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와 ‘플레인’ 사이

Just Beaver’s Diary
Brand & Marketing
Published in
4 min readMay 7, 2015

오래전 듣고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그건 어디에 그 글을 쓰느냐에 따라
글의 내용까지 함께 달라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창이 작은 미니홈피와
블로그에 쓴 글은 글의 호흡과 내용이 달라진다는 거였죠.
어느 정도의 근거를 두고 쓴 글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일리가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스타그램을 즐기진 않는데
최근 거의 동시에 오픈한 폴라와 플레인을 보고
괜한 호기심이 들어 함께 써보고 있습니다.
사실상 인스타그램을 벤치마킹(베꼈다고 해도…)한 흔적이 많지만
묘하게 닮았으면서도 다른 두 앱 쓰기가 흥미롭습니다.

‘폴라’는 세련된 20대 초반의 여대생을 닮았습니다.
감각있는 한 장의 사진을 멋진 필터를 통해 올릴 수 있고
인스타그램의 미묘한 불편함들을
(예를 들어 해쉬태그 달기의 번거로움같은…)
쿨한 인터페이스로 갈무리한 느낌입니다.
첫화면의 해쉬태그들만으로도
요즘 뜨는 핫한 트렌드들을 훑어보기 좋게 구성해놓았죠.

반면 플레인은 담백한 30대 초반의 남자를 연상시킵니다.
심플한 컨셉은 로고 뿐 아니라
살짝 건조해보이기까지한 인터페이스에 그대로 녹아있죠.
심지어 그 ‘흔한’ 필터 하나 없습니다.
대신 여러 사진을 동시에 올릴 수 있고
짧은 글을 쓰기에 적합한 미니 블로그 같습니다.
화려함 보단 내실있는 사람을 택하라는 무언의 시위 같아요.

나와는 큰 상관도 없는
두 앱들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있는 이유는
참으로 묘하게도 ‘어디에’ 글을 쓰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의 글도 묘하게 달라진다는 느낌을
이 앱들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어서입니다.

‘폴라’는 사진이 주인공이 됩니다.
먹음직스런 음식이나 새로운 신상 스마트폰은
아마도 폴라를 통해 자랑하기에 더 어울릴 것입니다.
하지만 퇴근길의 짧은 단상이나
시라고 하기엔 뭣한 짧은 글을 쓴다면
거기에 몇 장의 사진을 곁을이는 글이라면 플레인이 어울립니다.
마치 아무런 토핑도 더하지 않은 플레인 요구르트처럼.

그러나 이 앱들에서 배우는
중요한 공통점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짧지만
감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요구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우리들의 길고 지루하며
머뭇거리며 뱉는 수줍은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짧고 쿨하게
우리가 원하고 생각하는 바를 전달해야 합니다.
이건 비단 온라인이나 SNS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그건 우리들이 커뮤니케이션하는 공간과 수단이
미니홈피와 블로그의 차이 이상으로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이 길고 지루한 이야기는
이 글의 시작에 반하는 내용을 쓰고 있습니다.
일부러 글을 늘여 쓰고 있습니다.
긴 호흡의 글이 가진 힘을 응원하고 싶어서입니다.
마치 누군가가 호흡을 고르고 숨을 들이쉰 후에
어렵게 어렵게 내뱉을 더듬거리는 그 한 마디의 말을
격려하고 싶어서입니다.
유창하지도 쿨하지도 명료하지도 않지만
오직 진심만을 담아 전달하는 그 몇 마디의 말들.

사랑을 느낀 이성에게 처음 내뱉는 고백,
옹알이를 끝낸 아이의 첫 마디를 기다리는 엄마,
몇날 며칠을 밤을 세운 후 마이크를 잡은 첫 PT의 순간,
난생 처음 자신의 물건을 팔기 위해 내뱉는 어떤 사장님의 떨림…

아마도 그건
세상이 아무리 달라지고 바뀐다 해도
몇 천 번의 유행과 트렌드가 뜨고 진다 해도
결코 바뀌지 않을 소통의 순간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도구가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까지 바꿀 수 있다는
이 글의 첫머리에 제시한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하는 것은
오직 그 사람의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글쓰기를 위한 도구와 스킬과 전략에 대한 관심에서
‘나만의’ 생각으로 좀 더 고개를 돌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사람의 글을 완성하는 것은
스킬도 도구도 전략도 아닌
그 사람만의 건강하고 정직한 생각과
그 생각을 증명할만한 경험의 합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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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 비버 말고) 저스트 비버, 박요철의 다이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