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씨닷 겨울 리트릿: 서로를 향한 이해 속에서, 공동의 지향점을 점검해보는 시간

돌보는 리트릿

Juon Kim
C.Note
8 min readJan 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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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닷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로 전환해 일해왔습니다. 그렇기에 모든 멤버가 매일 아침 줌 회의실에 모여 ‘체크인’을 합니다. 어제는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오늘 일을 시작하는 몸과 마음의 컨디션은 어떤지 돌아가며 이야기하고 나면 30분이 금세 지납니다. ‘돌보는 조직’을 지향하는 씨닷이 날마다 수행하는 중요한 리츄얼이에요.

코로나 팬데믹 3년차, 매일 아침의 체크인처럼 줌으로 진행하는 대화 자리들에 꽤 익숙해졌지만, 익숙한 것과 충만한 것은 다릅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만큼 직접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순간들이 더욱 소중합니다. 특히 오랜 시간 함께한 멤버의 새 출발을 응원하고 싶을 때나, 다양한 시공간을 거쳐 씨닷과 만나게 된 멤버들을 정성들여 환영하고 싶을 때 만큼은 잠시 화면 바깥에서 모여보기로 했습니다. 이 또한 돌보는 조직을 위한 실험 중 하나라고 여기고 있어요.

새해맞이의 분주함이 미처 가시지 않은 1월 셋째주, 씨닷 멤버들은 겨울 리트릿을 다녀왔습니다. 작년 여름 처음으로 리트릿이라는 시간을 가져본지 6개월만이에요. 바쁜 업무의 틈새에 모이는 것이니 귀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리트릿 준비를 맡은 멤버들이 시간을 쪼개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다른 멤버들에게 간단한 설문 응답도 받았어요.

멤버들은 “씨닷의 구성원들과 정서적 유대, 친밀감을 나눌 수 있는 시간” “평소에 궁금했지만 덜 중요하다고 느껴서 많이 못 나눈 이야기를 걸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시간” “작년을 돌아보고 올해를 내다보는 시간” “각자 어떤 마음으로 일해왔는지 이해하는 시간” 등의 기대를 적어주었어요. 이 내용들을 바탕으로 사업 회고 및 올해 계획에 대한 논의 뿐만 아니라, ‘일하는 나’의 모습과 우리의 조직문화, 각자가 이루고 싶은 것과 고민되는 것들도 꺼내어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길잡이 별을 찾는 여행> 활동을 해온 샘의 역량과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는데요. 특별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려면 무엇을 먹고 에너지를 채우고 기분을 전환할지도 중요한데요. 새로 합류한 멤버 밤이 비건인 덕분에 모든 끼니의 메인 요리를 비건식으로 준비할 계획을 세웠어요. 준비팀이지만 요리에 자신이 없었던 저는 채소 나베, 월남쌈 등등 비건 레시피를 찾아보며 조금 긴장한 채로 리트릿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내 이야기를 꺼내보는 용기

리트릿을 시작하며 마당에서 간단한 워밍업 액티비티를 진행하고 샘의 안내에 따라 곳곳에서 마음에 드는 자연물을 하나씩 집어왔어요. 어떤 마음으로 리트릿을 맞이했는지 체크인을 하고 센터피스를 함께 만들기 위해서에요. 파도가 생각나는 푸른 천 위에 어색하고 낯가리는 마음이나 여러 걱정들을 맡겨두듯 올려놓고나니 본격적으로 리트릿을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앞으로의 일정에서 함께 지켰으면 하는 약속을 함께 정했어요. 이야기를 잘 꺼내고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구절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것 같아요.

오후에는 씨닷의 2021년을 회고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사업과 관련한 중요한 순간을 월별로 늘어놓고 함께 살펴보면서 한해를 정리했어요. 포스트잇으로 가득한 보드가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모은 조각보(patchwork) 같았어요. 그 알록달록한 무늬를 보면서, 작년의 씨닷 안에서는 어떤 리듬이 만들어졌는지, 그래서 우리는 어떤 악보를 어떻게 연주했고 각자에겐 어떤 음악으로 남았는지 이야기 나눴습니다.

저녁에는 둘씩 짝을 지어 ‘명확성 위원회’라는 작업을 통해 내면의 고민을 풀어놓고, 파트너의 질문을 통해 고민의 본질에 다가가보려 했어요. 짝과 등을 맞대고 앉도록 한 탓에 상대방의 긴장한 어깨가 느껴지는 세팅이지만, 서로의 떨림을 공유하면서 오히려 더 진솔해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각자의 고민을 찰떡같이 이해해줄 것 같은 이들과 짝을 지어준 안내자 샘의 혜안이 또 한 번 빛나는 순간이었기도 하고요.

나의 비전, 씨닷의 비전

둘째 날에는 그림카드를 활용해 이야기의 물꼬를 텄습니다. 요즘 씨닷 안에서의 나는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을 듣고 마음에 와닿는 그림카드를 세 장씩 골랐어요. 이번에도 둘씩 짝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는데, 눈덮인 동네 산책을 다녀오거나, 햇볕이 드는 쇼파에 기대는 등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각자가 뽑은 카드가 다채로운 만큼이나 멤버들이 품고 있는 감정들이 다양했어요. 사용한 카드는 원래 ‘딕싯’이라는 보드게임에 쓰는 것인데, 오묘한 분위기를 품은 그림들이 마음 깊은 데를 건드는 듯해, 내밀한 이야기도 잘 끌어내준 것 같아요.

오후에는 ‘소명과 자원’이라는 작업을 했습니다. 미국의 불교학자이자 심층생태학자 조애나 메이시, 몰리 영 브라운의 <생명으로 돌아가기>라는 책에 소개된 작업이에요. 자신의 비전과 그를 위해 필요한 자원 및 즉시 시작할 수 있는 실천을 확인하도록 돕는 활동입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기록한 사람이 파트너에게 ‘당신’을 주어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성이었는데요. 책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네요. “상대방은 우주에서 마침내 명령이 떨어졌다는 듯이 귀 기울여 듣습니다.”(374쪽) 나른하고 몽롱한 오후에 뜨끈한 황토방에 눈을 감고 들었던 짝의 목소리를 다시 떠올려보니, 정말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 2022년의 씨닷을 이야기할 시간이 왔습니다. 본격적으로 계획들을 논의하기 전에, 멤버들이 파악하는 우리 조직 문화 및 사업 역량의 강점과 약점을 함께 분석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후 씨닷은 올해 어떤 현장들과 만나게 될지 선경의 브리핑이 이어졌습니다.

1년 전 신년 워크숍에서 선경이 “생태문명적 전환의 시대에 시스템 전환을 촉진하는 센스메이킹 플랫폼”이라는 씨닷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앞선 브리핑 속에 등장한 다양한 주제, 지역, 주체들과의 협업을 어떻게 하면 이러한 지향점으로 모을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 비전을 이루는 구성요소들이 구성원들 안에서는 어떻게 소화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씨닷이 여러 사업을 통해 드러낸 “모-두를 위한 도시”라는 슬로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씨닷 안에서 참여한 프로젝트나 보낸 시간이 멤버들마다 다른 탓에, 이 슬로건들을 이해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랐습니다. 또 씨닷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우리 조직의 정체성이 어떻게 전달될지도 고민하면서, 이해도를 맞춰가자는 이야기로 늦은 밤의 논의가 마무리 되었네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온통 새하얀 바깥 풍경 속에 꿈결 같은 시간이 지나고 체크아웃 시간이 왔습니다. 샘의 제안으로, 동료들의 눈을 한참 마주보고, 응원의 말을 건네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타인의 눈을 말없이 응시하는 일이 이렇게 부담스럽고, 뭉클하며, 말보다 깊은 감정을 전하는 일이었나 싶어 감동을 받았습니다(저의 눈빛을 받은 동료들도 부디 그렇게 느끼셨길 바라며…)

그후 돌아가며 리트릿 소감을 이야기하고선 센터피스에 내려둔 자연물을 하나씩 다시 가져왔어요.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왔다는 게 실감이 났습니다. 사업에 대한 고민뿐 아니라, 함께 큰 그림도 그려보고, 자신의 마음도 돌아보고, 함께 일하는 동료의 눈도 바라보면서 영적인 충만함도 느낄 수 있었던 2박 3일이었네요. 모두 ‘편안했다’고 얘기해줘서 다행이었고,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모두의 약속’에 쓴 것처럼) 마당에서 지내는 개에게 따뜻한 물을 챙겨주던 동료들의 모습도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또한 리트릿의 순간순간이 좋았던 만큼, 이 시간을 가능케해준 샘과의 헤어짐이 더욱 아쉬웠어요. 작년 하반기에 씨닷과 작별한 소중한 인연들도 떠올리며 행운을 빌었습니다.

2022년엔 또 어떤 날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동료들과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면서 용기내보도록 해요. 여름의 리트릿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 덧붙이는 소감

[무명의 동료로부터 온 후기]

2022년에 접어들어 1월부터 리트릿이라는 섬세하고 촘촘하게 준비된 선물을 받았는데, 주온이 정리해준 이 글을 읽으니 두번째 선물을 받은 느낌입니다. (고마워요 주온!)

리트릿은 지난 한해의 사업을 정리하며 나와 내 동료들, 그리고 우리 사이를 채우고 있는 다양한 밀도와 온도의 에너지를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또 각자의 언어로 앞으로의 한해에 대한 기대를 어림해보고 맞추어보는 작업이기도 했고요.

조각보 작업을 하면서는 커다란 사업 덩어리뿐 아니라 거기에 얽힌 작은 에피소드까지 회상해볼 수 있어서 뜻깊었어요. 새로 조인한 동료들과 그 전의 일들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고요. 그림카드 대화에서는 1:1의 긴밀한 대화시간 이후 각자 뽑은 딕싯 카드를 (의도치않게) 섞어놓았는데 바닥에 널려있는 카드를 보며 누가 뽑은 카드일까 마음속으로 짐작해보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약간 아쉬운 지점도 있는데, 몇몇 솔직해야 하는 액티비티에서 충분히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리트릿에서의 대화와 회고를 통해 씨닷의 일원으로 또 제 자신으로 2022년을 어떻게 맞이하고 싶은지 좀 더 선명해진 것 같아요. 나와 더 솔직하게 만나기, 그리고 씨닷의 비전을 중심에 두고 일해나가기. “생태문명적 전환의 시대에 시스템 전환을 촉진하는 센스메이킹 플랫폼”이라는 말은 거대하지만 잘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어요. 그럼 모두들 2022년을 잘 보내시고 저 너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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