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여왕’브랜드 매니저 문길병을 만나다

브랜드 탐방

Just Beaver’s Diary
Brand & Mark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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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유니타스브랜드 페이스북에 적지 않은 광고나 홍보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브랜딩의 관점으로 바라본 컨텐츠를 공유해보자는 페이지의 성격상 대부분의 요청들은 정중히 사양해왔다. ‘카레여왕’ 브랜드 매니저와도 비슷한 커뮤니케이션이 이어졌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요청이 2주에 걸쳐 끈질기게 이어졌다는 점이다. 자신의 브랜드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단순한 홍보가 아닌 인터뷰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곧 흔쾌한 동의의 메시지가 돌아왔다.

초여름의 더운 어느 날, 신설동 대상 본사에서 직접 만난 그는 이제 막 5년을 지난 ‘카레여왕’ 브랜드처럼 자신감과 패기에 가득찬 모습이었다. 시장점유율 70퍼센트에 육박하는 ‘오뚜기 카레’와 맞서는 그의 모습에서 문득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물론 오뚜기 카레가 성경 속 골리앗이라는말은 결코 아니다). 게다가 단순히 그가 열정과 끈기만으로 ‘카레여왕’이라는 브랜드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님을 인터뷰 말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자, 이제 문길병 매니저가 전하는 여왕의 생존과 승리 방식에 잠시 귀기울여보자.

Q. 언제부터 ‘카레여왕’ 브랜드를 담당하게 되었나?

제빵회사에서 일하다가 5년 전 대상으로 옮겨왔다. 입사 후 케첩과 굴 소스 드레싱, 맛선생을 차례로 담당하다가 작년부터 카레를 맡았다. 마케터라면 누구라도 예산을 많이 가진 품목의 브랜드 담당이 되고 싶어 한다. 마케터로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Q. 카레 시장에는 부동의 1등 브랜드 ‘오뚜기 카레’가 있다.

원래 식품 카테고리가 매우 보수적이다. IT처럼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어 시장이 뒤집어지는 일이 별로 없다. 예를 들어 다시다는 80년대부터 35년 가까이 1등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 다시다도 처음엔 어렵다가 미원이 견제를 게을리하는 바람에 지금의 구도로 굳어졌다. 다시다의 한 해 매출이 2000억 원이다. 미원 역시 50년 이상 된 브랜드지만 여전히 1000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 변화가 많지 않아 힘든 시장이다.

Q. 사실상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어떤 점이 가장 어렵나?

오뚜기 카레는 46년 된 브랜드다. 패키지도 디자인도 그 때 그대로다. 이런 강력한 1등 브랜드에 도전하는 것이 힘든 건 커뮤니케이션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카레 하면 습관적으로 노란 포장을 찾는다. 우리 제품이 얼마나 더 좋은지 알릴 기회조차 잡기 힘들다. 회사 내에서조차 영업 쪽은 신규 브랜드를 싫어한다. 순창고추장이나 홍초같은 브랜드는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매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Q. 일반적인 전략으로는 뒤집기 힘들겠다.

처음엔 ‘쌀’을 강조했다. 매장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여사원들이 소비자들에게 ‘먹힌다’고 말해주어서다. 특히 2000년대 후반과 2010년 초반에 우리 쌀에 대한 붐이 있었다. 고추장을 쌀로 만들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오뚜기는 ‘강황’을 전면에 내세웠다. 백 세까지 살 수 있고 머리도 좋아진다고 일관되게 말해왔다. 강황과 쌀이 맞붙었을 때 ‘건강’으로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Q. 그래서 어떤 전략을 세웠나?

브랜드 이름이 ‘카레여왕’ 아닌가. 그런데 이름만 이렇게 지어놓고 커뮤니케이션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왕’을 커뮤니케이션 포인트로 가져가기로 했다. 우리 카레에는 10시간 동안 우려낸 프랑스식 소고기 육수 퐁드보가 들어간다. 그래서 ‘여왕의 방식’으로 카레를 만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Q. 일종의 프리미엄 전략인 셈인데, 사람들이 이를 쉽게 받아들일까?

사실 퐁드보 육수가 만들어내는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맛’이다. 음식은 뭐니뭐니해도 맛이 있어야 한다. 오뚜기처럼 건강을 강조하지 않고 ‘건강한 카레 대 맛있는 카레’의 구도로 가져가고 싶었다. 다행히 소비자 조사를 통해 맛에서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 차이를 직접 말하기보다 ‘여왕의 방식’이라는 컨셉으로 이어지게끔 했다. 제품의 차별화된 특성과 제품명의 아이덴티티를 연결한 것이다.

Q. 매출을 보면 ‘카레여왕’은 꾸준히 성장을 계속해왔다. 갑작스러운 전략 수정이 위험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데이터를 보면서 얼리어답터, 이노베이터 군에서는 시장에 진입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중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제품력만 가지고는 어렵다. 고객들에게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를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카레여왕’을 먹을 때마다 여왕의 방식으로 만든 진짜 요리를 먹는다는 기분이 들게 하고 싶었다.

Q. 인터뷰를 하다 보니 업무 영역이 꽤 넓다는 느낌이 든다. 대상의 브랜드 매니저는 주로 어떤 일을 하나?

다양한 직군의 마케터들이 있지만 특히 제조사, 그 중에서도 식음료 쪽이 더 힘들다. 원가 계산에서 판매 영업, 클레임 처리까지 모두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먹거리의 특성상 특히 소비자들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얼마 전 식품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카레에 육두구라는 향신료가 들어가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들어간다고 했더니 얼마나 들어가는지를 알려달라고 했다. 배합비라서 알려줄 수 없지만,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하라고 말하고 끊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방송작가였다. 인도 요리 전문점에서 육두구가 많이 들어간 카레를 먹고 알레르기 때문에 병원에 실려간 내용의 방송이었다.

사실 논문을 찾아보면 5g 이상 먹으면 독성이 있을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 제품엔 한 봉지에 0.2g이 들어간다. 세상에 어떤 음식도 많이 먹으면 다 독이 된다. 하지만 특정한 부분만 강조해서 방송을 통해 공포를 조장하니 두려움이 생기는 거다.

Q. 대상은 MSG의 원조 격인 미원을 만드는 회사다. 얘기를 듣다 보니 MSG를 얘기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물론 글루탐산나트륨(MSG)를 넣지 않고도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대신 가격이 올라간다. 그 가격에 맞춰 제품을 출시하면 서민들이 지금처럼 쉽게 사서 먹을 수 없게 된다. 사실 MSG는 1908년에 이케다 키쿠나에가 처음 성분의 분리에 성공한 이후 일본 식민지를 통해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그가 세운 회사 ‘아지노모토’ 역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그때 아지노모토가 맨 처음 한 일은 평양에다 사무실을 차리고 냉면집을 만든 거였다. 냉면 가게들을 모아 면미회라는 조합도 만들었다. 국물 문화가 주인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거다. 실제로 1920~30년대를 보면 가장 큰 광고주가 바로 아지노모토였다. 우리는 이미 MSG를 백 년 이상 먹어오고 있다.

Q. 오랫동안 먹어왔다고 해서 그게 좋다고는 할 수 없지 않나.

MSG는 원래 자연계에 있는 성분이다. 단백질 성분이 분해되면서 이른바 ‘감칠맛’이라고 불리는 우마미가 나오게 된다. 소고기 뼈를 우려내도 글루탐산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육수나 ‘카레여왕’에 들어가는 퐁드보 역시 뼈에서 추출한 글루탐산이 맛을 내준다. 물론 안 좋은 재료를 쓰면서 이를 숨기기 위해 MSG를 쓰는 곳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식당은 사실 맛을 내기 위해 MSG를 쓴다.

Q. 그런데 왜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지 않았나?

대응하는 순간 더 큰 노이즈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상 역시 재작년 까지는 아예 무대응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원 르네상스’라는 이름의 홍보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놓고 홍보하기는 조심스럽다. 이전 직장에서 일할 때 단팥빵에 지렁이가 나왔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그런데 이 내용이 MBC 뉴스데스크에 보도되고 클로징 멘트에까지 언급되었다. 결국 그 사람이 일부러 집어넣은 걸로 밝혀져서 구속까지 되었지만 이미 상황은 어려워진 후였다. 그래서 아예 언급되지 않는 게 가장 좋다고 여긴다. 대응하는 순간 늪에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Q. 김성령을 모델로 내세워 ‘칼의 여왕’이라는 재미있는 바이럴 영상도 제작했다.

이른바 팩션이다. 실제로 옛날 이집트나 로마 시대 때부터 커리와 같은 향신료는 상류층의 사치품이었다. 인도가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 인도 남부어 중 하나인 타밀어 ‘카리’가 카레의 유래라는 게 가장 유력한 설이다. 이 커리가 영국 해군의 전투 식량으로 많이 쓰이다가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런 역사 속의 커리와 카레여왕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자 만든 영상이다.

Q. 지금까지의 반응은 어떤가?

영화관에서 ‘칼의 여왕’ 예고편을 보고 빵빵 터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게 진짜 영화냐고 묻는 분도 많다. 재미있고 가볍게 흥미를 유발하는 게 목적이지만 이런 마케팅의 최종점은 ‘카레여왕’이 요리로서의 카레, 향신료로서의 카레로 소비자들의 인식에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보통 광고의 효과는 3개월 정도 후에 반영된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하지만 꾸준히 매출이 늘고 있어서 기대가 크다.

사실 경쟁사인 오뚜기는 덩치가 커서 오히려 움직일 수 있는 폭이 한정되어 있다. 그런 오뚜기가 최근에는 카레를 활용하는 요리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광고 전략을 수정하고 있는 걸 보면 우리 영향도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커리 전문점에서 맛볼 수 있는 고급 카레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다. 한 발 더 나가는 셈이다.

Q. 오래전 보았단 다큐멘터리 ‘누들로드’가 연상된다. 카레의 원형을 제품의 아이덴티티와 연결해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봐도 될까?

그렇다. 카레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을 연결한 ‘스파이스 루트’라는 이름으로 스토리를 개발하고 디테일한 플랜들을 기획 중이다. 개인적으로 역사 이야기를 좋아한다. 작년에 향신료 카레분을 사러 인도의 코친이라는 도시에 다녀왔다. 향신료 무역으로 제일 유명한 곳인데 그곳의 가장 오래된 성당에 바스코 다가마의 무덤이 있었다. 사실 바스쿠 다 가마 역시 향신료를 찾아 그 먼 바닷길을 떠나지 않았나. 콜럼버스도 이사벨라 여왕의 명을 받아 향신료를 찾아 인도로 간 것이고. 이런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스토리들을 제품과 연결해가면 재미있지 않을까?

Q. 브랜드 매니저 문길병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가 궁금하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브랜드로서의 ‘오뚜기’를 존경한다. 50년 이상 디자인 한 번 바꾸지 않고 지금의 아성을 지켜오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 아무리 작은 구멍가게를 가도 오뚜기 카레는 있다. 사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광고나 마케팅보다 중요한 건 현장에서 발로 뛰는 영업사원들의 노력이다. 오늘의 오뚜기는 그런 보이지 않는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영화인듯 영화아닌 ‘카레여왕’ 바이럴 광고 ‘칼의 여왕’
‘여왕의 방식’으로 카레를 만든다면… ‘카레여왕’
카레라이스가 아닌 ‘요리 커리’,한끼 떼울 수 있는 덮밥이 아니라 ‘진짜 요리’, 건강한 카레가 아닌 맛있는 카레.
‘칼의 여왕’마케팅의 최종점은 ‘카레여왕’이 요리로서의 카레, 향신료로서의 카레로 소비자들의 인식에 자리매김 하는 것이다.
그가 작년에 직접 다녀온 인도 코친의 성프란치스코 성당
향신료 무역으로 유명한 인도의 도시 코친에서 만난 향신료 시장.
브랜드 매니저 문길병과 ‘카레여왕’ CF모델 김성령.

*출처: 2014년 6월 20일, <유니타스브랜드> 페이스북 ‘ 유니타스씨, ‘카레여왕’ 매니저를 만나다 — UB 탐방 시리즈 #3.’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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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 비버 말고) 저스트 비버, 박요철의 다이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