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가상적 실재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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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in readJan 31, 2017

Jamie Woon의 Lady luck(2011)과 오혁, Primary의 Island(2015)라는 두 뮤직 비디오 가 있다. 이 영상들은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혼합, 교차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현실의 비현실적 경험

<Lady luck>은 텅 비어 보이는 현실의 한 장소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한산하기만 하다. 적막한 길과 건물, 넓은 하늘, 높은 철장의 담, 페인트가 벗겨진 벽이 차례로 카메라에 잡힌다. 이들이 불러일으키는 황량함은 현실 자체를 보여주는 것일테지만 혹은 주위를 쓸쓸하게 바라보는 주인공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 길을 걸어가는 한 여성이 나타난다. 미래 혹은 과거로부터 이동해 온 것처럼 번쩍하는 빛의 움직임으로 등장한다. 카메라는 그녀를 따라가고 주변은 점차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변화한다.

<Island>는 삼차원의 캐릭터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한다. 컴퓨터로 만든 캐릭터의 퍼포먼스는 마지막에 고개를 숙이고 쓰러지는 현실의 인물로 귀결되면서 끝이 난다. 이 영상은 가상적 상황의 전개로부터 시작해서 현실로 돌아오는 구조이다. 우리는 마지막에 나오는 현실의 인물을 보면서 앞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그의 아바타임을, 그리고 애니메이션의 전개는 그의 환상과 의식의 흐름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오혁, 프라이머리, <Island>

두 영상에서 현실과 가상의 이미지 혹은 공간이 교차되는 맥락은 무엇일까?

“행운의 여신이 내 옆에 있지 않아. 행운의 여신이 미소지어 주지 않아. 행운의 여신은 내 자존심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나는 오늘 밤 꿈을 꿀 수 있어…”(<레이디 럭>의 가사 일부)

“…나만 섬에 살고 있는 건가 봐… 눈 뜨면 이젠 혼자야, 오늘 나는 그냥 있을 거야…” (<아일랜드>의 가사 일부)

가상적 세계의 연출의 흐름은 무엇보다 음악의 가사에 담긴 서술, 그 밑에 깔린 정서와 관련되어 있다. 주인공은 외부 현실과 따로 떨어져서 자신의 절망, 고독, 소망, 환상 등을 노래한다. <레이디 럭>은 행운의 여신을 향한 환상과 열정이 시간이 가면서 점차로 고조되는 것을 보여준다. 가상의 공간이 조금씩 현실의 어느 순간들에 틈입해 들어오고 그것이 점차로 확장되어 간다. 그것은 현실의 시공간에 끼어들어 마찰과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마침내 주인공 자신조차도 디지털 정보로 변환된다. 한편 <아일랜드>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서 고뇌하는 자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려고 한다. 그의 고통, 방황, 혼란의 상태를드러낸다.

영상의 주인공들은 현실과 가상의 두 세계를 넘나들고 있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현실과 가상이 혼합되는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즉 현실과 가상의 세계의 경계에 서 있는, 혹은 현실을 벗어나 가상의 세계를 탐색하는 자신을 자각하게 된다.

컴퓨터기술에 의한 환상

디지털의 가상의 공간이 현실로 들어오면서 펼쳐지는 이종(異種)의 공간. 여기서 가상은 현실과 대비되는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가상이란 어떤 공간인가.

<레이디 럭>
<아일랜드>

_1)로우 폴리곤 맵핑 공간

영상에서 비디오카메라로 촬영되는 현실의 이미지는 카메라의 프레임 안으로 바라보는 한정된 시야를 갖는다. 그것은 연속적으로 프레임으로 포착되는 평면적인 이미지들이다. 이런 평면 이미지들은 말하자면 원근법적 시선이라는 관점에 의해서 포착되게 된다. 그런데 컴퓨터로 나타내는 가상적 공간은 하나의 장면에 대해서 여러가지 방향과 각도, 거리를 기준으로 포착할 수 있다. 하나의 장면에 대한 하나의 시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복합적인 관점으로 탐색하는 것이 가능한 ‘가능성의 확장’으로 정의 되어질 수 있다.

<레이디 럭>에서 가상의 공간은 평면 이미지가 삼차원으로 재구성된다. 삼차원의 공간은 로우 폴리곤으로 맵핑이 된다. 폴리곤은 사물을 각진 입방체(대부분 삼각형)로 나타내는 것이다. 폴리곤의 수치가 적을수록 각 면의 크기는 크고 투박하며, 수치가 높을수록 면의 크기가 세밀해지고 머리털, 피부 주름까지 사실적으로 표현할 정도로 사물의 형상이 정교하게 된다.

<레이디 럭>

_2)글리치(Glitch)

회화, 사진, 비디오등의 매체의 이미지는 물감, 화학약품, 마그네틱 테이프라는 물질을 이용한다.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방식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물질에 의한 이미지를 픽셀 정보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디지타이징된 이미지는 픽셀의 크기, 색상의 변화, 인물과 배경의 분리, 형태의 왜곡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때로 컴퓨터 시스템의 오류가 일어날 때 모니터 화면에 이미지들이 망가진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을 글리치(glitch)라고 부른다.

글리치란 컴퓨터 시스템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디지털 회로의 신호처리단계에서 신호저장장치의 (본래 값이 아닌 다른 값들 사이에서 움직이는)연산의 오류가 생길 경우가 있는데 이때 연산은 진행되나 그 값들이 어긋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비정상적인 모습의 그래픽이미지가 나타난다. 즉 이미지의 픽셀, 음향이 깨지는 현상이 벌어진다. 그러나 글리치 현상은 어떤 장애나 결점으로 인식되기 보다는 오히려 효과적인 표현 수단의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자신의 사진을 올려서 자동적으로 글리치 효과를 만들수 있게 해주는 사이트가 있다. https://snorpey.github.io/jpg-glitch/)

<레이디 럭>
<아일랜드>

글리치가 일어나면 이제까지 화면의 이미지들이 주었던 환상에 불협화음이 생긴다. 화면은 다시 평면의 픽셀 입자, 색면조각들로 환원되고 이로써 또 하나의 장으로 넘어가는 암시를 주기도 한다.

_3)가상적 실재의 색채

디지털방식에서 색상은 색이름이나 물감같은 언어, 혹은 물질적 성분이 아니라 수치로서 인식되고 구별된다. 수치의 입력에 따라서 무한 조합으로 이미지가 변조될 수 있다. 이를테면 이미지의 색상, 명도, 채도, 밸런스 등의 세분화된 항목들마다 어떻게 값을 조절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변환되는 것이다.

하나의 전체로서 다루어졌던 아날로그 방식의 이미지는 이제 부분적 선택과 변형, 여러 레이어로의 분리가 가능해진다. 아날로그적 이미지의 경우 중심과 배경을 나누고 차별을 두는 점이 있었다면 디지털 작업에서는 그런 구분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 왜냐면 하나의 관점이 아닌 여러가지 관점에서 대상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간적 깊이를 가진 현실적 이미지는 디지털 방식에서 강렬하고 화려하며 유희적인 색면들로 바뀐다. 색으로 변환된 공간에서 원근의 구별은 무의미해진다.

<레이디 럭>
<아일랜드>

기계로 나타내는 암울한 정서

<아일랜드>에 나오는 3D캐릭터는 찡그린 얼굴의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다. 그의 얼굴과 몸은 차가운 무채색이며 눈빛이 없다. 그를 둘러싼 환경은 화려한 우주의 별빛의 공간이 있는가 하면 완전한 암흑의 공간도 있다. 공간은 광활한데 그 안에 작은 점과 같은 존재로서 그가 비춰진다. 거대한 인공적 세계 안에서 한없이 고독한 모습의 그는 여러 공간을 배회하며 돌아다닌다. 혼자라는 의식에 빠져있음이 버려진 차에 기대어 있거나 상자 안에 웅크려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일랜드>
<레이디 럭>(완쪽), <아일랜드>(오른 쪽)
<레이디 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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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매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두 영상에 나오는 컴퓨터로 만든 가상의 공간, 그것은 현실의 어디에도 실재하지(장소를 갖지 않는) 않는 사이버적 공간이며 비물질의 공간이다. 디지털이라는 매체에 의해 가능한 비현실의 공간, 현실에서 지각될 수 없는 상황, 사건을 나타낸다.

그런데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서로 대비되는 것일까? 가상의 의미를 좀 넓혀서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허구, 상상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가상과 대비되는 위치에 놓인 현실이라면 그것은 허구가 아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이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일까? 현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에게 지각되는 현상이다. 현실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어느 한 순간도 같은 적이 없다. 매번 변화하며 생성한다. 고정된 것이 아닌,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도 가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두 영상은 현실도 또 하나의 가상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현실과 대비되는 공간으로서 가상이 그려진다. 한 영상은 현실로부터 가상의 세계로 변환되는 사건(레이디 럭)이고, 다른 영상은 현실을 설명하고 모방하는 가상의 세계(아일랜드)인 것이다.

우리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일상 속에 살고 있으며 디지털 방식의 시각이미지에 익숙하다. 그러나 쉽고 당연한 듯이 여기는 이 매체를 어떤 식으로 인식하고 다루고 있는 지 다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 매체를 어떻게 다루고 있으며, 디지털로 상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로 인해 인간은 존재의 어떤 확장이나 혹은 쇠퇴의 지점에 놓여 있는지 등등의 질문을 다시금 던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작성자: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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