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유 노우 마이보틀?

브랜더’s 다이어리 훔쳐보기 #2.

*사진출처: http://goo.gl/Vwp1NP

몇 달 전, 아내가 텀블러를 사달라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그냥 사달란다. 아이들을 등교시킨 엄마들이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때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스타벅스에 들렀다. 어머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텀블러 하나가 몇만 원씩 했다. 혹 촌스럽다는 얘기를 들을까봐 디자인 핑계를 내며 매장을 나와 가까운 탐앤탐스에 갔다. 만 원 정도가 쌌다. 그 날 당당하게 아내에게 텀블러를 내밀었는데 어째 반응이 시원찮았다. 이후 지금까지 아내가 그 텀블러를 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텀블러가 요즘 전국적으로 인기다. 사실 모양은 조금 다르다. 매우 정직하게 생긴 굴곡 없는 몸매에 심지어 투명하기까지 하다. 재질은 젖먹이들의 분유 병과 같다고 했다. 그래서 뜨거운 물이나 음료를 부어도 환경 호르몬이 유출되지 않는단다. 가격도 만 5천 원대, 일반 텀블러에 비하면 매우 착한 가격이다. 디자인은 마치 스티브 잡스가 주문해서 만든 것처럼 심플 그 자체다. 검은색 뚜껑에 속뚜껑이 하나 추가된 형태로 투명한 몸통에는 매직으로 휘갈겨 쓴 듯한 제품의 이름이 커다랗게 쓰여있다. 바로 요즘 장안의 화제인 ‘마이보틀(My Bottle)’이다.

이 물병은 ‘투데이스 스페셜’이란 브랜드가 처음 만들었다. 온라인 판매 외에 이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은 일본 현지에서도 단 두 곳. 입소문을 통해 알려진 이후 한국 관광객들의 싹쓸이가 이어지자 한 번에 두 개 이상을 살 수 없도록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의 아줌마들이 누구인가. 옷을 바꿔 입으면서까지 대량 구매를 시도한 모양이다. 여전히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다. 자연히 가격이 올라 구매 대행 서비스를 이용해도 6, 7만 원 이상을 주어야 한다. 사람들은 목이 마르지 않은데도 이 제품에 목이 탔고, 이 물병에 목을 맸다. 눈치 빠른 한국의 ‘망고 식스’가 원 제품에 오마주를 보내며 ‘식스 보틀’이라고 이름 붙인 ‘같은’ 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여기서 ‘같다’는 의미는 제조사(일본의 리버스사)가 같다는 말이다. 뒤이어 우리의 대표브랜드 락앤락도 ‘비스프리 잇 보틀’을 만들었고 자체 주간 판매 1위의 영광을 만들어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도대체 이 물병의 어떤 매력이 이런 팬덤을 만들어낸 것일까?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우선 기능을 보자. 아이들 젖병에 쓰이는 소재라니 일단 안심이 된다. 섭씨 100도의 펄펄 끓는 물을 부어도 환경 호르몬이 유출되지 않는다. 게다가 예전 같은 아우라는 없다 해도 일제 아닌가. 하지만 방사능 유출에 대한 트라우마를 생각하면 백 퍼센트 이해할 순 없는 이유다. 우리나라가 젖병 만드는 기술이 뒤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가격 장벽도 낮다. 가장 유력한 이유는 다름 아닌 이 물병이 ‘예쁘다’는 것이다. 그것도 투명할 때보다 무언가를 담았을 때 더 예쁘다는 소문이 있다. 라떼를 담았을 때, 방울 토마토를 담았을 때, 얼음물을 담았을 때 마이보틀은 어느 순간 예술 작품이 된다고 했다. 설마 하고 찾아봤더니 역시 그랬다. 인스타그램으로 은은한 노을 아래서 찍은 사진은 가히 환상적으로 보였다. 페이스북에 한 장의 사진과 올리기에 딱인 비주얼이다. 다음의 한 줄 카피를 더 하면 금상첨화가 되겠다. ‘득템, 나 이거 드뎌 직구 성공.’

마이보틀이 처음부터 이러한 나비효과를 기대한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마이보틀의 작은 성공은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마케터와 브랜더들에게도 한 가지 생각의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다. 그것은 사용자가 그 제품을 어떻게 쓰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어떻게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지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페이스북을 위시한 SNS에서 성공하는 콘텐츠는 이러한 ‘공유’가 쉽다거나 유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제 입소문은 ‘입’에서 ‘눈’으로 확장되고 있다. 사람들은 마이보틀을 원래의 용도로만 구매하지 않았다. 자신의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을 과시하는 용도로 산다. 그리고 과시욕은 다름 아닌 트렌디한 얼리어답터들의 무리에 끼어들고 싶은 ‘소속감’에서 기인한다. 상대적으로 값싼 비용으로, 그것도 직접 마주하는 부담 없이 소셜 미디어로 간단하게, 그리고 인스타그램의 필터로 스타일리쉬하게 딱. 그러면 ‘끝’이다.

마이보틀의 창조적? 모방. 망고식스의 ‘식스보틀’과 락엔락의 ‘비스프리잇보틀’.
(*사진출처: 연합뉴스)

마이보틀의 인기가 얼마나 지속할지 호언할 순 없다. 다만 휴가가 시작되는 이번 여름에도 이어질 가능성 정도는 충분하다. 이 투명한 보틀에 담아 사진 찍을 것들이 어디 한두 개인가. 하지만 트렌드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은 어디 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성적인 구매로 감정적인 만족을 얻기보다 감정적인 만족을 위해 이성을 속일 때가 훨씬 더 많다. 그래서 하나의 명품을 사서 오래 쓰는 것이 중저가 제품 여러 개를 사는 것보다 더 ‘싸다’는 궤변이 통하는 것이다. 수입차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일주일에 몇 번 타지 않는 이동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가볍게 넘어서는 이유도 같은 이유다. 마이보틀은 이러한 숨은 니즈가 희소성이라는 파도를 만나 작금의 직구족들의 눈을 밝히고 있는 셈이다.

아 그러고 보니 와이프가 냉장고에 넣어둘 물병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이참에 7만 원짜리 마이보틀을 사가면 뭐라고 말할까? 아서자. 그런 위험을 감히 무릅쓰기엔 너무 무모한 도전이다. 내 생명은 보틀보다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