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멘텀 (Momentum)

브랜드 다이어리 #2

베토벤의 아침 식사는 정확히 60개의 콩이 들어간 한 잔의 커피였다. 그는 목욕을 할 때면 온 몸이 물에 젖은 채로 고함을 지르며 집 안을 돌아다녔다고 전해진다. 소설가 스티븐 킹은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썼다. 그리고 하루 2,000자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는 결코 책상에서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전날 아무리 많은 술을 마셔도 오전 6시가 되면 멀쩡한 모습으로 깨어났는데, 독특하게도 서서 글을 쓰는 습관이 있었다. 무용가로 유명한 트와일라 타프는 2001년에 발표한 <천재들의 창조적 습관>이라는 책을 통해 이처럼 한 예술가의 습관이 어떻게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잡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매일 아침을 나만의 의식으로 시작한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연습복을 입고 레그 워머를 신고 후드티를 걸치고 모자를 쓴다. 그리고는 집 밖으로 나와 택시를 불러 세우고 운전사에게 91번가의 퍼스트 에비뉴 모퉁이에 있는 펌핑 아이언 체육관으로 가자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시간 동안 운동을 한다. 내 의식은 바로 택시이다. 운전사에게 목적지를 말하는 순간, 내 의식은 끝난다.”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의식(Ritual), 모멘텀

다소 거창하게 시작한 셈이지만 평범한 우리 역시 하루를 시작하는 나름의 습관들을 가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일어나자마자 한 잔의 생수를 들이키거나 출근길에 빠지지 않고 커피 한 잔을 들고 나선다. 회사에 와서는 화분에 물을 주거나 화장실에 들러 머그컵을 씻거나 양치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일상에서 일정하게 반복되는 행동패턴을 의례, 의식 혹은 리추얼(ritual)이라고 부른다. 치열한, 혹은 무료한 하루를 보내기 위한 나름의 간절함을 담은 습관적인 행동에 ‘의식’이라는 이름은 꽤나 잘 어울리는 듯 하다. 이 점에 착안한 메이슨 커리라는 작가는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191명의 특별한 습관들을 조사해 <리추얼>이라는 이름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앞선 일화들 역시 대부분 이 책에서 소개된 내용들이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 작가나 화가, 무용가들과 같은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에게만 이러한 리추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료한, 혹은 각박한 일상을 열어주는 리추얼은 의외로 우리들의 삶 깊숙히 위치한다. 물론 내게도 이와 비슷한 리추얼 하나가 있다. 바로 하루의 업무 시작을 알리는 브라우저를 띄우자마자 뜨는 ‘모멘텀’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내가 쓰는 ‘크롬’ 브라우저를 실행시키자마자 새로운 창 가득히 전 세계 곳곳의 풍경을 매일 하나씩 보여준다. 시간과 날씨 정보, 가장 중요한 하루 일정과 리스트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매일 하나씩의 명언을(영어라는 것이 흠이지만) 새롭게 보여준다. 적어도 내게는 이 모멘텀이 하루의 시작이나 새로운 작업에 들어서기 위한 일종의 경건한 ‘의식’인 셈이다. 오늘 모멘텀이 보여주는 풍경은 미국 유타주에 위치한 ‘시온 국립 공원’의 모습이다. 장엄한 협곡 사진 아래 ‘세상의 변화를 보고 싶다면 당신 자신부터 변하라’는 간디의 한 마디가 짧게 씌어있다. 짧게 고개를 끄덕인 후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자, 이제 하루의 시작이다.’

리추얼을 파고든 브랜드들

이쯤 되면 브랜드 이야기를 하기로 약속한 곳에 뜬금없는 위인들의 습관이나 애플리케이션 얘기를 꺼내는 것이 의아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멘텀’은 분명 하루에도 수없이 브라우저의 새탭을 여는 사람들의 습관과 불편을 파고든 영리한 서비스이자 브랜드임에 분명하다. 아름다운 풍경 사진이나 하루의 일정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는 웹은 물론 모바일에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기능’이 아니라 ‘리추얼’이다. 놀랍고 차별화된 특별한 기능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 속 습관을 파고들어 하나의 리추얼로 자리잡게 만드는 ‘영악함’이 신선한 자극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이러한 리추얼을 통해 차별화에 성공한 브랜드들이 적지 않았다.

혹 어른들의 손에 끌려 들어간 목욕탕에서 단지 모양의 ‘바나나맛 우유’를 먹어본 기억이 있는가? 정확하게 반을 가르기 위해 진땀을 흘리던 ‘쌍쌍바’의 기억은 어떤가? 한 때 일요일이면 당연히 짜장 라면을 끓여먹어야 하는 것으로 믿게 만들었던 ‘짜파게티’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모든 브랜드들이 리추얼을 통해 조금 더 특별한 우유와 아이스크림, 라면으로 거듭났다. 만약 이 모두가 과거의 얘기처럼 들린다면 ‘오레오’는 어떤가. 지금도 많은 아이들은 오레오를 먹을 때 한 입에 넣지 않는다. 우선 크래커를 조심스럽게 비틀어 떼어내 바닐라 크림을 발라 먹은 후에야 비로소 우유에 찍어 먹는다.

전 세계 주당들의 깊은 사랑을 받아온 기네스 맥주 역시 마찬 가지다. 이들은 일정한 각도로 잔의 특정 지점까지 맥주를 채운 후 거품이 모두 가라앉기를 기다린 후에야 비로소 잔을 끝까지 채운다. 기네스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은 지금도 이 의식을 엄숙하게 지킨다.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의 하이디 그랜트 할버슨은 이처럼 사소한 리추얼을 부여하는 과정을 더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브랜드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고보니 함께 일하던 20대의 직원으로부터 ‘더위사냥’을 잘라 먹는다고 핀잔 아닌 핀잔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는 모름지기 더위사냥이란 통으로 먹어야 한다며 무슨 거창한 의식을 치루듯 반쪽의 포장지를 떼어냈다. 그래야 더 맛있다고 말하는 표정에선 자신의 믿음에 대한 한 치의 의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일상의 리추얼을 공략하라

분명 리추얼은 얼핏 보기에 반복된 행동을 요구하는 단순한 습관, 혹은 즐겁게 허용된 강박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리추얼이 제공하는 유익은 그보다는 꽤나 실제적이며 구체적이다.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의 잉크 냄새, 아내가 건네주는 따뜻한 토스트와 시원한 물 한 컵, 출근길에 굳이 들러 사오는 따뜻한 커피 한 잔, 그리고 노트북을 부팅한 후 처음으로 여는 브라우저 속 풍경을 보면서 우리의 몸 속에선 분명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바로 엔돌핀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엔돌핀은 뇌 속에서 분비되며 진통 및 쾌감 효과와 관계 있는 호르몬 물질을 말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엔도르핀의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나는 활동이 바로 리추얼(ritual)이다. 리추얼은 이처럼 개인이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일상생활에서 동일한 행동이 반복적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러한 활동에 강렬한 심리적 의존을 보이게 됨을 보여준다. 이쯤 되니 그토록 많은 작가와 화가 예술가들이 나름의 ‘리추얼’에 매달린 것도, 다양한 브랜드들이 자신들만의 리추얼을 광고를 통해 반복해 전파하는 이유도 조금 더 선명해진다. 내가 아침마다 ‘모멘텀’이 보여주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어쩌면 이러한 엔돌핀의 작용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모멘텀이 이러한 치밀한 연구와 고민 끝에 이러한 서비스를 만들어냈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저 재미삼아 우연히 만든 앱 하나가 입소문을 거쳐 뜬 경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흘려보냈을 일상의 사소한 불편을 창의적인 서비스로 구현내낸 용기만큼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새창을 기껏 띄우고도 포탈 사이트의 낚시성 글에 끌려 애초에 하려던 작업을 까먹은 일이 비일비재했던 나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창의성이란 세상에 없던 그 무엇을 새롭게 만드는 대단한 무엇이 아니다. 모멘텀은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과 이해가 어떻게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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