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s your name?

브랜더’s 다이어리 #0-1

Just Beaver’s Diary
Brand & Mark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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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노트북에서 가장 먼저 탈이 난 건 놀랍게도 ‘로고’였다.
일곱 글자로 된 영문 로고명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가자 놀랍게도 어린 시절 친구의 이름 하나가 덩그라니 남았다. 친구의 이름을 우리집 노트북에 달고 다닐 순 없기에 나머지 글자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친구의 이름은 한웅이다). 나머지 여섯 개의 알파벳들이 거짓말처럼 손쉽게 커터 칼날에 떨어져 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이 노트북이 ‘MUJI’ 브랜드로 거듭난 건 아니었지만.

이 작은 사고는 오랫동안 묵묵히 제 역할을 감당하던 소니 노트북이 와이프의 실수로 비명횡사하면서 시작되었다(아내는 핸드폰을 키보드 위에 올려둔 채 가열차게 노트북 두껑을 닫았다고 한다). 어차피 집에서 아이들이 영어 공부나 게임하는 용도로만 쓸 것 아닌가. 기존의 브랜드가 가진 아우라를 철저히 무시한 채 오로지 ‘가성비’의 잣대로 가격비교 사이트들을 서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성비’에 한해 칭찬과 명성이 자자한 노트북 하나를 찾았다. 그 노트북이 도착하던 날, 그 ‘가성비’란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뼛속 깊이 체험할 수 있었다. 그 말은 수치 상의 성능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기대하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던 셈이다.

하지만 사람 욕심이라는게 어디 그리 쉽게 잦아드는가. 그래도 한 번씩은 집에서 만질 일이 생길 때면 장난감 컴퓨터를 연상시키는 키보드의 이질감이 못내 견디기 힘들었다. 심지어 특정 키보드는 미사일 발사 스위치 누르듯 꼭꼭 눌러줘야 비로소 자음 하나를 겨우 토해냈다. 전원키는 누르는 감촉을 느낄 수 없어 화면을 보고서야 전원이 들어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액정을 잡아주는 플라스틱 패널은 잇몸병 환자의 그것처럼 따로 놀고 있었다. 급기야 부팅이 안되는 일까지 발생했는데, 어설픈 조립 실력으로 하드디스크를 다시 끼우니 그제야 부팅이 되었다. 얼핏 봐도 상당한 이격이 보이는 넓고 넓은 내부 구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모두가 그 잘난 ‘가성비’ 탓인 셈이다.

아직 이런 문제로 항의 따위를 한 적은 없지만, 혹 그래본들 노트북의 판매 담당자는 ‘성능’에는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항변할 것이다. 그 가격에 무슨 ‘감성품질’이라도 원하느냐고 되려 탓할런지도 모른다. 이쯤 되니 소위 ‘브랜드’를 논할 때마다 동일하게 듣는 다음 한 마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제품 싼 가격에 만들어내면 됐지 브랜드는 무슨 브랜드란 말인가 ‘하는, 그 야단 아닌 야단의 말 말이다. 이른바 ‘가성비’ 최강의 노트북 브랜드는 어쩌면 그러한 우리의 합리적인 사고와 선택이 만들어낸 그런 제품인지도 모른다.

문득 그 반대의 정점에 서 있는 브랜드 하나를 떠올려 본다. 심지어 보이지 않는 컴퓨터 내부까지 디자인한다는 그 브랜드 말이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쓴다’는 말은 ‘보이는 곳은 오죽하랴’라는 신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런 신뢰는 10년, 혹은 100년 뒤까지 지속 가능한 브랜드의 ‘생명’을 만들어낸다. 그렇다. ‘가성비’는 오늘날 우리가 마음을 두고 있는 가치의 다른 말이다. 비용 대비 효율을 생각하자면 키보드의 키감이나, 플라스틱 사출의 어설픈 마감이 만들어내는 이른바 ‘싼티’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다. 문제는 그 대상을 100년 이상 갈 수 있는 하나의 ‘브랜드’로 대하는 순간 그 사소한 디테일, 감성품질이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모든 제품과 서비스가 그래야 한다는 억지를 부릴 생각은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조금 더 길게 생각해보자는 거다. 당장이 아닌 다음 세대를. 혹 그런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이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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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 비버 말고) 저스트 비버, 박요철의 다이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