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S (1) the birth of house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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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di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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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min readMar 18, 2015

탐방탐방 전자음악 (1)하우스는 어디에서

2015년 봄, 전자음악감상회 <장르 연구 : 불끄고 오세요>의 결과물을 정리해 <탐방탐방 전자음악>이란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첫 코너는 하우스. 다음주엔 영국으로 건너간 하우스를 다루며, 그 다음주엔 정글/주크/풋워크를 다룰 예정입니다. 많이들 사랑해주시길…

하우스의 어머니는 디스코

우선 이 점부터 짚고 넘어가자. 아주 많은 전자음악이 하우스로 분류된다. 너무 많아서 하우스라는 글자 앞에 뭘 붙여도 있는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딥 하우스, 애시드 하우스, 개러지 하우스, 테크 하우스, 일렉트로 하우스, 하드 하우스, 이딸로 하우스, 해피 하우스,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스윙 하우스 등 정말 다양한 세부 장르가 있으며 그만큼이나 다양한 음악들이 있다(물론 정말 아무 말이나 가져다 붙이면 안 된다, 예컨대 화이트 같은 형용사). 뿐만 아니라 하우스로 분류되진 않지만, 하우스의 영향을 받아 새로 태어난 장르도 무척 많다.

많은 건 이 뿐 만이 아니다. 하우스라는 이름이 생기게 된 경위에 대해서, 논란 역시 적지 않다. 필자의 이름이야 우리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만, 하우스는 그렇지 않다. 누가 언제 처음 하우스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의견이 제각각이다.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서 합의되는 한가지 사실은 하우스의 어머니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디스코(disco), 디 디디 아이 에에에에스 씨 오, 디스코.

디스코는 1970년대 초중반 소울(soul)과 펑크(funk)의 영향을 받은 댄스 음악이다. 그리고 하우스가 태동할 시기는 디스코의 끝물이었다. 록음악은 디스코에 잡아먹혔으며, 디스코 역시 디스코에 잡아먹혔다. 그러니까 디스코가 일정한 패턴으로 자기 반복을 계속했단말이다. 그렇다고 디스코를 대체할 댄스음악이 출현하지도 못했다.

하우스는 이러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초창기 하우스 형성에 영향을 준 곡으로는 △펑크/디스코 밴드 립스 아이엔씨(Lipps, Inc. 립씽크라고도 읽는다나?)의 데뷔 엘범 <마우스 투 마우스(Mouth to Mouth)>의 첫 트랙으로, 28개국의 차트를 휩쓴 “펑키타운(Funkytown)” △도나 서머(Donna Summer)가 1977년에 발표한 곡 “아 필 럽(I Feel Love)” △패트릭 코울리(Patrick Cowley)의 “메너지(Menergy)” 등이 있다.

(좌)디스코의 여왕이란 별명을 지닌 도나 서머 / (우)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패트릭 코울리의 <메너지>

이곡들은 드럼 머신(실제 세트 드럼이 아니라, 드럼 소리만을 갖고 있는 전자악기)과 신디사이저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금이야 롤랜드 사에서 나온 드럼 머신 TR-808은 명기로 취급 받으나, 발매되었을 당시만 해도 인위적인 소리 탓에 인기가 없었다. 하여 가격이 떨어지는 바람에, 가난한 디스코&하우스 음악가들이 즐겨쓰게 되었다고 한다. 리듬은 반복적인 4/4박자를 즐겨 썼으며, 하이햇(드럼에서 발로 여닫을 수 있게 만든 심벌의 일종으로 창창 소리를 낸다)을 열고 쓰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앞서 말했듯 신디사이저가 많이 쓰였는데, 디스코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베이스 라인마저 신디사이저로 찍는 경우가 많았다. 디스코에 비해 노래보다 리듬에 비중을 두는 경향도 있다.

(좌) 나야 나, TR 808 / (우) 다들 하이햇이 뭔지는 아시죠?

첫 하우스 장르 노래는?

먼저 최초의 하우스 곡이라 불려오는 녀석을 꼽아보자. “기원으로 회기하고자 하는 억누를 수 없는 욕망”(자크 데리다가 말했다…)일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처음이 뭔지 궁금하잖아. 혹자는 칩 이(Chip E.)가 1985년에 내놓은 “잇츠 하우스(It’s House)”가 하우스 음악의 시초라고 말한다.

누가 이 따위 뮤비를 만들어놨데?

어떤 사람은 시카고 DJ 제시 샌더스(Jesse Saunders)가 1984년에 발표한 “온 앤 온(On and On)”을 든다. 제시 샌더스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펑 큐 업(Funk U Up)”을 통해 하우스 트랙으로는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에 올랐으며, “럽 캔트 턴 어라운드(Love Can’t Turn Around)”를 통해 영국 하우스 씬에 불을 질렀다.

(좌) 오른쪽이 제시 샌더스 / (우) 제시 샌더스 aka 귀요미

샌더스는 싹수가 노랬다. 16살의 나이로 시카고 나이트 클럽 씬에 오가며 프랭키 너클스(Frankie Knuckles)의 디제잉을 보며 자랐다. 그의 나이 방년 20세가 되던 1982년에 그는 더 플레이그라운드(the Playground)라는 자기 소유의 클럽을 차린다. 제시 샌더스는 전설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프랭키 너클스는 전설의 전설쯤 된다. 그가 누구냐고?

하우스 노래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하우스는 하우스

프랭키 너클스의 살인 미소

프랭키 너클스더 웨어하우스(The Warehouse)라는 클럽의 디렉터로, 말하자면 하우스의 아버지쯤 되는 인물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인데 그가 하우스를 낳진 않았다. 왜냐하면 프랭키 너클스가 당시에, 오늘날 하우스라 불릴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만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그는 그냥 틀었다, 새로운 음악들을.

무슨 소리냐고? 그러니까 전자음악의 한 장르로서 하우스라는 말이 생기기 이전에 이미 하우스라는 말이 쓰였다는 말이다. 하우스라는 명칭의 유래로, “더 웨어하우스에서 듣던 그 음악”을 줄여 “하우스”라 불렀다는 설이 만만치 않게 유력하다. 임포츠 이티씨(Imports Etc)라는 음반 가게가 있었다. 프랭키 너클스가 클럽에서 트는 음악이 인기가 많아, 이 가게에선 그가 플레이하던 레코드를 “웨어하우스 음악(Warehouse music)”이라고 묶어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코드도 잘 나간다. 그래서 하우스 음악이란 말이 생겼다는 설이다. 어쨌건 하우스란 말은 웨어하우스의 음악과 그곳의 분위기를 가리키는 말이었던 셈이다. 참, 앞서 제시 샌더스가 오가던 클럽이 바로 더 웨어하우스다.

더 웨어하우스

더 웨어하우스에서 하우스가 태어났다고

무대는 1970년대 초반, 미국 중부 시카고. 시카고는 보수적이며 재미 없는 도시였다. 음악적으로도 별다른 조류가 없었다. 하지만 뉴요커 로버트 윌리엄스(Robert Williams)가 이주하며 달라졌다. 그는 지루한 시카고 생활 와중에 뉴욕 살 적 다녔던 클럽이 그리웠다. 예컨대 로프트(Loft) 같은, 폐공장을 개조해 창고풍으로 꾸민 비개방적인 클럽.

이제는 노익장이 된 왕년의 힙스터, 로버트 윌리엄스

없으면 어쩌나? 만들면 되지. 그래서 만들어진 클럽이 바로 더 웨어하우스다. 요크(York)를 그리워하며 지은 이름이 뉴욕(New York)이니 더 웨어하우스는 뉴뉴욕쯤 되겠다. 더 웨어하우스는 화려한 시설은 아니었다. 또한 초대장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폐쇄적인 클럽이었다. 하지만 불타는 토요일을 보냈다. 가끔은 출입하지 못한 사람들이 입구에서 떼로 춤을 추기도 했다. 왜 이렇게 인기가 있었냐고? 일단 음악이 달랐고, 게이들이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안식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도 잠시, 애플이 삼성의 등장으로 잠시 휘청거렸듯 더 웨어하우스 역시 더 바워리(The Bowery)라는 라이벌 클럽의 등장으로 손님을 꽤나 빼앗기고 만다. 2000년대 한국에서였다면 소위 ‘물관리’에 더 열심히 해 클럽을 지켰겠지만(아직 출입시 복장 규정 및 나이 상한이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로버트 윌리엄스는 달랐다. 클럽 분위기만 뉴욕풍으로 꾸미지 말고, 음악 역시 뉴욕 스타일로 가자! 다시, 2000년대 한국에서였다면 멜론에서 뉴욕 음악들을 다운 받아 틀었겠지만, 로버트 윌리엄스는 뉴욕에 있는 디제이를 직접 데려오기로 한다. 그래서 온 사람이 프랭키 너클스, 때는 1977년 3월이다. 더 웨어하우스에서의 첫 밤은 로맨틱했으며 성공적이었다.

억압받는 자들의 놀이터

프랭키 넉클스는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라고 말했다. 실제로 초기 하우스 음악은 사회의 빈곤 계층을 위한 정치적 메세지를 담기도 했다. 예컨대 조 스무스(Joe Smooth)의 “프로미시드 랜드(Promised Land)”, 세세 로져(CeCe Roger)의 “썸 데이(Someday)”. 그래서 초창기 하우스는 초창기 흑인과 게이 등 소수자들에게 인기를 더 끌었다.

하지만 오늘날 하우스는 시카고 지역에만 머무르지 않으며, 청중 역시 무차별 대중으로 확장되었다. 하우스는 각종 음악 차트를 점령하였다가 그 영광을 힙합 등에 내주었는데, 요즘 다시 고개를 빼꼼빼꼼 내밀며 권토중래를 도모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오늘날 가난하고 차별받는 자를 위한 음악은, 클럽은 어디에 있나? 없으면, 로버트 윌리엄스가 그랬듯 만들면 될 일이다.

출처_위키피디아, 디스콕스, 5 매거진, 대중음악평론가 이대화 블로그, RA 등
자료 조사_김주예, 한동수(전자음악감상회)
정리_정서연(전자음악감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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