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S (3) Early Detroit Tech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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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in readMay 1, 2015

탐방탐방 전자음악 (3) 테크노가 응애응애

전자음악감상회 <장르 연구 : 불끄고 오세요>, 셋째주엔 하우스를 잠시 쉬고 테크노의 초동기를 다룹니다. 주로 미국 디트로이트 테크노를 편향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테크노는 어떤 음악?

테크노는 기본적으로는 4/4박자를 사용한 음악으로, 매 1/4박자를 기준으로 백비트 형식의 2번째 박과 4번째 박에 사용되는 스네어와 클랩, 그리고 매 두 번째 박에 울리는 1/8박자의 오픈 하이햇 등으로 구성된다. 빠르기는 테크노의 스타일에 따라 120에서 150 사이의 BPM 사이에서 변화한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가? 일단 들어보자.

1981년 후안 앳킨스(Juan Atkins)와 리차드 데이비스(Richard Davies aka 3070)는 ‘사이보트론(Cybotron)’이라는 이름으로 레코드를 발매했다. 혹자는 이 엘범을 테크노의 기원으로 꼽는다.

테크노와 하우스는 어떻게 다른가?
아니, 어떻게 비슷한가?

테크노와 하우스는 어떻게 다른가? 누군가에겐 너무 쉬운 문제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냐고 물으면 “그게 말이지…”하는 대답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몇몇 트랙은 끄덕이며 나눌지언정, 여전히 몇몇 트랙은 도저히 분류하기 힘들다.

우리가 무식해서는 아니다. 테크노와 하우스를 비롯해, 장르의 구분에는 칼 같은 기준이라거나 항상 적용되는 만능 공식이랄 건 없기 때문이다. 장르란 애당초 두루뭉술한 유사성을 근거로 상이한 음악들을 묶은 것이다. 즉 규정 불가능성이랄까 하는 걸 처음부터 갖고 있는 것이다.

차이점을 살피기 전에 공통점부터 짚어보자. 왜 하우스와 테크노는 왜 비슷하게 들릴까?

첫째, 둘은 비슷한 시대에 비슷한 시대 정신을 안고 태어났다는 이유를 들 수 있다. 비슷한 흐름에 자극을 받아 비슷한 응답을 내놓은 비슷한 세대의 비슷한 음악이라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 하우스와 테크노 모두 유럽의 전자음악에 자극받은 흑인 댄스 음악 매니아들이 펑크 혹은 디스코의 다음 단계로 내놓은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둘째, 하우스와 테크노 모두 조금 더 DJ-친화적으로, 더 클럽용으로 형식과 편곡의 변화를 꾀했기 때문이다. 라디오보다는 클럽을 노리고 만들어졌기에, 비트가 강렬하며 믹싱하기 편한 규칙적인 구성을 띠게 되었다. 말하자면, 유럽의 전자음악과 미국의 디스코를 가져다 리믹스 버전으로 프로듀싱한 셈이다. 즉 테크노와 하우스는 흑인 음악의 전자음악화일 뿐더러 그것의 디제이 리믹스 버전으로의 진화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DJ 문화다. 하우스와 테크노를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직계 계보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건 더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한 것(이는 논란이 많은 주장으로, 우리 음감회에도 테크노의 고향이 디트로이트가 아니라 베를린이라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말하자면 두 장르는 일렉트로닉과 디스코가 DJ라는 필터를 거친 새로운 흐름이다.

Kevin Saunderson

케빈 샌더슨(Kevin Saunderson)은 다큐멘터리 <모듈레이션(Modulation)>(1998, Ira Lee 등)의 인터뷰에서 테크노의 정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내 생각에 디트로이트 씬의 업적은 모든 것을 댄스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크라프트베르크나 유럽의 전자음악을 디제이 친화적으로, 클럽에서 틀만한 음악으로 만들어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음악을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새로운 레벨이 바로 테크노라 불리게 됐다.”

셋째, 똑같이 포-투-더-플로어 리듬(4분의 4박자의 균일한 비트)을 사용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하우스와 테크노에도 다양한 하위 장르들이 있고, 어떤 곡은 천편일률적인 4박자에서 벗어나 더 다층적이고 복잡한 비트를 구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테크노와 하우스는 디스코에 영향을 받은 정박의 킥(Kick) 드럼을 사용한다. 리듬의 뼈대가 비슷하면 음악도 비슷하게 들릴 수 밖에 없지 않나?

넷째, 두 장르 모두 비슷한 악기들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다양한 신디사이저가 출시된 요즘과 달리, 초창기에 음악가들이 사용하는 전자악기는 많이들 겹쳤다. 예를 들어, 당시엔 하우스와 테크노를 막론하고 드럼 머신은 롤랜드(Roland), 키보드 신디사이저는 코르그(Korg)와 야마하(Yamaha)의 초기모델, 레코더는 타스캠(Tascam)을 많이 썼다. 장비가 비슷하면 비슷한 음악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사용하는 음색도 유사하고 변형과 조합의 아이디어도 비슷한 수준에서 제한됐다. 마치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사고방식도 비슷한 것처럼 같은 장비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비슷한 창의성이 발휘되곤 한다. 하우스와 테크노도 그랬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코르그 롤랜드 야마하

사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테크노와 하우스는 딱히 구분되지 않고 모두 ‘하우스’라고 불렸다. 당시 NME(New Musical Express) 매거진에서는 오늘날 대표적인 테크노 뮤지션이라 할 데릭 메이(Derrick May)를 두고 “디트로이트 하우스 뮤지션”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테크노냐 하우스냐? 데릭메이도 정체성 혼란을 느꼈을랑가.

심지어 디트로이트 프로듀서들도 한 때는 자신들을 하우스의 새로운 경향쯤으로 생각했다. ‘테크노’라는 장르 이름을 전 세계에 대중화시킨 앨범 <테크노! 더 뉴 댄스 사운드 오브 디트로이트(Techno! The New Dance Sound Of Detroit)>(1988)는 원래 <더 뉴 하우스 사운드 오브 디트로이트(The New House Sound Of Detroit)>라는 이름으로 발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하우스 뮤지션들과 자신들을 구분할 필요가 생겼고 그제야 이름을 ‘테크노’로 고쳤다니까.

이래서 이름이 중요하다

다시, 하우스와 테크노는 어떻게 다른가?

그러나 다른 건 다른 거다. 하우스와 테크노는 분명 뭔가 다르다. 아무리 초창기 두 장르 사이에 공통점이 적지 않다지만, 오늘날 실제 씬에서 둘은분명 서로 다른 음악으로 구별지어지고 있다. 예컨대 요즘은 상업적인 일렉트로 하우스에 대한 ‘대항마’로 테크노가 떠오르고 있다. 두 음악이 완전히 같은 것이라면, 서로 대립된 구도가 만들어질 리가 없지 않나. 그렇다면 대체 테크노와 하우스의 차이점은 뭘까?

첫째, 아주 거친 구분이지만 테크노는 좀 더 기계적이고 하우스는 좀 더 디스코적이다. 여기서 기계적이라 함은 사운드 디자인에서부터 형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측면을 포괄한다. 더 어둡고, 더 로봇 같고, 더 SF적이고, 더 세기말적인 음색들을 사용하며, 더 반복적이고 더 미니멀한 형식을 고수한다.

하우스가 기계를 통해 디스코를 만든 것이라면 테크노는 기계가 스스로 디스코를 만든 것이라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하우스가 기계를 수단으로 삼은데 비해 테크노는 기계 그 자체에 빠져들었다고 할 수 있다. 테크노에게 ‘기계적인’ 것이란 인간성을 덧칠해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매력적인 음악적 가능성이었다. 테크노가 더 테크놀로지 자체에 집중했다면 하우스는 여전히 디스코를 바라봤다.

물론 하우스에도 테크노적인 경향이 있다. 그 역시 전자음악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테크노에도 하우스적인 면이 있다. 그 역시 펑키한 댄스 음악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비교는 상대적 재단일 뿐이다.

디스코는 하우스를 사랑하고 하우스도 디스코를 사랑해.

둘째, 테크노는 인스트루멘탈 경향이 짙다. 하지만 하우스는 보컬을 선호하는 편이다. 두 장르는 아버지들부터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데릭 메이는 철저히 인스트루멘탈을 추구했다. 은근한 메시지를 담는건 좋아했지만, 가사를 통해구체적으로 표현하진 않았다.

그러나 프랭키 너클스(Frankie Knuckles)는 보컬을 좋아했다. 그는 리듬 트랙만 계속 플레이하는 DJ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의 로망은 늘 70년대 디스코 디바들로 향했기 때문이다. 보컬곡은 연주곡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적 히트의 가능성이 열려있을 뿐더러, 멜로디를 선호하는 대중들의 음악 취향에 더욱 잘 맞다. 테크노는 전통과 과감히 결별하고자한 반면, 하우스는 전통의 좋은 면을 흡수했다. 하우스가 더 대중적으로 크게 사랑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좀 더 팝적으로 즐길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디트로이트 테크노 클럽을 대표하는 ‘뮤직 인스티튜트’의 로고

셋째, 클럽의 분위기에서도 다른 경향을 보였다. 디트로이트 테크노를 대표하는 클럽인 ‘뮤직 인스티튜트(Music Institute)’는 이름부터가 놀자하는 분위기와는 다르다. 분명 댄스파티가 벌어졌던 곳이지만, 하우스의 성지인 ‘뮤직 박스(Music Box)’처럼 마약이 판치거나 쾌락의 도가니탕은 아니었다. 테크노 뮤지션 데릭 메이가 괴물 같은 에너지의 디제잉을 선보였다곤 하지만 상대적으로 지적이고 언더그라운드적이었다. 화려한 시설은 고사하고 온통 칠흑 같은 분위기에 몇 개의 조명만 덜렁 빛나고 있었다고 한다.

하우스 음악으로 유명한 웨어하우스(The Warehouse)와 뮤직 박스는 흑인 게이들의 클럽이었다. 나중엔 스트레이트(이성애자)도 함께 놀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랬다. 그래서인지 하우스 클럽에서는 흑인 스트레이트들의 씬이었던 테크노 클럽보다 디스코에 대한 애착이 더 강했다.

후안 앳킨스는 ‘딥 스페이스 사운드웍스(Deep Space Soundworks)’ 시절에 그들의 라이벌 ‘다이렉트 드라이브(Direct Drive)’가 구식 디스코만 틀고 있었다며 비웃은 적이 있다. 자신들은 디스코를 넘어 새롭고 실험적인 음악을 많이 소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랭키 너클스는 옛날 디스코를 틀어서 성공했다. 그의 웨어하우스에는 뉴 웨이브의 전성기에도 필라델피아 인터내셔널 같은 옛날 디스코 레이블의 고전들이 플레이됐다. 론 하디 역시 디스코를 좋아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우스는 발생부터가 디스코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일렉트로닉 프로듀싱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뮤직 인스티튜트에 하우스가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미 영국을 오가고 있던 데릭 메이는 누구보다도 발 빠르게 하우스 신곡을 수입해다가 틀곤 했다. 뮤직 박스에도 테크노가 울려 퍼졌다. 디트로이트 프로듀서들은 신곡을 낼 때마다 론 하디에게 데모를 가져다주기 바빴다. 시카고 클럽 씬이 규모도 더 크고 에너지도 더 강렬했기 때문이다.

더 들을 만한 곡

데릭 메이의 ‘리듬 이즈 리듬(Rhythim is Rhythim)’

케빈 샌더슨이 주축이 되어 활동한 밴드 이너시티(Inner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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