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마니아: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 리뷰

Miimosa
beyond the sea project
8 min readNov 13, 2014

팝 음악이 비슷한 그루브에 갇혔단 게 문제라 할 수 있을까?

그 나이대의 많은 사람처럼, 내가 대학교에 가서 처음 한 일은 내 학비 보조금 전부를 음반에 날린 것이다. 60년대의 프랑스 샹송 가수들(chansonnières), 30년대 그리스 렘베티카(rembetika), 글래스고(Glasgow)에 위치한 포스트카드 레이블(Postcard label)의 7인치 싱글 앨범들과 같은 종류의 음악, 존 필(John Peel)의 라디오 방송을 제쳐놓고, 1980년대에는 듣거나 찾는 것이 힘들었다. 내가 새로 발견한 보물들을 내 방으로 끌고 들어가고 나서야 떠올랐다. 그것들을 틀 턴테이블이 없었다. 다음 몇 달 동안, 나는 앨범 재킷을 쓰다듬고, 속지의 해설을 탐구하고, 레코드판의 냄새를 맡았다. 내가 결국 그것들을 듣게 되었을 때, 그것들은 대부분 기대 이하였는데, 하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갈망과 추측으로 가득했던 음악과의 나의 관계는 이미 풍요롭다고 느껴졌다.

요즘, 사이먼 레이놀즈(Simon Reynolds)가 «레트로마니아(Retromania)»에서 설명하였듯이,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팝 음악은, 레코드판과 카세트의 판매가 증가하고 있지만, 물리적인 형태로 존재할 가능성이 적다. 더는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해적판과 프랭키 윌슨(Frankie Wilson)의 희귀하기로 유명한 노던 소울 스탬퍼(northern soul stomper) ‹나는 너를 사랑하나(정말 그래)›(Do I Love you(Indeed I Do)) 혹은 20년대 이누이트의 현장 녹음이 어떻게 들릴지 상상하고있을 필요가 없다.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구할 수 있다. 삭제된, 잘 알려지지 않은, 이국적인, 음악 역사의 고고학적 층들은 계속해서 재발견되고, 순환되어 오늘날에 발매되는 음반의 모습으로 스며든다.

레이놀즈에게, 과거는 굳어진 현대 음악이다. 더 나아가, 새로운 혹은 미래를 향한 음악이 새롭게 만들어지지 못하도록 위협을 가한다. 레트로마니아는 70년대 후반의 독일 신스 웨이브, 선 라(Sun Ra) 클럽 레지던시의 28-CD 박스 세트,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그리고 뉴욕 돌스(New York Dolls)의 재결성, 옛날 앨범들을 완전히 그대로 연주하는 소닉 유스(Sonic Youth)와 같은 밴드들로 곪은 팝 음악 생태계를 말한다. 패션 산업에서 옛날의 혹은 중고 옷을 “빈티지”로 다시 내놓는 경향과 대조하며, 그는 웰쉬 레어 비트(Welsh Rare Beat) 혹은 웨스트 아프리카 사이키델리아(West African psychedelia)와 같은 마이크로-장르를 만들어내는 힙스터들에게 털을 곤두세우며, 디지 래스칼(Dizzee Rascal)의 엉성한 조각들로 가득한 록 박물관들에 대해 한탄한다.

무엇이 과거를 파악하고 활용하는 다른 방식들과 “레트로마니아”를 다르게 하는가? 어쨌거나, 노스탤지어나 정취—말하자면 빅토리안 시대의 고딕 양식의 부활—는 역사의 과정에서 이따금 아주 생산적으로 드러났다. 레이놀즈는 레트로(복고)는 이제 겨우 과거가 된 과거를 되살린다(“나는 1990년대 스타일의 쇼들이 좋아” 같은 것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비디오 혹은 인터넷에 힘입은 기록(물)을 사용하여, 창의적인 왜곡과 잘못된 기억으로 나타나는 예술을 과학 수사적인 정밀함으로 방지한다.

레트로 감수성은 현대인의 분노 혹은 콜라주 아티스트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의 작품 안에서 발견되는 전복 혹은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행크 쇼클리(Hank Shocklee)의 프로덕션이 불어넣은 어떤 것이 아니라, 다방면에 걸친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렇게 놓고 보면, 레이놀즈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브리콜라주와 과잉-지시성을 묘사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또한, 값싼 샘플러들이 아티스트들로 하여금 레코딩 음악 역사 전체를 자원과 추출의 자유 영역으로 생각하게끔 했던 1980년대 후반의 리믹스 문화에 대해, 기술적인 것 못지 않게 철학적으로, 낙수효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레이놀즈의 포스트 펑크 음악에 대한 최근 저술한 책의 제목은 «찢어버리고 새로 시작하자(Rip It Up and Start Again)»였다. 그것이 그가 팝 음악이 하길 원하는 것이다. 레퍼토리와 표준으로 불리는 과거에 대해 유념치 않고, 질식과 쇠고랑으로부터, 실존의 방식으로, [팝 음악은] 영구히 도망쳐 나와야한다. 비록 러다이트 운동가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는 너무 많은 어제들로 현재를 막고 있는 유튜브와 같은 사이트들에 대해 우려한다. “역사는 반드시 쓰레기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역사가 쓰레기통, 거대한,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쓰레기 더미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아직, 레이놀즈 자신이 지적하듯, 하나의 음악 스타일이 또 다른 음악 스타일을 절대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1968년,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밴 모리슨(Van Morrison), 그리고 프랭크 자파(Frank Zappa)가 중요한 새 음반을 내놓았을 때, 빌 해일리와 혜성들(Bill Haley and his Comets)은 여전히 로얄 앨버트 홀을(Royal Albert Hall) 사람들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리바이벌들은 반드시 나쁠까? 투 톤(2 Tone)의 스카(ska) 리바이벌이 없었다면 더 스페셜즈(The Specials)의 ‘유령 도시(Ghost Town)’ 혹은 더 비트(The Beat)의 ‘화장실의 거울(Mirror in the Bathroom)’은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감상자들에게 음악 듣기는 어떻게 되었는가? 회의론자들은 더 스트록스(the Strokes)를 펑크 페티시라 일축할지 몰라도, 2001년 초반의 클럽에서 그들을 처음 들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이 얼마나 놀랍도록 신선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The Specials- Ghost Town

오늘날의 팝 환경에 대한 레이놀즈의 지도 그리기는 재치 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자신을 큐레이터의 자리에 두는 경향에 대한 그의 설명은 정확하며, 그 자신을 포함한 인터넷 사용자들이 불법 다운로드에 열중하는 것에 대한 설명 또한 그렇다. 이따금 신조어를 사용하며 공상과학 비유들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의 글은 상쾌하고 날카롭다. 시간—그리고 장소—에 대한 우리의 관계 변화들에 대한 두꺼운 기술, 현대 역사 기록학 작업으로서 «레트로마니아»는 널리 읽힐만한 책이다.

하지만 팝 음악이 과거를 덜 애지중지해야 한다는 레이놀즈의 주장은 나로 하여금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를 떠올리게 했는데, 그는 ‘창조적 파괴’가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팝의 매력은 충격을 주고 놀라게 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특히 인생—자본주의 하의 인생—에서 타격을 받고 잔혹함을 느낄 때 안전과 도움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음악 감상자들을 위해서, “다음 대단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저항의 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작곡가들을 위해선, 새로운 것을 좇는 조건으로만 감싸지 않는다면, 그들이 세련되고 중요한 어휘들을 만들게끔 할 것이다.

«레트로마니아»는 과잉의 빈곤에 관한 책이다. 쇼핑몰에서, 휴대폰 광고에서, 우리가 컴퓨터로 일할 때의 배경까지. 주로 식욕부진 환자처럼 가는 MP3 소리의 형태로, 팝은 오늘날 모든 곳에 있다. 그러한 편재가 충격을 주거나 모습을 바꾸는 능력에 제동을 거는 것일지도 모른다. 음악의 순환과 접촉의 과정이 듣는 행위보다 더 흥미진진한 일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미래적인 장르로서의 팝의 지위가, 아찔하게 에워싸는 비디오 게임의 영역으로 대체된 것일 지도 모른다.

레이놀즈는 “저편에 팝을 위한 미래가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편”은 어디일까? 동쪽? 지구 남쪽? 확실히 레트로마니아가 열망하는 혁신과 전복의 정신은 빈민가, 초라한 동네 그리고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개발도상국의 대도시들에 있을지도 모른다.

  • 수크데브 산드후(Sukhdev Sandhu)는 <런던 콜링: 흑인 그리고 아시아인 작가들은 어떻게 도시를 상상했나(London Calling: How Black and Asian Writers Imagined a City (Harper))>의 작가이다.

원문 Does it matter that pop music is stuck in the same old groove?(by Sukhdev Sandhu)

번역 손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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