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좋은 삶은 무엇인가요?

Juon Kim
C.Note
Published in
21 min readJun 9, 2022

<좋은 삶 질문집> 런칭 및 오픈 기념 비하인드 토크 현장 기록

목차

  • 2022년 5월 23일, <좋은 삶 질문집> 런칭!
  • 아카이브 오픈 기념 비하인드 토크 Part 1. 연구진과 영상 제작자의 이야기
  • 아카이브 오픈 기념 비하인드 토크 Part 2. 기획자와 디자이너에게 듣는 제작 후기
  • 당신에게 좋은 삶은 무엇인가요?

2022년 5월 23일, <좋은 삶 질문집> 런칭!

https://goodlifearchive.kr

<좋은 삶 질문집>은 씨닷이 SH서울주택도시공사와 함께 2020년 1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9개월 간 진행한 <지원주택 당사자 참여서사 연구 및 디지털 아카이빙 연구>의 인사이트를 공유하기 위해 만든 온라인 아카이브입니다. 이 연구는 지원주택이 필요한 주거약자 15명의 생애 이야기를 분석하고, 이중 10명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한 질적 연구입니다(현재 홈페이지에는 9개의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주거를 ‘좋은 삶’을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로 바라보고 이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고민했는데요. 나아가 개인의 취약성에 대한 낙인, 차별, 혐오, 배제와 같은 사회문제를 유발하는 구조를 시스템 사고(systems thinking)로 분석하며, 모두가 지역사회에서 자립하여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향성을 제안했습니다.

(* 연구를 함께 한 줄리의 글 “숫자에 가려진 사람들의 좋은 삶 에서 연구를 기획하고 실행할 때의 고민을 자세히 만나볼 수 있어요.)

이 온라인 아카이브에 들어서면 네 개의 큰 질문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어떤 공간에서 평안할 수 있을까? 나답게 일할 수 있을까?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 15명의 생애 이야기를 읽으며, 저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아보기를 바라며 만들었습니다.

런칭을 알리는 소식에 200명 가까이 오픈 알림 신청을 해주셨고, 오픈 이후 열흘 간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아와주었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홈페이지의 ‘좋은 삶 서베이’에 자신에게 ‘좋은 삶’이 무엇인지 다양한 의견을 남겨주셨어요. 홈페이지 덕분에 지원주택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는 의견, 좋은 삶에 대해 고민해볼 기회가 되었다는 소감도 남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번 글에는 <좋은 삶 질문집> 오픈 기념 비하인드 토크 겸 온라인 집들이 이야기를 상세히 기록해봅니다.

아카이브 오픈 기념 비하인드 토크 Part 1. 연구진과 영상 제작자의 이야기

우리 연구에서 ‘집’이 중요한 화두이기도 하고, 홈페이지 역시 일종의 ‘집’이란 컨셉을 살려서 오픈 기념 행사를 “온라인 집들이”라고 붙여봤습니다. 이 연구를 함께 만든 사람들을 초대해서 제작 후기를 들어보고, ‘비하인드’ 토크인만큼 편안한 분위기에서 서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토크를 시작하며 여러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눴는데요. 특히 연구참여자 중 한 분인 윌 님도 참석해주셔서 더욱 기뻤습니다.

토크는 연구 파트와 아카이브 파트로 크게 둘로 나눠서 진행되었어요. 연구 파트에서는 연구 총괄을 맡은 씨닷의 한선경 대표, 연구에 참여한 김현중 연구원(다니엘), 영상제작으로 협업한 장은선 PD가 각각 연구 여정 및 영상 작업이 어땠는지 소개하고 소회를 나눴습니다.

1) 선경의 연구 여정 소개

선경은 <좋은 삶 질문집> 이야기에 앞서 어떻게 이 연구가 시작되었고, 이 연구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온라인 아카이브 작업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몇 년 전 씨닷이 지원주택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복기해 들려주었습니다.

“씨닷은 원래 연구보다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일을 많이 했어요. 씨닷의 기존 활동과 지원주택 현장을 어떻게 만나게 할까 고민하다가, 이야기를 들으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지지해 줄 체인지메이커들과 함게 지원주택을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었어요. 다양한 포용사회를 위한 가치를 이야기하는 언유주얼 서스펙트 페스티벌(언서페)의 세션으로 지원주택을 소개했습니다.

당시는 지원주택 시범사업이 거의 끝나고 서울시 지원주택 조례도 만든 후 본 사업을 만드는 중이었는데, 언서페에서 장애인부모회나 당사자, 실무자들이 새롭게 만나는 자리도 만들고 막 입주한 분들과 동네 주민이 만나는 자리도 만들었어요. 이 과정이 씨닷에게는 화학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했어요. 지금도 그 밤을 생각하면 무슨 세션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로 말하면서 바빴던 기억이 나요. 우리가 생각했던 세상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지원주택 덕분에 씨닷도 연결을 통한 변화라는 주제를 더 확장해서 우리의 연결이 시스템적 전환이 될 수 있을지까지 고민하게 되었는데요. 다양한 걸 시도해보고 싶어지면서 연구도 들여다보게 된 것이죠. 다크매터랩스의 강은지 님 소개로 <Hard Edges>라는 웹사이트를 알게 되었고, 당시 SH 주거복지처 서종균 처장님께서도 저 프로젝트에서처럼 지원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얘기하셨어요. 그리고나서 저희도 본격적으로 어떻게 하면 지금 지원주택에서 스토리텔링을 새롭게 해볼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연구라는 것이 현상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정보를 조사하고 정리, 분석해서 새로운 정보로 만드는 거라고 본다면 대상과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길 수 밖에 없는데요. 저희가 하고자 한 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의 변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다가갈 방법을 찾아야했어요. 그래서 관찰을 하는 연구보다는 일종의 동사 같은 연구를 시도했어요. 지원주택이라는 솔루션 그 자체보다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게 됐던 게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했습니다. 어떻게 지원주택을 통해서 바뀌었는지를 보여주기 보다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지원주택에 오게 됐는지 보고 싶었어요. 또 그 과정에서도 다른 방향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보고 싶었어요. 노숙이나 질환으로 괴로워하지 않고 자기 삶의 안정된 기반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더 일찍 생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생애서사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삶이 꾸려지는 현장, 직장, 가족 등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보고 어떤 사회구조, 제도적 시스템 아래서 선택하게 되었는지 살펴봤어요. 그러면서 이분들이 어떤 사람들을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패턴은 알게 되었고 이를 분석해서 인사이트를 도출했습니다.

또 이 과정을 어떻게 더 시스템적으로 볼 수 있을까 질문하면서 사람들의 역량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습니다. 시스템적 구조는 한 사람이 지원주택을 갖게 된 조건으로서의 장애나 질병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정체성과 제도와의 연결성을 보는 과정인데요. 삶의 장면의 뒷면을 보려는 노력과 더불어 이들을 시스템의 피해자나 결과로 보기보다는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을 하려고 했는지, 어떤 시도가 있었는지, 무엇이 도움이 되고 도움이 되지 못했는지, 각자의 역량을 어떻게 사용하려고 했는지 많이 고민했어요. 그 결과로 만나는 이야기들이 우리가 비슷하거나 다른 삶을 살게 된 배경이지 않을까.

영상으로 만든 이야기들을 잘 보이게 하려고 온라인으로 아카이빙 하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했지만, 연구 종료 직후에는 여러가지 상황으로 그렇게 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 마음의 용기를 내어 웹사이트로 만들게 됐습니다. 글로 다듬어진 이야기와 함께 목소리와, 몸짓, 분위기 등을 통해 다양한 감각을 활용해서 이야기들을 만나게 되실 텐데요. 그것이 우리가 이분들을 직접 만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2) 다니엘의 연구 인사이트 소개

이어서 다니엘이 연구를 통해 발견한 내용들과 연구를 진행하며 느낀 소회를 공유했습니다.

“연구진은 생애사 인터뷰를 통해 당사자들이 살아온 여정을 함께 살펴보면서 개개인이 추구하는 다양한 좋은 삶의 모습들을 그려보고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좋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웹사이트 질문집 메뉴의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시면 연구참여자들의 ‘좋은 삶’에 대한 내용들이 나오는데요.

연구참여자들이 좋은 삶을 이야기하실 때 ‘자기결정권’과 관련해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설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거나 가정폭력을 경험한 경우,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억압을 경험했던 분들은 자신의 선택대로 현재를 결정하는 자유를 좋은 삶의 요소로 이야기하셨습니다.

좋은 삶과 ‘일’을 연관지어서 말씀하시기도 했는데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삶’이나 ‘지속적으로 일하는 삶’을 좋은 삶의 모습으로 이야기한 분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서 나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그런 일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동시에 자신의 취약성 때문에 정상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불시에 배제될 수 있다는 긴장감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좋은 삶을 위해 안정적인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연령이 낮은 연구참여자일수록 이 부분을 강조했는데, 불안정한 경제적 여건 때문에 꿈을 바꾼 연구참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일이 생계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고 자아실현의 수단이 되려면 안정적인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상호작용의 필요성이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했습니다.

연구참여자들이 저마다 추구하는 좋은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좋은 삶이란 것이 어느 하나로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삶은 삶의 여정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이러한 좋은 삶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 전 영역에서 개개인의 삶을 돌보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함을 확인하면서 개개인의 ‘좋은 삶’을 가로막는 사회 구조적 문제는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외에, 성장을 파괴하고 좋은 삶의 기회를 박탈하는 위험요소 중 하나인 ‘폭력’, 삶을 유지하게 하고 더 나아가 삶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일’, 사회 안에서 좋은 삶을 이루기 위해 지원하고 지지해야 할 ‘관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QUESTION — 좋은 삶 질문집>에서 확인해주세요.)

3) 은선 피디의 제작 과정 회고

이번 생애사 인터뷰는 영상으로까지 기록했다는 점이 특별한데요. 이 작업을 함께해준 장은선 피디와 리인규 감독 중 은선 피디님이 토크에 참여해 작업 후기를 나눠주셨어요.

“작업을 하면서 가진 고민은 크게 두 개입니다. 하나는 인터뷰이와의 관계 설정이고, 두번째는 인터뷰이 분들의 인생을 한 영상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인데요. 관계 설정은 다큐든 연구든 라포 형성이 매우 중요해요. 이 프로젝트에서는 씨닷의 연구원들이 먼저 만나서 신뢰관계를 만든 상황에서 영상팀이 어떻게 끼어들어서 그 에너지를 다시 만들지 고민이었어요. 씨닷 연구원들이 인터뷰이들을 만나서 나눴던 것들을 공유받으면서, 녹취록 전체를 훑으면서 대화의 양상이나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주제 등을 나눠주셨어요. 인터뷰이가 이야기 나누는 방식, 더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리 살펴볼 수 있어서 실제로 만났을 때도 빠르게 적응하고 얘기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인터뷰 후 인사이트도 나눠주셨는데 그것도 가이드가 되었어요.

당연히 당사자분들께서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고민이 해결됐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정돈된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시기도 맞아야하고요. 다행히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분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준비가 됐던 분들이여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한사람의 생애를 어떻게 영상 하나에 담아낼지는 크게는 생애사와 맥락을 같이하고 전세계를 톺아봐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평소 연출자로서 먼저 메세지를 잡고 그걸 중심으로 작업을 풀어나갔는데, 이번엔 연출자가 아닌 카메라 안의 당사자가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풀어내는게 중요한 작업이여서 이분은 어떤 이야기를 핵심으로 꺼내고 싶어할지를 계속 되뇌이며 작업했습니다. 다 담아내진 못해도 당사자 스스로 가지고 있는 좋은 삶, 거주환경에 대한 핵심 에피소드를 풀어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러다보니 전해주신 이야기 뿐만 아니라 연출적으로도 더 하고 싶으면서도 더 하려니까 어려워지더라고요. 고유한 이야기를 방해하는 것 같고,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소극적으로 했는데, 그 부분은 뭐가 옳았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연출적인 부분을 더 해야 했을까 싶어 아쉽기도 한데, 더 했다면 아니었을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작업에 영상제작과 인터뷰어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했어요. 당사자분들과 먼저 인터뷰를 나눴던 연구원들이 동행해서 함께했는데, 영상 촬영 때 이야기가 안나오면 어쩌지, 이분이 마음을 안 열어주면 얘기를 영상에 담지 못하는데 하는 긴장이 항상 있었어요. 당사자분들이 이야기를 너무 잘해주셔서 환대받는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작년에 팀 회고에 “누군가의 삶에 초대받아 산책하듯이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게 감사하다”고 적었더라고요. 제 인생도 협소한 편이라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분들을 많이 만나서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제 세계도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고, 한 분 한 분이 소중합니다.

이후에 문득문득 작업을 돌이켜보는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제게 ‘수치심’이라는 키워드가 남았어요. 인터뷰이 대다수가 수치심을 느꼈던 기억이 많았어요. 예를 들면, 거리생활을 하면서 느낀 시선이나 시설의 차를 타고 여행 갔을 때 느낀 사람들의 시선, 장애를 이유로 받았던 멸시 등. 그런 얘기를 들으며 각자가 가진 취약함이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지에 따라 삶의 반경이 달라지겠다 싶었습니다. 제도적, 문화적으로 타인을 존중하고 다양성이 인정받는 사회는 종료 지점이 있는 게 아니라, 전 인류가 꾸준히 추구해야 하는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프로젝트 같은 작업이 전진을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카이브 오픈 기념 비하인드 토크 Part 2. 기획자와 디자이너에게 듣는 제작 후기

이어서 나혜린(주니) 기획자, 양사윤(세이) 디자이너와 함께 몇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온라인 아카이브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 <질문집 읽는 법> 작업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아무래도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토대로 한 웹사이트 메인 페이지인데요. 이 부분에서 주요하게 봐주셨으면 하는 건 오른쪽에 형광색으로 사람이 팔을 벌리고 서있는 게 접근성 활성화 버튼이에요. 저는 이 기능을 찾는 데 주력했어요. 이걸 통해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지, 접근성 디자인accessibility design을 적용하는 페이지인지 확인하려했어요. 또 아카이브가 인사이트를 포함하고 있지만 누구의 이야기가 가장 잘 들렸으면 좋겠는지, 어떤 초점을 갖고, 어떤 메시지가 어디에 닿았으면 좋겠는지, 화자와 청중을 누구로 맞출 것인지 많이 이야기했는데요. 그 결과 생애사 아카이브를 중점으로 생애서사가 많이 알리는 방향으로 정리가 되었어요. 청중이라 함은 사회혁신 분야나 지원주택과 관련된 분들도 좋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누구나 자신의 삶이나 타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주니)”

“저희 질문집이 굉장히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요. 지원주택이라는 개념 자체가 저한테도 새로웠던 만큼, 낯설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겠다는 생각으로 궁금하게 만들고 탐색하는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물찾기처럼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연구보고서를 온라인에서 읽는다는 느낌보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시각적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짧지만 의미있는 메시지를 담은 인용문을 배치했어요. 각각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아카이브 코너가 있고, 질문집과 아카이브에서는 연구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했고요. 방문해주신 분들도 용기를 내서 자신의 좋은 삶은 무엇인지 답해보고, 연구참여자분들에게도 메시지를 보낼 수 있도록 기획했습니다.(세이)”

“내용 중에서는 아카이브가 가장 중요하고 지루하지 않으면서 집중할 수 있도록 끊어서 넣으려고 고민했어요. 다양한 기술이 세상에 있지만 우리가 쓸 수 있는 방법은 숨겼다가 보여주는 방식인데요. 메인 페이지에서는 그림자들이 담겨있는데 그걸 움직여서 관심을 가지고 비추면 빛나기도 하고 질문집에서도 그림자의 이모지를 지나가면 그걸 궁금하게 해서 선택하면 살펴볼 수 있게, 후루룩 옵션과 살펴볼 수 있는 옵션을 모두 만들었습니다.(세이)”

“첫 페이지를 많이 고민했어요. 주온과 주니가 생각했던 건 이 각각의 이야기가 너무 많은 이야기 중 일부지만 이 안에서도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는 느낌을 주면 좋겠다, 방에 들어가는 느낌이면 좋겠다고 해서 문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스티커를 붙이고 문이 열리고 닫히고 하는 것도 해봤고요. 근데 그것보다 인용문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해, 커뮤니티가 만들어진다면 도시의 모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다양한 블럭들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위에서 쳐다본 마을처럼 보일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세이)”

2) 작업과정에서 가장 고민이 되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혹은 특히 어려웠던 부분은?

디자이너를 혼란스럽게 만든 수많은 지시어와 시안들

“가장 처음 고민한 건 브랜딩이었어요. 브랜딩도 좁은 단어 같긴 한데, 시각화 작업에 앞서서 이 연구결과를 어떤 톤으로 전달할지가 어려웠습니다. 가볍게 무겁게 딱딱하게 말랑하게처럼 여러 축을 갖고 다양한 시도를 해봤는데요. 그중에서 걸러내고, 서체에 있어서도 주니가 열심히 리서치를 해서 다양성을 드러내는 서체도 제안해주셨고. 다양한 형태의 아이콘이 들어가면 어떨까 얘기를 해주셔서 피드백을 바탕으로 로고를 만들었어요.(세이)”

“초반 회의에서 우편함 느낌이나 대문이나 집 모양을 다르게 넣어보면 어떨까 고민하는 와중 계속 반복되는 키워드가 ‘문’이었어요. 그래서 집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주로 했던 것 같고요. 그렇게 지금 보이는 열쇠와 물음표가 보이는 형태가 되었네요. 가장 사적인 집으로 들어가는 열쇠와 좋은 삶으로 가는 질문. 색상은 하이라이트하는 네온 칼라와 깊은 생각을 보여주는 블루/보라색 톤 두 색깔 중 뭘 메인 컬러로 쓸까 하다가 스펙트럼으로 만들었습니다.(세이)”

“세이가 없었더라면 큰 일 날 뻔 했네요(웃음). 연구 결과를 아카이빙 하는 것이다보니 어느 하나 자르는 것이 어렵다고 느꼈는데, 세이가 그 부분을 잘 보일 수 있게 혹은 축약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보여주셨어요. 또 웹상에 올라간다는 것은 곧 기록으로 남는다는 건데 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당사자분들의 신상이 노출되면서 그분들이 또 다른 폭력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것이 고민되었어요. 그래서 클릭했을 때 더 자세한 정보가 나오게 하고 그전까지는 정보를 축약하거나 생략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제가 장애 당사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봤을 때 이 페이지가 접근성이 뛰어날지도 걱정됐어요. 노력한다고 했는데 잘 됐는지는 피드백에 따라 업데이트를 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주니)”

3) 이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느끼게 된 것, 변화하게 된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뻗어가기를 바라나요?

“씨닷과 함께 일하면서 씨닷이라는 조직이 구성원들의 취약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지하는 방식을 보고 변화한 지점이 있고요. 또 지원주택에 대해 알게 된 점도 커요. 막연하게 ‘지원주택 필요하지’ 정도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 가시화된 걸 보니 필요성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일할 수 없었던 조건과 환경에 있다가 지금 일할 수 있게 된 분들의 이야기를 보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 정책이 잘 됐으면 좋겠고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주거독립이 필요한 아동, 청소년 독립을 위해서도요. 이 목소리가 닿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 기관과 협력하고 목소리를 내야 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 중입니다. (주니)”

“개인적으로는 지원주택이라는 내용에 대해서 깊게 공부를 하게 됐어요. 내용을 읽고 웹에 얹어야 하기 때문에. ‘폭력’ 관련한 카테고리를 작업할 때는 각각의 이야기가 제게 세게 다가와서 페이지를 작업하면서 계속 앓았던 것 같아요. 이런 얘기가 한사람 한사람에게 줄 수 있는 울림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된 작업입니다. 지금 공부를 하려고 독일에 와서 살게 되었는데 그전에는 잘 안보였던 게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보이게 되었어요. 장애가 있는 분들도 스스로 장을 보면서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나 자기결정권에 대한 부분처럼요. 한국에서는 대부분 시설 생활을 하니까 도움이나 돌봄이 필요한 분들이 잘 안 보였는데, 얼마 전부터는 동네에서 장애인들이 도움주는 선생님과 같이 장을 보는 풍경을 보게 됐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하게 됐지, 궁금증도 생각나고 제게 재밌는 변화가 생기고 있네요.(세이)”

저는 이번 작업을 위해 주니, 세이 두 분을 초대해 작업하면서 여러 차례 감동 받았는데요. 이렇게까지 내용을 깊이 숙지하고 공감하면서 그것을 페이지 기획과 디자인에 촘촘하게 반영하려는 분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연구진으로 참여했던 저의 경우, 한번 일단락 지은 보고서를 오랜만에 열어보는 게 꽤나 부담스러웠어요. 연구의 한계나 과정상 아쉬운 점만이 기억에 크게 남은 상태였거든요. 이 결과물을 다시 열어서 공개해도 될지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웹아카이빙 작업이었는데, 새로운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구 내용뿐만 아니라 저의 태도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어요.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두 분이 연구참여자들의 이야기와 연구 결과에 공감하는 모습을 통해 연구의 의미가 확장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에요. 그러고서야 연구자로서의 부족함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우리가 들은 소중한 이야기와 발견한 깨달음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내 연구의 효용성을 단지 내가 한 기여의 크기로 가늠하는 게 아닌, 어디에 어떻게 도달할지 고려하는 것 또한 중요한 것이었어요. 개인 역량의 문제, 분석의 아쉬움에 집착하는 걸 넘어서, 기획자와 디자이너의 작업을 통해 연구결과가 사회화되는 과정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컸습니다. 3월에 한 카페에서 주니와 <좋은 삶 질문집>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떠올리던 순간의 기쁨도 오래 기억할 것 같아요. 두 분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고, 이 글에 한 번 더 기록해둡니다.

당신에게 좋은 삶은 무엇인가요?

끝으로 참여해주신 분들의 소감 일부를 나눠봅니다.

“웹사이트 소식 처음 봤을 때도 반가웠고, 왜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할 수 있는데 그 동안 안 하고 못했을까 싶었습니다. 연구보고서를 정부나 부서들과 공유하고 우리가 했던 것들이 어떤 시행착오나 참고가 될 수 있을지 얘기는 많이 했는데 실제로 구현된 적은 거의 없었거든요. 결국엔 막판에 가서 이것이 과연 공개되도 될 까 어디까지 누구에게 공개할지를 짧게 고민하고 덮어버려요.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끼리 보고 우리끼리 나눕시다 하는 것을 많이 봤어요. 프로젝트 상황이 다를 수 있겠지만 이 웹사이트가 공개됐을 때 일단 그런 부분에서 반가웠고 기록이 공유됐다는 점에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김상호/ 정림건축문화재단)”

“발달장애인 당사자로서 봤을 때 연구 뿐 아니라 홈페이지에 실린다는 게 의미가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연구만 한다고 하고 돈만 주고 끝나는 일이 많았어요. 연구하고 돈주고 끝나는게 아니라 오랜시간이 흘러서라도 홈페이지를 만들었다는게 박수치고 싶고요. 응원하고 싶어요. 지원주택의 의미를 더 많이 알게된 것 같아요. 홈페이지 잘 됐으면 좋겠고, 연구도 더 잘됐으면 좋겠어요. (박경인/ 피플퍼스트 활동가)”

여러 반응들을 보면서 연구 결과를 온라인 아카이브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또 경인님의 응원을 통해서도 씨닷이 하려는 연구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됩니다.

다니엘이 제게도 연구 소회를 얘기해달라 했지만 현장에서는 시간 관계상 나누지 못했는데요. 연구진이자 아카이브 기획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무래도 첫 번째 인터뷰이였던 호영선 님과의 만남이었어요. 굉장히 긴장했었고, 막 만난 분의 인생 이야기를 그렇게 들어본 게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리고 호영선 님이 들려준 탈시설 이야기에는 아주 커다란 해방감이 있었는데요. ‘후리덤’을 외치시던 목소리가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연구에 참여하면서 한국 사회를 “시설 사회”(참고)의 맥락에서 다시 보게 되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살던 동네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다양한 종류의 시설로 향해왔다는 걸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설이라는 공간이 그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소가 되어 서로를 더욱 단절시킨다는 것도요. 그렇다면 시설이 아닌 선택지는 무엇이 있어야하는지, 시설이 없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상상하고 실현시킬 것이냐는 질문이 과제로 남았습니다.

이제 시설의 존재는 불가피하다는 과거의 관점으로부터 방향을 바꿔서, 탈시설, 자립 생활, 자기결정권, 좋은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무엇을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는지 들어볼 때, 상상할 수 있는 삶의 범위가 확장되고 ‘모-두’ 라고 말할 때 떠올리는 이들이 다양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삶 질문집>을 오픈하고 온라인 집들이까지 마치고 나니 또 새로운 시작점에 선 것 같네요. 올해 안에 다양한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함께 모이고 이야기 나눌 자리들을 만들고 싶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제안을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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