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라이팅은 왜 어려울까

Eden
bitBLU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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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in readDec 2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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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X 라이팅은 왜 어려울까 by Eden

UX에 있어 하는 말이 있다. ‘사용자를 생각하게 하지 마!’ 사용자가 늘 쓰던 방식대로, 이질감 없이, 마치 원래 알던 것처럼 프로덕트를 쓸 수 있도록 디자인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용자는 자신이 가진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프로덕트가 지향하는 바를 이해하고 사용하며, 선택지가 주어졌을 땐 각각의 선택이 불러오는 결과를 충분히 검수하고 결정해야 한다.

이런 심리스(seamless)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것, 이것이 응당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면 헤쳐 나가야 할 관문이다. 말은 쉽지, 현실은 참 어렵다.

1. 기획의 의도

프로덕트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다. 기획마저도 한 사람의 두뇌에서 나온 결과가 아닐뿐더러, 서비스의 대상이나 BM(비즈니스 모델), 출시일 등을 고려하고 의사결정을 반영하다 보면 기획 초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개발하고 상세 기획을 반영하다 보면 얼마나 달라지는지. 그즈음의 디자이너는 길을 잃는다.

‘사용자는 이게 어떤 얘긴지 알까? 이걸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설명하고 있나? 이렇게 유도하는 게 최선인가? 그나저나, 나는 이 선택을 유도하는 게 맞을까? 나… 뭐 돼…?’

또한 프로덕트는 회사의 산물이라 다크 패턴을 넣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사용자 경험에는 좋지 않지만, 회사의 수익으로 직결되는 것들 말이다. 무시무시한 경고 문구로 사용자의 이용 해지를 막을 수 있고, 한 페이지 가득한 감언이설로 정기 결제를 유도하는 게 그 예다.

이용권 해지 시 마주하는 멜론의 프로모션 화면. 달콤한 프로모션으로 이용권을 해지를 막으려는 멜론의 노력이 느껴진다.
이용권 해지 시 마주하는 멜론의 프로모션 화면. 달콤한 프로모션으로 이용권을 해지를 막으려는 멜론의 노력이 느껴진다.

사용자가 원치 않는 걸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알지만, 언제나 사용자만을 위한 결정을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사용자를 위한 결정을 할 수 있는 건 프로덕트 디자이너라,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가며 사용자의 편을 들어보려 애써본다.

2. 사용자의 배경

서비스에는 분명 목표 대상이 존재하지만, 그 대상이 한 사람이 아닌 이상, 사용자는 제각기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다. 문화적, 언어적 배경, 그리고 사용 환경!

누구는 이러한 프로덕트를 처음 써보는 상황이라 온보딩 설명으로는 충분한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고, 다른 누구는 눈을 감고 써도 될 만큼 너무나 익숙해서 온보딩을 빠르게 건너뛸 거다. 눈이 나쁜 사용자에게는 12pt의 상세 설명이 보이지 않아 화를 낼 것이고, 콘텐츠를 더 볼 수 있는 더 보기 버튼은 손이 큰 누구에게는 만질 수 없는 아주 작디작은 쇼윈도 상품처럼 느껴질 것이다.

Apple의 HIG(Human Interface Guidelines)에는 버튼 영역의 최소 크기를 44*44pt로 권장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 대상만 프로덕트를 쓴다는 보장도 없다. 로컬 프로덕트라고 생각했지만, 밤낮이 정반대인 국가에서 앱스토어 1위를 쓸어갈 수도 있고, MZ를 겨냥한 프로덕트가 중장년층 사이에서 인기 있는 앱테크 서비스가 될 수도 있다.

결국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사용자가 얼마나 능숙한지, 어떠한 배경과 환경에 놓여있는지에 상관없이, 누구든 길을 찾고 옳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곳곳에 이정표를 달아 안내해야 한다. 다만 내가 달아놓은 이정표가 무시되거나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된다면 지옥이 시작되는 거다.

3. 한정된 공간

사용자가 프로덕트를 마주하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다. 크게는 전광판, 작게는 스마트폰. 더 작게는 희미한 LED 불빛 하나. 그 조그마한 공간에 보험 약관처럼 일일이 설명하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른다. 컬러, 버튼, 아이콘, 레이아웃 하나하나를 다 짚으며 정녕 이해하는지, 마음에 드는지 확인하고 싶다.

그러나 사용자는 프로덕트를 쓰려고 버튼에 쓰인 문구를 읽는 거지 버튼 문구를 읽으려고 프로덕트를 쓰는 게 아니다. 사용자는 인터랙티브 웹소설을 읽는 게 아니니깐. 사용자가 한 페이지에 머무는 시간은 한정적이고, 나에게 주어진 버튼의 길이는 짧다. 사용자가 서비스를 떠나는 건 한순간이다. 침묵의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전에, 사용자가 더는 흥미를 잃기 전에 액션을 유도해야 한다. 빨리빨리!

4. 일관된 목소리

프로덕트는 사용자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야 한다.

‘우리가 준비한 페이지는 어때? 참, 이벤트 참여는 해봤니? 해보니까 어때? 그럼 다른 이벤트도 참여해 볼래?’

앞서 얘기했다시피 프로덕트는 한 명의 두뇌에서 나오지 않는다. 여러 이해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덕트는 사용자 한 명이 마주한다. 그래서 우리는 프로덕트의 목소리를 한 명으로 다듬어야 한다. 우리의 목소리가 또렷이, 명확하게 들릴 수 있게 말이다.

토스처럼 다정하게 설명하는 ‘해요체’를 쓸 수도 있고, 당근처럼 ‘해요’와 ‘합니다’를 적절히 쓰는 잘 배운 친절함을 선사할 수 있다. 차분한 상담사가 될지, 쾌활한 친구가 될지, 나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경쟁자가 될지는 라이팅에 달려있다. 그 무엇도 정답은 없다. 여럿이면 안 될 뿐이다.

토스와 당근의 자주 묻는 질문 캡처. 토스는 ‘~요’로 통일한 반면 당근은 ‘~요’와 ‘~다’를 섞어쓰고 있다.
토스와 당근의 자주 묻는 질문 캡처. 토스는 ‘~요’로 통일한 반면 당근은 ‘~요’와 ‘~다’를 섞어쓰고 있다.

요약하면 UX 라이팅은 한정된 공간에서 기획의 의도와 사용자의 배경을 고려한 채 일관된 목소리로 제공되어야 한다. 그럼, 이렇게만 하면 정녕 끝일까? 가장 중요한 게 남아있다. 사용자에게 읽히기까지, 사용자가 반응하기 전까지는 UX 라이팅은 겨울잠 자는 곰이다. 사용자가 프로덕트를 프로덕트로써 사용하는 순간, 유니코드에 지나지 않았던 문장은 UX 라이팅이 된다. 나는 오늘도 우리 프로덕트의 사용자를 기다리며, 문장을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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