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과 아이들

진화론 산책 / 션 B. 캐럴

Kyungseok Hahm
Books in my b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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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in readMar 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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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책을 읽으면서 문득 예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불가지론자도 아닌 무신론자다. 내가 무신론자라는 단어로 나를 생각하게 된 것은 아마 대학교에 다닐 때 쯤 인 것 같다. 학교 캠퍼스에 앉아서 친구들과 노닥거리고 있을 때 왠 여성 두 분이 성경책을 들고 돌아다니며 전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앉아있던 자리로 찾아와 성경책의 구절들과 자신이 알고 있는 온갖 믿음에 대한 사례를 들으며 나에게 그들 종교의 위대함을 피력하고, 나도 그들이 믿는 아버지의 자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유 모를 분노가 마음속 깊이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그저 자리를 피하는 것만으로 상황을 모면했다.

당시 그들이 확신에 찬 눈빛으로 나에게 그들의 아버지가 이 모든 것을 이룩했음을 설파할 수 있던 것의 근본은 그들의 손에 꼭 쥐어있었던 성경책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책에는 세상 만물의 이치가 적혀 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과 세상의 존재에 대한 증거로 성경책을 펼쳐 보일 것이고 이슬람인들은 코란을 내놓을 것이다. 그들의 믿음에는 이유가 필요없다. 신 자체가 믿음의 증거이고 이유이다. 대학생의 나는 부끄럽게도 그들의 믿음에 대한 반론으로 무엇을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지 몰랐다. 그들의 한결같은 믿음을 바탕으로한 전도에 내가 분노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은 지금도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때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중고등학교때 학교에서 시험 문제를 위해 영혼 없이 암기했던 진화론을 다시 생각해 내고 책을 찾아보면서 나에게도 그들의 성경책/코란과 같은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만 이것은 이유없는 믿음이 아닌, 증거와 논리로 바탕으로 쌓아올려진 결과에 대한 진실한 동의이다.

여전히 어딘가에 진화론에 대해 언급하려면 책과 인터넷을 뒤적여야 하는 게으른 배움의 무신론자이지만, 더 이상 무지에 분노하지 않고 미지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생명의 삶과 죽음이 신의 존재로 인해 의미가 있다던 당시 전도사들의 말보단, 지구가 만들어진 이후 수십억년동안 이뤄진 진화의 최전선에 내가 살고 있단 것이 더 가치있게 다가온다.

_진화론의 흐름을 최근의 내용까지 한 권의 책에 집약했기에 어떤 부분들은 좀 버겁게 넘어가는 내용이 있지만, 온갖 사회적/자연적인 위험을 무릅쓰고 이뤄낸 위대한 발견과 연구의 결과들을 편안한 의자에 앉아 볼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며 넘어갔다.

_이 책은 관습과 맹신을 거부하고 미지의 것을 무지의 영역에 남겨 두지 않으려는 도전에 대한 헌사다. 읽다보니 비슷한 인상을 준 책으로 브라이언 그린의 ‘앨러건트 유니버스’가 생각났다. ‘끈 이론’이라는 내용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책을 읽는 내내 미지의 영역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에 감탄하고 원하던 결과를 알아내는 부분에선 나도 함께 기뻐하며 흥분했다. 인간의 지적 욕구는 어떨 때는 어긋난 방향으로 결과를 내기도 하지만, 결국 인류를 앞으로 전진시키는 원동력이다.

_표지 일러스트와 디자인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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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ungseok Ha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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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Co-Founder at Tangomike, Seoul, Korea// a.k.a. FLAT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