists/fred-tomaselli/

https://www.youtube.com/watch?v=NyZvyLTWJZ0

http://philiptaaffe.info/critical-texts/michael-bulteau/

http://philiptaaffe.info/statements-interviews-2/joe-figg-2014/

http://hyperallergic.com/180299/master-of-many/

http://philiptaaffe.info/statements-interviews-2/philip-taaffe-and-fred-tomaselli/

작성자: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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