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가 성공한다, 덕질의 진화

Oscar
bitBLU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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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in readDec 18, 2023
출처: UnsplashAnthony DELANOIX

덕후(오타쿠에서 유래)가 무언가에 광적으로 심취하여 관련된 일에 몰두하고 파고드는 짓, ‘덕질’은 어느새 네이버에 검색하면 제일 먼저 국어사전에서의 뜻이 나오는 단어가 되었다. 한때 덕질은 다소 매니악했던 대상과 함께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은둔형 외톨이만 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비호감의 대명사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취향을 존중하는 사회적 인식과 행복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로 지금의 덕질은 오히려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피규어, 레고, 신발, 레코드판, 우표 등을 수집하는 취미부터 아이돌, 게임, 스포츠, 패션 등에 돈과 애정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행위까지 덕질의 대상과 방식은 날로 다양해지고, 덕질의 주체 또한 기존 10, 20대는 물론 중장년층까지 확대되는 상황이다. 덕질만 했는데 그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아 유명해지기도 하고, 기업들은 덕질을 위한 상품을 앞다퉈 내놓는 시대가 되었다.

팬덤 플랫폼의 범람

덕질 문화는 돈이 되는 산업이다. K-pop 팬덤 시장 규모만 8조 원으로 추산된다. 돈이 되니 사업화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시장에는 서비스들이 넘쳐났다. 대표적으로 팬덤 플랫폼이 있다. 팬덤은 소통에 목말라 있고 소비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경제적 가치를 실체적으로 구현하는 서비스가 바로 팬덤 플랫폼인 것이다.

팬덤 플랫폼은 팬과 덕질의 대상을 연결시켜 주는 광장 역할을 한다. 사용자는 플랫폼을 통해 스타가 제공하는 라이브 방송 등 콘텐츠를 즐길 수 있고, 멤버십과 같은 형태로 스타를 후원하거나 구독하면 그에 따른 대가로 독점 콘텐츠에 대한 접근권한, 굿즈 구매 기회, 일대일 채팅 등 혜택을 제공받는다. 세부적인 기능 차이는 있지만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서비스들은 대부분 커뮤니티, 커머스, 콘텐츠 기능을 갖춘 플랫폼으로써 이러한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덕질 대상에 따라 제공되는 서비스의 차이는 있다.

출처:하이브

우선 아이돌의 경우, 대형 기획사를 위시한 ‘위버스’, ‘디어유’, ‘브이라이브’ 등이 있고, 좀 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플랫폼은 ‘비마이프렌즈’, 이외에 골프선수를 대상으로 한 ‘버디스쿼드’, 버추얼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v-world’ 등이 눈에 띈다. 일반 크리에이터를 대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로는 해외의 ‘패트리온(patreon)’과 ‘온리팬스(onlyfans)’, 국내에는 유사하게 ‘라이키’, ‘팬딩’, ‘팬트리’ 등이 있다.

팬들은 스타와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플랫폼을 이용하고, 스타는 그동안 카페, 트위터, 유튜브, 트위치, 아프리카 등 각종 커뮤니티에 흩어져 있던 팬들을 결집하는 락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편 팬덤 플랫폼은 팬덤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의 상업적 이익을 독점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한마디로 팬심을 이용해 장사한다는 말이다.

메기의 등장?

이런 비판 때문인지 상술한 서비스들과는 약간 다른 콘셉트의 팬덤 플랫폼도 등장했다.

올해 8월에 출시되었던 ‘프렌드테크(friend.tech)’는 지금 인기가 급락하긴 했지만, 한때 이용자 수 10만 명을 넘어설 만큼 상당한 바람을 일으켰다. 인플루언서는 자신의 X(옛 트위터)를 연동하고 그 지분을 KEY라는 토큰으로 판매한다. 토큰을 구매한 팬은 인플루언서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고 그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또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커지면 보유하고 있던 토큰을 팔아 차익도 얻을 수 있다. 프렌드테크가 상술한 팬덤 플랫폼과 다른 점은 인플루언서 입장에서 플랫폼 활용의 자율성이 높다는 점, 그리고 팬들 입장에서 기존 수동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팬들이 직접 스타의 콘텐츠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플랫폼도 나왔다. 아이돌을 직접 육성한다는 콘셉트의 ‘코스모’라는 서비스인데, 팬들은 스타의 NFT 포토 카드 구매를 통해 투표권을 얻으면 멤버 구성, 데뷔 순서, 타이틀곡 선정 등 전반적인 활동에 대한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코스모에서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아이돌로는 ‘트리플S’가 있다.

또 최근에 ‘볼트 뮤직(Vault Music)’에서 선보인 ‘판타지 뮤직 레이블’이란 서비스는 게임 형식을 빌려 팬과 아티스트를 연결시켰다. 음악 팬들은 기획사의 대표가 된 것처럼 신인 아티스트의 잠재력을 판단하여 투자하고, 아티스트는 스포티파이 월간 청취자 수를 기준으로 매주 순위가 매겨져 그 실적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

이런 서비스들은 스타와 팬이 서로에 대한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기존의 수직적이고 일방적이였던 관계에서 벗어나 수평적이면서 다층적인 관계 형성을 시도하고 있다.

출처: UnsplashWilliam White

기회와 한계

덕질의 대상, 분야는 이제 제한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눈부신 성장에 가려졌던 수익 불균형, 플랫폼의 독점, 불공정 계약, 불투명한 수익배분 등 부작용이 서서히 대두되고 있다. 그만큼 스타와 팬도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한 시기다.

덕질의 시대에는 스타가 본인의 가치를 온전하게 인정받아 그 권리와 수익을 보장받는 한편, 팬들이 팬덤 활동과 기여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돌려받을 수 있는 생태계가 요구된다. 다만, 스타와 팬은 감정적인 교류가 기반인 미묘한 관계인 만큼 팬덤의 생리를 이해하고 설득하는 섬세한 접근이 필수다. 덕질은 진화가 필요하고, 우리는 팬덤 플랫폼의 변화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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