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핑크 가발쓰고 데브콘은 처음이라

Ethereum Devcon VI @ Bogota, Colombia 참석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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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ing a pink-blonded wig

필자가 이더리움 생태계 근처에서 알짱거린게 벌써 4년하고도 6개월이다. 데브콘이라는 행사는 일찍이 들어와서 아주 익숙한 이름이었다. 데브콘 (Devcon) 은 개발자 행사 (Developer Conference) 의 줄임말이라 마치 모든 개발자를 위한 행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데브콘은 전 세계 이더리움 개발자들이 모여 세션을 하고 서로 네트워킹을 하고 한 편으로는 축제를 하는 행사다.

나의 경우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약 2년 동안 행사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데브콘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는 약 2번 정도 있었다 (2018년, 2019년). 특히 2019년 데브콘은 일본 오사카에서 열렸기 때문에 당시 한국인이 많이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2019년 이후 블록체인은 유스케이스가 잘 나오지 않는 기술이라고 생각하여 관심을 접었고 그 덕에 참석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군대를 전역하기 즈음에 다시 한 번 web3 업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이어져 올해 데브콘에는 꼭 참석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3년 만에 열리는 데브콘이기 때문에 이더리움 재단을 포함한 행사를 참석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기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행사가 콜롬비아 보고타(Bogota) 라는 도시에서 열린다는 점도 본인의 상당한 관심을 자극했다. 왜냐하면 단 한 번도 남미를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평범한 유럽이었으면 또 모르겠는데 보고타라. 행사 전후로 사람들이 보고타가 위험하다는 둥 어떠다는 둥 말이 많았는데, 본인이 생각하기로는 어짜피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생각했다.

차라리 남미에 간다면 내가 뭘 해야 좀 임팩트를 남길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남미하면 떠오르는 것이 어떤 사회적 규범에 벗어나 자유롭게 개인의 자아를 뽐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한국에서 어떤 암묵적인 사회적 규범을 벗어나서 도전해보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평소부터 하고 싶었던 생머리 가발을 하려고, 출국 5일 전부터 적합한 가발색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눕소가 pick해준 색깔이 마음에 들어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음 날 출국했다. 핑크색 가발을 쓰고 데브콘에 간다!

보고타가 직항이 없으니 하루 정도 LA에 묵으면서 시내를 돌아다니고, Sui의 Governance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Laura를 만나 저녁 한 끼를 얻어먹었다. 한국 web2 분야에 있는 네카라쿠배라는 용어와 신입 개발자 취업 시장이 얼마나 폰지 구조와 유사한지 부트캠프 수료생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를 들려주었는데, 미국도 상황이 한국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귀띔해주었다.

Inspiring Events and Parties

Schelling Point (10월 10일 월요일)

  • 셸링 포인트는 Gitcoin에서 주최한 행사로, web3를 공공재(public goods)로 접근하는 사람들의 행사다. 분산화와 탈중앙화라는 철학을 가지고 각 분야에 사회적으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본인들의 사례를 배포하는 행사다. 소위 말해 세계 각지에서 제일 잘 하고 있다는 DAO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관심이 가는 행사였다. 나는 주로 DeSci (Decentralized Science) 행사장에서 머물었는데, VitaDAO의 발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VitaDAO는 대학교 랩실의 구조적인 한계를 부수고 탈중앙화적인 방식의 연구를 추진하려는 DAO다.
  • 해당 DAO는 연구 중에 발생하는 특허 또는 지적재산권(IP)를 적극적으로 유동화할 수 있는 IP-NFT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현재 대학원생들의 낮은 수입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약값(drug price)을 낮게 유지하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또한, 연구 중에 진행한 기여를 조금 더 투명하고 공정하게 평가하려고 하려고도 시도하고 있었다. 굳이 물리적으로 랩실에 가지 않아도 전 세계에서 분산화되어 모두가 원격으로 함께 어떤 공동의 목표를 향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주로 스탠포드 대학과 연계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하며, 다른 DeSci DAO의 시작을 돕기 위한 DAO Incubator 역할도 자임하고자 한다는 것도 놀라움의 포인트였다.
  • 이 외에도 ReFi (Regenerative Finance) 키워드와 관련된 발표도 많았다. 데브콘 부스에서 만났던 ReFi 부스에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해 (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 라는 슬로건이 걸려있었는데, ReFi를 설명해주는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아직 ReFi 키워드는 잘 모르겠어서 집에 돌아가 셸링 포인트 발표 영상을 하나씩 살펴볼 생각이다.
  • 그 외에도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과 네트워킹 하다보니, 전 세계를 누비며 DAO의 성공적인 운영을 도와주는 애자일 코치도 만났고 DAO 운영에 있어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여러 팀도 만날 수 있었다. 전 세계 사람들과 분산화된 환경에서 한데 모여 공동의 목표를 향해 느슨하지만 멋지게 나아가는, 그러면서도 참가자들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DAO라는 구조가 이미 여러 곳에서 실험되고 있고 그 과정이 인상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DAO를 하겠다는 곳을 보면 운영을 썩 잘 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세계 각국의 멋진 케이스를 보니 정말 내가 시야가 많이 좁았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월요일 일정을 마치고, 애프터파티는 Infracon Day로 갈까 Schelling Point로 갈까 고민하다가 결국 Schelling Point로 가기로 했다. 나는 애프터파티에서 서로 친구인 남녀 한 명씩을 만났는데, 그 둘과 3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구가 되었다. 해당 커플은 행사장에서 Tie-Die 행사를 진행했는데, 알고보니 Celo 프로젝트를 정말 사랑하는 보고타 현지 아티스트였다.
  • 남미에는 31개가 넘는 나라가 있고, 각 나라마다 화폐 제도가 모두 다르다고 한다. 남미에서는 나라에 상관없이 상호 교류하는 경우가 많은데, 화폐 제도가 제각각이라 환율 계산하기도 머리가 아픈데 정부 시스템과 인터넷 환경이 그리 썩 좋지도 않은지라 사람들이 불편한 금융 생활을 지내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Celo는 모바일에서 light client를 운용할 수 있고 휴대폰 번호 만으로도 Celo의 스테이블 코인인 cUSD를 전송할 수 있는 메인넷 블록체인이다. 왜 좋아하는 지 알 것 같다. 그 친구 중 한 명인 Paula는 심지어 보고타에 있는 Celo 해커하우스의 외벽 페인팅 작업도 담당할 정도로 Celo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 아무튼 한국에 대해서도 소개해주고 보고타의 생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훌쩍 나누다보니 친한 친구가 되었다. Paula는 다음 날에 있는 파티에 오라고 나를 초대해주었고, 나는 출국 전에 Celo 해커하우스에 방문하여 친구들이 진행하고 있는 페인팅 작업을 관람하고 Celo 팀과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어의 장벽이 있어 Google Translate의 도움을 받아 서로서로 스페인어와 영어를 섞어서 사용했지만, 현지에서 이렇게 마음과 에너지가 맞는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을 것이다. 내년에 반드시 보고타에 다시 돌아와야겠다, 아니 남미를 좀 돌아다니는 기회를 마련해야 겠다.

Rollup Day (10월 10일 월요일)

  • 사람들은 Ethereum 생태계의 Layer 2의 솔루션으로 주로 Optimistic Rollup과 zkRollup을 꼽는다. 비탈릭 부테린은 최근 블로그 글에서 zkRollup의 종류를 총 4가지로 나누었고, 그 가운데 바이트코드 레벨에서 기존 EVM opcode와 거의 완벽히 호환되는 이상적인 유형을 Type 1으로 정의했다. Scroll 프로젝트는 Type 1 zkEVM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팀으로, 이더리움 재단의 PSE 팀 내부의 zkEVM 프로젝트와 상호 협력하는 관계이다.
  • Scroll 프로젝트가 주최한 Rollup Day에서는 주로 zkEVM circuits의 내부 구현에 대한 세미나와 Scroll의 현재 구현 단계와 아키텍처, 그리고 Halo2에 대한 개념적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본인은 지난 Boom Labs 1st ZK Meetup 때 부족하게나마 Scroll 팀이 구현하고 있는 zkEVM의 설계에 대해 학습한 뒤 발표를 진행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Scroll 팀과 인연이 닿아 이번 Rollup Day에 참석하게 되었다.
  • 데브콘 정식 행사도 아니고 힐튼 보고타 호텔에서 작게나마 진행하는 밋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zkDAO 2기 펠로우십을 함께 졸업한 Malgulus 라는 동기도 만나, 동기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들으며 개인적인 피드백도 남겼고, Scroll CEO인 Shen도 만나 Scroll에 대해 학습하면서 가지게 되었던 궁금증도 여럿 질문할 수 있었다. 이번 행사 참석을 기회로 Scroll Alpha-Testnet 사용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서, 한 번 사용해보고 후기를 남겨보려고 한다.
Devcon VI Pre-Registration happened at the Hilton Hotel

Devcon VI === ZKcon (10월 11일 화요일 ~ 14일 금요일)

  • 데브콘 메인 이벤트는 거의 축제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행사장에 걸어나와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본인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네트워킹을 한다. 5여분 가량 네트워킹을 진행하고 서로 텔레그램을 교환한다. 그리고 행사 이후에도 누구를 만났는지 기억하기 위해 셀카를 찍는다. 이것이 데브콘식 네트워킹이라 할 수 있다.
  • 무료로 제공되는 조식, 점심, 저녁을 먹으며 옆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과 say hello를 하기도 하고, 바로 이전에 있었던 ETHBogota 해커톤에서 어떤 제품을 출품했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개인적으로 Uniswap에 다니는 어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만나 온체인 데이터 분석에서의 여러 노하우를 들어볼 수도 있었다.
  • 사전 신청자에 한하여 ENS 팀에서 발급해준 실물 POAP 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 나도 받았는데, 해당 실물 POAP 카드는 NFC 기능이 지원되는 카드였다. 따라서 에스컬레이터에서 만난 사람의 NFC 카드를 내가 찍으면, 내가 그 사람을 만났다라고 하는 POAP NFT를 민팅할 수 있는 사이트로 연결된다. ENS 측은 대시보드를 만들어 다른 사람를 만났다고 하는 증표의 POAP를 가장 많이 발급한 순위를 공개하여 서로 경쟁을 붙이고 있었다.
ENS Swags that are apt to you
  • ENS 팀과 무관한 어떤 프로젝트는 이 POAP 아이디어에서 발상하여, 상대를 만났다고 하는 POAP 만을 모아 보여줄 수 있고 또 내가 보유한 POAP의 상대에게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기능을 소개하였다. 어떤 친구가 애프터파티에서 실물 POAP 카드와 앞서 본인이 언급한 프로젝트를 실제로 사용해보니, 새로운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 말문을 쉽게 트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 에스컬레이터에 타서 부스장으로 이동하려고 하면 사람들은 나를 보고 핑크색 머리가 이쁘다고 한 번씩 말을 걸어주었다. 너가 기른 생머리니, 아니면 가발이니, 너의 머리가 참 이쁘단다, 한국에서는 가발을 쓰는 것에 어떤 사회적 차별은 없니 등등,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부스장은 대략적으로 정글 컨셉인 것 같았다. 물 흐르는 계곡과 나무들이 연상되는 디자인이 눈에 띄었다.
https://twitter.com/shumochu/status/1581469037611356160?s=46&t=m6ZzXm9hzYXmjVo67_jT1g
  • 세션 주제는 상당 부분이 ZK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홍보 부스의 많은 부분도 ZK 프로젝트였고, 또한 1층 네트워킹 부스에서도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ZK 프로젝트와 연구 랩실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DAO를 소개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했다. Personae Labs의 ZK Email, BattleZips 등이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영지식증명 표준 설계기구인 0xPARC에서는 ZK를 이용한 게임을 체험할 수 있는 부스를 4일 내내 운영하기도 했다. Semaphore 트랙에서는 Unirep Protocol이 버전 1.0을 런칭했다.
  • 그래서 나는 이번 Devcon VI를 가히 ZKCon이라고 일컫고 싶다. 실제로 통계에 따르면 이번 Devcon VI의 토크 중 20%가 ZK에 관련된 내용이었다고 한다. ZK에 관련된 세션 중 과반 이상이 privacy와 DID, attestation 등에 대한 발표였다. 나머지 주제는 Scroll과 Polygon Hermez의 zkEVM이나 Poseidon EVM, Circom 2.0에 대한 소개, EF PSE 팀의 Semaphore 소개, 그리고 ZK Circuits에 대한 security auditing이 있다.
  • 비탈릭은 패널 토크에서 “블록체인은 검열 저항성과 분산화에 대한 열망으로 시작했으니, 아무리 영지식 증명과 블록체인은 서로 다른 범주의 개념이라고 하더라도 블록체인은 영지식 증명 기술을 수용할 수 밖에 없다” 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션을 통해 gubsheep, cedoor, Le Zhang과 같은 ZK 분야의 유명 인사를 실물로 볼 수 있었다는 점도 감격깊은 일이었다.
Vitalik has visited Korea several times so there is no FOMOs toward him.
  • 이 외에도 현재 Ethereum 생태계에서 단일 장애점으로 지목될 만한 요소까지도 모두 탈중앙화 하겠다는 목표가 눈에 띄었다. Infura 네트워크를 탈중앙화하겠다는 시도가 가장 눈에 띄었다. web3에 대한 비판점 중 하나는 블록체인에 접근하는 RPC 노드도 중앙화되어 있기 때문에 RPC 노드를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 Infura는 다른 RPC Provider를 경쟁 상대로 삼지 않고 Infura가 구축하고자 하는 탈중앙화 RPC 네트워크에 참여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말 멋있지 않나! 그리고 DVT (Distributed Validator Technology) 에 대한 연구도 박차가 가해지는 모습이다. 분산화된 키 생성 방식부터 미들웨어, 네트워크 토폴로지, 버저닝 전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 Consensys 팀에서의 DVT 발표도 알찼다.
  • MetaMask는 다른 체인에 액세스할 수 있는 익스텐션 기능을 런칭하려고 하고, 이를 Snap이라고 한다. 토큰과 NFT 자산을 모아서 볼 수도 있어 포트폴리오 페이지처럼 활용할 수도 있고, zk application에 대한 익스텐션을 붙일 수도 있다고 한다. MetaMask 안에 web3 dapp들이 들어오는 모양새다. 역시 업계의 리더다.
  • 이 외에도 ZK House는 2일차에 잠깐 들렀지만 어나니머스의 설립자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화상으로 키노트를 하는 모습을 보고 소름이 좀 돋기는 했다. 데브콘에서 어떤 ZK 관련 세션 토크가 오갔는지는 Boom Labs에서 정리하여 발간할 예정이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이다.

Party Party Party (All day long!)

  • 콜롬비아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파티 덕분이었다. 파티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았다. 일단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길거리에서 say hello! 를 하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다. 보통 자기소개를 하면 나는 몇 살이고, 어느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고, 와 같이 사회경제적인 위치를 강조해야 소개한다. 그런데 콜롬비아는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바로 인사하고, 어떤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내가 진심을 다해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심도있게 들을 수 있다.
  • 창업을 한 사람이어서 그렇지는 않다. web3 사람이 아니라면 보통 아티스트였다. 내가 얼마나 진심을 다해서 그라피티를 하고 있는지, 음악 프로덕션을 하고 있는지, 사진을 찍고 있는지,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할 수 있게 된다. 아무튼 매일매일 파티를 하는데 남미 사람들이 외국인과 한데 융화되어 정말 재밌게 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https://twitter.com/letsraave/status/1580451153967710210/photo/1
  • 나는 정말 유명한 Raave 티켓을 우연히 얻을 수 있게 되어 참석했다. Raave가 트위터에서 밈 이벤트를 했는데, 나중에 Raave 측에서 디엠이 왔다. 마음이 들지 않은 것은 또 아닌 모양이다. 그 외에도 Quantstamp가 진행한 RaveQuest에 가서 정말 진풍경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두 파티에서 모두 나의 핫핑크 머리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아니 무슨 내가 컨퍼런스에서 핫핑크를 봤는데 널 여기서 보네, 에스컬레이터에서 올라왔는데 봤네, 너 정말 머리 이쁘네 마네, 하는 이야기를 정말 수도 없이 들었다. 내가 마케팅 하나는 끝내주게 잘한 것 같다.
  • 파티에서 재밌게 봤던 것은 POAP의 적극적인 사용이었다. 일단 파티에 참석하면 QR코드를 찍어 POAP를 받을 수 있다. POAP는 파티의 참석권이 되어 해당 POAP NFT를 인증하면 굿즈와 티셔츠 등을 받을 수 있다.
  • RaveQuest에서는 최초 100명을 선착순으로 해서 비밀의 방을 찾으면 다음 레벨의 POAP NFT를 주고, 해당 POAP NFT를 인증한 사람에게 그 다음 미션을 주고, 해서 최종적으로는 경품을 주는 미션을 수행했다. POAP를 파티 이벤트와 적극적으로 연결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위에서 말했던 ENS가 이벤트로 발급해준 NFC 카드를 애프터 파티 때 이용하는 모습도 보았다. 나는 늦게 와서 이벤트 못했었서 경품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다음 파티 초대권인가 그랬던 것 같다. 요점은 POAP를 파티 이벤트와 적극적으로 연결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던 ENS가 이벤트로 발급해준 NFC 카드를 애프터 파티 때 이용하는 모습도 보았다. 파티를 재밌게 해주는 요소이면서도 다음 파티 행사에 연동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 2018년 KBW에 처음 블록체인 행사 갔을 때에도 네트워킹 미친 듯이 했었는데 (그 때는 거의 BD였으니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지마는 세상을 돌아다닐 필요가 있을 때 내가 나서서 먼저 컨택하기 위한 최소한의 연결포인트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여행 갔는데 현지 친구 있는게 좋잖아? 그래서 나는 텔레그램 QR코드를 월페이퍼에 걸어놓고 Shall we connect가 나오면 아이폰 월페이퍼를 보여줬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참 clever 하다고 칭찬했다. 마지막에 셀카까지 찍고 메시지를 닫으면 완벽한 넷트월킹이 된다.

Others

Mina Protocol zkConnect: Boom Labs의 1st ZK Meetup이 계기가 되어 Mina 친구들의 초청을 받았다. O(1) Labs 사람들과 Boom Labs가 함께 협의할 수 있는 부분은 없을 지 이야기를 가볍게 나누었다. Anon으로 DeFi 프로젝트를 하는 네덜란드 친구를 만났는데 부모님은 자신이 대학교를 잘 다니는 줄 안다고 한다. 실제로는 몇 년 째 휴학 중인데 말이다. 이런 거 보면 난 정말 양반이다. 휴학할 때 만큼은 부모님한테 거짓말은 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Aleo Workshop: Boom Labs의 코어 멤버인 김채린님이 Aleo 블록체인의 한국 홍보대사다. 따라서 채린님 대신해서 Aleo 사람들에게 인사하러 갔다…는 것은 농담이고, Aleo가 최근에 여러 많은 버전의 변화를 겪고 있는데 이번 밋업을 통해 확실히 정해진 것이 있기를 바랬다. 다행히도 과거의 급격한 버전 변화들이 안정화되는 느낌이 있었고, 해당 워크샵도 무탈없이 진행되었다. 기존의 Aleo 라이브러리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최근 올라온 코드를 사용하는 것이 아무래도 나을 것으로 보인다.

VC Speed Dating: 개인적으로 데브콘 사이드 이벤트 중에서 가장 유익했던 네트워킹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진짜 프로젝트를 만드는 사람들이 본인의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Alphemy Capital이 주최한 행사인데, Bogota에 온 VC 심사역을 Alphemy Capital이 초청하고 해당 VC 심사역들과 만나고 싶은 프로젝트 창업자들을 지원받는다. 프로젝트를 선별한 다음, 약 30개의 프로젝트를 추려 VC 심사역들에게 피칭 덱을 보여준다. VC는 정해진 시간에 창업가와 시간 약속을 잡을 수 있다. 주어진 시간은 단 5분! 5분 안에 본인의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피칭을 해야 한다. 이렇게 매 5분마다 매칭되는 VC-창업가 그룹이 12쌍이 있다. 프로젝트가 VC에게 사전에 선택받았거나, 현장에서 피칭 약속을 잡게 된다면 계속해서 본인의 프로젝트를 소개할 수 있다. 그런데 보통 프로젝트 창업가들이 VC를 찾아다니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약속이 잡히지 못한 창업가들도 와서 비어있는 시간에 쉬고 있는 VC들을 찾아가 자신의 프로젝트 피칭을 들어달라고 설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영화 실리콘밸리에 나올 것만 같은 한 장면이었다.

나도 해커톤 팀으로 고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멤버인데, 이번에 Evmos Momentous Hackathon에서 우승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2여개의 VC와 다른 Founder에게 피칭했다.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정신이 없어 VC를 찾지 못해 겨우 만나게 되어 극적으로 피칭하기도 했고, 어떤 VC는 2시간 이상을 지각하여 그 사람 찾아다니느라 당일날 비행기 시간을 놓쳐서 위약금 물고 다음 날 비행기를 타도록 만들었다. (결국 피칭하지 않았다. 본인이 booking 해놓고 우리 프로젝트에 예약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VC는 실리콘밸리 벤처 심사역인 18살 친구에게 발표를 했는데, 기술적으로 여러 가지 피드백을 얻을 수 있어서 매우 유익하였다. 그 외에도 Oasis Protocol 초기 개발자, Unreal 게임엔진 개발자, 남미 지역 on-ramp/off-ramp 스타트업 CTO 등에게도 피칭하면서 유의미한 피드백을 얻었다.

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들으면서 블록체인에서 각자 하나씩 성공을 거두고 싶어하구나 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으면 다치지만 적당하면 문명 발전의 원활유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Devcon devices for kiddos: 군대에서 내내 사용했던 아이패드 미니 태블릿을 콜롬비아 아이들에게 기부했다. UMA라는 스타트업의 대표를 맡고 있는 Clayton님이 콜롬비아 아이들을 위한 자선 사업도 병행하고 있는데, Bogota에 데브콘으로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중고 컴퓨터, 태블릿, 아이패드 등을 기부해달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데브콘 기간 중 약 20개의 기기를 받으셨다고 한다. ETHLatam과 ETHColombia 커뮤니티에서 콜롬비아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시켜주면서 해당 기기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Clayton 님께 아이패드 미니를 기부할 때 사진을 찍었고, 이후 아이들이 어떻게 해당 기기를 사용하고 있는지 이메일로 업데이트를 해주신다고 한다. 멋진 일을 만들어주시고 있는 Clayton 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데브콘에서 배우고 느낀 것

핫핑크 가발과 함께 한 나의 첫 데브콘은 환상적이었다. 한국인 이대남으로서가 아니라 Ethereum 생태계에 속한 세계 시민으로서 생활할 수 있었다. 몇몇 한국인과 만나 인사를 나눌 때를 제외하고는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거의 모든 대화를 영어로만 진행했다. 데브콘은 큰 자극이 되었는데, 확실히 한국에서 web3 생태계를 바라보면 발전이 더딘 것 같아 답답한 부분이 많은데 이렇게 전 세계 모두가 모이는 컨퍼런스에 가 보니 재미있는 프로젝트와 빠른 변화, 그리고 새로운 시도들이 앞다투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ZK도 요즘 핫한 이슈고 실리콘밸리의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모두 ZK나 DAO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기에 들어가야 미래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한다. 하지만 2018년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바 있고 크립토 윈터를 내가 겪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지켜본 바, 그렇게까지 FOMO를 느낄 필요가 없다고는 생각한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나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롱런할 수 있는 길일 지 생각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한국에서만 있으면 안되고, 계속 세계 시장 밖으로 나가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젝트들이 재미있는 것이 참 많았고 지금도 우후죽순 나오고 있다. 이러한 경쟁자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마케팅 해야 하는 지 알아야 할 것이다. 내가 이번에 부스에서 랜덤하게 만나게 된 3개의 프로덕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 sourcify.eth: 사용자가 메타마스크를 통해 상호작용 하려고 하는 컨트랙트는 비개발자 사용자 입장에서 verify할 수 없다. 실제로 올라와있는 바이트코드와 dApp 서비스 제공자가 GitHub에 명시한 컨트랙트가 동일한 코드일 지 판별하려면 Etherscan에 접속해야 한다. 하지만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 Etherscan의 verify 기능을 이용하라는 것은 너무 높은 수준의 기대이다. sourcify.eth는 개발자가 hardhat에 컨트랙트 코드를 배포할 때 IPFS에도 같이 배포하고, 동시에 sourcify.eth 사이트 환경에서 동일한 컨트랙트 코드를 컴파일 한 뒤 verify 한다. 이후 사용자는 Etherscan에 접속하지 않고도 자신이 프론트엔드 사이트에서 상호작용하고 있는 컨트랙트가 올바른 지 확인할 수 있다. 메타마스크와의 연동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 dev3.sh: web2 개발자를 위한 노코드 컨트랙트 배포 도구이다. 일반 개발자들이 컨트랙트를 배포하려면 솔리디티를 배워야 하는데, 어짜피 일반적으로는 OpenZepplien 라이브러리나 다른 도구에 생성자 파라미터만 수정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컨트랙트 배포와 어드민 관리를 노코드 툴로 대행해줄 수 있는 도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반 개발자들이 굳이 솔리디티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web3 컨트랙트를 배포할 수 있고 어드민 페이지에서 메소드를 호출할 수 있는 모양이다.
  • diagonal.finance: HTTP API를 이용하여 코인 혹은 토큰으로 온라인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SDK이다. 해보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API 호출만 하면 된다고 한다. on-ramp/off-ramp 스타트업이므로 규제 문제가 핵심일 텐데 어떻게 풀어갔을 지 궁금하다. API Endpoint 뿐만 아니라 UI도 제공한다. 메커니즘 캐피탈과 코인베이스 캐피탈, 그리고 THE LAO가 투자 라운드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여간 나도 데브콘에 오니까 정말 우주의 작은 먼지 한 톨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다. web3 전반에 대하여 조금 더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시간도 많이 가져야겠다. 군대 때는 그렇게 지식의 흡입을 많이 하고 아웃풋도 좋았는데, 지금은 이것저것 걸쳐있는 것이 많다보니까 집중이 잘 안되는 단점이 있다. 글도 잘 안 쓰게 된다. 이러면 안된다.

또한 운동을 해야겠다. 2018년 KBW 때는 매일 밤 새도 괜찮았는데, 이제는 전날 밤새면 다음날 저녁 5시에는 꼭 자야 한다. 이렇게 까다로운 저, 그리고 사고뭉치인 저와 함께 해주신 배희성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크립토 특징 상 너무 어린 애들 천재에 주눅들지 말고 앞으로도 남은 인생이 많으니 과연 어떤 것을 할 지 고민해봐야 겠다. 재미있는 것이 무엇일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천천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해외 행사에 조금 더 많이 다녀야겠다. 그러려고 블록체인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미래에 곤란하게 될 것이다. 하여간 즐거웠다. 보고타여서 즐거웠다. 아니었으면 오히려 실망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암튼 앞으로도 매년 데브콘에 와야겠고, 수영님 희망대로 한 번 2024년에는 데브콘을 꼭 제주에서 열자, 채린아.

Let’us convene Devcon at the Jeju Island, Korea fo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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