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CHEQUER Works (2) — Company Guide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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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내가 카카오에 입사하던 그해 겨울, 첫 출근날 3가지 물건을 받았다.
15인치 최신형 맥북 + 27인치 델 모니터, 이쁜 노란색 카카오 컵과 기타 회사 생활에 필요한 것을 담은 웰컴킷,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카카오 행성 핸드북이었다.
이 핸드북의 핵심 내용은 카카오에서 커뮤니케이션 방법, 조직과 인사/평가 체계 시스템, 카카오만의 특별한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핸드북을 감명 깊게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개인적으로 카카오에서 내가 얻은 수많은 경험과 자산 중 이 핸드북을 최고로 꼽는다. 당시 핵심가치 TF라는 조직에 누가 있었는지, 또 누가 이 문서를 주도적으로 작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사람을 찾을 수만 있다면 우리 회사에 HR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하고 싶을 정도로 이 문서에 대한 애정과 생각이 남다르다.
하여튼, 당시 나는 이 문서에 너무나도 큰 감명을 받았고, 창업한다면 꼭 이 문서를 토대로 회사 문화를 만들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는 2년 만에 카카오를 퇴사했고, 그로 부터 1년이 더 지나 ‘법인’을 설립하고선 카카오 행성 핸드북보다 더 파격적으로 CHEQUER Company Guide Book을 써 내려갔다.
모든 내용을 소개할 순 없겠지만 (궁금하면 입사하세요 !!) 가이드 북의 핵심적인 몇몇 부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가이드북은 총 28페이지 분량으로 “회사의 핵심 가치”, “회사 소개”를 비롯해 카카오 행성 핸드북에서 제시하는 커뮤니케이션, 조직, 인사, 평가 등에 대해 비슷하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두드러지는 특징은 ‘조직’과 ‘문화’다
카카오에 첫 출근했던 날 매우 충격적이었다. 입사 전에 ‘영어이름’을 지으라며 웬 영어 이름 중복체크 사이트를 알려주길래 Brant라는 영어 이름을 넣었더니 첫 출근날부터 사람들이 죄다 나를 ‘Brant’라고 불렀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서로 존대 없이 영어 이름을 부르면서 이야기했다. 대리님, 과장님, 차장님 하던 회사에 6년간 다니다 카카오에 입사한 나에게 영어 이름 부르기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하루, 이틀, 한 달이 지나면서 나는 이 문화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머리로, 행동으로 생각으로 체험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영어 이름을 쓴다고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걸. 영어 이름은 단지 보조 수단일 뿐,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사람이 존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채용단계에서부터 열린 커뮤니케이션,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하지만 영어 이름은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나고, 경험 많은 전문가들을 유연하게 연결해주는 새로운 방법이었고 대화에 걸림돌인 ‘상하 관계’를 해소해주었다.
또한 이 영어 이름 부르기는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새로운 힘을 발휘한다. 바로 코드 리뷰 때다. 수많은 코드 리뷰 회의에서 다른 사람의 코드에 질문하거나, 혹은 지적하거나, 이야기 하는 것은 개발자들끼리도 쉽지 않은 일이다. 상상해보시라. “부장님, 저 코드에 25라인 잘못된 것 같은데요?”, “뭐임마?” …. 일반적인 회사에서 코드리뷰란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카카오에서는 시니어든, 주니어든, 누구나 영어 이름으로 소통하다 보니 더 편안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즐거운 코드리뷰가 가능했다.
두 번째는 출퇴근 시간이다.
카카오에서도 10AM-7PM 이라는 규칙은 있었다. 하지만 조직별로 매우 탄력적으로 근태가 운영됐다. 내가 속해있던 커머스 개발팀은 10시에 출근하면 출근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고 업무가 시작되면 업무 집중도나 일의 속도는 내가 과거에 경험했던 다른 회사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바로 전문성과 탁월함이 갖춰져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와 ‘책임’을 적절히 분배한 것이다.
난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출/퇴근 시간을 없애고 휴가도 무제한으로 부여했다. 회사에 언제든지 즐겁게 출근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며 탁월한 성과만 내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또 횟수에 제한받지 않고 일한 만큼 신나게 놀고 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밤낮없이 일하는 스타트업이 이래도 되나? 할 정도로 자유롭고 독특한 조직시스템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 반문을 제기한다. 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고, 자유로운 출퇴근이 필요하고, 무제한 휴가를 제공해가면서까지 회사를 운영합니까? 채용해서 일한 만큼 월급 주고, 사대보험 지급해주고, 수많은 복지 혜택까지 주는데 저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내 대답은 “네,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소프트웨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다. 좋은 사람들이 많으면 ‘잘 동작하고, 잘 팔릴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고 그 반대라면 ‘엉망’인 소프트웨어가 나오는 게 소프트웨어의 특징이다
결국 소프트웨어 특성상 함께 일하는 사람들 간의 ‘소통’과 ‘지식적 교류’가 매우 중요하고 이를 만들기 위한 사람들이 탁월하고 뛰어나야 한다는 사실에 반문을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뛰어난 개발자와 그렇지 않은 개발자 간의 격차는 수십~수백 배 이상이라는 믿기 어려운 말도 있는 것처럼.
결국 내가 롤모델로 삼았던 카카오는 ‘소프트웨어’를 잘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은 것이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회사들의 채용과정에 대해 구글에서 단 몇분만 검색해보면 왜 그토록 카카오가 기업 문화와 조직에 신경 썼는지 알 수 있다.
우리 회사는 아직 작고, 신생이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난 더 파격적이고 매력적인 기업문화와 조직 시스템이 있다면 탁월한 인재들을 영입하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믿고 있다. 물론 문화와 조직이 전부는 아니다. 허나 탁월하고 뛰어난 인재들은 연봉, 보너스뿐만 아니라 기업의 문화를 매우 중요한 이직 혹은 입사 조건으로 따지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좋은 문화와 조직으로 인재를 데려오는 것만으로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뛰어나고 탁월한 인재들이 더욱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도록 시스템으로 뒷받침해 주고, 끊임없이 가시화해 주어야 한다.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 회사 만들기, 거참 어렵다. 다음 편에서는 우리 회사가 어떤 시스템들을 도입했는지, 그 시스템들로 어떻게 일하고 소통하는지 이야기 정리하고 소개해봐야겠다.