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 Candide ou l’optimisme

볼테르 / Voltaire

Jace
B.J.M’s Talk with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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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주의? 난 보통 긍정적이란 이야기를 듣는 편이다. 후회에 매달리지 않기 위한 방편이기도 해서, 낙관주의와는 좀 다르지만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겠다 싶다. 살아가는 방법은 다르지만 일면으로는 캉디드와 비슷한 면이 있음에 씁쓸하다.

낙관주의고 비관주의고 결국 미래가 더 좋은 세상이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결국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다라고 외치는 이. 나쁜 것이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나갈지를 고민하는 이.

낙과주의의 비판을 이야기하는 것은 낙관주의를 대표하는 팡갈로스 때문일 것이다. 낙관주의를 주장하고,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는 이에게 교수형은 어떤 의미일까? 난 팡갈로스의 낙관주의보다, 세상에서 반대되는 예를 수없이 보면서도 억지로 이론에 맞춰서 해석하려는 것이 답답하고 짜증났다.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이 하는 실수다. 하지만, 이것은 증거, 증명 등을 중시하는 영향때문에 빠르게 기존의 이론의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한다. 물론, 완전히 반대로 돌아서는 것은 여전히 힘들지만. 이러한 억지를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이들은 지식인보다 정치인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잘못된 지식은 지우면 되지만, 잘못된 정치의 피해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대로 사람들에게 남겨진다. 그런데도 누구보다도 더 억지맞추기를 하고 있다. 그것도 한두개 정도면 괜찮지만, 수가 많아지면 절대 불가능이다. 왜 그래도 하려할까?

마르틴, 그리고 노파가 보는 세상이 아마도 대부분의 눈에 보여지는 것이 아닐까. 현실을 직시하지만, 그에 대한 해결책, 개선책은 없다. 적당히 살아가면 된다. 글쎄… 결국, 볼테르는 열심히 일하는게 최선이라고 마르틴을 통해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헛된 공리공론은 집어치우고 일이나 합시다. 그것이 삶을 견뎌 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책의 마무리 역시 일하자고 한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캉디드는 어떤 쪽일까? 내 생각에 캉디드는 그냥 착한 팔랑귀일 뿐이다. 팡갈로스에게 배우면 팡갈로스를 따르다, 여행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모두 속고 후회한다. 직접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팡갈로스라면…’이라고 팡갈로스에게 기댈 뿐이다. 손을 도와줄 이가 아닌 철학자 마르틴을 뽑은 이유도 그렇다.

캉디드를 답답해 하고 있지만, 나도 배움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기대고 살아온 것 같다. 생각을 하기보다는 답을 구했고, 그것을 위해 책을 봤다. 혼자 다할 수 없고, 도움이 필요하지만, 답을 원했던 것 같다. 아니, 원했다. 다행이다. 이제라도 변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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