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세번째 레터] 세계 각국의 국영 암호화폐 발행 추진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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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chain Curation
11 min readFeb 7, 2019

세계 각국 중앙은행은 디지털 화폐 연구 중

암호화폐 열풍이 불기 이전에도 국가 차원에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에 대한 꾸준한 연구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63개 중앙은행 중 70%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이하 CBDC)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발행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앙은행 비율은 이보다 적지만, 국제적 차원에서 지속해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을 받으며, 국가의 디지털 화폐 발행에 대한 연구의 일부로써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2018년 베네수엘라가 세계 최초로 국영 암호화폐를 발행했으며, 마셜 제도는 2019년 국영 암호화폐 발행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국영 암호화폐 추진 현황은 상이합니다. 미래 사회의 디지털화를 대비하기 위해 블록체인을 하나의 대안으로 두고 연구하는 국가가 있고, 달러리제이션(dollarization)에서 벗어나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발행하는 국가가 있으며, 국제 사회에서 낮은 신용도를 가지고 있어 이것에서 비롯되는 제재들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암호화폐를 발행하는 국가가 있습니다. 하나의 기술을 가지고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듯이, 국가관에 따라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활용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그렇기에 국가들이 법정화폐로 암호화폐를 도입하고자 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각국의 국영 암호화폐 추진 현황

■ 러시아, 괴담처럼 끊임없이 들려오는 ‘크립토루블’

러시아의 국영 암호화폐 발행 계획은 2015년부터 ‘비트루블(BitRuble)’ 혹은 ‘크립토루블(CryptoRuble)’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디어’ 형태로 논의된 것으로 보입니다. 2017년 10월 15일(이하 모두 현지 시간) 러시아 통신부 장관 니콜라이 니키포로프(Nikolay Nikiforov)는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이 비공식 모임에서 ‘크립토루블’을 발행할 것이라 했다고 러시아 지역 언론에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때 크립토루블은 채굴형이 아닌 정부에서 발행되고 관리되는 형태의 암호화폐로 실물화폐인 루블과 교환될 수 있을 것이라 덧붙였습니다. 더욱이 ‘러시아가 국영 암호화폐 발행을 하지 않으면, 2달 후 유라시아경제공동체 유라섹(EurAsEC)에 포함된 다른 국가들이 먼저 발행할 것’이라며 러시아가 암호화폐를 서둘러 발행하고자 하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2018년 6월 7일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국영 TV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암호화폐 발행을 묻는 계획에 ‘암호화폐의 개념상 중앙화된 국가들이 암호화폐를 발행할 수 없는 것처럼 러시아도 암호화폐를 발행할 수 없다. 암호화폐는 국경을 넘어서는 개념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이후 2018년 9월 10일 러시아는 드미트리 페스코프 정부 대변인을 통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을 억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규제도 세워지지 않았는데, 국영 암호화폐 발행은 타당하지 않다. 러시아의 암호화폐는 아직 허가된 적이 없다’라고 재차 밝히기도 했습니다.

반면 2018년 11월 2일, 러시아 하원 ‘두마’의 금융시장위원회 위원장인 아나톨리 악사코프(Anatoly Aksakov)는 러시아가 실물화폐인 루블과 1:1로 가치가 담보되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1월 15일 크립토루블이 2~3년 이내에 등장할 것이며 크립토루블이 블록체인 상에 발행된다는 점 이외에 법정화폐와 차이점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높기도 했습니다.

최근 러시아가 비트코인에 10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이는 가짜 뉴스로 밝혀지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러시아에서 들려오는 뉴스 중 ‘오프더레코드’는 신뢰하기 어렵겠지만, 올해 1~2월에 암호화폐 규제에 대한 초안이 논의된다는 소식은 두마가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 브라질 은행의 암호화폐 프로젝트, 대통령이 바뀌며 중단

2018년 12월 17일 코인데스크의 독점 보도에 따르면 브라질 국립 사회개발 은행(Brazilian National Social Development Bank)이 2019년 1월에 BNDES 토큰을 출시하여 시범 운영을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BNDES 토큰은 브라질 국립 사회개발(Brazilian National Social Development Bank, 이하 BNSD)은행이 발행하는 이더리움 기반의 스테이블 형식 토큰으로 브라질의 헤알화와 1:1로 교환할 수 있는 가치를 가질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우선 문화 기관에 기부 시 소득 공제 목적으로 도입될 예정이었습니다. 또한 BNSD가 브라질의 경제 성장과 사회 인프라 구축을 위해 세워졌지만, 여러 차례 부패 스캔들에 휩싸였던 만큼 블록체인을 통해 투명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9년 1월 1일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대통령이 취임하며 이 프로젝트 중단을 지시하였습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이 프로젝트가 기술적 분석이 미흡하고, 4400만 헤알(한화 약 133억원)dl라는 대규모의 자금이 투입될 예정이지만 법적 입찰 절차 없이 브라질 국립 원주민 재단(FUNAI)과 플루미넨세 연방대학(Fluminense Federal University)과 직접 계약했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지시했던 미셰우 테메르(Michel Temer) 전 브라질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프로젝트가 현 정부에서는 ‘블랙박스’처럼 부패를 밝히는 자료로 취급되면서 소생할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 스웨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발행 고심 중

디지털 화폐(CBDC)를 국가 차원에서 연구하는 선진국들이 많습니다. 그중 스웨덴은 2016년부터 디지털 화폐 발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웨덴의 중앙은행인 릭스방크(Riksbank)는 2017년 초부터 디지털 화폐인 ‘이크로나(e-Krona)’의 발행에 대한 연구를 착수 중입니다. 이크로나가 암호화폐 형태로 발행될지는 미정이지만,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는 합니다.

스웨덴이 디지털 화폐를 발행 하는 목적은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 아닌, 디지털화에 대한 대비에 있습니다. 스웨덴 중앙은행이 2018년에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결제 시 현금을 사용한다는 응답자는 13%에 불과했습니다. 더욱이 2015년부터 몸에 마이크로 칩을 이식해 결제하는 시스템이 도입됐는데, 4천 명이 현재 칩을 이식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캐시리스(Cashless)’ 현상에 대해 스웨덴 정부는 2025년에는 현금이 없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디지털 화폐로의 빠른 전환 과정에 노인 등 디지털 소외 계층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또한 최근 스웨덴 정부는 ‘이크로나’를 판매한다는 이들이 생겨나는데 이는 모두 가짜라며 주의를 요했습니다.

■ 이슬람 진영의 두 의견…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vs 이집트와 터키

2018년 12월 17일(현지 시간) 코인텔레그래프는 이집트 중앙은행이 국영 암호화폐 발행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집트 측은 암호화폐 발행을 통해 현금 발행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며, 현금 없는 사회를 이루기 위한 움직임이 될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는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 만큼 암호화폐가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며, 암호화폐는 테러리스트의 자금 조달에 쓰일 것이라고 강경히 반대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슬람교가 국민의 99%인 터키 정부 역시 이러한 태도로 암호화폐에 대한 반대를 표명했습니다.

반면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다른 기조를 보입니다. 2018년 12월 12일, 아랍에미리트의 중앙은행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SAMA가 두 국가의 국경을 넘나드는 결제를 위해 암호화폐를 함께 발행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민간차원으로 확대되어 적용될지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 마셜 제도, 국가 발행 암호화폐로 주권 회복을 꿈꾸다

마셜 제도는 남태평양에 있으며 7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냉전 시대 때 미국이 군사 시설로 이용하여 핵실험을 강행한 비키니섬이 마셜 제도에 포함되기도 합니다.

마셜 제도는 현재 미국 달러를 법정 통화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셜 제도는 2018년 3월 국영 암호화폐 ‘소버린(Sovereign, SOV)’ 발행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2019년 내 발행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소버린 프로젝트에는 전 국제결제은행 총장이었던 피터 디투스(Petter Dittus) 박사가 수석 경제학자로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소버린이 도입되면 현재 법정 화폐인 미국 달러를 보조하는 법정 암호화폐로 사용됩니다.

소버린 프로젝트의 진행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2018년 9월 국제통화기금(이하 IMF)은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우려가 섞인 보고서를 발간합니다. IMF는 소버린의 도입이 마셜 제도의 거시 경제 및 재정 건전성에 위험을 불러올 것이라 경고했습니다. 마셜 제도는 기후로 인한 재난이 자주 발생하는데, 이때 마셜 제도가 외부의 원조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으며 미국과 코파(the Compact of Free Association)협정을 맺어 마셜 제도의 국민들이 비자 없이도 미국에 거주하고 일을 할 수 있지요. 이렇듯 미국과 다른 국가에 높은 경제 의존성을 보이기에, IMF는 마셜 제도가 암호화폐를 도입하면 자금 세탁 문제 등으로 세계 금융 시장에서 더 소외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18년 11월, 국영 암호화폐 발행을 추진하려는 힐다 하이네(Hilda Heine) 대통령에 대한 반대 의견이 모여 대통령 자격을 박탈하는 내각 불신임 투표(no confidence vote)가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이네 대통령은 임기를 지속할 수 있게 되어, 소버린 발행을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 베네수엘라와 이란, 서방국의 경제 제재 우회 수단으로 암호화폐 발행

베네수엘라는 2018년 2월 국영 암호화폐 페트로(Petro, PTR)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제재를 우회하고, 초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하락한 자국의 법정화폐에 대한 대책으로 페트로를 도입하였습니다. 페트로는 베네수엘라의 석유 등 자원과 연동되는 실물 자산 담보부 암호화폐입니다. 현재 베네수엘라 정부는 연금을 페트로로 지급하고, 여권 발행 시 페트로로 결제하게끔 하여 국민들이 페트로를 사용할 것을 장려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페트로 발행과 유통에 대한 불투명성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로이터의 취재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정부가 페트로의 담보가 될 것이라 밝힌 석유 매장지는 페트로와 상관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페트로는 베네수엘라 내에서 계속해서 유통되고 있으며, 2019년 1월 9일 베네수엘라는 미국이 페트로에 대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도 하였습니다.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 역시 지난해 상반기부터 미국의 제재에 대항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암호화폐 발행을 논의해 왔습니다. 2018년 8월 25일, 이란의 국가 사이버스페이스 센터는 국영 암호화폐 발행의 초안이 완성됐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란이 자체적인 암호화폐를 발행해 자금을 세탁하고, 테러 행위에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에서는 2018년 12월 17일, ‘이란 불법 자금 차단(Blocking Iran Illicit Finance Act)’ 법안이 제출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아직 이란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페트로를 본 캄보디아 정부도 2018년 3월 국영 암호화폐를 발행하겠다 발표했습니다. 이 국영 암호화폐 이름은 ‘엔타페이(Entapay)’이며 서방의 경제 재재를 우회할 목적으로 발행할 것이라 밝혔으나 이후 추가적인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탈중앙화 기반의 암호화폐와 중앙 은행의 딜레마

다양한 관점에서 국가 차원의 암호화폐를 발행하고자 하는 시도처럼, 이러한 시도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합니다. 2018년 11월 14일 싱가포르 핀테크 페스티벌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경제의 디지털화 추세에 맞춰 중앙은행이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것을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 발언에 대해, 중앙은행이 암호화폐를 발행하는 것은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정신에 어긋난다는 의견과, 우선 한발 물러서 암호화폐의 제도권 내 편입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공존했습니다. 이 발언에 대한 반응처럼 국가의 암호화폐 도입에 대한 이슈는 2019년도에도 ‘뜨거운 감자’로 주목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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