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션(Traction)이란 뭘까?

회사의 성장을 보여주는 그래프 만들기에 앞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성장 동인 요소.” 미국 유명 VC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얻은 깨달음을 공유합니다.

Inni Youh
Bold Ventures Blog
6 min readJul 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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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션(Traction)이란 뭘까? 모든 피치 덱에 들어가는 슬라이드이기에 항상 고민이 많았습니다. 인터넷에 검색도 많이 해보았지만 정의가 다양해서 확신이 없었는데, 몇 년 전 크게 와닿는 경험이 있어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트랙션 슬라이드는 비즈니스 모델이 검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슬라이드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제일 중요한 것 같기도 합니다.

트랙션은 미래에 강력한 수요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수요를 100% 입증해준다기보다는 (그렇다면 이미 product-market fit에 도달했다는 뜻이겠죠?) 미래에 발생할 더 강력한 수요에 대한 잠재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투자자도 해당 제품에 대한 수요가 실제로 있는지, 그리고 수요의 동인은 무엇인지 이해하고 싶어 합니다. 건강검진을 진행하는 의사와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운동으로 완벽하게 조각된 몸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건강하다고 확신할 수가 없기에 건강검진이 필요한 것처럼, 투자자도 스타트업의 멋진 성장 그래프를 보며 성장이 “건강”한지 알고 싶어 합니다.

아래 트랙션 슬라이드를 예시로 살펴봅시다. 회사가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 외에 담겨 있는 정보가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많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는 돈을 얼만큼 썼는가? 다운로드 이후 사용자는 서비스를 얼마나 자주 사용하고 있는가? 즉, 회사가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구체적으로 왜, 어떻게 성장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집니다.

(당연히 슬라이드에 모든 내용을 담을 수가 없기에) 투자자들은 이러한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원인을 파악하고 싶어 하고 다양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완벽한 슬라이드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완벽한 트랙션 슬라이드가 있다고 해도 질문 없이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면 어떨까요?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 무엇이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가?
  • 회사는 이러한 동인 요소들에 얼마나 민감한가?
  • 특정 요소를 변경하면 성장 곡선이 어떻게 변화하는가?
  • 다음 투자 라운드에서 보여주고 싶은 트랙션 지표는 무엇인가? 즉, 나는 무엇을 테스트하고 있으며 어떤 결과를 기대하고 있는가?

저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어렵게 배웠습니다.

C2C 플랫폼 회사 피칭 당시 저는 트랙션 슬라이드에 꽤나 힘을 썼는데, 핵심 지표로 “Time to Sell” (제품이 등록된 후 판매까지 걸린 일 수)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Time to Sell이라는 지표를 강조한 이유는 경쟁이 치열한 C2C 시장에서 판매자는 제품이 가장 빨리 판매되는 플랫폼을 선호하고 이를 우선적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고거래처럼 단일 SKU를 판매하는 경우, 제품이 가장 빠르게, 잘 팔리는 플랫폼이 하나 있다면 판매자는 여러 플랫폼에 동일 제품을 등록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심지어 한 플랫폼에서 제품이 팔리게 되면 다른 플랫폼에 들어가 포스팅을 삭제하며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구매자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생깁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다양한 플랫폼에 제품을 올릴 필요가 없이, 가장 빨리 팔리는 한 플랫폼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논리로 Time to Sell이 중요하며, 지금처럼 계속 판매까지 걸리는 일수가 줄어든다면 우리 플랫폼이 승리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나름 C2C 시장 역학에 대한 이해도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서 뿌듯해하며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정말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특히 한 투자자가 기억에 남는데요, 잘 알려진 미국 기반의 VC였습니다. 날카로운 질문을 참 많이 받았는데, 물론 저는 그 자리에서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 Time to Sell이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 해당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판매하고 구매했는가? 지금 당장 데이터가 없다면 다른 지표로 살펴보고 싶은데.. 동일 기간 동안 MAU가 얼마나 증가했는가?
  • 제품 등록 수가 증가했는가 감소했는가?

준비가 안 되었던 저는 식은땀을 흘리며 “음…”이라고 수십 번 말한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투자자분이 침묵을 깨며 질문의 의도를 설명해주셨습니다. 제가 피칭을 하면서 만나본 분들 중에서 가장 날카로우면서도 가장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질문의 의도는 제품 등록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면 판매 속도는 제가 주장하는 것만큼 유의미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자세히 확인해보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제품 등록과 판매 속도의 상관관계에 대해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으나, 투자자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성장했는지보다 우리의 성장이 얼마나 건전한지 확인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저는 C2C 회사의 트랙션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를 찾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이번 경험을 통해 그 뒤에 숨은 동인 요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트랙션은 수요에 대한 확증이 아닌 미래의 더 강력한 수요에 대한 1차적인 지표이며, 지표는 많은 변수로 인해 변경될 수 있기에 그 변수들을 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깨달음입니다.

완벽한 트랙션 슬라이드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지표를 보여주어도 질문은 받게 되기 마련인데요, 트랙션 슬라이드에 있는 수치들을 움직이는 동인 요소를 파악하며 성장이 건전하고 앞으로 성장을 더 잘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자!가 오늘의 핵심 메세지 입니다.

바쁜 출장 기간 동안 저희와 머리를 맞대며 트랙션에 대한 고민을 적극적으로 해주신 미국 VC분들 덕분에 정말 큰 도움을 얻었고, 저도 도움을 이어나가고 싶어 짧게나마 글을 공유해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아래 박수 버튼을 여러 번 꾹 눌러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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