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지원주택 컨퍼런스를 돌아보며

Juon Kim
C.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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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in readMay 13, 2022

‘모-두’를 위한 교육과 교류, 또한 연구의 장

씨닷은 2020년에 SH와 함께 제4회 컨퍼런스를 기획, 운영했다. 이번에는 SH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컨퍼런스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기획논의를 시작했다. 여러 곳에 펀딩을 요청했지만 쉽지 않았고, 개최가 불투명한 상황이었음에도 목표 일정을 정하고, 홍보를 시작했다. 그러고나니 참여기관과 개인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보냈고, 최소한의 실비를 가까스로 마련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씨닷은 비용부담에 대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사람들을 설득하고 초대하면서 이니셔티브를 갖고 추진해나갔다. 씨닷이 ‘포용사회로의 전환’이라는 비전을 추구하면서 만나게 된 지원주택 현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더 세밀하고 구체적인 필요를 보게 된 까닭이다. 우리의 역할이 보이고, 역량도 있다면 한발 더 나서보자는 강한 의지가 반영된 사업이었다.

*지원주택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글을 참고 (링크)

지원주택 정책은 시범사업을 마치고 본사업에 접어든지도 몇해가 지나면서 운영기관과 실무자가 꾸준히 늘어가며 확장되는 중이다(그럼에도 수요에 비해서는 공급이 많이 모자란 상황이다). 그런 만큼 정책이 자리잡기 위해 필요한 세부적인 보완점이 발견되기도 하고, 당사자 영역별로 다양한 어려움이 있기도 하다. 지자체에 한정된 정책을 넘어 중앙정부 정책으로 제도화 되기 위해 가야할 길이 만만치 않고 동시에 대상을 확장해야하는 요구도 있다(이번 컨퍼런스에서 다룬 ‘청소년 지원주택’이 한 예다). 정책 바깥으로는 여당 대표가 장애인 이동권 시위 비난으로 한껏 주목을 받자 뒤이어 ‘탈시설’을 겨냥하며 배제와 차별을 조장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에 굴하지 않고, 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살아가기 위한 대안으로 더욱 주목해야할 정책으로서 단단하고 촘촘하게 자리잡도록 여러 방면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번 컨퍼런스 또한 기획되었다. 우리는 지원주택 컨퍼런스가 교육의 장이자 교류의 장, 또한 연구의 장이 되길 기대했다. 핵심이 되는 가치와 개념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현장에서 분투하는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서로에게 영감을 얻고 지지를 보내는 자리다. 여기서 나온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분석하여 더 나은 실천 방안을 찾기도 한다.

세션1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님의 발표 모습

지금 꼭 해야할 이야기가 펼쳐지는 자리를 만들자

기조발표를 포함해 세션을 기획하면서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 적은 자원으로 간결하게 치러야하는 행사이니만큼 이 시점에 꼭 해야할 이야기가 펼쳐지는 자리를 만들자. 알맹이만 남겨서 잘 전해지도록 하자. 외부의 펀딩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보다 자유로운 조건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 고민 속에서 이번 컨퍼런스에서 새롭게 시도해본 것은 ‘사전논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솔루션을 찾아야 하는 두 가지 큰 주제를 컨퍼런스에서의 짧은 패널발표와 토론으로 다루기엔 충분치 않을 것을 우려했다. 3월 초, 여러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모여 미리 고민한 내용을 정리하여 컨퍼런스에서 전달함으로써 논의의 깊이를 더하기로 했다. 그렇게해서 세션2와 세션3의 내용이 만들어졌다.

세션2: 지원주택을 위한 생태계

지원주택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내실있는 운영을 지원할 인프라, 중간지원조직, 운영기관 협의회 등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어나갈지에 대해 다각도로 모색합니다.

세션3: 지원주택다운 서비스평가

현재 지원주택 운영기관 서비스 평가기준의 한계점을 살펴보고 서비스가 제공자의 시선에 머무르지 않도록 입주자를 평가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등의 개선 방안을 논의합니다.

*발표자료집은 홈페이지(링크) 참고

이 세션을 포함하여 총 7개의 세션이 준비되었고, 그 중 사전논의에도 함께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가 직접 기획한 특별세션도 있다. 기조발표와 대담에서 지원주택이 어떤 흐름 속에 어디까지 와있고(과거) 어디로 가야하는지 짚어보는 것을 시작으로, 사전 논의에서 이어진 두 주제를 다루고(현재) 지원주택과 관련한 꿈/비전을 결의하고, 오프라인 세션으로 전환해 지원주택이 일터인 사람들(실무자)과 삶터인 사람들(입주자) 각각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세션으로 마무리 되는 구성이다.

각 세션에 함께할 연사들을 섭외하면서는 다양한 주체들이 축제처럼 모여들기를 바랐다. 그 결과 다양한 영역에서 지원주택 확산을 위해 애써온 33인의 모더레이터 및 패널과 함께했다. 지원주택 개념부터 제도화까지 연구하고 도입을 위해 애써오신 남기철 동덕여자대학교 교수님, 민소영 경기대학교 교수님, 서종균 주택관리공단 사장님.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역사를 만들며,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의 중요성을 알려오신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님과 김정하 프리웰 이사장님, 정다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실장님, 김수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대표님. 지원주택을 운영하면서 실제로 작동하는 모델로 만들어온 서정화 열린여성센터 소장님, 문용훈 태화샘솟는집 관장님과 더불어 일터이자 삶터인 지원주택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주실 실무자 선생님들을 모셨다.

또 한국사회에서 아직은 낯선 ‘청소년주거권’ 담론을 형성하고, 의제를 정책화 하기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의 김시연, 제로, 정찬송 님. 대구와 제주의 경험을 공유해주실 이연희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님, 하창수 대구사회서비스원희망마을 팀장님, 현명헌 제주시장애인지역사회통합돌봄센터 센터장님도 함께해주셨고, 국회에서 지원주택 제도화를 위해 노력하고 계신 김예지 의원, 최혜영 의원님의 축사와 장혜영 의원님의 발표(세션4 지원주택을 위한 선언/약속)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실 네 분을 모셨다. 개인적으로는 네 분 모두 지난해 지원주택 당사자 생애사 아카이브 연구를 진행하면서 내가 인터뷰를 맡았던 분들이라, 1년이 지난 시점에 컨퍼런스를 기회로 다시 얼굴을 뵙고 인사 나눌 수 있어 정말 기쁘고 반가웠다. 이렇게 다채로운 연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지 않을 리 없었고,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많은 수의 연사를 섭외하고 소통하느라 고생한 동료들에게 다시금 깊은 감사를 전한다!)

뜨거운 관심이 의미하는 바

다른 행사에 비해 홍보 기간도 자원도 부족했던 탓에 참가자 수에 대해서는 조금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그런데 첫 세션부터 100명을 훌쩍 넘고, 많을 때는 150명에 가까운 참여자가 줌 회의장을 가득 채우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정도 규모의 참여자가 줄곧 유지된 것이다. 오프라인 세션도 마찬가지였다. 교류의 밀도를 높이고자 세션 5의 참여자를 실무자들로 제한했는데도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고, 지원주택 관련 연구자들의 관심도 높았다. 예상보다 참가자가 많아져서 세션을 진행한 중앙주거복지센터 프렌즈홀의 좌석 배치를 당일에 바꿀만큼 가득 찼다.

특별세션 <청소년을 위한 지원주택> 참여자 단체사진

이런 뜨거운 관심을 보면서 이번 컨퍼런스의 의미를 새삼 깨달았다. 단지 몇몇 사람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자리가 아니었구나. 그리고 그 절실함이 맞아떨어지면 그 열기로 많은 것들이 채워지는구나. 이런 생각은 둘째날 오전 특별 세션에 참여하면서 더 확실해졌다. ‘청소년 주거권’도 아직 낯선데, 그간 여러 요구 사항 중 하나로 언급되는 정도에 그쳤던 ‘청소년 지원주택’이 이날 처음으로 독자적인 주제로 당당하게 논의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집이 없는 청소년들이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지 듣고 공감하며, 조건을 재고 따지기 전에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것인지 생각을 바꿔나가자는 제안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오래 활동해온 기본소득 영역과 지원주택의 철학이 공명하는 지점을 가끔 혼자 생각하곤 했는데, 이호연 연구자님이 토론 중에 그 부분을 언급해주셨을 때는 채팅창으로 하이파이브를 보냈다.

주거에 대한 이야기지만 결국 정책이 필요한 당사자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질문하게 하는 지원주택 정책은 기존 입주대상인 노숙인, 장애인, 노인 뿐만 아니라 여기서 논의한 청소년을 향한 관점 또한 전환하기를 요구한다. 보호와 통제, 탈가정 청소년이라는 낙인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동료시민으로 존중하는 태도와 역량을 모두 함께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지원주택에서 출발한 논의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또 한 번 느꼈던 인상깊은 순간이었다.

세션 5 <지원주택 실무자들과의 대화> 진행 모습

오프라인 세션이자, 내가 사회를 맡았던 세션5 <지원주택 실무자들과의 대화>는 굉장히 밀도가 높은 시간이었다. “주택 내에서 발생한 응급상황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자원과 어떻게 연계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하며, 각종 사례를 통해 어려움 속에서도 어떤 원칙과 태도로 각각 일해왔는지 들려주실 땐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거의 초인처럼 느껴지는 업무 범위와 상황을 들으며 “나는 못할 일”이라며 타자화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초인이 아니더라도(사회복지사들도 인간이다)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함께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가 더 중요한 과제로 다뤄져야 한다. 그렇기에 “다사다난한 일터이자 삶의 현장에서 자신을 지키며 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실무자분들의 답변 하나하나가 마음을 울렸다. 실무자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하나의 정책을 만들 때 그 정책을 작동시키기 위해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세션 6 <지원주택과 좋은 삶>에서는 캠프파이어를 하듯 동그랗게 둘러앉아 입주자들의 떨리는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얼마나 용기낸 걸음인지, 사람들 앞에 이렇게 나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까지 오는 여정이 어땠을지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청중으로 함께 했기에 기분 좋은 긴장감 속에서 무사히 진행될 수 있었다. 서로의 꿈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응원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좋은 삶’이라는 키워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이 분들의 이야기는 5월 중 공개될 온라인 아카이브 <좋은 삶 질문집>에서도 자세히 만나볼 수 있다).

세션 6 <지원주택과 좋은 삶> 진행 모습

지원주택이라는 현장

세션 6 말미에 열린여성센터 지원주택에서 일하는 이주연 사회복지사님이 하신 발언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이 날 패널로 참여하신 혜랑님을 응원하고 싶다는 입주민 여러 분을 모시고 오려고 실무자 세션에는 참석하지 못했다는 말씀에서 입주민들과 함께 이 자리에 와있는 기쁨이 생생히 전해졌다. 지원주택 시범사업에서부터 참여했고, 컨퍼런스를 1회부터 쭉 지켜봐오신 입장에서 5회 컨퍼런스에서 보여준 새로운 장면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들려주셨다. 컨퍼런스에 입주민들과 함께 올 수 있는 장이 생긴 것,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삶의 변화를 입주민이 직접 이야기하는 걸 듣는 순간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를 말이다.

이번 컨퍼런스 논의 중에 지원주택 현장의 ‘운동성’과 ‘혁신성’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더 넓어지고 연결되는 동시에 자체적인 조직력을 갖춰야 할뿐만 아니라, 어떤 다른 운동에 얹혀가길 바라면서 그 운동이 지원주택 현장의 과제마저 해결해주리라 막연히 기대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험적인 모델로서 기존의 낡은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아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 현장을 살아내고 버티며, 시간을 쌓고 변화를 목격하는 것 자체도 운동인 동시에, 모델과 제도의 확산을 위해 이 안의 이야기를 더 많이 알리고 의미를 공유해야하는 이중의 과제를 분명히 확인하는 자리였다. 컨퍼런스는 그 이중의 과제가 교차하는 플랫폼이 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서두에서도 말했듯, 씨닷 입장에서 이번 컨퍼런스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가 하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못할 장이라 판단하고 실행을 결단한 드문 기획이었다. 두 번째 언서페로 인연이 된 지원주택 현장. 연구로 교육으로 컨퍼런스로 만나며 계속 더 많은 관계와 고민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도대체 이 안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모-두를 위한 사회로의 시스템 전환에 기여하는 센스메이킹 플랫폼”이 되고자 하는 씨닷의 새로운 비전과 맞닿은 도약의 실마리가 이 곳에 있는 걸까?

확실히 특별한 현장임에 틀림없다. 지원주택에서 살아가는 입주민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연구자, 정책가, 활동가, 혹은 그 안에 딱 들어맞지 않는 씨닷과 같이 다양한 주체들이 곁에서 지지하며 함께 만들어 가는 현장. 자꾸 역할을 찾아내 고민하게 할만큼 매력적인 사람들이, 중요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발견된다(그래서 연구와 컨퍼런스 모두 아카이브에 공을 들이는 지도 모른다). 지원주택을 통해 씨닷은 어디까지 가게 될까? 어떤 꿈을 품은 조직으로 변화할까? 회를 거듭하는 지원주택 컨퍼런스를 통해 엿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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