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시럽보다 간절한 소파

때론 커피 한 잔보다 더 아른거리는 테이블이 있다

이명석
 카페 정키 Cafe Jun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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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벌써 여기 와 버렸어!” 약속은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부지런을 떤 친구가 성화를 부린다. “어디 카페에라도 들어가 있어!” “어디 가면 좋을까? 나 이 동네 잘 모르는데?” “맛있는 커피를 원해? 분위기 괜찮은 데가 좋아?” 그딴 것 필요 없단다. 사흘 동안 야근 늪에 빠졌다가 뛰쳐나와, 눈도 혀도 멀어 버렸다고 한다. 지금 너에게 절실한 것은 온몸을 감싸 안아줄 소파구나!

커피를 통해 국제어가 된 이탈리아어 중에 ‘바리스타’가 있다. ‘바텐더’처럼 바에서 일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로마의 테르미니 역에 도착하자마자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곳 손님들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바로 돌진해 동전을 내던진다. 바리스타들은 2차 대전이 아직 계속 되고 있는 듯, 사방에 커피 가루를 휘날리며 에스프레소를 난사한다. 그러나 카페 정키들에게 이런 식의 ‘바 찍고 나오기’는 어불성설. 다정한 의자와 탁자가 반겨주지 않으면 우리의 체류지가 될 수 없다.

때론 커피 한 잔보다 더 아른거리는 테이블이 있다. 달콤한 시럽보다 간절한 소파가 있다. 시트콤 <프렌즈>의 뉴욕 친구들에게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거대한 카푸치노 머그가 아니었다. 그들의 카페 ‘센트럴 퍼크’에 있는 푹신한 소파는 그 공간을 아지트로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였다. 내가 가끔 스타벅스의 몇 몇 지점을 안타깝게 원하는 것도 그런 소파를 지녔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빙하기의 서울을 피해 들어가 잠시 눈을 붙였다 내 앞의 노숙자를 쫓아내는 종업원의 소리에 잠을 깨기도 했다.

커다란 작업용 원목 테이블 역시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카페를 찾은 외톨박이들은 그 평원에 각자의 텐트를 치고 조심스레 유목한다.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 들어온 누군가의 사진집을 훔쳐보고, 사각사각 돌아가는 연필깎이 소리에 괜스레 나의 필통을 열어본다. 어두컴컴한 복층 아래의 2인석은 발그레한 짝들의 자리겠지? 그건 애교로 봐준다. 관광버스처럼 모든 자리를 두 칸씩으로 늘어놓은 여대 앞 카페의 뻔뻔함과는 다르다.

이명석 : 한겨레신문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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